[서울외계인] 버지니아 울프,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읽기

D-29
우리는 문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가르쳐야 합니다.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p.240,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이 강연을 들은 노동자( 연합 회원(?))들 중 많은 이가 고무된 상태로 강연장을 나갔을 것 같아요.
1903년에 설립되었다는 노동자교육연대(WEA)에서는 지금도 활발한 활동이 진행 중이네요.
[열한째 날] 〈기우는 탑〉 (1940) 이번 글은 위에 @yoonshun 님이 말씀하셨듯이, 책의 제목 "문학은 공유지입니다"라는 문장이 등장하는 글입니다. 울프는 명백히 이전 세대 영국 작가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class", '계급'을 이용해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미래에는 이 '계급'이나 소수가 올라가 있는 탑이 없어지리라 희망하며,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걸어 들어가, 자기 길을 스스로 발견"하는 새로운 문학 세계를 제안합니다. 제 억측일지도 모르나, 남자 형제들처럼 공식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독서를 통해 성장했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비전을 제시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거기에는 국경도 전쟁도 없습니다.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걸어 들어가, 자기 길을 스스로 발견합시다.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p.242,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매일 글을 쓰십시오. 자유롭게 쓰십시오. 하지만 우리가 쓴 것을 항상 위대한 작가들이 쓴 것과 비교해 봅시다. 굴욕적이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뭔가를 남기고자 한다면, 창조하고자 한다면 그것이 유일한 길입니다.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p.241,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평민이라고 해서 왕들 앞에서 지레 물러날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스킬로스, 셰익스피어, 베르길리우스, 단테 등이 보기에는 그거야말로 치명적인 죄입니다.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p.241,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열두째 날] 〈너무 많은 책이 쓰이고 또 나오는 게 아닐까?〉 (1927) 이 글은 버지니아 울프와 배우자 레너드 울프가 방송에서 한 대담을 옮긴 글입니다. 각주를 보니 "당시의 방송은 대부분 생방송이라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는 식이었다"고 하는군요. 당시 영국의 독서, 출판 관련 상황이 현재 한국의 상황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이 재밌습니다. 레너드 울프의 주장들은 식상할 정도로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평범한 중류층 지식인의 주장들이네요. 반면 버지니아 울프는 상황들의 다른 측면들을 볼 수 있게 해줍니다. "나는 반대로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책을 쓴다고 말하겠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책 한 권을 쓸 만한 사연은 갖고 있어요." 당시도 독서와 다른 오락거리들과의 경쟁을 걱정했군요. 지금도 그렇지만 독서는 항상 뭔가와 경쟁해야 하는 운명인가 봅니다. 좋지만 즐겁지 않은. 그리고 독서가 즐겁다는 걸 아는 사람들은 그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들을 걱정하거나 무시하는. "2천5백 년 후에도" 그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 이렇게 이 책을 다 읽었네요. 내일은 이 책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해봤으면 좋겠네요.
내 생각에는, 책이 늘어난 것은 무조건 환영할 일이에요.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p.244,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게다가 모든 책을 백 년은 갈 것처럼 만드는 것도 이상해요. 보통 책의 수명은 기껏해야 아마 석 달일 거예요.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p.253,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저는 지난 4월에 런던에 잠시 갔었는데요, 놀라울 정도로 시내에서 와이파이 잡히는 곳이 적었고, 통신 자체가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휴대폰 사용이 어려워서 조금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인지, 런던의 지하철이나 기차에서는 책이나 신문을 읽는 사람들을 아주 많이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휴대폰 연결이 당연히 잘 되지 않는다는 전제로, 가방에 읽을 거리를 갖고 다니는 일이 당연한 듯한 분위기였달까요. ㅎ 울프 시대의 런던에 비하면 많이 달라졌겠지만, (다른 주요 도시들과 달리) 요즘 시대에 이동하며 책 읽는 사람들을 볼 수 있던 경험이 인상적이었어서 간략히 적어보았습니다.
미국 통계이긴하지만,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독서율이 많이 떨어지더군요. 한국은 와이파이도 잘 되고 게임 강국이고 아이돌도 많고 즐길 것은 더 많고... 그래도 출판사는 계속 생기고 책은 꾸준히 출간되는 거 보면 신기하기도 합니다.
그들이 독자로서 성숙해 가다 보면 단것에 물려서 소고기나 양고기처럼 실속 있는 것을 찾게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흥미로운 책, 어려운 책, 역사, 전기, 시를요. 소설이 꼭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내 말은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더 좋은 책을 읽게 되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대신 자기 책을 소유한다면 읽는 것에 더해질 기쁨도 알게 되리라는 거예요.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p252,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정신은 그렇게 단련되고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중간에 힘들어서 포기하기도 하지만요.
울프에 관한 이런저런 내용들을 찾아 보다가, 비교적 최근에 울프의 종교적, 신학적 면모에 주목한 두 권의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서도 잠시 언급했던) 하버드 신학대 스테파니 폴셀 교수와, 영국 성공회 사제이기도 한 리즈 트리니티 대학의 제인 드게이 교수는 출신 지역이나 종교 분파는 다르지만 모두 신학에 초점을 두고 문학을 공부하는 여성 연구자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서지 사항은 맨 아래 첨부했습니다.) 옥스퍼드 출신의 피터 브라운 선생 자서전("Journeys of the mind", 2023)을 보면, 옥스퍼드 학부에서는 1970년대 후반에야 처음으로 여학생 입학을 허가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물론 영국에서 여성들을 위한 대학이나 교육기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울프도 종종 강조했듯) 여성이나 노동자의 교육에는 뿌리 깊은 계급의식이 바탕에 놓여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식민지 시기도 포함해) 근대화 과정에서 영국에서처럼 투표권이 제한되거나 교육 기회를 금지당하는 식의 여성에 대한 제도적 억압은 크게 드러나지 않았던 반면, 오히려 일상 속에 남아서 전해져 온 조선시대 관습들이 ‘제도의 틀’ 밖에서 (상당 부분 지금까지도) 정서적 억압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 봅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어서 구체적인 근거를 갖고 하는 이야기는 아님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울프의 에세이와 관련 연구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당대의 지식인들이 일반 독자들에게 어떻게든 ‘말’을 건네며 ‘배움’을 촉구하려는 절실함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어서 더 생각해 보고 읽어볼 주제들이 많을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Stephanie Paulsell, "RELIGION AROUND VIRGINIA WOOLF", THE PENN STATE UNIVERSITY PRESS, 2021. https://www.psupress.org/books/titles/978-0-271-08487-9.html Jane de Gay, "Virginia Woolf and Christian Culture", Edinburgh University Press, 2018. https://www.literaturecambridge.co.uk/news/de-gay
이번에 읽은 울프의 책에서는 종교적, 신학적 측면은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다른 작품들에서는 또다른 면모들이 있나보군요. 한 작가로부터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이 이어질 수 있다니, 진정 한 작가는 하나의 세계인가 봅니다. 저도 세계를 만들고 싶네요.
이번 독서모임을 마치며 제 소회를 뉴스레터에 정리해보았습니다. https://seoulalien.substack.com/p/588 좋은 책으로 즐거운 대화 나눌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첫날 인용글 한번 올려 보고 그에 따른 답변 한 번 하고, 내내 이른 바 눈팅만 했습니다. 그 까닭이야 이곳의 방식이 익숙하지 않은 제 문제가 가장 크겠습니다만, 마지막날이니 이런 곳을 경험한 작은 감상을 남깁니다. 아무래도 인용글 중심으로 이어지는 방식이 가장 익숙해지지 않았습니다. 글에서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문장을 읽고 난 단편적 소감이나 주변적 생각들이 글타래로 산발적으로 이어지니 이게 어느 맥락에서 나온 얘기인지 이해를 못하고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그 소감들이나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주변적인 이야기가 재미없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익명의 웹의 독서토론(토의?)이 할 수 있는 방식이 원래 이런지 어쩐지 궁금하긴 한데, 이곳의 게시글 올라오는 방식, 글타래(?)가 단절적으로 툭툭 던져지는 것이 당최 어디서 어떤 얘기를 하는지, 혹은 할 수 있는지 껴들 틈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웹 게시판 문화에 익숙하지 않거니와, 어딘가에 글을 올리다는 게 영 부담스럽기도 해서 그렇다고 나름 자위성 정리를 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흔히 페미니스트의 성자 쯤으로 추앙받는 인물로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페미니스트 정도로 가두기엔 생각의 폭과 깊이가 남다른, 뛰어난 문학가로 여겨졌습니다. 좋은 책을 읽을 계기가 된 점은 참으로 유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아직 이곳의 방식이 익숙하지 않은 1인으로서... 같은 부분에서 불편함을 느끼는데요, 한가지 팁(?)을 공유드리자면 저는 '채팅' 모드를 '게시판' 모드로 바꿔서 보니 그나마 좀 낫더라고요. 이미 그렇게 하고 계실수도 있겠지만요...
예, 어떤 느낌이셨을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뉴스레터에도 썼지만, 저도 대화를 이어나가는 게 쉽지 않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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