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외계인] 버지니아 울프,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읽기

D-29
오늘날 한국에서는 특정한 신문에서 특정한 기자가 특정한 출판사의 책(주로 신간)에 대한 리뷰를 반복해 싣는 패턴이 왠지 지루하고 거슬리더군요. 그럼 또 해당 출판사의 SNS계정에 ‘어느 신문에 톱기사로 리뷰가 (또) 실렸다’는 자랑이 올라오고, ㅎ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더 다양하고 폭 넓은 책들이 출간되고 또 양질의 리뷰를 통해 소개될 수 있는 환경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 신문의 서평들이, 사람들이 책을 선택하는데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궁금하네요. 아, 사람들이 책을 안 본다고는 하지만 신문은 더 안 읽고 있군요. 뉴스를 볼뿐이지. 모두에게 외면 받는 책과 신문의 결합이라니. 이제 서평도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평이 더 신속해지고 짧아지고 수가 늘어나면서, 모든 관계자에게 서평의 가치가 줄어들다 못해 사라져 버렸다고 하면 지나친 말이 될까?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p.128,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지금은 서평보다 책이 더 많은 시대 아닐까요? ㅎㅎ 짧은 서평 하나 받지 못하는 새 책이 더 많을 것 같아요. 좀 불쌍한 느낌이 드네요.
[일곱째 날] 〈현대 에세이〉 (1925) 이 글은 각주 1에 나오듯이, 《현대 영국 에세이》(전5권, 1922)에 서평입니다. 이 책은 1870년부터 1920년까지의 영국 에세이를 모은 책인 것 같군요. 울프는 각 에세이 작가들을 평가하면서, 에세이의 본질에 관해 말합니다. 울프 자신이 훌륭한 에세이스트이기도 한데, 스스로 '에세이'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글을 썼는지 자세히 알 수 있는 글입니다.
「앞치마의 구름」에는 삶에, 오직 삶에만 속하는, 형언할 수 없는 불평등과 동요와 결정적인 표현력이 담겨 있다. 그 글은 다 읽었다고 끝낼 수가 없는 것이,(…)다.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현대 에세이,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다 읽었으되 끝낼 수 없었던 에세이가 제게도 몇 편 있는데요.^^ 울프를 매료시킨 저 작품이 궁금해서 숨이 찹니다요.
저도 맥스 비어봄의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절판 포함해서 한국어판이 몇 권 있더군요.
에세이를 지배하는 원리는 요컨대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p.144,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메뚜기떼의 창궐과 같은 또 다른 음성이 있으니, 그것은 산만한 말들 사이에서 졸음에 겨워 뒤뚱거리며 모호한 생각들을 되는대로 움켜쥐는 사람의 목소리이다.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p.146,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한국에 "창궐하는" 다양한 에세이 책들을 떠올리게 하는 문장입니다. 울프가 독설을 내뱉을 때는 참 날카롭네요.
알맹이는 그토록 작은데 매만지는 손길은 끊임이 없다.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p.150,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결코 자기 자신이 되지 않되 항상 자기 자신이라야 한다는 것이 문제다.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p.155,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여덟째 날] 〈전기라는 예술〉 (1939) 이 글의 제목은 논쟁적입니다. '전기'를 예술이라고 하는 것에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다음 부분을 인용함으로써 결론을 선취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전기 작가]가 기술자이지 예술가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의 작품은 예술 작품이 아니라 그 중간에 끼인 무엇이다. 하지만 그 낮은 수준에서도, 전기 작가의 작품은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p.178)
전기를 읽고 나면 얼마나 자주 어떤 장면이나 인물이 마음속 깊이 살아남아, 우리로 하여금 시나 소설을 읽을 때 마치 전에 알았던 무엇을 기억하기나 하는 듯 소스라치며 알아보게 하는가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전기라는 예술,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츠바이크의 전기 작품을 읽다 보면 딱 이 문장들 같은 경험을 갖습니다:)
전기 작가는 우리보다 앞서가며 거짓과 비현실성과 유명무실한 관습의 잔재를 탐지해야 한다. 그는 진실에 대한 감각을 생생하게 지니고 깨어 있어야 한다.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p.176,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전기 작가는 어떤 시인이나 소설가보다 더 상상력을 자극한다. 물론 최고의 시인이나 소설가는 제외하고 말이지만.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p.179,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20세기에 태어나 너무도 ‘당연하게’ 전기를 접하고 읽어온 세대로서, 상대적으로 전기라는 장르가 존재해 온 지 얼마 안되었고, 서구의 문학이나 역사 연구에서 오늘날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후로 전기에 (자서전도 포함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울프 자신도 전기작가였고, 울프의 전기를 썼던 Hermione Lee가 오늘날 전기 연구 분야의 권위자 중 한 명인 것도 주목해볼 부분인 듯 합니다.
아, 울프도 전기 작가였군요. 몰랐던 사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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