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외계인] 버지니아 울프,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읽기

D-29
오늘치 꽤 많은 부분에 공감하며 읽었는데 여기서 전 그냥 '울컥'해버린 마지막 문단을 고르겠어요. 책이 쫙 펴지질 않아 좀 짜증스러운 점 말곤 어제까지(?)와 다른 느낌입니다. 덕분에 끝까지 잘 갈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엔 표지 접는 선에 맞춰서 펼쳤더니 꽤 불편해서 그냥 쫙 펼쳤습니다. 제본 튼튼하네요.
우리는 독자로 남아야 한다. 굳이 비평가라는 저 드문 존재들에게 속하는 그 이상의 영광을 얻으려 해서는 안된다. (중략) 그리고 그 영향력은-제대로 교육되고 힘차고 개인적이고 진실하기만 하다면-비평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큰 가치를 발휘할 것이다.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울프가 비평가들을 참 점잖고 품위있게 무시하는구나라고 느꼈어요.
예일대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일본인 작가 미즈무라 미나에水村美苗 선생은, "일본 근대문학의 기적"이라는 글에서, "일본에서 '근대문학'이라는 용어가 19세기 중반 이후 제도적인 서구화의 흐름 속에서 동시대 또는 서구 소설을 모델로 삼아 창작되기 시작한 작품들을 지칭"하며, 이처럼 일본을 포함하는 비서구권의 '근대문학'이란 곧 문학의 단절, 또는 문화의 상실을 의미한다는 데 주목합니다. 반면, 영문학이나 프랑스 문학 같은 서구 문학에서 말하는 '근대문학'이란, 크게 보아서는 고대 그리스어나 라틴어로 쓰여진 고전문학의 틀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구어' 또는 각자의 '지역어'로 창작되기 시작한 문학을 가리키며, 서구문학의 충격을 통한 단절을 경험한 '동아시아 근대문학'과 달리 어떤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日本語が亡びるとき: 英語の世紀の中で』, (増補), ちくま文庫, 2015年, p.278) 더구나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에서는 일본보다도 더 여러 단계의 '단절'을 거쳤기 때문에, 서구 관점의 '근대문학'과 우리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에 더욱 더 복잡한 절차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유럽의 도시들을 방문했을 때 느꼈던 '단절 없는 역사'에 대한 감각이 새삼 떠오르기도 하고, 왠지 서글픈? 또는 답답한? 마음이 드네요. ㅎㅎ
아하. 중요한 지적이네요. 특히 한국의 "여러 단계의 '단절'"은 씁쓸하게 느껴지네요. 그래서 한국문학사의 시대 구분에 관한 논의가 많았고, 김윤식·김현의 《한국문학사》가 논쟁적이었던 것로 기억합니다.
눈팅으로 먼저 참여하겠습니다. ^^
예,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셋째 날] 〈현대 소설〉 (1925) 이 글은 '유물론자'라고 할 수 있는 작가들(웰스 씨, 베넷 씨, 골즈위디 씨)을 비판하며 시작합니다. 그들은 정신이 아니라 육체에만 관심을 둡니다. 그들의 소설을 다 읽고나면 '도대체 이럴만한 가치가 있나?', '요컨대 뭐가 어쨌다는 건가?'라는 질문이 따라붙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삶, 정신, 진실, 리얼리티 등으로 불리는) "본질적인 것"을 담으려는, 항상 실패하는 시도. "이 다양한, 알려지지 않고 한정 지어지지 않은 정신을 가능한 한 외적이고 이질적인 것이 섞이지 않게끔 전달하는 것이 소설가의 직무". 가장 주목할 만한 작가는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연재중인) 《율리시스》. (선망해 마지않는 《율리시스》가 연재중인 시기였다니 새삼 재밌네요.) "우리가 유물론자라고 부른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조이스 씨는 정신적이다. 그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머릿속에서 깜빡이는 내밀한 불꽃의 명멸을 드러내려한다." "그것을 간직하기 위해 부차적이라 여겨지는 것은 무엇이든지, ... 무시해 버린다." "작가로 하여금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하게 하는 한, 그리고 독자로 하여금 소설가의 의도에 다가가게 하는 한, 어떤 방법도 옳고 모든 방법이 옳다. 이런 방법은 우리가 기꺼이 삶 그 자체라 부를 태세가 되어 있는 것에 다가가게 해준다는 장점을 지닌다." "작가는 자신의 관심이 더 이상 〈이것〉이 아니라 〈저것〉이라고, 오직 〈저것〉으로만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소설에 걸맞은 재료〉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소설에 적합한 재료이다." 이 글에 관한 강유원 선생님의 〈책담화〉 팟캐스트도 권해드립니다(이미 많이 들으셨겠지만). https://www.podbean.com/ew/pb-vn5kw-163a225
(…)러시아 정신의 결론들은 어쩌면 불가피하게 극도의 슬픔을 수반한다.(…)그것은 대답이 없다는 느낌, 삶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면 오직 질문의 연속일 뿐이며 그 질문은 이야기가 끝난 다음에도 계속해서 울려 퍼질 것만 같다는 느낌이다.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현대 소설,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울프의 러시아문학론은 제 속을 들여다본 것 같아서 놀라고 반가웠어요. 도스토예프스키 전작주의 중인 모임에 타전하고 싶은 문장들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전작품을 읽는 모임인가요? 무시무시한 모임이군요!
만일 소설의 기법이라는 것이 살아서 우리 가운데 있다면, 분명 우리에게 자기를 사랑하고 영예롭게 할 뿐 아니라 파괴하고 괴롭혀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의 젊음은 새로워지고 그녀의 주권은 확립될 것이다.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pp.60-61,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웰스, 베넷, 골즈워디, 하디, 콘래드... 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어떤 점이 비판 대상인지 잘 이해가 안 되네요. ^^;
저도 그 부분이 개인적으로 아쉽더라고요.
이 부분은 〈베넷 씨와 브라운 부인〉에서 다소 해소가 될 것 같네요.
물론 제가 유물론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겠지요.
그의 인물들은 풍부하게, 심지어 놀랍도록 생생하게 살아가지만, 그들이 어떻게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질문은 남는다.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이 질문에 명확히 답을 제시한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었던가 싶다가, 답을 제시하는 소설이라면, 그게 좋은 소설일까? 라는 의문이.
웰스 씨에 대해서는, ... 넘쳐 나는 사상과 사실들 때문에 자신이 창조한 인간 존재들의 치졸함과 조잡함을 깨닫지 못하거나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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