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애트우드의 <고양이 눈1> 혼자 읽어볼게요.

D-29
북클럽에서 나온 질문이 있었다. 일레인이 주변 사람들을 야생의 사람과 사육된 사람으로 구분해서 묘사했는데, 일레인은 자신을 어떻게 분류했는지 궁금하다고. 이 문단을 메모하면서 일레인은 스스로를 사육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느꼈다.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새, 너무나 멍청해서 더 이상 날 수도 없는 새. 그 새는 일레인의 입 속으로 들어가 그의 일부가 되었다.
야생의 존재들은 사육된 것들보다 더 똑똑하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고양이 눈 1 p.237,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나는 핀스틴 부인이 준 10센트짜리 동전을 모두 꺼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게에서 다 써 버린다. 나는 감초 끈과 동그란 젤리와 여러 겹으로 되어 가운데 씨가 들어간 까만 사탕, 빨대로 빨아 먹는 탄산 셔벗을 여러 상자 산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이 헌물들을, 이 보상품을, 원하는 친구들에게 똑같이 나누어 준다. 그것을 나누어 주기 직전의 순간, 나는 사랑받는다.
고양이 눈 1 p.245,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내가 자주 쓰는 수법이라서 들킨 기분. 그런 식으로 순간이라도 사랑 받으려고 버둥대는 몸짓이 아리다.
똑똑똑. 누구세요? 해피 갱이에요! 들어오세요! 해피 갱과 함께 항상 행복하세요, 항상 건강하고 좋은 기분이기를 바라요. 당신이 행복하고 건강하면, 돈도 필요 없지요. 그러니 해피 갱과 함께 행복하세요. 해피 갱을 들으면 내 마음은 조바심으로 가득 찬다. 만일 행복하고 건강하지 못하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들은 그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항상 행복하다. 아니, 그렇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항상 행복하다는 말을 믿을 수 없다. 그러니까 어떤 때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때가 언제인가? 가식적으로 들리는 그들의 웃음소리는 어디까지가 가식인가?
고양이 눈 1 p.251-252,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나는 겨울 내내 책상 서랍 한구석에 들어 있던 내 푸른 고양이 눈을 끄집어낸다. 햇빛이 관통하여 빛나도록 구슬을 치켜들고 꼼꼼히 살펴본다. 그 수정 구형체 속의 눈은 너무나 푸르고 너무나 깨끗하다. 얼음 속에 무엇이 동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그것을 호주머니에 넣어 학교로 가져간다. 그러나 구슬치기에 내놓지는 않는다. 나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굴리며 꼭 붙잡고 있는다.
고양이 눈 1 p.255,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납작구슬이 떠오른다. 나도 항상 어떤 물건에 과하게 의미부여를 하면서 손에 꼭 쥐었다지.
어떤 이들은 이것이 여성의 노예화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또 다른 이들은 여성을 부정적이고 사소한 살림꾼 역할에 정형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나의 어머니가 1940년대 후반에 으레 하던 그대로 요리하는 모습을 그린 것에 불과하다. 나는 어머니와 사별 직후 이 작품을 그렸다. 어머니를 다시 살아나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머니가 시간을 초월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비록 이 세상에 시간을 초월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이 어머니 그림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 속에 흠뻑 잠겨 있다.
고양이 눈 1 p.27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나는 투명 인간이 되는 상상을 한다. 길옆에 있는 덤불 숲에서 벨라도나 열매를 먹는 상상을 한다. 세탁실에 있는 해골이 그려진 자벡스 상표 표백제를 마시는 상상을, 다리에서 뛰어내려 호박처럼 눈과 입술 반쪽이 으깨지는 상상을 한다. 나는 그렇게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죽은 사람들처럼 그렇게 죽을 것이다. 이런 짓은 하고 싶지 않다. 모두 두려운 일들이다. 그러나 코딜리어가, 경멸 어린 목소리가 아닌 친절한 목소리로 이런 짓을 하라고 내게 말하는 것을 상상한다. 머릿속에서 그녀의 친절한 목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해. 어서." 나는 그녀를 기쁘게 하기 위해 그렇게 할 것이다. 나는 오빠에게 말하고 도움을 청할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정확히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눈에 멍든 것도 아니고 코피가 난 것도 아니다. 코딜리어는 신체에는 아무 해도 입히지 않는다. 만일 나를 괴롭히는 것이 남자아이들이었다면, 그들이 나를 쫓아다니고 놀리는 것이었다면 오빠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남자이이들에게 이런 식으로 놀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다. 여자아이들과 그들의 우회적인 방법과 그들의 소곤거림에 대해서 오빠는 무기력하다. 뿐만 아니라 나는 수치심을 느낀다. 오빠가 나를 비웃을 것이, 내가 여자아이들에게 나약하게 구는 것을 보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호들갑을 떤다고 나를 무시하게 될 것이 두렵다.
고양이 눈 1 p.279,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나는 정어리와 그 등뼈를 생각한다. 그 등뼈를 먹어 치울 수도 있다. 그 뼈는 이 사이에서 으스러진다. 한 번 이를 갖다 대면 산산이 부서진다. 내 등뼈도 아마 그럴 것이다. 아니 나는 등뼈가 거의 없는지도 모른다. 내게 일어나는 일들은 더 강한 등뼈를 갖지 못한 내 잘못이다. 어머니는 그릇을 내려놓고 팔로 나를 감싸 안는다. "내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고 싶구나." 어머니가 말한다. 이것은 일종의 고백이다. 이제 나는 지금까지 어렴풋이 짐작하던 것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어머니는 무기력한 것이다.
고양이 눈 1 p.28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가난한 환경에선 특히, 부모의 무기력함이 익숙하다.
이틀 후 캐럴은 아버지가 벨트로, 그것도 버클이 달린 쪽으로 맨엉덩이를 때렸다는 것을 말해 준다. 앉기조차 힘들었다고 한다. 마치 자랑스러워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녀는 수업이 끝난 뒤에 위층 자기 방에서 우리에게 매 자국을 보여 준다. 치마를 걷어 올리고 속바지를 내리자 정말로 거기에는 자국이, 할퀸 것 같은 자국이 있다. 그다지 붉지는 않지만 어쨌든 매 자국이다.
고양이 눈 1 p.294-295,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초등학교 때 부모님한테 맞았다며 팔이 거의 다 시퍼렇게 멍든 걸 보여준 애가 떠올랐다. 그때의 나도 느꼈다. 마치 자랑하는 듯한 모습. 주변 애들을 자기 기분 따라 툭, 툭, 치던 애였다. 부모에게 세게 맞느라 맷집이 세졌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그래서 선생님이 때리는 게 하나도 안 아팠다고.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을 세게 쳐 댔다. 그 애를 무척 싫어했다.
"아, 너무 아파, 아, 아프다고." 캐럴은 침대에서 몸을 비틀며 신음 소리를 낸다. "간호사님, 무슨 조치를 취해 줘요!" "이 환자의 심장 박동을 들어야 해." 코딜리어가 말하고 캐럴의 스웨터와 속옷을 벗긴다. 우리는 모두 의사의 진찰을 받은 적이 있으며, 그 과정에서 의사가 주는 무뚝뚝한 굴욕을 견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프지는 않을 거야." 부풀어 오른 유방과 이마에 솟아오른 핏줄처럼 푸른빛이 도는 젖꼭지가 바로 눈앞에 있다. "이 환저의 심장을 느껴 봐." 코딜리어가 내게 말한다. 그러고 싶지 않다. 나는 저 부어오른 부자연스러운 육체를 만지고 싶지 않다. "어서 해. 시키는 대로 하란 말이야." 코딜리어가 말했다. "얘는 반항적이야." 그레이스가 말한다. 나는 손을 내밀어 캐럴의 왼쪽 가슴에 놓는다. 반쯤 물이 찬 풍선, 미지근한 귀리죽처럼 느껴진다. 캐럴이 킥킥거린다. "아, 네 손은 너무 차가워!" 메스꺼움이 솟구친다. 코딜리어가 말한다. "얘 심장이라고 했잖아, 이 바보야. 젖가슴이라고 하지는 않았어. 너는 그 차이도 모르니?"
고양이 눈 1 p.296-297,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코딜리어는 수그러진다. 피란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구토보다도 더 강렬하다. 집으로 오는 길에 그녀와 그레이스는 내 걱정을 해 주는 듯이 군다. 그들은 나를 사이에 두고 내 팔짱을 끼고 내 기분이 어떤지 묻는다. 그들의 이런 관심에 나는 전율한다. 울게 될까 봐, 화해의 눈물을 펑펑 흘리게 될까 봐 두렵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나 그들을 경계하고 있다.
고양이 눈 1 p.308,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걔들이 그 아이에게 너무 심하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니?" 밀드레드 이모가 말한다. 구미가 당긴다는 듯한 목소리다. 아이들이 얼마나 심하게 구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스미스 부인이 말한다. "그건 하나님의 심판이에요. 그 아이가 받아 마땅한 거죠." 몸 안에서 뜨거운 물결이 파동 치는 것을 느낀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증오다. 이것은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적어도 이런 순전한 형태로 느껴 본 적은 없다. 이것은 구체적인 형태를 지닌 증오다. 허리까지 한 덩어리로 이어진 스미스 부인의 단일한 젖가슴이라는 형태. 내 가슴에 솟아난 줄기가 하얗고 굵은 살의 잡초와 같은 증오. 다리로 향하는 오솔길 옆의 고양이 오줌으로 얼룩진 땅에서 자라는, 역한 이파리와 작은 녹색 돌기가 달린 우엉 줄기와 같은 증오. 무겁고 굵직한 증오. 나는 중오로 얼어붙어 계단 꼭대기에 계속 서 있는다. 내가 증오하는 것은 그레이스나 심지어 코딜리어도 아니다. 그렇게까지 생각할 여유도 없다. 나는 스미스 부인을 증오한다. 내가 비밀이라고 생각했던 것, 여자아이들 사이에 오가는 문제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비밀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전에도 논의되어 왔고 용납되어 온 행동이었던 것이다. 스미스 부인은 그것을 알고 용인한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멈추기 위해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당해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스미스 부인이 개수대에서 물러나 더러운 접시 더미를 더 가지러 식탁 쪽, 내 시선과 정면으로 마주치는 곳으로 걸어온다. 나는 스미스 부인이 우리 집의 살색 탈수기 사이를 통과하는 아주 짧고 강렬한 영상을 떠올린다. 다리가 먼저 빠져나오고, 뼈가 부서져 납작해지고, 피부와 살덩어리가 머리 쪽으로 밀려 올라가 금방이라도 피가 가득 찬 거대한 풍선처럼 터져 버릴 듯하다. 만화책에 나오는 것처럼 눈에서 치명적인 광선을 뿜어낼 수 있다면 나는 바로 이 자리에서 그녀를 불태워버릴 것이다. 그녀 말이 옳다. 나는 이교도이며 용서를 베풀지 못한다. 내 시선을 느낀 듯 그녀가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본다. 우리의 눈이 마주친다. 그녀는 내가 자기 말을 들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러나 움찔하지도 않고, 당황하거나 미안한 기색도 없다. 그녀는 예의 입술을 굳게 다문 그 독선적인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내가 아닌 밀드레드 이모에게 말을 건넨다. "애들은 귀가 정말 밝다니까." 그녀의 병약한 심장은 눈동자처럼, 사악한 눈동자처럼 그녀의 몸속을 떠다닌다. 그 눈은 나를 바라본다.
고양이 눈 1 p.319-320,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스미스 부인은 그레이스의 엄마. 나는 고양이의 눈 1을 읽으면서 그레이스가 제일 싫었는데 그레이스가 그렇게 재수 없을 수 있었던 것은 스미스 부인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북클럽에서 고양이의 눈1에서 누가 제일 미웠는지 물어봤었는데, 스미스 부인을 말한 사람이 있었다. 나는 이 문장을 필사하면서도 스미스 부인보다 그레이스가 더 미웠다. 나한테 어른들에 대한 체념이 기조가 되어 있어서 그런가 보다. 스미스 부인의 행동에 분노가 일기엔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너는 기도하지 않았어." 그레이스가 내게 귓속말로 말한다. 배 속이 차가워진다. 그녀의 말을 반박하는 것, 아니면 인정하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더 나쁜 일일까? 무엇을 하든 처벌이 뒤따를 것이다. "아니야, 했어." 나는 말한다. "넌 기도하지 않았어. 너한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단 말이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너는 거짓말을 했어." 그레이스는 신이 나서 귓속말로 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말한다. "너는 하나님께 용서해 달라고 기도해야 해. 나도 매일 밤 그렇게 해." 그레이스가 말한다. 나는 손가락을 잡아 뜯으며 어둠 속에 앉아 있다. 나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그레이스의 모습을 상상한다. 무엇에 대한 용서인가? 하나님은 뉘우칠 때만 용서를 베푸신다. 그런데 그레이스는 단 한 번도 뉘우치는 기색을 보인 적이 없다. 그녀는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고양이 눈 1 p.322,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예전에 눈이 내리는 것을 보며 느꼈던 행복감이 어느 정도 다시 찾아든다. 나는 입을 벌리고 떨어지는 눈을 먹는다. 나 자신이 다른 아이들처럼 웃도록 내버려 둔다. 내가 과연 웃을 수 있는지 시험해 본다. 내 웃음은 일종의 공연, 평범함을 부여잡으려는 시도다.
고양이 눈 1 p.328,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자주 한다. 내가 과연 웃을 수 / 울 수/ 화낼 수 있는지 시험해 보는 일.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어색할 땐 스스로 시험하며 시도한다. 평범한 척. 자연스러운 척. 하지만 자꾸 불안하다. 시험하고 있다는 걸 들킬까 봐. 반대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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