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Beer Bookclub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X다자이 오사무X청춘>

D-29
전 <귤>과 <늪지> 읽으면서 하루키 소설들이 떠올랐어요. 그냥, 내 느낌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냥 무심히 흘러 갈 수 있는 별것도 아닌것 같은 상황속에서 감정을 툭! 건드려놓은듯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이게 뭐지? 싶었다가 다시 보면..아!!! 하게되는..그러나 그 '아!!' 를 못느끼면 그냥 밍밍한 어느 일상 한순간의 기록이 되어버리는...
저는 뒤에 나오는 「신기루」와 「꿈」을 읽으면서 하루키 단편들을 떠올렸어요. 특히 『1인칭 단수』에 수록된 「크림」 같은 작품들을 떠올렸습니다. 이상한 쓸쓸함, 몽환성 같은 것들이 닮았습니다.
<귤> 권태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모든 게 허무해지고 기쁨도, 슬픔도 없는 진공상태에 저 역시 몇 번 빠져봤던 터라 -별다른 사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화자가 단박에 이해됐어요. 눈앞에 그려지는, 생생하고 섬세한 문장 덕분일 수도 있구요. 다만 소녀가 동생들에게 귤을 던져주는 대목에서는 화자처럼 환한 감정이 일지 않았어요. 이후에도 긴장을 풀지 못하는 소녀에게 ‘귤’은 강요당하는 노동, 희생, 책임, 차별 같은 건 아닐지… K 장녀처럼 여전히 ‘악전고투’ 중일지도… 어쩌면 소녀도 ‘고단함과 권태를 그리고 또 이해할 수 없고, 초라하고, 지루한 인생’을 느낄 것 같아서 귤 한알 까서 나눠먹고 싶네요. 저도 한쪽 정도는 먹어야 하는 상태라… 흑흑 ㅠ
<늪지> 예나 지금이나, 또 어느 사회나 ‘꼭 있을’ 법한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유행이나 시류에 민감한 미술기자보다 당당하고 소신있는 화자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정도? 어차피 진정한 예술가는 몇 없을 테니까요. ㅎㅎ 이 작품이 진부하고 작위적으로 여겨진 건, 예나 지금이나 예술계나 정치판이나 그 어디에나… 꼭 있고 절대 사라질 것 같지 않은… 한결같이 반복되는 구도 때문은 아닌지. 제 감상과 바람도 진부하고 작위적이네요. 에효~
<늪지> 제목의 영향을 받은 감상인데요. 자신만의 기준에 닿으려고 허우적거리는 창작자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하나 떠오른 질문은, 어쩌다가 처절함이나 괴로움이 예술적 뛰어남과 연관되는 이미지로 달라 붙었을까? 이고요. 삶이 행복하면 뭔가 파고들려는 동력이 적으니까 그만큼 깊이가 안 나오는 건지.
<귤> 기차든 자동차든 지하철이든 뭔가 타고 이동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보통은 혼자 이것 저것 생각하니까 주변 사람이 그냥 배경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런데 어떨 때는 내 안으로 파고들지 않고 주변을 가만히 관찰하게 될 때가 있어요. 아무 생각 없이 보다 보면 의외로 꽤 많은 걸 알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배경에서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으로 다가와요. 저 사람도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구나. 무슨 약속일까. 등등. 이 단편을 읽으면서 소녀가 귤 던질 때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창문 열어서 매연 들어오게 했을 땐 그냥 불편한 방해물 같았는데 말이에요. 어디로 가는 걸까. 동생들은 왜 남아 있는 걸까. 등등.
<귤> 이 작가는 도대체 어디까지 비뚫어진 것인가. 징글징글하게 인간혐오에 빠져 있어 짜증이 솟구쳤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시선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나도 그렇지 않은가'란 생각이 들며 갑자기 소름이 끼쳤습니다. 내가 저 작가의 상황이었으면 그야말로 똑같은 생각을 했을 거라는.... 자꾸 책을 읽는 이유도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눈에 들어 오는 모든 것, 생각나는 모든 것에 대해 이런 추저분한 생각만 하는 내 자신이 싫어서였다는 걸요. 갑자기 소녀에게 미안해집니다.
너무 일찍 주목 받아서 그런 걸까요? 그 시대 최고의 작가가 '점' 찍은 자이니.... 글을 쓸 때 마다 "나는 그 정도가 아닌데....." 하며 번뇌하고, 그러다 말씀하신 자기 혐오에 빠진 걸까요? 되려 그 감정을 글에 투영하는... 그 결과인 단편들을 우리가 읽고 있는 걸까요?
누가 점 찍었던 건가요? 궁금~~
어느 바보의 일생(아쿠타가와 에세이), 작가 소개 부분에서 확인했습니다.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신사조>에 <코>를 발표해 나쓰메 소세키의 극찬을 받으며 단번에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이때가 1916년이었으니, 24살이었네요.
아! 나쓰메 소세키! 역시 유명인에게 인정 받는 게 어디서든 젤 중요한 거 같아요~ 요샌 티비인가요? 아님 BTS인가....BTS가 읽는 책은 다 히트 친 거 같아서요 몇 달 전쯤에 한소희 씨가 '불안의 서'를 머리맡에 두고 자면서 생각날 때마다 읽는다고 언급을 해...그 800쪽짜리 책이 베셀이 되어 있더라고요
ㅎㅎ 불안의서.. 저도 그 기사를 접하고 밀리의 서재에서 읽었습니다. 물론 앞부분 읽다가 금세 포기했죠. 어렵더라고요.
<늪지>를 읽으면서는 어떤 게 좋은 작품이고, 좋은 작품을 선별하는 안목이라는 건 뭘까? 그걸 부여하는 건 누구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계속 올라왔어요. 무지, 우월함, 심미안, 미쳤다는 듯한 표현 등, 지적 허세가 충만한 기자의 모습에 불쾌한 감정이 일었고요. 무명 예술가란, 죽어서도 비웃음거리가 되거나 우스꽝스러운 사람 취급을 당하는 것 같아 속상하기도 했습니다. 요즘도 그런 생각을 자주 하는데, 흔히들 극찬하는 작품? 에 대해 반감이 들 때가 종종 있거든요. '그 정도라고?'라는 생각에서요. 감상은 자유로운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예술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닐 수 있으니까. 근데 가끔 "이게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데, 너는 그것도 못 알아보냐, 이 바보야"라고 주변에서 구박을 받곤 해요. 종용당하는 느낌? 저한테는 정말 별로라, 별다른 감흥을 못 느낀 건데(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한 것뿐...), 그걸 마치 안목 없는 사람처럼 취급당하는 게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유행이나 시류, 어떤 이의 추천사에 따라 작품성에 부여하는 가치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싫은 것 같아요. 뭐가 기준인지, 그 기준을 만드는 건 누구이고, 그 누구에게 기준을 만들도록 자리를 부여하는 건 또 누구인지....? (말꼬리 잡기 중입니다) 가끔 어떤 강연이나 북토크에 가서도 그 뭐랄까, "어이, 선생. 당신 얘기 잘 들었소. 말씀 좀 하시더이다?"라는 듯한 거만한 말투와 태도로 질문 시간을 깍아 먹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그럴 때면 저는 속으로 혼자 꽁알꽁알거려요. '참나, 본인이 뭔데 그걸 판단하지? 누가 판단해 달래?'라고... (영희가 말했다) 한참을 쓰고 보니 저야말로 꼬여있는 사람 같네요. 죄송합니다. 마음을 좀 더 곱게 쓰겠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월급날이라 마음이 이미 넉넉합니다(하핫).
완전 공감합니다. 그 분야에서 인증 받으신 유명인이 극찬하면 막상 재미없고 이해 안돼도 다들 괜찮은 척.... 전 그거 별로였다 하면, 개인취향이 아닌 '이해 못했구나.'하는 무언이나 표정으로 무시하는 반응들 아직 늪지 안 읽었는데 다른 의미로 기대되네요.^^ 전 월급날이 10일이나 남아 우울해져 버렸습니다(저도 잘하쥬?)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의 취향이 안목없음으로 이어질 때마다 한숨이 푹푹 나더라고요. 물론 제 안목이 진짜 별로일 수ㄷ... 하핫 월급날이 10일이시지만, 덕분에 다음 주 수요일을 두근두근 기다리며 이번 주말이 더욱 설레시길 바라요. 센스있는 멘트에도 감탄하게 됩니다! 이 방의 암호처럼 자리잡을 것 같아요. 호호.
외국 작품은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이게 번역의 한계로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물론 외국어를 못해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여하튼, 남들이 대단하다고 한 작품들의 다수를 책방에서 들춰봐도, 진실로 도저히, 어느 순간 멍때리고 있는 저를 확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책들의 번역은 너무 대단하더군요...ㅎㅎ 외국 작가도 작가지만 번역가님을 더 애정하게 되더라고요.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최세희님과 정지인님이 좋습니다.
이 모든 것이 기차 창밖으로 순식간에 지나갔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이 광경이 애절하리만큼 또렷하게 아로새겨졌다. (중략) 나는 이때 비로소 형언할 수 없는 고단함과 권태를, 그리고 또 이해할 수 없고, 초라하며, 지루한 인생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다자이 오사무×청춘 세트 - 전2권 <귤> P. 47,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나는 이 작은 유화 속에서 날카롭게 자연을 포착하려는 애처로운 예술가의 모습을 발견했다. (중략) 실제로 같은 전시장에 걸린 크고 작은 그림들 중에서 이 한 점에 대항할 수 있을 만큼 강렬한 그림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다자이 오사무×청춘 세트 - 전2권 <늪지> P. 52,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나는 온몸에 기묘한 전율을 느끼며 재차 이 우울한 유화를 들여다봤다. 거기에는 어스름한 하늘과 물 사이에 자리한 축축한 황토 빛 갈대가, 포플러가, 무화과나무가 자연 그 자체를 보듯 무시무시한 기세로 살아 있었다. "걸작입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다자이 오사무×청춘 세트 - 전2권 <늪지> P.55,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늪지> '늪(沼)'이라는 다른 작품과 헷갈려서 그걸 읽다가 내용이 전혀 달라 다시 읽은 작품(책이 너무 예뻐 구겨지지 않게 펴 봤다 고이 모셔두고, 전자책으로 읽다가 이런 오류를 범했습니다.) SNS에서 본인이 본 '늪지'란 그림 대한 느낌을 일기처럼 적은 것 같고, 이 분이 SNS를 하셨으면 잘 하셨을 거란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늪지'에서도 여전히 꼬여 있으시네요. 평생을 우울증으로 인한 정신병과 싸우셨다는데.....작품들에서 느껴집니다. 살아 계셨다면 전혀 도움은 안 되었겠지만, 파이팅! 해 주고 싶은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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