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Beer Bookclub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X다자이 오사무X청춘>

D-29
이 터널 속 기차와 이 촌뜨기 소녀와, 그리고 또 이 평범한 기사로 뒤덮인 석간. 이것이 상징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이해할 수 없고, 초라하며, 지루한 인생의 상징이 아니면 무엇이겠느냔 말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다자이 오사무×청춘 세트 - 전2권 p44,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저도 '이해할 수 없고, 초라하며, 지루한 인생'이 될까 불안하고 두려운 청춘을 지나왔기 때문에 이 사내의 마음이 어렴풋이 느껴져 재밌었습니다. 하지만 이제와서는 그 초라하고 지루한 인생을 지켜내기조차 얼마나 어려운 지 알아버렸기 때문에, 그 사내가 안타까워지고 마는 것입니다.(저도 일본어 번역투를 한 번 차용해봅니다.)
근데 책 번역은 일본어투가 없어 감탄하고 있습니다.
창밖으로 반쯤 몸을 내밀고 있던 소녀가 그 부르튼 손을 쭉 뻗어 힘차게 좌우로 흔들자, 곧바로 가슴 두근거리는 따스한 햇볕의 빛깔로 물든 귤 대여섯 개가 허공에서 기차를 배웅하는 아이들 머리 위로 흩날려 떨어졌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다자이 오사무×청춘 세트 - 전2권 p46-47,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특히 앞부분의 흙 같은 건 밟았을 때의 감촉까지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로 정교하게 그려져 있었다. 밟으면 푹 하는 소리를 내며 발목이 빠져들 것 같은, 매끈한 진흙탕의 느낌이다. 나는 이 작은 유화 속에서 날카롭게 자연을 포착하려는 애처로운 예술가의 모습을 발견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다자이 오사무×청춘 세트 - 전2권 p52,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늪지>의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제가 바로 직전에 수집했던 <귤> 속의 문장이 떠올라서 매우 재밌었습니다. <귤>에서 소녀가 동생들에게 귤을 던져주는 장면이야말로, 제게는 마치 그 기차 안에서 제가 그 장면을 목도하고 있는 것마냥 생생하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밟았을 때의 감촉까지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의 진흙탕을 언어로 묘사하는 데에 평생을 바쳐왔겠구나 싶습니다. <늪지>를 끝까지 읽으니, '회원도 아닌 죽은 화가'가 아쿠타가와 자신이 맞을 거라는 확신이 더 드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 3. 신들의 미소, 피아노 ■■■■ 장마철인데 비가 많이 내리는 건지 안 내리는 건지 알쏭달쏭한 요즘입니다. 아쿠타가와 상과 나오키 상은 일본 문학의 명성을 이어가는 권위 있는 상으로, 마치 소설의 품질을 보증하는 보증수표처럼 여겨지곤 하지요. 저 역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작품들을 많이 읽고 감탄했지만, 부끄럽게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작가 본인의 작품을 직접 읽어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아쿠타가와 수상작 중 가장 최근에 국내에 소개된 작품은 23년도 아쿠타가와 수상작인 <헌치백>입니다. 살짝 책장에 꽂아둘게요. 그럼, 7월11일 목요일까지 두 작품 읽고 생각이나 느낀 점 자유로이 남겨 주세요.
헌치백 - 2023 아쿠타가와상 수상작2023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중증 척추 장애인 샤카가 남성 간병인에게 “내가 임신하고 중절하는 걸 도와주면 1억 엔을 줄게요”라고 제안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심사위원 일부가 난색을 표할 만큼 위악적인 상상력을 숨김없이 표출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곳 일본에 사는 동안 저는 점점 제 사명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게 됐습니다. 이 나라에는 산에도, 숲에도, 또 집들이 늘어선 마을에도 뭔가 신비한 힘이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부지불식간에 제 사명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저는 요즘처럼 아무 이유도 없는 우울의 늪에 빠져들었을 리가 없을 것입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다자이 오사무×청춘 세트 - 전2권 p.63,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산에도, 숲에도, 집들이 늘어선 마을에도 뭔가 신비한 힘이 숨어있던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얼마나 빠르게, 넓게 자리 잡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문장이네요.
앞서 읽었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피아노>라는 작품도 소설인지 수필인지 모를 경계에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복구도 되지 않은 폐허 속에도 삶의 흔적, 그곳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아있는 게 당연하겠죠.
「신들의 미소」는 재미있게 다 읽은 다음에 ‘설마 이 단편의 주제는 “다시는 일본을 무시하지 마라!”일까?’ 하고 생각했어요. 유쾌하게 읽었고 주제가 뭔지 너무 깊이 고민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냥 이것저것 떠오른 생각은, 1. 한국 땅에 들어온 종교도 다 기복신앙이 되지 않던가? 2. 일본 소설가가 쓴 소설인 줄 몰랐으면 오리엔탈리즘 혐의를 씌울 대목이 여러 곳 있었다. 그러고 보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틀도 참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3. 『유리와카』 한번 읽어보고 싶다. (그런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유리와카 다이진』과 『오디세이아』의 유사점이 아주 허황된 수준은 아니네요. 일본 위키피디아의 ‘오디세이아’ 항목에도 『유리와카 다이진』이 『오디세이아』의 번안이라는 가설이 실려 있다고 하고요. 그리고 『유리와카 다이진』이 원본이 아니라 사본이라는 이야기는 일본인 입장에서 자랑스러운 이야기는 아닌데도 그런 가설이 나올 정도라면 아주 무리한 이야기는 아닌가 보다 싶었습니다.)
「피아노」를 읽으면서는 ‘어디서 피아노 소리 한 음 들은 걸로도 이렇게 쓸 수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명아주는 어떻게 생긴 식물일까 궁금해 하면서 찾아보기도 하고요. 읽는 저도 약간 소설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혹시 이 작품의 화자가 유령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그렇다면 ‘어떤 이를 만나러 요코하마의 야마테를 걷고 있었다’라든가 ‘나는 찾아간 사람과 어느 복잡한 사안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야기는 쉽사리 마무리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밤이 돼서야 그의 집을 떠날 수 있었다. 그것도 조만간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나서였다.’ 같은 대목이 꽤나 의미심장하게 들리죠. ‘나는 ~ 너무나도 현실주의자였다’ 하는 85쪽 문장은 아주 아이러니한 대목이 되고요. 그리고 왜 똑같은 악기인데 저절로 울릴 때 조성되는 공포감은 피아노가 다른 악기들을 압도할까 하는 생각도 했더랬습니다.
앗 명아주 검색, 저도요! 근데 나물 반찬 만드는 방법에 대한 글들이 많아 환상이 와르르. 연관 검색어에도 명아주 나물이 바로 뜨고 말이죠(다행히 나물을 아주 좋아합니다, 쩝). 피아노의 공포감에 대한 말씀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요.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래요. 왠지 모를 스산함은 피아노일 때 배가 되는데, 왜지? 왜 때문이지? 저 장구 잘 치는데, 거기 장구가 놓여있었다면 이것도 또 이것 나름대로 환상 와르르입니다ㅋㅋ 역시 소설의 감상은 다채로우니 더 재미있네요.
저는 심지어 명아주 나물이 좋아하는 반찬이거든요. 그런데 그 반찬 이름이 명아주 나물인 걸 몰랐어요. 사진 보고서 ‘아, 이거?’ 했습니다. 저에게 명아주 나물 반찬을 가르쳐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센세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장구를 치시는군요! 그것도 잘! 장구... 정도면 그래도 뭔가 좀 섬뜩해보일 거 같기는 한데요? 처녀 귀신 같은 것도 떠오르고... 저는 한때 알토 색소폰을 불었는데 색소폰이나 트럼펫 같은 게 풀숲 사이에 있으면 무섭다는 느낌은 안 들고 아련한 기분이 들 거 같네요. ㅎㅎㅎ
으앗 작가님! 저, 명아주 검색했을 때, 반찬 만드는 법이 와르르 뜨는 것만 보고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쳤었거든요. 근데 작가님의 이번 답글 읽고, 그제야 명아주 나물 반찬 사진을 자세히 봤는데, 저도예요! 식당 가면 종종 밑반찬으로 나오던 반찬이고, 회사에 가져갈 도시락 싸면서 집앞 시장에서 반찬 살 때요. 세 종류의 나물 세트로 자주 담기던(그 외는 고사리와 콩나물, 숙주, 도라지 등) 나물 중 하나였는데, 이름을 몰랐거든요(더 솔직히는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딱히 해본 적도 없었...). 근데 이게(?) 명아주 나물이었군요! 저는 먹을 때마다 시금치랑 비슷하게 생겼다... 정도로만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명아주 나물 반찬을 가르쳐 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센세 저 또한 아리가또 고자이마스(아니 근데 이게 이렇게까지 길어질 글인가 싶기도 하고), 인식하게 해주신 장작가님께도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꾸벅). 저는 근데 이분 성함이 왜 이렇게 입에 잘 안 붙는지 모르겠어요. 일본 이름이라 그런가, 일부러 소리 내서 여러 번 발음해 봤는데도 여전히 단번에 떠오르지 않아요. 어제도 친구한테 설명하려다가 이름에서 버퍼링 걸렸다죠. 작가님 근데, 색소폰도 부셨어요? 와... (이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꾹 참겠습니다)
저도 똑같습니다.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시금치나물, 명아주나물, 머위나물, 유채나물이 다 제 눈에는 비슷해 뵈고 제가 반찬 살 때 자주 주워담는 코리안 샐러드들이네요. 다 좋아해요. 저는 자꾸 ‘아쿠타가와’를 ‘아쿠타카와’로 발음하게 됩니다. 왠지 ㅇㅋㅌㅋㅇ 이렇게 나가야 될 거 같지 않나요? 넵! 색소폰 좀 불다가 때려치웠습니다. 배우기 시작할 땐 몰랐는데 제가 색소폰 재즈를 그리 좋아하지 않더라고요. 소리가 너무 커서 연습할 곳이 마땅치 않고, 그러다 보니 실력도 별로 안 늘었어요. 3년 전에 당근마켓에 팔고 이후에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기타도 못 칩니다... ^^;;; 이런 칼럼도 썼었어요.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5/0003071112?sid=110
아... 이 글을 읽은 이상 저도 이제, '아쿠타가와'와 '아쿠타카와'의 늪에 빠져버렸습니다. 하하하, 작가님의 자음 설명 왜 이렇게 귀엽죠. 올려주신 칼럼은 읽으면서 알았는데, 한창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시기였군요. 근데 색소폰을 10년이나 하셨다는 문장에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럼에도 기본 연습곡들을 간신히 연주하는 수준이었다는 문장에 더 놀랐ㅅ...(죄송합니다) "삶의 모든 측면에 효율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다는 사실도 몰랐다."라는 문장이 마음에 콕 들어옵니다. 저도 무언가를 배울 때마다 이게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를 자꾸 가늠하더라고요. 배우면서 즐겁거나 늘지 않는 실력에 화가 나더라도(ㅋ)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것인데, 결과물이 없는 시행착오의 시간 자체를 낭비로 여길 때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그게 삶을 납작하게 만든다는걸, 30대에 접어들고 나서야 간신히 깨달았답니다. 그래서 그런 자세로 살면 인생이 무척 황량해질 것 같다는 작가님 말씀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싶어졌어요. 의미가 있어도 의미가 없어도 그게 다 삶인데 말이죠. 침묵도 언어의 표현 중 하나인 것처럼요. "때로는 산다는 게, 어떤 선율이 될지 모르면서 한 음 한 음 소리를 내는 긴 즉흥 연주 같다."는 문장은 오래오래 가슴에 새기고 싶습니다. 곱씹어 읽어도 정말 좋네요. 저도 어릴 때는 강제적으로 몇 년이나 피아노를 배웠고(덕분에 지금도 치는 건 싫어합니다), 기타도 잠깐 배웠어요. 사실 가장 하고 싶었던 건 드럼인데(그래서 장구를 좋아했니), 이건 스케일이 너무 커지는 것 같아 마음을 접었습니다. 지금은 한 가지 이상의 악기를 잘 다루시는 분들을 보면 멋있고(그래서 파닥파닥 재즈클럽이 감명 깊었죠), 매력적이지만 이제 저는 알아요. 제가 그쪽으로 재능이 없다는 걸(자기 객관화가 잘 되는 편). 그렇다고 혼자 장구를 치며 돌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정확히는 사물놀이 동아리를 학창 시절에 오래 했었죠).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록을 사랑하신다는 작가님의 말씀이 뭉근하니 참 좋네요. 저도 어릴 때부터 뜨개질을 좋아했는데, 그때는 애늙은이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지금은 나이랑 점점 어울려지는 것 같아 좋아요. 좋은 건 그냥 편하게 좋아하고 싶습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지 말든지, 흥. (그래서 올해는 뜨개질로 가방을 하나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성공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
10년 동안 기본곡을 열심히 연습해도 실력이 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나훈아의 무시로는 참 좋아하게 되었어요. 무시로 무시로~~.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번 단편들은 한 번 밖에 읽지 못했습니다. 보통 곱씹어서 읽는 편이인데, 정신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로 억지로 읽어나가는 것이 무용하다고 판단했어요. 완독이 목표인 클럽이라, 소감이든 감상이든 비평이든 하소연이든 뭐라도 남겨야 한다는 일종의 책임감이 제 안에 벌써 꽈리를 틀어버린 것 같아요. 이 정도로 저의 흔적은 마무리하겠습니다. (보속의 의미로) 여러분들의 댓글을 다 읽으려고요… 읽는 것 자체로 미소가 피어납니다.
전 당연히 란 번씩만 읽었는데요!!! 게다가 전 감상뿐만 아니라 글쓰는 데 재주가 없어 여러분의 훌륭한 감상 읽고 감탄하고 한 줄만 남겨요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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