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너무 좋은 질문이고 이것 역시 기미를 살피다 논의 후반부 쯤에 함께 나눠보고 싶은 질문이었기에 반갑습니다! :)
각각의 작품 속 맥락을 고려하면 더욱 다른 의미들이 발견되기도 하겠지만, 소설 일반의 경우를 좀 더 포괄적으로 생각해본다면,
1) 우선 무언가가 우리에게 <병리적>이라는 것은 <(소위 말하는) 비정상>의 상태, 혹은 <비일상>의 상태라는 건 '지금까지의 삶과는 다름'을 뜻하는 것 같아요. 모든 게 바뀌죠.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몸부터 시작해서 몸이 느끼는 '감각'의 결과와 그를 종합해서 그리는 '세계'의 모습까지, 죄다 바뀌어요. 이때 '나'는 성찰을 시작합니다. 탐구 또는 탐색이라는 말을 덧붙여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작품 내에 사건을 만드는 장치일 수 있어요.
2) 이제 병리적 상태로 진입한 인물은 주변인과 '다른' 사람이 되고, '구별'이 됩니다. 다른 존재로 의미화되는 거죠. '나'와 세계 또는 타인들과의 구별될 때, 그 구별되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 역시도 탐색의 과정이겠습니다!)
여기부터 이제 각 소설이 개별적으로 의미화 하고 있는, 인물이 경험하는 <다름>의 내용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우리가 함께 읽고 있는 <사라지는,>에서 1) 탐색의 과정과 2) 해당 인물과 다른 인물이 구별되는 내용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주변화, 타자화, 이해 불가능한 대상이 되는 것인 듯해요. 이에 대해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서술자가 '이해'를 하고자 접근하고 있고, 기록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이 '기록'의 의도와 기록으로 담고자하는 내용이 소설의 아주 거시적인 주제가 될 수도 있겠고요!
[📕수북탐독] 2.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전승민
최영장군
언어란 것이 결국 '사회'의 합의된 기호의 일종으로 볼 수 있으니까, 언어 교체에 대한 탐색은 개인이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사회 정체성'에 대한 인식 과정으로도 여겨집니다
집단을 구별하고, 또 반대로 구별된 집단을 동일시 하거나 차별화 하면서 내집단 편향 같은 것도 나타나고요...
역시 @전승민 평론가님의 심도 있는 의견을 들으니, 함께 읽으면서 깊이 읽기까지, 너른 범주로 수북클럽이 진행되는 것 같아 기쁩니다
김혜나
“ "하루에도 몇 번이고 그때의 영상을 돌려보고, 돌려본다. 그리하여 그날이 언제나 옆에 달라붙어 나를 괴롭히지만 그렇더라도 진실을 밝히고 싶기에 나는 어제를 보내지 않는다. 아직은 보내지 않을 것이다." ”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 제9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130p, 지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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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ouxsie
“ 이미 달아난 마음이 여전히 기다리는 마음 옆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 마음들이 만나서 엮어 가는 서사는 전과 결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놓치고 만 마음은 언젠가 본 한 마리의 늑대를 떠올렸다. 결국 선택받지 못한 늑대만이 홀로 남았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을 땐 초원을 함께 달리던 이들은 사라진 후였다. 그곳은 동물원의 차가운 철창 안이었다. ”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 제9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73p, 지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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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로 지정된 대화
소설쓰는지영입니다
소설 속 ‘이하리’처럼 저도 태국에서 5년을 일하며 살았거든요. 학기마다 학생들에게 제발!! 부탁하는 게 있었어요. 태국인 한국어 학습자의 경우 ‘경험을 하다’를 ‘경험을 받다’라고 표현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태국어에서 경험은 받는 것이고, 모국어 간섭이 일어난 거죠. 왜 경험을 받는다고 표현하는 건지는 사는 내내 궁금했는데 명확한 답을 구하진 못하고 돌아왔어요.
제가 17년 10월에 태국에 갔는데 라마 9세, 푸미폰 국왕이 서거하고 1년이 지난 때였어요. 그때 존경하는 사람을 물어보면(궁금하지 않았으나 교재에서 다루는 주제여서...) 대다수의 학생이 푸미폰 국왕을 말했어요. 우리의 위대한 왕이 자비를 베풀고 선정하여 국민이 평화롭게 산다고 말하는 학생이 꽤 많았어요.
또 제가 교탁 앞에 있고 학생이 질문을 하러 올 때가 있었는데 어느 지점에서부터 무릎을 꿇은 채로 다가오더라고요. 깜짝 놀라서 뭐하는 거냐고 물어 보니 학생은 학생대로 당황하고요. 학생들이 태국 문화라고 설명해줘서 아... 알았어요 하고는 그 학생을 일으켜 세웠거든요. 그리고 보강을 해야 해서 시간을 정하는데 의견을 물어도 답하는 학생이 없더라고요. 여러분이 결정해서 알려달라고 하니 당황해 하고요. 그게 이제까지 보강은 선생님이 원하는 시간을 정해서 통보하고, 학생들은 어떻게든 스케줄을 정리해야 하는 거였더라고요.(모든 선생님들이 그러는 건 아니고, 또 태국을 디스하자는 건 아니고요ㅎㅎ 저 태국 되게 좋아해요!)
그래서 저는 여러분의 문화를 존중하지만 저에게까지 그럴 필요 없어요. 그러니까 두 발로 걸어서 나오세요, 라고 했고, 또 무언가를 결정할 일이 있다면 선택지를 주고 여러분끼리 투표와 상의를 해서 결정하고 알려주세요, 라고 했죠. 일하는 동안 무언가 결정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 최종 결정은 무조건 학생 몫이었어요.
제가 보기엔 지나치게 수동적인 학생들이 많은 사회였어요. 학생들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애초에 묻지 않고 통보하는 교수진-학교의 태도도 자주 느꼈고요. 5년 동안 살면서 논의가 아니라 통보로 일이 진행되는 것들을 종종 봤고, 제가 살아온 사회에 비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일을 낯설어 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한국도 자기 의견을 내세우는 게 아주 자연스러운 사회는 아니지만요.)
siouxsie
지인 중에 태국에서 한국어 가르치시는 선생님이 계시는데 한번 물어봐야겠어요. 그 분 태국 사는 것만 부러워 했었는데, 사실 작가님이 말씀하신 여러 문제들은 저도 많이 주워 듣긴 했어요.
근데 사실 각국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걸 봤지만, 한국에서 지역적으로 가까운 나라 기준으로 태국 학생들이 가장 한국어 학습에 곤란함을 겪더라고요. 태국어를 모르니 선생님들도 답답해 하시고요.
그 와중에 한국어 정말 잘하는 태국 학생들을 몇 아는데, 그 학생들은 역시나 어렸을 때부터 국제학교를 다니기도 했고, 한국어를 배운 게 10대 중후반부터이기도 하고요. 여기서도 나는 빈부격차 ㅜ.ㅜ
전 아직도 일본분들의 '화장실 좀 빌려도 될까요?'가 적응이 안 됩니다. ^^;;
소설쓰는지영입니다
@siouxsie 미군에서 영어를 기준으로 배우기 쉬운 언어와 배우기 어려운 언어를 조사 한 적이 있었는데(파병과 관련하여 조사했던 걸로 기억해요) 영어와 태국어는 가까운 그룹이었고, 한국어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어요. 언어의 여러 측면에서 볼 때 굉장히 다른 언어인 거죠. 태국인 학습자가 한국어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것 중 하나는 '조사'인데 그게 태국어에는 조사가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입니다만, 제가 만난 한국어에 능숙한 학생들은 대개 목표가 분명했어요.^^ 어떤 목표인지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siouxsie
어! 저도 그 목표가 있는 학생들이 젤 잘했는데 ㅎㅎㅎ
목표도 목표인데, '애정'이 필요하더라고요. 뭐가 됐든 하나라도 좋아하면 되는데, 그게 없이 무작정 공부는 하는데 안 느는 학생들이 젤 안타까웠어요.
소설쓰는지영입니다
맞아요. 목표와 더불어 '애정'! 무언가를 좋아하는 힘이 이루더라고요, 뭐든.
새벽서가
언어적인 표현이 문화에 기반을 둔 사례네요? 경험을 누군가로부터 받는다니! 저는 미국에서 살면서 여전히 동의 못하겠는 표현이 새 이가 날때에요. 우리는 아기의 새이가 났어! 라고 표현하는데, 영어에서는 새이가 들어왔어 (a new tooth came in) 라고 하거든요. 잇몸에서부터 나는게 아니라 입안으로 들어온거라는 그 표현에 당황했는데, 이건 문화적인 배경도 아닌것 같아 왜 그렇게 표현하는지 새삼 궁금해지기도 하고, 다른 언어들에는 이렇게 문화적인 영향을 받은 표현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해요.
소설쓰는지영입니다
@새벽서가 흥미로운 표현이네요! '이가 나다'와 '이가 들어오다'라니... 치아 요정이 가지고 들어온 걸까요?
새벽서가
관점의 차이인것 같아요. 우리는 이와 잇몸의 입장(?)으로 보는 것같고, 미국에선 입안의 입장에서 보는거 같아요. 어떤 이유에서든 재밌긴 해요.
독갑
제가 모임에 너무 늦게 참여한 데다, 쌓여있는 글들을 아직 다 읽지 못했고, 또 책도 이제 겨우 4장까지 읽은 상태라서 질문을 드리기가 참 조심스럽기는 합니다만... 중복질문이거나 책에 나와있는 내용을 물을 수도 있다는 전제 하에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작가님께서 태국에서의 경험에 대해 공유해주시면서 '모국어 간섭'에 대해 말씀하셨죠. 저는 요즘 외국인 선생님과 영어수업을 하고 있는데요, 제가 영어를 참 한국인처럼 말하더라고요. 한국어를 영어로 단순 치환해서 말하다보니, 영어권에서는 쓰지 않는 표현을 자꾸 하는 거죠. 마치 '경험을 받다'처럼요. 그건 제 인식의 체계가 한국어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수키는 한국어를 정말 한국사람처럼 구사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수키 증후군'은 인간의 인식의 체계마저 바꿔놓는 것인지, 그래서 아예 사고 자체를 그 이전과는 다르게 하게 되는 것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소설쓰는지영입니다
@독갑 4장까지 읽으셨다면! 다음 장에 힌트가 나옵니다ㅎㅎ 제 기준에는요. 읽으셨는데도 명확한 답을 구하지 못하셨다!! 그럼 다시 글을 남겨 주세요^^
장맥주
무릎을 꿇고 다가오다니... 정말 놀랄 노자입니다. 너무 당황스러울 거 같은데요. 태국이 그렇게 동북아시아스러운 예의범절 문화를 지닌 나라인 줄 전혀 몰랐네요.
저는 최근에 젊은 기간제 교사 분이랑 저녁을 먹었어요. 제가 교권이 정말 추락했느냐고 여쭙자 그 분이 “요즘 아이들이 선생님을 편하게 대하기는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사례를 하나 들어주셨는데, 그 분이 점심시간에 급식실에서 학생부장 선생님과 함께 식사를 하신답니다. 학생부장 선생님이 중년 남성인데, 혼자 식사를 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옆에서 같이 드셨다고 해요. 그런데 얼마 전에 학생들이 식판을 들고 와서는 “쌤, 왜 이런 재미없는 아저씨랑 식사를 하세요” 하면서 자기들이랑 밥을 같이 먹자고 하더라는 거예요. 바로 그 당사자인 학생부장 선생님 앞에서 말이지요. 그런 얘기를 듣는데 이건 스승에 대한 존경 같은 걸 다 떠나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거 같다 싶더라고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소설쓰는지영입니다
경험을 받는다는 게 이런 맥락에서 형성된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내가 하는 경험은 위대한 왕이 있어 가능하고, 그 왕이 이 경험을 내게 내리셨고, 그러니 경험을 받는 것이다. 조심스러운 의견이나, 어쨌거나 제가 느낀 태국은 ‘경험을 받는다’는 표현이 이상하지 않은 곳이었어요. 언어 때문에 이런 자세와 가치관이 형성된 건지 반대의 경우인지, 상호 작용의 결과인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지만 모어/모국어는 정체성이나 가치관,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제1언어가 바뀐다면 타인과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개인의 내부에서도 충돌이 일어나고, 소외가 발생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이질적인 것들의 충돌이 계속되고, 그로 인한 소외가 쌓이고 쌓이면, 그리하여 마침내 그의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저에겐 이 소설이었어요.
아린
우와.. 경험을 받는다...
역시 단순 번역만으로는 내 생각과 문화가 완벽히 드러나긴 어렵겠어요.
예를 들면 it makes me happy. 이런 문장을 이것은 나를 행복해게 만든다. 이렇게 번역되도 우리는 이렇게 말하지 않잖아요.. 어떻게 말하는 게 한국적 표현일까.. 고민해 봅니다.
요즘에 영어 번역식 어투가 점점 더 많이 쓰인다는 글도 봤어요.
최영장군
언어, 정체성, 관계, 이질적인 것, 소외.... 저는 소설 초반에는 말씀 주신 것들에 대해 생각했는데,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상실'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어요
누군가의 삶에 갑자기 훅, 하고 들이닥친 상실에 관하여...
상실이 섬세하고 아름답게 포착된 문장들이다, 이런 생각 엄청나게 많이 했습니다
수키도 상실 속에서 방향을 찾으러 애쓰는 것 같았고....
(물론 소설에서 세팅한 질병의 발생 기전상으로는 언어와 정체성, 관계 등에 관한 부분을 축으로 해서 돌아가는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소설쓰는지영입니다
이쯤에서 질문을 던진 당사자가 몇 줄 적어봅니다.
세계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 소설 쓸 때는 더, 더 생각했던 거 같아요. 전쟁 같은, 조금 거대한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건 먼 이야기 같잖아요. 예멘이나 에티오피아에서 내전이 일어나고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발발하고, 그에 저항하고, 이게 한국에 살고 있는 나와 관련 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지시는 분들도 계실 거고요. 하지만 일부 지역, 국가에서 국한되는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폭염이나 지진 같은 재난, 팬데믹이나 전쟁은 한 나라가 감당할 수도 없고, 또 혼자서 감당해서도 안 되는 문제가 아닐까요.
우크라이나에서 밀 같은 식량을 재배하지 못하고, 또 인도 폭염으로 밀 생산이 막히고, ...언젠가 영국 마트에 식용유가 사라져서 피시 앤 칩스가 위협을 받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요. 그때 한국도 식용유 구매 개수를 제한한다는 말이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원료로 사용되는 해바라기 씨는 우크라이나 창고에서 썩어가고 있고요. 전쟁 때문에 수출길이 막힌 거죠. 퍼펙트 스톰, 따로 보면 위력이 크지 않은 태풍 등이 다른 자연현상과 동시에 발생하면 엄청난 파괴력을 생기는 현상이 선명해진 것 같아요. 팬데믹을 거치면서 세계는 긴밀하게 연결돼 있고, 또 얼마나 상호의존적인가, 그런 것들을 조금 더 명확하게 체감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하는데요. 총알이 날아오고, 누군가 다치고 죽고... 이런 게 sns 등의 매체를 통해 실시간으로 보도되면서 전쟁의 아픔을 가까이에서 목도하는 것, 더불어 내 생존도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않았나... 하지만 동시에 너무도 익숙해져서 무뎌지기까지 하고요. 오늘도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일어나서는 안 됐을 희생을 무심하게 지나치고 있죠. 일단 저부터도요.
소외되고, 소거 혹은 제거되는 사람과 사건이 많은데 모두 수키 증후군의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잊은 것, 말해지지 않은 것 모두 수키 증후군과 다르지 않을 거예요.
SooHey
“ 성인이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사고 체계를 완전히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고 보면 언어가 바뀐 게 수키와, 다른 수키 증후군 환자들에게는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차원에서 살게 된 것과 비슷할 것도 같네요. ”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 제9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p.93, 지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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