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발병 원인과 전파 경로가 확인되지 않은 증후군을 '상세 불명의 감염성 질환'으로 분류하고 질병코드를 부여했나, 하는 내용인 것 같은데 상당히 일리 있고 예리한 관점이라 생각되네요 포인트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수북탐독] 2.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
D-29
최영장군
전승민
저도 함께 나누고 싶었던 주제! :-)) 의견들 궁금합니다!
장맥주
‘전염되는 병’이라고 하면 더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 때문 아닐까요? 수키증후군 환자는 그냥 ‘이해를 못 받는 존재’가 아니라 적극적인 배척의 대상이 되는 거지요. 저는 대단히 효과적인 장치라고 생각했습니다. ^^
최영장군
그렇네요!! 병 그것도 전염병이면 더욱 배척의 대상이 될 테니까...
전승민
오, 그러네요! '전염'이라는 기전이 가져오는 공포와 두려움도 중요하게 작용하는 듯합니다.
새벽서가
완독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새 디테일한 부분은 가물가물하네요. 수키증후군이 질병으로 간주된 이유가 사실 저도 궁금했던 점이었어요. PTSD 처럼 극적인 경험후 일어난다는 점, 모국어를 잃고 타언어로 바뀌어 나타난다는 등의 공통점이 있는건 알겠는데 전염성이 있었는지는 사실 잘 기억나지 않거든요.
최영장군
일리 있는 의문인 것 같아요 말씀대로 수키 증후군 환자들이 주변에 전파하는 양태는 아닌 듯했습니다~
SooHey
병리적 상황은 지금, 여기, 나(너)에 물음표를 제기하기 좋은 판을 깔아주는 듯합니다. 너 괜찮은 것 같지? 늘 그럴 것 같지? 과연 그럴까? 아닐걸? 이라고 이야기하기 좋은...
@최영장군 님과 @전승민 님의 이야기를 듣고 작품을 보니 카프카의 <변신>이 떠오릅니다. 이 작품이 <변신>을 화소로 품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레고리 잠자의 이야기가 '위기 상황에서 무엇이 나를 지켜 줄까? 당신은 선뜻 가족이 나를 지켜줄 거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면, 이 작품의 주어는 '나라, 국가'로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생각을 따라가다 보니 공동체는 '나'를 지켜 줄 수 있는가? 그러한 공동체는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귀결되는데... 결론이 좀 슬퍼지네요.... ㅠ
안 슬픈 결론을 찾기 위해 계속 읽어보겠습니다.
최영장군
말씀을 듣고보니 수키 증후군도 카프카적 변신의 일종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병리적 현상으로 먼지가 되거나 사과에 박히거나...
화제로 지정된 대화
전승민
너무너무 좋은 질문이고 이것 역시 기미를 살피다 논의 후반부 쯤에 함께 나눠보고 싶은 질문이었기에 반갑습니다! :)
각각의 작품 속 맥락을 고려하면 더욱 다른 의미들이 발견되기도 하겠지만, 소설 일반의 경우를 좀 더 포괄적으로 생각해본다면,
1) 우선 무언가가 우리에게 <병리적>이라는 것은 <(소위 말하는) 비정상>의 상태, 혹은 <비일상>의 상태라는 건 '지금까지의 삶과는 다름'을 뜻하는 것 같아요. 모든 게 바뀌죠.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몸부터 시작해서 몸이 느끼는 '감각'의 결과와 그를 종합해서 그리는 '세계'의 모습까지, 죄다 바뀌어요. 이때 '나'는 성찰을 시작합니다. 탐구 또는 탐색이라는 말을 덧붙여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작품 내에 사건을 만드는 장치일 수 있어요.
2) 이제 병리적 상태로 진입한 인물은 주변인과 '다른' 사람이 되고, '구별'이 됩니다. 다른 존재로 의미화되는 거죠. '나'와 세계 또는 타인들과의 구별될 때, 그 구별되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 역시도 탐색의 과정이겠습니다!)
여기부터 이제 각 소설이 개별적으로 의미화 하고 있는, 인물이 경험하는 <다름>의 내용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우리가 함께 읽고 있는 <사라지는,>에서 1) 탐색의 과정과 2) 해당 인물과 다른 인물이 구별되는 내용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주변화, 타자화, 이해 불가능한 대상이 되는 것인 듯해요. 이에 대해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서술자가 '이해'를 하고자 접근하고 있고, 기록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이 '기록'의 의도와 기록으로 담고자하는 내용이 소설의 아주 거시적인 주제가 될 수도 있겠고요!
최영장군
언어란 것이 결국 '사회'의 합의된 기호의 일종으로 볼 수 있으니까, 언어 교체에 대한 탐색은 개인이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사회 정체성'에 대한 인식 과정으로도 여겨집니다
집단을 구별하고, 또 반대로 구별된 집단을 동일시 하거나 차별화 하면서 내집단 편향 같은 것도 나타나고요...
역시 @전승민 평론가님의 심도 있는 의견을 들으니, 함께 읽으면서 깊이 읽기까지, 너른 범주로 수북클럽이 진행되는 것 같아 기쁩니다
김혜나
“ "하루에도 몇 번이고 그때의 영상을 돌려보고, 돌려본다. 그리하여 그날이 언제나 옆에 달라붙어 나를 괴롭히지만 그렇더라도 진실을 밝히고 싶기에 나는 어제를 보내지 않는다. 아직은 보내지 않을 것이다." ”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 제9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130p, 지영 지음
문장모음 보기
siouxsie
“ 이미 달아난 마음이 여전히 기다리는 마음 옆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 마음들이 만나서 엮어 가는 서사는 전과 결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놓치고 만 마음은 언젠가 본 한 마리의 늑대를 떠올렸다. 결국 선택받지 못한 늑대만이 홀로 남았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을 땐 초원을 함께 달리던 이들은 사라진 후였다. 그곳은 동물원의 차가운 철창 안이었다. ”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 제9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73p, 지영 지음
문장모음 보기
화제로 지정된 대화
소설쓰는지영입니다
소설 속 ‘이하리’처럼 저도 태국에서 5년을 일하며 살았거든요. 학기마다 학생들에게 제발!! 부탁하는 게 있었어요. 태국인 한국어 학습자의 경우 ‘경험을 하다’를 ‘경험을 받다’라고 표현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태국어에서 경험은 받는 것이고, 모국어 간섭이 일어난 거죠. 왜 경험을 받는다고 표현하는 건지는 사는 내내 궁금했는데 명확한 답을 구하진 못하고 돌아왔어요.
제가 17년 10월에 태국에 갔는데 라마 9세, 푸미폰 국왕이 서거하고 1년이 지난 때였어요. 그때 존경하는 사람을 물어보면(궁금하지 않았으나 교재에서 다루는 주제여서...) 대다수의 학생이 푸미폰 국왕을 말했어요. 우리의 위대한 왕이 자비를 베풀고 선정하여 국민이 평화롭게 산다고 말하는 학생이 꽤 많았어요.
또 제가 교탁 앞에 있고 학생이 질문을 하러 올 때가 있었는데 어느 지점에서부터 무릎을 꿇은 채로 다가오더라고요. 깜짝 놀라서 뭐하는 거냐고 물어 보니 학생은 학생대로 당황하고요. 학생들이 태국 문화라고 설명해줘서 아... 알았어요 하고는 그 학생을 일으켜 세웠거든요. 그리고 보강을 해야 해서 시간을 정하는데 의견을 물어도 답하는 학생이 없더라고요. 여러분이 결정해서 알려달라고 하니 당황해 하고요. 그게 이제까지 보강은 선생님이 원하는 시간을 정해서 통보하고, 학생들은 어떻게든 스케줄을 정리해야 하는 거였더라고요.(모든 선생님들이 그러는 건 아니고, 또 태국을 디스하자는 건 아니고요ㅎㅎ 저 태국 되게 좋아해요!)
그래서 저는 여러분의 문화를 존중하지만 저에게까지 그럴 필요 없어요. 그러니까 두 발로 걸어서 나오세요, 라고 했고, 또 무언가를 결정할 일이 있다면 선택지를 주고 여러분끼리 투표와 상의를 해서 결정하고 알려주세요, 라고 했죠. 일하는 동안 무언가 결정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 최종 결정은 무조건 학생 몫이었어요.
제가 보기엔 지나치게 수동적인 학생들이 많은 사회였어요. 학생들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애초에 묻지 않고 통보하는 교수진-학교의 태도도 자주 느꼈고요. 5년 동안 살면서 논의가 아니라 통보로 일이 진행되는 것들을 종종 봤고, 제가 살아온 사회에 비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일을 낯설어 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한국도 자기 의견을 내세우는 게 아주 자연스러운 사회는 아니지만요.)
siouxsie
지인 중에 태국에서 한국어 가르치시는 선생님이 계시는데 한번 물어봐야겠어요. 그 분 태국 사는 것만 부러워 했었는데, 사실 작가님이 말씀하신 여러 문제들은 저도 많이 주워 듣긴 했어요.
근데 사실 각국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걸 봤지만, 한국에서 지역적으로 가까운 나라 기준으로 태국 학생들이 가장 한국어 학습에 곤란함을 겪더라고요. 태국어를 모르니 선생님들도 답답해 하시고요.
그 와중에 한국어 정말 잘하는 태국 학생들을 몇 아는데, 그 학생들은 역시나 어렸을 때부터 국제학교를 다니기도 했고, 한국어를 배운 게 10대 중후반부터이기도 하고요. 여기서도 나는 빈부격차 ㅜ.ㅜ
전 아직도 일본분들의 '화장실 좀 빌려도 될까요?'가 적응이 안 됩니다. ^^;;
소설쓰는지영입니다
@siouxsie 미군에서 영어를 기준으로 배우기 쉬운 언어와 배우기 어려운 언어를 조사 한 적이 있었는데(파병과 관련하여 조사했던 걸로 기억해요) 영어와 태국어는 가까운 그룹이었고, 한국어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어요. 언어의 여러 측면에서 볼 때 굉장히 다른 언어인 거죠. 태국인 학습자가 한국어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것 중 하나는 '조사'인데 그게 태국어에는 조사가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입니다만, 제가 만난 한국어에 능숙한 학생들은 대개 목표가 분명했어요.^^ 어떤 목표인지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siouxsie
어! 저도 그 목표가 있는 학생들이 젤 잘했는데 ㅎㅎㅎ
목표도 목표인데, '애정'이 필요하더라고요. 뭐가 됐든 하나라도 좋아하면 되는데, 그게 없이 무작정 공부는 하는데 안 느는 학생들이 젤 안타까웠어요.
소설쓰는지영입니다
맞아요. 목표와 더불어 '애정'! 무언가를 좋아하는 힘이 이루더라고요, 뭐든.
새벽서가
언어적인 표현이 문화에 기반을 둔 사례네요? 경험을 누군가로부터 받는다니! 저는 미국에서 살면서 여전히 동의 못하겠는 표현이 새 이가 날때에요. 우리는 아기의 새이가 났어! 라고 표현하는데, 영어에서는 새이가 들어왔어 (a new tooth came in) 라고 하거든요. 잇몸에서부터 나는게 아니라 입안으로 들어온거라는 그 표현에 당황했는데, 이건 문화적인 배경도 아닌것 같아 왜 그렇게 표현하는지 새삼 궁금해지기도 하고, 다른 언어들에는 이렇게 문화적인 영향을 받은 표현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