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북탐독] 2.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

D-29
@수서동주민 이 질문 읽고 나서 매일 답을 어떻게 달지 고민 중인데요. 모임이 끝나기 직전에 글을 남기겠습니다. (혹시 답을 달지 않고 끝낼까 봐서, 약속의 의미로 남겨요!)
@수서동주민 '소설 안에서 작가가 전지전능한가'에 관하여 적어도 이 소설을 쓴 저는 어떤 면에서는 전지전능하나 또 어떤 면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쓰고 있는 제가 품었던 생각과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기도 했고-이런 경우 왜?? 질문을 던지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했고요-, 인물과 합의하는 마음으로 서사를 고민하기도 했으니까요. (저보다 수키와 준의, 보나 등의 목소리가 힘이 있을 때가 더 많았어요.) 소설 밖에서는 당연하게도 작가의 의도보다 독자의 감상과 해석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얼마 전에 아는 분과 연락을 주고 받다가 어떤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작가의 의도가 뭔지 모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읽는 이가 더 중요한 것 같다고, 어쩌면 의미는 작가가 담는 것보다 독자가 만들어가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어요. 모임을 하면서 '저는 이런 의도로 썼습니다!'고 들려드리는 게 좋은지는 여전히 고민 중이에요. 해도 되지 않을까...는 마음이 들 때도, 반대일 때도 있습니다. 수키증후군과 테러/전쟁/폭력의 연결은 이런 상황들을 나도 외면하고 있다는 반성에서 나왔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먼 데서 일어나는, 크게 관심 없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폭력 앞에서 나 역시 방관자가 아닌가... 인드라망의 보석이 나와 가까운 것만 달려 있지는 않을 텐데 나 역시 굉장히 한정시킨 건 아닌가... 반성의 결과물이랄까요. 화제성은 언제든, 무엇이든 가라 앉을 거고(수키에서 볼 수 있듯이요), 그럼에도 내가 놓친 그물의 반짝임을 생각해보자, 이런 마음이었어요. 또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라는 생각에서 누구에게나 발병하는 증상으로 설정했습니다.
저는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을 읽고, 정확히는 '문체'를 느끼고, @소설쓰는지영입니다 작가님께 독자님들의 질문을 전달할 때는 (정확한 단어 순서는 기억이 안 나지만) '의도'라는 말 대신 '의도 혹은 계기'라는 표현을 썼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네, 우선 작품의 형식부터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는 소설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조금 달라질 수도 있을 듯 하여요. 제 생각에는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소설들이 보이는 경향으로는 분열이나 해체, 파편화 등이 있을 거에요. 또는 대중문화나 미디어의 영향력이 아주 크게 작용하는 특징도 있고요. 이런 점에서는 이 소설이 분명 그런 경향을 보이고 있지요. 서사의 구성이나 (짧은 인터뷰나 장면의 파편적인 연속들) 작품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대중문화 코드들, 특히 유튜브가 그렇겠고 다양한 매체들(언론, 인터넷, 소설 등)을 통해서 세계 전체가 동시적인 변화를 함께 맞닥뜨리는 점에서 더욱 그렇지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그러나 작품을 모두 읽고나면 결국 그러한 형식을 통해서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일관되게 봉합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필로그 격으로 시작하는 부분 바로 앞의 마지막 문장을 떠올려봅시다. "기억함으로써 침묵은 말이 된다.") 서술자 '나'(시오)의 다큐멘터리는 완성이 되지요. (그것이 이 소설 자체이고요.) 분열적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지영 작가님이 위쪽 댓글에서 말해주신대로 '콜라주'적인) 그 형식을 통해 궁극적으로 다가가고자 하는 주제와 인식의 방향은 분열적이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또, 포스트모더니즘적이지 않다고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문학 작품은 접근하는 관점에 따라서 서로 반대되거나 충돌하는 상반된 해석들이 무궁무진하게 제기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해보는 것에 대해 독자님들이 너무 혼란스러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중요한 것은 작품에 대한 저 같은 평론가^_ㅠ의 해석이 뭐지? 가 중요한 게 아니라, 독자님들 한 분 한 분이 스스로 읽어내고 느끼는 마음과 생각의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자기만의 해석이요. 그것이 이 작품을 바로 여러분만의 소설로 만들어줍니다.
심도 있는 말씀 감사드립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있어 형식뿐 아니라 내용격이라 할 수 있는 메시지 측면까지 아울러 살필 수 있는 너른 관점을 알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역시 @전승민 평론가님 모신 보람이 팍팍 느껴집니다!! ㅎ
화제로 지정된 대화
최영장군님께서 아주 흥미로운 질문들을 이끌어 주시고 있어서 덕분에 저도 제 삶/기억/경험에 관해 곱씹어보는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댓글들을 쭉 정독해보니 지금까지는 주로 소설의 형식(다큐)과 언어라는 키워드로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듯해요. 여기에다가 몇 가지 생각해볼 키워드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사라지는..>의 미덕 중 하나는 이 소설 자체가 아주 거대한 은유라는 점이에요. 심사평에는 일반적인 서사의 제시가 아니라 인터뷰의 파편들로 제시되는 부분이 마치 시적이라는 부분도 있는데요.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저는 이 소설 자체가 우리 시대, 특히 동시대에 관한 아주 거대한 은유라고 느껴집니다. 언어나 세계화, SNS, 매체, 아이콘, 테러 등은 그걸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단어들일 것이고요. 그리고 이 언어의 상실(수키 증후군)은 바로 테러, 폭력과 아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어요. 수키 증후군이 발생하게 되는 물리적인 주요 요인으로 제시되는 것이 바로 "테러"지요. 테러처럼 개인 대 개인이 아닌 집단을 단위로 발생하는 폭력적인 사건을 계기로 그에 연루되었던 이들이 언어의 상실을 경험합니다. 소설의 이러한 설정에서 다른 분들은 어떤 의미들이나 생각들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전자책으로 읽은 탓에 종이책 쪽수를 적을 수 없어 아쉬운데, 챕터4나 챕터5 쯤에 "타의에 의해 언어가 달라진 순간 수키는 사망한다" 와 비슷한 문장이 나온 것으로 기억해요. 이 문장을, 위에서 제가 언급드린, 외부의 폭력적 사건이 언어의 상실을 초래한다....는 점과 연결해서 본다면, 언어의 바뀜으로서 몸을 가진 한 인간이 죽음에 이른다...는 연결을 어떻게 더, 잘 이해해볼 수 있을까요? ^^
저는 언어의 교체가 과연 언어의 상실이나 정체성의 상실, 그에 대한 표상으로 느껴지는 먼지화로 '곧바로' 연계해서 이해할 수 있을까.... 어쩌면 (저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작품의 내적 진술이나 구성 측면에서) 페이크모션에 걸려든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조만간 화제 질문으로 개인이나 사회의 정체성에 관한 독자분들의 의견을 묻는 질문을 드려볼 계획입니다
어쩌면 타의에 의해 언어가 달라진 순간 수키는 이미 사망한 것일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신체적 사망에 앞선 사회적 사망인 거지요. 제1언어의 교체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뀌었고, 무엇보다 유일한 것을 빼앗겼으니까요. …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 제9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5장, 지영 지음
‘테러(공포)가 발생하면 많은 사람들이 의사소통 능력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그 와중에 어떤 사람의 진실은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도 해봤어요. 사람들의 감정을 마비시켜서 한 사회의 논의 능력을 훼손시키는 게 테러의 목적이고 본질이라고 생각하고요. 수키 증후군이 거대한 현상으로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수록 수키 증후군 환자들 개개인은 점점 더 소외되는데 그 점도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테러뿐 아니라 ‘신드롬’이 되는 모든 사회적 사건에 따라가는 일이겠지요.
오오, 그러네요. 공감이 갑니다. "감정 마비"와 그로 인한 "사회적 논의 능력의 훼손"이라는 말은 정말 예리하게 짚으신 부분인 것 같아요. 이것이야 말로 동시대적 문제지요. 확실히 이 소설은 정말 거대한 은유를 차용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장맥주 님의 댓글을 보고 더 강해집니다^^; 신드롬, 증후군.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으며 따라서 누구나 감염될 수 있는, 해당될 수 있는.. 그러나 정작 환자 당사자의 입장이나 감정은 지속적으로 배제되는 이중의 소외.... ㅠㅠ
오타를 찾았습니다 “기적은 예상치 못한 세계로 수키와 사람들을 안내했다. 의료진은 대뇌, 특히 전두엽과 측두엽을 중심으로 기능성 자기 공명 영상촬영(f-MRI)과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PEP)을 실시했다” PEP 는 PET의 오타로 보입니다.
예리한 눈썰미뿐 아니라 배경지식도 많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챠우챠우 책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보를 받은 오타인데요! 또 제보를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쓸 때, 교정 볼 때는 왜 안 보이는 걸까요ㅠㅜㅠㅜ)
제1언어가 다른 언어로 교체되는 전대미문의 이상 증상은 대책을 마련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세계를 공포로 휩쓸었다. 발병의 원인과 그 경로를 확인할 수는 없으나 이는 상세 불명의 감염성 질환으로 분류됐고, 결국 최초 발병자에게서 유래된 고유한 명칭을 번호와 함께 부여받기에 이르렀다. 질병 코드 84C330, 질병 명칭 수키 증후군(Suki’s syndrome)이 바로 그것이다.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 제9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지영 지음
환자의 이름을 따서 증후군 이름을 붙이는 경우는 드문 편입니다(루게릭병, 뚜렛증후군 등). 대부분은 처음 그 증후군을 기술한 의사의 이름을 붙여서 이름을 붙이곤 합니다(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메니에르병 등). 그런데 만약 이 소설에서 ‘해밍턴 증후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면 재미가 반감되었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수키 증후군이 딱이죠 ㅎㅎ
@챠우챠우 오오! 이것도 고민했던 부분인데 이렇게 짚어 주시네요!! 감사합니다. 편협한 생각일 수 있는데 의사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 학문적/의학적 성과를 강조하는 게 아닐까 싶었거든요. 언어를 교체 당하고(잃고) 사회적으로도 배제되고, 결국 먼지로 소멸하는 이들, 그 발병의 원인이 사회적인 맥락에 있음을 고려할 때 수키들에게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병명 역시 수키에게서 따왔어요. 쓰면서 피해자를 전면에 내세우는 게 과연 맞을까 고민도 했으나 밀고 나갔어요. 지금 생각하면 관심의 대상에서 조롱과 경멸의 대상으로 전락한다는 면에서도 '수키 증후군'이어야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야 그 삶이 우리에게 온다. 그것이 삶이라는 마술의 본질이다. 프란츠 카프카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 제9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p. 83~84, 지영 지음
깨지고 깨져서 버려질 날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스스로 버리는 게 아니라 누군가 벼려 주길 기다리며 하루하루 버티는 거 말이에요.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 제9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지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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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누워서 쓰는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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