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 댄스 댄스 를 아직 다 못 읽었는데 하루만 남아 내 맘대로 다시 만든다. 나는 이 책을 다 읽어야겠다. 책은 너무 좋다. 내 맘에 쏙 든다. 내는 책이 내 생명이다. 나의 운명이다.
댄스 댄스 댄스_2
D-29
Bookmania모임지기의 말
Bookmania
변함없는 걸 따라야
인간 세상에선 이것에 더 무게를 두고 살아야 한다.
현실 중에서도 일상에.
일시적인(Transient) 것을 위해 준비해선 안 된다.
그건 지나가는 감정에 불과하다.
감정은 오래가지 못하고, 삶은 일상의 지배를 받는다.
전자(前者)는 수시로 변한다.
닭 쫓던 개 꼴이 될 수 있다.
자신이 구축하는 일상을 위해 전자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삶 전체는 결국 일상, 습관(Habit)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사랑이나 연예인(Celebrity), 정치인 팬(Enthusiast) 같은 거,
이런 불같은 건 일시적이지 일상이 아니다.
인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건 간사하다.
본디 삶의 본질이 변화(Shift)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추구하는 바는 인간이 사는 세계의
현실이 아닌 이걸 넘어서는 것이라야
좌절하지 않고 내 생명이 다할 때까지 추앙할 수 있다.
그게 나를 배신하거나, 그 우러르는 게 알고 보니
도덕적 결함이 심하면 어쩔 셈인가.
그 기반이 허약하기 때문에, 아니 결국 믿음이 가지 않아
거기에 따라 나도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차라리 종교에서 모시는 신을 숭배하거나
자기가 즐기는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미 죽은 사람을 모셔라.
이것엔 변화가 없다.
그것으로 굳어져 있다.
그래 경전을 왜곡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 사이비가 된다.
적어도 그것엔 배신당하지 않는다.
자기 이상의 구상화를, 변하는 현실에서 찾지 말고
그 이상(以上)의 곳에서 찾아야 한다.
작가(Writer)도, 그가 주장하는 게 마음에 들면
그 자체를 내 나름대로 추앙해야지 나약한 한 개인에
불과한 작가라는 현실 인간을 우러르면 안 된다.
그도 인간(人間)이기에 나와 사는 게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거기서 차라리 “그도 한 인간에 불과하구나!”를
발견하고 깨달을 정도까지 이르면 삶을 초탈한 것이다.
인간에겐 변화무쌍한 마음이란 게 있어,
결국 인간 역사는 배신의 역사로 점철된 것일 수도 있다.
인간 현실을 포기하거나 버리지 못할 거면,
일상(Ordinary)에 중점을 두고 현실에서 영향을 잘 안 받아
잘 변하지 않는 나름의 고귀한 가치를
이상으로 삼고
그걸 향해 현실에 있어야 한다.
현실에선 일시적인 게 아닌 일상에 중점을 두고
그걸 딛고 있으면서 인간 세계에서
변할 수 없는 나름의, 자기 자신이 손수 만든,
그래서 결국 자신에게 최적화(Optimization)된
가치를 보고 가야 한다.
현실을 무시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거면
일시적인 것보단 변화가 적은 일상적인 것에 발을
들여놓고 거기서 굳건하게, 변화를 모르는
이상을 추앙(Reverence)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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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처럼 진짜 속셈은 딴 것인데 그게 아닌척하고 악어의 눈물을 흘린다. 한국엔 이게 너무 많다. 이제 웃거나 우는 게 다 쇼인 것처럼 보인다. 진짜가 사라졌다. 위기만 모면하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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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골 가서 글 쓰려는 이유
시골은 공기가 맑고 주변이 고요(Still)하다.
기분까지 상쾌하다.
글쓰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독서, 집필, 사색에서 방해받지 않는
이런 곳은 흔하지 않다.
혼자 외로이, 남과 잘 만나지 않고
타인과 괜한 일로 엮일 일도 거의 없다.
글은 주로 혼자 하는 일이라 이런 조건이라야 한다.
시골은 어둠을 간직하고 밤이 밤답게(Dark)
눈부시지 않아 잠을 제대로 잘 수 있다.
안온하고 깊은 잠은 글 집중도에 필수다.
도시에서처럼 툭하면,
119에 실려 가 목숨을 연장하고 싶지 않다.
시골에서 때가 되면 죽고 싶다.
자연의 순리에 순응(Conformation)하려 한다.
인술(仁術)이 아닌, 돈만 들어간 의료 서비스는
생명을 억지로 늘리는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내 목숨 때문에 그러겠나, 돈 때문에 그러지?
생명이 고무줄처럼 늘어지면 몸과 정신,
삶의 질이 떨어져 글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이렇게 되기 전에 글도 생명도 그만 내려놓아야 한다.
글에서 내가 추구하는 바도, 인간은 모두 자연의 일부이므로
때가 되면 그리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나는 글에 쓴 내용을 실천하고 싶다.
거기서 글을 쓰다 죽으면 이만한 행복도 없을 것이다.
시골 황톳길을 느긋하게 맨발로 걷고 싶다.
그래 내가 직접, 하늘과 땅을 잇는 매개가 되는 것이다.
계절의 변화를 바로 알고
산과 들, 개울을 지난 바람을 민낯에 그대로 맞고,
풀꽃 내음, 각종 버섯이 무성한 솔밭 사이의
자연을 머금은 계절의 싱싱한 기운을 온몸으로 맞으며
자연과 그만 하나가 되는 것이다.
물아일체(物我一體)다.
시골의 이런 풍광(Landscape) 속이라면
내가 바라던 글도 탄생하리라.
시골 도서관에서, 비정기적인 독서 모임에 참여하고 싶다.
진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책을 읽으며 느낀 점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다.
그러다가 기분이 내키면 뒤풀이로 술 한잔하면서
각자의 색다른 견해(Perspective)를 마구 펼치는 거다.
맨정신과 취중의 세계는 다른 법이니까.
따분하고 고즈넉한 시골에서
유유자적 풍류를 맘껏 즐기는 거다, 그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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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전체적인 줄거리나 결말 같은 것으로, 즉 주제 비슷한 것으로 뭔가 얻는 것보다 그냥 작가가 일상적인 것을 서술한 그 런 것에서 더 않은 것을 얻어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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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잘 맞지 않는다. 그가 그리우면 그는 안 그런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그에 게 잘해줘야 하는데, 항상. 나는 또 그런 성정은 아니라 그럴 수도 없는 일이다. 그냥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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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괴상한 이상주이자이고 생각이 삐딱하기 때문에 만인은 작가를 잘 돕지 않는다. 같은 종류끼리 돕는 것인데 작가처럼 희귀한 종자들은 잘 없기 때문이다. 이걸 항상 감수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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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밑바닥 심리
인간의 심리란 이런 것이다.
이미 잡은 물고기엔 애써 먹이를 주려 하지 않는다.
잡힐 듯하지만 결국 안 잡히는 다른 물고기에 온 신경이
다 가 있어 그런 것이다.
이게 인간의 밑바닥 심리다.
너 외에도 다른 곳으로 얼마든지 갈 수 있다.
혹은 너 말고도 다른 대안은 많다, 이걸 비쳐야
그는 나에게 먹을 것을 줄 생각을 한다.
전에 내가 잊지 못해 그에게 매달렸으나
이런 나를 철저히 무시하고 함부로 대한 인간에게
이런 게 최고의 복수다.
그에게 이젠 아무런 관심도 없는 거.
복수 같은 감정조차 이젠 다 사라진 거.
“난, 너밖에 없어.” 하는 말을 뱉는 순간
내 주가는 다시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인간은 또 얻을 수 없을 것 같은 것보다도
이제 자기 것이라 완전히 믿었는데
이걸 빼앗길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공포 비슷한 걸 느낀다.
길거리에서 만 원 돈을 주운 것보다 그걸 잃은 것에
더 배 아파하고, 잊지 못하고 그 고통에 시달린다.
결국 내 손은, 지금 얻고 잃어, 손해 본 건 없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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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약한 인간
유명 자가는 젊을 때는 진지하게 사회 문제 같은 걸 다룬다.
글에 활력도 넘쳤다.
그러다가 그런 진지는 부질없고 소용이 결국 없는 것인지
그냥 남녀의 불륜이나 성욕 같은 거나 쉽게 다루고 있다.
인간은 결국 뛰어봤자 벼룩, 제자리라는 걸 깨달은 걸까.
아마도 몸이 약해 이제 갈 때가 되었기 때문에
뭔가 새로운 걸 펼치는 게 우스워져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나이 들어 가벼운 성욕 같은 시답잖은 거나
다루게 되었지만, 어쩌면 이게 인간 사이에서
더 중요한 문제나 화두일 수도 있다.
그는 결국 돌고 돌아 여기로 온 것이기에.
인간은 몸의 지배를 받는다.
아주 한시적이고 허약하다.
몸에 따라 마음도 왕성했다가 몸에 따라 시들해진 다.
그나마 젊을 때 심각하고 진지하게
인간과 사회에 대한 걸 다룬 것이라도
남아 있어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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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대해
나는 하나에 잘 빠진다.
한때는 여자에 대한 심리를 마스터하고자
도서관 서가에 있는 관련 분야의 책을, 전부 다 읽고
“거기에 없는 책이 다른 도서관엔 또 없나?” 하고
서울시와 경기도 도서관을 샅샅이 뒤지며
독서 투어를 한 적이 있다.
지금은 이게 일본으로 향했는데, 여자에 대한 심리를
파는 것과 같은 열광으로 이제 일본으로 이동했다.
일본은 왜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매뉴얼을 중시해 거기서
흐트러지면 뭔가 심한 불안을 느끼는 것 같다.
변화를 싫어한다.
기존 체제의 보전과 유지가 그들에겐 무슨 생명 같다.
그들의 역(役)이란 풍조의 만연도 여기에 한몫하는데,
남의 것을 넘지 않는 선에서 자기 역에만 충실한 것이다.
일본 드라마나 AV를 봐도 거의 이런 패턴을 고수한다.
궤도를 벗어나는 법이 없다.
극히 규격화된 사회다.
이렇게 되면 변화에 둔감해져 큰 흐름을 놓칠 수도 있다.
6시에 퇴근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고,
일본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는 드라마도 거의 없다.
한국처럼 현실을 잘 반영하지 못한다.
가리고 싶은 것을 덮어버리는 것이다.
겉으로 내세우는 것과 실제의 유리(遊離)가 너무 크다.
멜로드라마에서 여주와 남주가 손을 잡는데
몇 회가 그냥 지나가는 건 예사다.
그에 비해 일본 AV는 지나치게 노골적이다.
일본은, 겉은 멜로드라마지만
실제는 AV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순혈(純血)에 대한 집착도 심하다.
이방인을 잘 받아들이지 않고, 국산품만 애용한다.
그러나 인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절대 상대적이다.
불변의 진리는 없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 발전하는 게 있고, 같은 게
다른 시대에는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발생한 것도 단점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다른 관점으로 보면 반드시 거기엔
장점이 있게 마련이다.
그 배경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우리나라는
간섭의 민족이고 일본은 자기 영역을 지키는 민족이라고
하는데, 어쨌든 나는 이게 더 좋다.
남의 일에 간섭할 에너지로 자기 일을 더 파라는 것이다.
자기 일을 열심히-그것도 대대로-장인이 되어
보통 3대 이상이 여기에 매달린다.
몇백 년은 우습고 몇천 년을 이어온 가업도 있다.
뭐든 인간은 거기에 미치면-어느 경지에 도달하면-자기
나름의 철학이 생긴다.
그게 자기에게 맞는 거면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은 거다.
내 글은 모두 여기로 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타고난-마치 팔자 같은-그런 것에, 몰입하라는 거다.
자기가 진정으로 즐기는 것에 빠지는 것이다.
이보다 더 큰 희열은 없다.
성과도 탁월하다.
남이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성과를 낼 수도 있다.
인생에 대한 강한 의미도 생기고,
그 속에서 마냥 행복하다.
기초 질서를 잘 지킨다, 거리도 깨끗하다,
지하철에서 핸드폰을 쓰지 않는다,
타인에게 친절하다,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삼간다,
이게 다 남을 위한 배려이고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사회 통념의 결과다.
왜 그렇게 됐는지는 차치하고, 우선 남에게 잘하려고
노력하는 건 절대 나쁜 게 아니다.
그러는 경우도 별로 없지만,
(일본인은 남에게 부탁 자체를 잘 안 한다.)
그래 결국 나도 중국인보단 일본인이 도움이
필요해 보이면 먼저 다가가 도와주려고 한다.
중국인은 시끄러워 금방 알아채지만,
일본인은 있는지도 잘 모른다. 조용히 다닌다.
세상에서 가장 소심하고 내성적인 국민이다.
나는 일본말은 잘하지 못하지만,
어렵게 한국에 온 그들을 힘껏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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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친하고 가까울수록 욕을 더 잘 한다. 엄마가 딸에게 미친년이라고 말한다. 가까우니까 그런 것이다. 일본이나 미국은 심한 욕은 잘 안 한다. 우리나라는 감정표현에 능숙하다. 그러나 왜 노벨상을 못 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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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본인과 딱 맞다
한국 의 일반인들은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아마도 작가들은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연인끼리 연락을 잘 안 하는 거.
나는 일본인들이 하는 것 중에 이걸 가장 좋아한다.
나와 맞는다.
연인끼리라도 남에게 연락해서 폐를 끼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마음으로 2주에 한 번만 연락한다는 거.
나도 그런 타입이다.
물론 한국인들은 거의 다 놀란다.
그렇지만 이런 일본인의 특성이 내 마음에 들어
더 일본 여행을 하고 싶다.
나처럼 내성적인 국민들!
대신 한국엔 너무 다혈질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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