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GX] 1. 미셸 트랑블레처럼 일상 포착하기

D-29
"뒤플레시! 뒤플레시!" 그러고는 윗니에 묻어 있는 립스틱 얼룩을 혀로 훑어 지우면서, 불안한 마음을 안심시키는 립스틱의 그 들쩍지근한 맛을 느꼈다. 마리 실비아는 거칠게 문을 닫으며 한숨을 쉬고는 커피 한 잔을 따랐다. "절대 아무도 믿으면 안 된다니까! 절대로 안 된다구!" 그녀의 손이 약간 떨렸다. 왼쪽 속눈썹 사이에 맺힌 눈물 한 방울이 반짝 빛났다. "나도 그래야 되는 건 알아, 하지만···" 마리 실비아는 잡동사니 창고로 돌아와서는 수수께끼 같은 안락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레스토랑을 바라봤다. 레스토랑 문. 언제나 깨끗한 유리 진열장. 안락의자는 마리 실비아가 남들 눈에 띄지 않게 다른 사람들을 마음껏 훔쳐볼 수 있고, 그들의 삶 속에 온전히 푹 빠져들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었다. 사탕, 감자칩, 쿠키들을 올려놓은 판매대와 아이스크림 매대 사이에 있는 그 틈새 공간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었다.
옆집 뚱보 아줌마가 임신했대요 p.14, 미셸 트랑블레 지음, 고혜선 옮김
마리 실비아가 운 나쁘게도 뒤플레시를 쓰다듬으려는 동작을 하거나, 아니면 그저 많이 먹으라는 몸짓을 할 때마다 뒤플레시는 벌떡 일어나서 그녀에게 발톱을 드러내며 하악질을 했고, 증오심으로 감전된 양 털을 바짝 곤두세웠다. "지금 밥 먹고 있잖아! 네 앞치마 속으로 파고들어가 고마운 척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 댈 마음이 생길지 말지는 나중에 봐서 결정할 거라고! 이따 봐서 할 거라니까!" 뒤플레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밥그릇에 얼굴을 처박았다.
옆집 뚱보 아줌마가 임신했대요 p.19, 미셸 트랑블레 지음, 고혜선 옮김
고양이 묘사까지 이렇게 재미나고 실감나게 하다니!
마리 실비아는 뒤플레시가 다 먹기를 기다리고 나서, 매번 빼먹지 않고 이렇게 묻곤 했다. "우리 뚱냥이 씨, 엄마가 준 맘마 잘 먹었쩌요?" 그때마다 뒤플레시는 그녀를 아주 경멸스럽다는 듯이 쳐다봤지만, 마리 실비아는 그 눈빛을 고마워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옆집 뚱보 아줌마가 임신했대요 p.19, 미셸 트랑블레 지음, 고혜선 옮김
"그럼 언제부터 일을 시작할 수 있겠어?" 베아트리스는 처음으로 메르세데스와 눈을 맞추며 영혼 깊숙한 곳까지 바라보았다. "애당초부터 준비가 된 상태라는 걸 잘 아시잖아요. 이제 와서 저보고 어쩌라고요." 그 말을 듣고 메르세데스는 겁이 났다.
옆집 뚱보 아줌마가 임신했대요 p.26, 미셸 트랑블레 지음, 고혜선 옮김
1st. W는 한때 밝은색 옷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외모는 평범했으나 피부가 무척 흰 편이라 연노란색, 연분홍색, 살구색 등의 옷이 피부와 썩 어울렸다. 그러나 W가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옷장에는 무채색의 셔츠와 바지들만 가득하게 되었다. 검정, 회색, 짙은 남색 등의 옷만 가득한 옷장은 한낮에 열어도 밤처럼 껌껌해졌다. 모두 SPA 브랜드에서 구입한 것들이었다. 어느 것 하나 천연소재 100퍼센트의 원단으로 만들어진 것은 없었고 폴리에스테르가 섞인 저렴한 소재로 만든 옷들이었다. W의 표정은 그가 입은 옷만큼이나 어두워졌다. 그의 피부는 표정처럼 생기를 잃었다.
“머리 잘랐네?” “어, 자꾸 목덜미로 파고들어서 쳐내버렸어. 아휴.. 아줌마들 머리 다 똑같다고 흉봤는데 좀만 길어져도 답답해서 못참겠다.” 허리를 좌우로 비틀던 선영은 손으로 뒷머리를 탈탈 털어낸다.. “시원하고 좋은데 뭐. 어떻게 지냈어? 별일 없어?” “뭐 별일 있을거 있냐. 그냥 살지. 아휴...큰 부자 되겠다는 것도 아니고 딱 중간만 살려고 하는데도 왜캐 힘드냐?.” “다 그래. 휴가는? 애들 바빠서 시간 맞추기 쉽지 않지?” “아휴, 휴가고 뭐고 더워서 아무 생각 없어. 그래도 남들 다 가는데 안가기도 그렇고.. 요즘 다낭 안가본 사람 없다며? 좀 여유롭게 가면 좋은데 자유여행이 더 비싸서 패키지 끊었어...” “패키지로 편하게 가면 좋지. 아들 제대해서 같이 가니까 더 좋겠다?” “좋기는. 아휴.. 가도 걱정, 와도 걱정이지. 다른 집 자식은 군대 갔다오면 속차린다던데. 하루 진종일 자다가 저녁에 나가서 술 먹고 밤새 게임하고. 엄친아는 안돼도 중간만 하라는데 그게 안되나 봐..” 선영은 어젯밤 아들과 한 설전이 생각났는지 이마를 찌푸리며 연신 허리를 비튼다. “허리 불편해?” “아휴... 반상회 갔더니 다들 안마의자 보면서 우리 집건 어떻고, 뭐가 좋고 어쩌고 그러대? 사람들 다 하나씩 들여놓는데 우리도 하나 있어야지 싶어서 며칠을 골라서 하나 들여놨지. 근데 이노무게 뭐가 안맞았는지 허리가 이렇게 아퍼. 늙어서 그런지 안마의자 때문인지...” 선영은 연신 허리를 주무르고 자세를 바꿔 앉으며 대화를 이어간다. 내년 봄 딸아이 결혼을 준비한다는 선영은 교사인 사위가 잘나지는 못해도 중간은 되는 것 같다며 웃는다.
미숙을 처음 만난 날이 특별했던 것은 아니다. 흐렸다 맑았다. 그것이 너무나 당연해서 기억 속에 남지도 않는 오늘의 날씨들, 무미건조함을 평범하다 일컫는 그런 하루하루들. 문화센터에서 시 수업이나 듣는 우리 같은 재미없는 중년의 아줌마와 섞어놓으면 크게 다를 게 없어 무리 속에서 ‘미숙’이라는 고유명사를 기억하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별 특징 없는 그녀의 외모도 외모겠거니와 타인에게 별 관심 없는 나의 무심함도 한몫했으리라. 그날도 시 수업을 듣기 위해 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하늘에서는 폭우가 미친 듯이 쏟아지고 있었고 평소 조용하던 나의 핸드폰으로는 문자 알림이 미친 듯이 울리고 있었다. 재난 문자겠거니 하고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나는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와이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기에 밀려나는 빗방울이라고 하기에는 몹시 거대한 물덩이들도. 평소 일정이나 정해진 것이 틀어지는 것을 결벽처럼 싫어하는 나의 성미를 탓하며 겨우겨우 주차장으로 들어섰을 때, 그 건물에 차가 몇 대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달으며 그제야 나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오늘은 폭우로 인해 수업을 휴강합니다. 보강 일정은 추후 공지하겠습니다] 센터에서 온 문자를 확인했음에도 나의 발길은 시 수업을 하는 201호를 향했다. 머릿속으로 내가 아는 온갖 욕을 저한테 하면서도 나의 두 눈으로 강의실 문 앞에 부착된 ‘휴강’이라는 두 글자를 직접 확인해야 하는 것인지, 여기까지 왔으니 두 시간 동안 빈 강의실에 앉아 있다 가야 하는 것인지, 나도 내가 어쩔 작정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던 모양인지 혹은 목표가 크지 않아 그랬던 모양인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삶을 살았다는 것을 그날 처음으로 나는 알았다. 201호 앞에 다다른 나의 눈앞에 기어코 ‘휴강’이라는 두 글자가 들어왔고, 걸어오며 고민하고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나는 바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 ‘미숙’이 있었다. 아니, 사실 그때까지도 나는 미숙의 이름을 몰랐으니 그땐 그냥 한 중년의 평범한 여자가 폭우를 뚫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옷은 비에 젖어 달라붙어 레이스 달린 빨간색 속옷이 비쳐 다 보였고, 머리는 동네미용실에서 갓 파마하고 나온 거처럼 한 발짝이라도 가까이 다가가면 지금당장이라도 파마약 냄새가 풍길 것 같았다. 부러진 우산살이 삐져나와 망가진 우산이 물웅덩이를 만든 채 그녀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한번 바라보고 고개를 가볍게 숙이고 인사 한 뒤 평소 내 자리로 가 앉았다. 그렇게 우리는 기다리기 시작했다. (끝.24.6.24)
항상 일정한 요일과 시간에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혼자 올 때도 있고, 여럿이 함께 올 때도 있다. 어느날은 멋쟁이 처럼 모자도 쓰고, 깔끔한 캐주얼 정장을 입고 오기도하고, 어느날은 그냥 그저 추리닝 차림으로 찾아올 때도 있다. 항상 시키는 음료는 따뜻한 카페모카. 더워도 추워도 시키는 따뜻한 카페모카가 이제는 그 손님의 시그니처가 되었다. 혹시나 아는 체를 하면 싫어할까, 싶어 언제나 처음 맞이하는 손님처럼 응대를 하지만 가끔은 오늘도 카페모카세요? 하고 말을 내뱉고 싶어, 입술이 씰룩 거린다. 흰 머리가 희끗희끗 보이다가도 갈색으로 그 희끗함을 덮어버리는 모습이 자신의 부모를 떠올리게 만든다. 앉아서 카페 모카가 올 때 까지 기다리다가, 가져다 드리면, 감사합니다. 하고 조그맣게 말을 하고 품에서 안경을 꺼낸다. 그렇게 안경을 쓰고, 핸드폰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핸드폰을 빤히 쳐다보다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착착 정리해서 카운터로 가져다 준다. 혼자올 때는 이렇지만, 여럿이 올때는 목소리도 커지고, 즐겁게 웃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목요일, 오전 10시가 되면 그 손님을 기다린다.
※ 중년의 직장인 ‘유’에 대하여.. 느적느적한 긴 그림자는 늘 ‘유’와 같은 색의 옷을 입고 있다. 유독 긴 시선으로 들여다보아야 하는 ‘유’의 그림자에 ‘유’가 담길 때면 ‘유’는 사라지고 없다. 바람 실은 햇살이 자유로이 넘나드는 것과 달리 그림자와 함께 앉혀진 ‘유’의 자리는 그 둘의 합쳐진 무게만큼이나 무겁고 무거운 만큼이나 달싹임이 없다. 그늘 서린 다초점렌즈 안경을 걸쳐 쓴 채 혼재되어 있는 처리해야 할 서류와 버려야 할 서류를 적당히 외면하면서 모니터 화면에 열어두었던 주식 창을 ‘유’는 내쉬는 숨에 한숨을 담아 닫아 버렸다. 그런 ‘유’의 날숨엔 숨소리에도 보일 것 같은 담배 연기와 깊게 눅진 니코틴 냄새가 묻어 있다. ‘유’인지 ‘무’인지 존재를 가늠하기 어려운 ‘유’에게도 쿰쿰하지 않은 낭만이 삐져나올 때가 있다. 전 세계 자동차들이 시시각각 화면을 흐르는 모니터 하단부의 우측과 가끔은 있어도 없는 척 무용한 불빛을 깜박이는 인터폰 전화기의 좌측 모서리가 만나는 즈음에 옴짝달싹 못하게 붙여 세워둔 가족사진을 안경 없이 맨눈으로 온기를 담아 지그시 바라볼 때이다. 그렇게 ‘유’는 주먹 쥔 양손을 가볍게 맞대 턱을 괴고 깊지 않은 주름 지긋한 눈빛으로 사진 속 얼굴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춘다. 그리고 ‘유’는 비로소 색을 입는다. 그림자에 담겨져 ‘유’의 자리에 앉게 하는 것. 그리고 그 무게감을 버티게 하는 것. 또 ‘유’를 물들게 하는 것. ‘유’는 그것을 ‘유’만큼 가벼운 주름이 늘어가는 책상 한 켠에 뿌리내리게 한 채 매 순간 자신의 그림자를 딛고 뿌리내린 그것에 기대어 하루에 하루를 더하며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중학생 딸아이의 나지막한 “아이씨~”소리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너 지금 엄마한테 아이씨~라고 짜증 내는 거야?” “아~ 아까 씻는다고 했잖아.” 문득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빨리 일어나라는 엄마의 잔소리와 이불속에서 뭉그적거리며 심통을 부리는 자신의 모습. 지금의 딸아이와 똑같다. 아이를 가졌을 때, 그녀는 다짐했었다. “엄마와는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키울 거야.” 태교도 유별나게 하고, 아이에 대한 사랑도 아낌없이 표현했다. “네 마음이 춥지 않게 하려고.. 내가 얼마나 애썼는데..” 그녀의 속에서 뜨거운 것이 솟구친다.
"이 아저씨가 또 생사람 잡는 소리 하시네!" 아침 댓바람부터 이게 또 무슨 소린고 하니,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지 목요일 아침, 그러니까 내가 근무교대를 위해 아파트 관리소장에게 관리장부 더미를 잔뜩 들고가서 확인을 받아서는 경비실로 돌아오는 딱 그 순간에 들이닥쳐서 퍼붓는 3동 101호 최부녀씨의 루틴하게 내지르는 면박주기 시전 되시겠다. 그랬다. 최부녀, 그녀의 정확한 이름은 두어번 입주민 찬반투표 과정에서 들어보긴 했으나 우리 경비들 사이에선 부녀회장을 몇 년째 내리하고 있다고 해서, 그리고 최씨 성을 갖고 있다고 해서 최부녀라고 불렀다. 그런 그녀는 30대의 두 딸을 두고 있고 아마 둘째는 작년 가을엔가 시집간다고 여기 경비실에 백설기 한박스를 건네며 관리사무소 식구들과 나눠들 드시라 했던거 같은데 첫째는 IT회사에 다니는 수재라곤 하는데 연애도 결혼도 담 쌓고 지내는 통에 최부녀의 마음을 졸이게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무튼 그녀의 루틴인 목요일 아침의 면박주기, 오늘의 주제는 다름아닌 길고양이 먹이주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었다. 수년 째 아파트 서편 담장 쪽에 수풀이 우거진 곳에 어느날인가 부터 생긴 얼기설기 나무로 만든 사과상자 모양의 고양이 쉼터가 최부녀가 시전하는 오늘의 주제였다. "저거 저거는 왜 언제부터 예길했는데 그대론거냐고? 안그래도 근처 장애인학교 생긴다고 해서 집값 떨어진다고 난린데 이렇게 아저씨들이 협조 안해주시면 나보고 어쩌라고." 이렇게 시작한 그녀의 루틴에 내가 아무생각없이 던진 한마디가 일을 키우고 만 것이었다. "부녀회장님이 몇몇분들이랑 저번에 아예 그 고양이집 2개 있던 걸 치워버리시니까 그거 하는, 뭐래더라 캣맘인가 맘캣인가. 아무튼 그사람들이 항의한답시고 2개를 더해서 4개짜리 고양이 아파트를 지어버렸잖아요 왜." 그랬더니 아침 댓바람부터 고래고래 생사람 잡는다는둥 하면서 근무교대하고 퇴근하려는 나에게 영점조정도 없이 총부리를 겨누고 무자비한 연속격발을 시전하는 것이었다. "이 아저씨가 또 생사람 잡는 소리 하시네! 진즉에 내가 얘길 했어요 안했어요 네? 쥐약을 놓던지 아니면 덫을 놓던지 해서라도 그 고양이 년놈들의 씨를 말려버렸어야지 뭣들 하다가 이제와서 나한테 덤탱이를 씌울라고 그러나 몰라. 아이고야, 내가 내는 관리비로 먹고 사는 양반이, 정말 양반노릇하고 상전노릇 할라고 하네. 아이고 미치겠네. 옆단지 경비들은 인사도 깍듯하게 하고 택배도 모아뒀다가 집앞에 따박따박 배달도 해주고 그런다는데, 우린 우째 이런 경비들만. 아저씨, 써비스 몰라요 써비스? 뭘 요구하고 누릴라고 하면 뭐라도 도움되는 걸 응? 입주민들 위해서 노력 같은 거 해볼려고 연구도 하고 그래야지. 맨날 시간되면 퇴근할 궁리만 하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경비실에서 시원하게 근무하라고 에어컨 놯드렸으면 근무라도 열심히 하지 거기서 꽁치 김치찌개를 끓여 먹으면 냄새가 나요 안나요? 아니면 도시락을 싸다니시던가 해야지. 이거 뭐 완전 개념이 전혀 장착이 안되어들 계시니까 여기 집값도 덩달아 떨어지고 하는거 아냐!!" 경비실에 에어컨 이야기를 하다니 갑자기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벽걸이 선풍기로 더운 여름을 났었는데 작년 한창 끝없는 열대야의 밤들이 이어지던 8월 중순의 어느날, 내가 교대하고 퇴근하던 그날 박씨가 오후2시 경 작열하는 태양 아래 지상 주차장에서 달궈질대로 달궈진 까만색 제네시스를 그늘 진 2동 뒷쪽 주차장으로 옮겨달라는 최부녀의 인터폰을 받고서 3동 101호에서 키를 받아오고 차를 옮겨서 주차하고 다시 3동 101호에 키를 가져다주고 돌아와 앉은 경비실에서 잠깐 의자에 앉아 목을 뒤로 져치고 졸고 있나 했는데... 관리소장이 발견했을 때는 이미 호흡도 옅고 사지가 축 늘어져있었다고 했다. 119를 불러서 응급실로 갔으나 그렇게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던 박씨. 그일이 있고나서 주민자치회의 의결을 거쳐 경비실에 에어컨이 설치되게 된 것이었다. 그때도 박부녀는 전기세가 어쩌고 정신상태가 어쩌고 하며 볼맨소리를 했다고 전해들었다.
문장 연습 아니고 작품을 내셨네요. 계속 이어지죠?
하하 과찬이십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그냥 숙제랍니다 ㅎㅎ
저도 뒷 이야기 무척 궁금합니다. 연재해 주세요~ ^^
하핫. 아이고 여기서 이러시면.. 감사합니다^^;;
재이는 나이에 비해 날렵한 몸매와 호감가는 인상의 소유자이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친구도 많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그에게 호감을 표하는 경우가 많다. 흠, 좀 부러운 걸? 나는 그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조용하고 표현이 크지 않은 터라 인기와는 거리가 멀고, 오래 본 사람들이나 본디의 내 마음을 알아주는 진국 스타일인 나는 그가 부러웠던 것이다. 대략 이년 이상 재이를 지켜 본 결과 나온 결론은, 당연하게도, 인기란 노력이 없이는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년을 훌쩍 넘어 노년에 접어드는 나이지만 재이는 주중에는 꾸준히 아침에 수영을 하고, 주말이면 동창이나 지인들과 둘레길을 걷거나 등산을 한다. 여기에 덧붙여 순한 맛 격인 골프를 치러 나가거나, 매운 맛 만땅인 2박3일 지리산 종주도 힘겹지만 해내고 만다. 그의 외적인 매력이 타고난 것 만은 아니었음이다. 이제 두번째 파트. 남의 말에 귀 기울여 주고, 뻔한 조언이 아닌 경청과 개인적 경험을 잘 버무린 적절한 조언을 해 주며, 여기에 언제든지 유머를 더할 수 있는 센스까지 있으니 이런 사교성은 정말 타고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건 반은 맞고 반은 아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학자들이 아무리 에둘러 말하려 해도, 사교적인 경향은 타고나는 부분이 큰 건 사실이다. 재이의 언변은 타고난 것이 맞다. 하지만 그는 타고난 금수저 언변에 노력까지 더한다. 앞에서 누가 씨잘데없는 말을 늘어놓아도 그는 묵묵히 다 들어준다. 다 듣고 나서, 상대방의 말이 헛소리일수록 자신의 주장을 조금만 펼친다. 만약 앞 사람이 훌륭한 의견을 피력한다면? 그는 진심 어린 칭찬을 아낌 없이 피력한다. 보살과 동자승의 콜라보! 그렇다면 이 지점에선 어떤 노력을 했다는 걸까? 혼자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는 시간, 그의 얼굴은 매우 굳어 있다.
모두 일렬로 앉아있는 토론장이다. 나이도 인상도 비슷한 사람들이 약속한 듯 흰색 와이셔츠와 검정 정장을 입고있다. 한 사람이 말하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은 시선을 맞추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가끔은 무언가를 적는 모습이다. 그 중 한 사람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어디론가 떠나려는 정신을 겨우 잡아놓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눈꺼풀이 움직이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다. 조금 있다가는 무언가 말을 해야 할텐데 이 시간에 말할 수 있는 특별한 게 있을까. 비슷한 이야기를 뻔하게 연기하는 연극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도 곧 그 연극에 참여해야 한다. 갑자기 정신을 차린 것처럼 눈을 뜨고 펜을 움직인다. 물을 들어 마셔본다. 자신만의 세계를 떠나 다시 지금의 시공간으로 들어온다.
케이는 늘 둘째 아이와 함께 작은방에서 잔다. 작은방은 동향이라 새벽이면 벌써 환하게 햇살이 비쳐든다. 오늘도 다섯시에 눈이 떠진 케이는 생각한다. '아 또 하루가 밝았구나.' 그리고 원인 모를 불안함과 우울감에 휩싸여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떠진 눈을 다시 질끈 감고 잠을 청해보지만 심장이 두근거려 잠을 잘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이불을 걷어낸다. 일찍 일어났으니 대단히 생산적이고 알차게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진 않는다. 책을 붙잡고 페이지를 넘겨본다. 글씨가 종이 위에 둥둥 떠다닌다.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다. '왜일까? 왜 이렇게 늘 불안한걸까? 아이들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고 나도 그만큼 내 시간을 가질 수 있고 먹고 살 걱정도 없는데 왜 자꾸 심장이 난데없이 쿵쾅거리는걸까?' 케이는 고개를 저으며 호르몬약을 먹는다. 그렇게 케이의 하루가 시작된다.
답글 달아도 되는지~^^;; 케이씨의 증상이 10년 전 저와 비슷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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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시대 덕후, 박산호 번역가가 고른 찰스 디킨스의 대표작 3!
[박산호의 빅토리아 시대 읽기] 찰스 디킨스 ① <위대한 유산>[박산호의 빅토리아 시대 읽기] 찰스 디킨스 ② <올리버 트위스트>[박산호의 빅토리아 시대 읽기] 찰스 디킨스 ③ <두 도시 이야기>
미사의 누워서 쓰는 서평
무라카미 하루키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앨리슨 벡델 - 펀 홈시무라 타카코 - 방랑소년 1저메이카 킨케이드 - 루시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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