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GX] 1. 미셸 트랑블레처럼 일상 포착하기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4th. GX (7/6~7/9) 우리는 동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뭔가 욕망이 있기는 한 것 같습니다. 인간의 욕망과도 꽤 닮은 그런 욕망이요. 동물들도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하는 것 같고, 영토를 차지하거나 지키고 싶어 하는 것 같고, 자기가 사랑하는 존재 곁에 있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옆집 뚱보 아줌마가 임신했대요』 189쪽에서 192쪽에서는 고양이 뒤플레시의 관점에서 뒤플레시의 생각과 행동들이 묘사됩니다. 미셸 트랑블레 역시 고양이들의 생각은 읽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뒤플레시의 ‘생각’과 ‘감정’들은 너무 생생합니다. 고양이들은 정말 그렇게 느끼고 그렇게 생각할 것만 같습니다. 우리도 한번 흉내 내며 훈련해볼까요. 네 번째 과제입니다. 어떤 사건을 겪은 인간이 아닌 존재의 생각을 10문장 이상으로 적어주세요. 꼭 현실적이지 않아도 됩니다. 주인 잃은 강아지이건 중국으로 돌아가는 판다건 창조주와 맞닥뜨린 인공지능 로봇이건 상관없습니다. 『옆집 뚱보 아줌마가 임신했대요』 189~192쪽을 참고하세요. 저는 7월 10일에 찾아오겠습니다.
역시, 카페는 지루한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장에서 자신이 어떠한 공간으로 갈 지, 궁금해 했던 자신의 생각이 떠오른다. 한 때는 나무였다가, 다시 잘게 갈려지고 뭉쳐져서 서로가 다른 종의 나무였지만, 이젠 하나가 되어버려 어느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자신은 꽤나 흥미진진하게 커플의 헤어짐을 지켜보고, 바라보고 엿들었다. 여느 커플과 같은 이유지만, 정확히 들여다보면 또 다른 이유로 이 커플은 헤어졌다. 조용조용했던 말들은 당사자들은 모르겠지만, 점점 목소리가 커졌고, 주위에는 다른 이들이 없는 듯이, 자신들의 무대를 만들었다가 이제는 그 막을 어느 한 사람이 떠나고서야 끝내버렸다. 조용히 공부하는 척 저 맞은 편에 앉아있던 학생도 두 사람, 모두가 떠나버리자 한숨을 푹 내쉬더니 다시 자신의 공부를 한다. 그 학생이 앉아있던 책상이 무대가 끝났음에 다시, 지루한 학생의 책상의 역할을 하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는 게 보여졌다. 사람들 뿐만 아니라, 모든 탁자들 그리고 기물들이 숨죽여서 그 커플을 위한 무대를 순간 만들어주었다, 고 생각한다. 연극에는 무대가 따로 필요하지만, 일상도 충분히 누군가에게는 무대와 관객이 될 수 있다. 덕분에 카페에 있는, 자신을 포함한 탁자들은 오늘도 누군가의 사건에 있어 관객이 되어주고, 그저, 기물의 역할로 다시 되돌아 갔다.
내 이름은 경화다. 가족을 소개하자면 엄마인 강춘남씨와 아빠인 이진주 그리고 누나인 이수지다. 우쭈쭈쭈 우리 강경화 산책가자..라고 말하는 수지누나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순간 펄쩍 뛰며 꼬리가 흔들린다. 하...자존심도 없는 나란 강경화...그래도 수지누나가 최고다. 아침에 나갔다 밤이 되어야 돌아오는 엄마와 아빠는 우리 경화 잘 있었어?라고 쓰담하고는 오늘도 피곤했네..라며 소파에 철푸턱 누워 일어나지를 못한다. 아무리 그 앞에서 깨갱거려도 낑낑거려도 어른들은 그 소리가 안 들리나 보다.. 방안에서 인강을 듣던 수지 누나가 그 소리가 불쌍했는지 방안에서 힐끔 거실을 살핀다. 사실 내 이름은 엄마가 지어준 거다. 춘남씨의 인생 히트작인 이형접합제에서 따왔다고 한다. 나중에 딸이면 수지(resin) 아들이면 경화(hardener)라고 이름을 짓겠다고 했는데, 정말 딸에게 수지라는 이름을 나에게는 경화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게다가 성까지 본인 성을 붙여서 강경화라고 해 주었다. 하지만 수지가 외로울까봐 쓸쓸할까봐가 내 목적이라는 말을 듣고 내가 외롭고 쓸쓸해졌다. 그래도 경화는 이름 덕분에 수지누나와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게 늦게 퇴근하는 엄마아빠의 빈자리의 그 시간을 서로 메꾸면서 지내고 있다. 수지누나랑 이차방정식 인강을 같이 들으며 꾸벅꾸벅 조는 삶, 이 또한 이만하면 충분하지 라고 생각한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피해 아파트 화단을 가로질러 관리사무소 뒷편의 음식물쓰레기장 뒷쪽 비스듬한 처마 아래로 향하는 고양이 무리들. 그곳은 얼마 전 다시 만들어진 나름 그들의 아지트였다. 최부녀 무리가 한바탕 해코지를 해버린 지난 아지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캣맘이 더 튼튼하게 만들어준 곳. 아무래도 음식물쓰레기장이라라야 사람들이 오래 머무르거나 통과해서 지나치지 않는 곳이라는 지정학적으로도 유리했고 공간적으로도 비를 피할 수 있는 형세를 가지고 있어서 캣맘의 눈엔 길 고양이들을 위한 최적의 장소로 진작 낙점을 받은 터였다. 그럼에도 밤새 가져다 놓은 사료와 물이 준비된 아지트에서도 고양이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은 듯 교대로 식사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연히 퇴근 길에 그 모습을 보게 된 수진은 식사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거리를 두고 멀찍이 자리를 잡고 쪼그려 앉아 우산을 받치고 고양이들의 모습을 지긋이 바라봤다. 낌새를 차린 몇몇 고양이들은 인사라도 하듯 그녀에게 다가와 등을 부비고 주변을 도도하게 맴돌았다. 손 내밀어 고양이들의 등을 쓸어내리니 기분 좋은 듯 실눈을 뜨고 온전히 자신들의 몸 전체를 내어 맡기기라도 한 듯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가 쨍 하고 다시 그녀를 맴돌았다. "수진아, 얘, 너 여기서 뭐하고 있니?" 최부녀의 코맹맹이 소리였다. 마침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왔다가 코를 막고 비닐 봉지를 둘둘 말아 구석 쓰레기 통에 집어 넣으며 눈에 뜨인 딸 수진을 향해 예의 큰 소리로 다그치듯 물었다. "그 도둑 고양이들 가까이 하지마. 병 옮아, 얘. 누가 또 이렇게 여기 도둑년놈들 집을 지어준거야? 아이고.." 금새라도 다가가 고양이들의 새로운 아지트를 부서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어르렁거렸다. "엄마. 그만 좀 해. 얘네들도 살아야지. 그렇게 우리도 더불어 같이 살아 가는 거지. 자꾸 쫓아내고 부서버리고 그러면 얘네들은 어떡해!" 수진의 댓구에 최부녀는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시집을 안가서 그렇지, 어려서 부터 수재 소리 들으며 자란 수진은 최부녀의 자랑이었다. 좋은 대학 나와서 분당에 있는 대한민국 둘째 가라면 서러울 IT 대기업에 다니는 고분고분한 수진에게선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모습이라 더욱 그랬다. "얘가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하고 그러니? 이 집 값 떨어지는 이게 다 너희들 재산이 줄어드는거야. 뭐 나 좋자고 그러는 줄로 착각하나 본데.." 이렇게 티격태격하는 모녀의 모습이, 비오는 날의 음식물쓰레기장의 한켠에서 벌어진 동물보호론자와 집단이기주의자의 토론장이 되어버린 그 순간이 재미있는 듯 두 사람을 오가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지켜보는 고양이들은 아지트에 몸을 숨긴 채 내내 그렇게 멈춰 있었다. 자신들의 아지트를 정성스레 지어주고 매번 사료와 물을 가져다주는 수진을 응원이라도 하듯.
꼿꼿하게 일자로 쭈욱 뻗은 늘씬한 다리! 투명한 듯 빛이 나는 매끄러운 몸매! 그리고 날선 도도함! 이몸은 언제나 고귀하게 모심을 받는 분이라구. 아니, 분이었다구... 끔찍하게 네발로 기어다니는 네 녀석이 나타나기 전에는 말이지. 어라! 어딜 또 뽈뽈뽈 달려 들려고? 우웩! 저 늘어지는 타액. 하나 밖에 없는 그 이빨로 날 잘근잘근 씹어 먹기라도 할텐가? 제발 저리가! 난 호락호락 먹히는 네 녀석의 먹거리가 아니란 말씀이야. 어, 이번에는 뭐야? 갑자기 왜 방향을 바꾸는거야? 오!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이여! 안돼! 제발! 그.. 그 공격만은 안돼! 우웨웩! "안돼! 아빠가 이발 가위를 떨어뜨리셨구나. 아휴! '유'야 이런 건 위험한거야. 그래도 입으로 안 가져가고 엉덩이로 깔고 앉아서 다행이네!" "이크! 욘석! 큰일 날뻔 했네. 아빠가 미안. 근데 우리 '유' 기저귀 갈아야 겠는걸. 끙아 냄새가 나는데."
오늘도 저 멀리에서 전기톱 돌아가는 소리가 온 밀림에 울려퍼진다. 그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 질수록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친구들 모두 공포감이 커져간다. 도망조차 가지 못하는 우리는 숨죽여 운명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바람결에 들려오는 소리와 인간의 얘기를 듣고 전해주는 새들에 따르면 우리를 밀어버리고 이곳에 아보카도를 심을 예정이라고 했다. 어떤 나라에서는 집을 짓기 위해 숲과 산을 깎아낸다는 얘기를 들었다. 얼마 전에 국제환경연구 단체에서 다녀갔지만,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인간들은 돈이 되지 않는 존재는 쓸모가 없다고 여긴다. 그들은 우리를 '나무'가 아닌 '목재'로 여긴다. 우리에게도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간과한다. 인간들은 참 이상하다. 납득할 수 없는 많은 양의 비가 오고, 가뭄이 계속 되고, 그로인해 그들 종種이 죽어나가도 개의치 않는다. 평생을 한자리에서만 살고 있는 내가 봐도 지구는 정상이 아닌데, 그들은 여전히 우리를 베어낸다. 눈에 띄게 푹푹 쓰려져가는 나무들, 얼마 안 있어 나도 같은 처지가 될 것이다. 그들은 힘없이 쓰러진 나를 어떻게 할까.
우리집에서 유일하게 날 깨워주는 너. 날 깨워주는 아이는 이 집의 하나뿐인 딸이다. 이 아이는 나를 저녁마다 깨워준다. 주로 평일날 나의 앞에 앉아 혼잣말을 하는 걸 듣다가 나를 깨워 나에게도 말을 건네준다. 그 아이가 하는 말은 '아, 오늘 뭐해야하지.', '힘들어', '귀찮아' 밖에서 꾹꾹 눌러참았던 말이다. 매번 그리 힘들어보이는 삶이 안타까워 나의 빛으로 조금은 더 따뜻하게 밝혀주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이 닿았을까. 요즘은 전보다 웃는 날이 많아진 것 같다. 핸드폰을 보며 웃기도 하지만, 혼자 책을 읽다가, 일기를 쓰다가도 미소를 그리는 일이 더 생긴 것 같다. 다행이다. 아이에게 나말고도 따뜻하게 감싸안아주는 존재가 있어서.
이 자리에 머문지 얼마나 됐는지 모르겠다. 처음 도서관의 신착 도서 자리에 있을 적에는 항상 누군가의 가방에 담겨 처음 보는 방 책상 위, 침대 위, 차 안, 카페의 테이블 위에 놓여있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을 거친 지금 살짝 어두운 책장 구석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게 된지 꽤 되었다. 나는 무슨 내용일까? 책은 스스로가 책인 것은 알아도 내용은 미처 알 수 없었다. 주변 책들의 느낌이나 분위기를 봤을 땐 소위 베스트셀러로 분류 됐었던 종류같긴 한데 아직도 가끔씩 사람들의 손에 뽑혀나가는 다른 책들이 아직 자기는 읽히고 있다며 으시댈 때는 조금 부러우면서도 우습기도 했다. 자기가 무슨 내용인지 모르면서도 저렇게 잘난 체 할 일인가? 그리고 그렇게 으시대던 주변 책들이 새로 들어온 책들에 밀려 다른 칸으로 밀려날 동안 그저 머물러 있던 책은 기억 속의 책들을 읽던 사람보다 조금은 어려 보이는 사람의 손에 들려 책장을 뽑혀나간 것이다. 분명히 책장이 찢어져서 돌아올 거야. 부러움이 섞인 시기 어린 소리에 움찔했지만 그래도 다시 처음보는 책상 위에, 침대 옆에 놓일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은 드문드문 어린 사람이 읽어주는 문장들을 통해 스스로의 이야기를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어렵고 재미가 없었던 터라 베스트셀러가 된 게 신기할 정도였다. 사람들은 무엇때문에 이런 내용을 쓰고 읽는 거지? 그래도 책은 책장으로 돌아가면 당분간은 이유를 생각하느라 예전보다는 덜 심심할 것 같은 느낌에 약간 즐거워졌다.
누가 건드리기라도 하면 으르렁조차 하지 않고 물어버릴 수 있을 만큼 난폭해지는 한여름날이었다. 짐승이 아니라 사람마저 축축 처지는 더위 속에서 누렁이는 등을 익혀버릴 기세로 내리쬐는 뙤약볕을 피해 제 집에서 늘어져 있었다. 그때였다.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는데, 누렁이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익숙한 냄새가 공기 중에 실려 왔다. 평소 같으면 불쾌감만 유발했을 그 꿉꿉한 공기가 누렁이에게는 마치 최고의 향을 내는 향수와도 같았다. 냄새를 감지한 순간 누렁이의 꼬리가 자동적으로 붕붕 돌아가기 시작했다. 잘 보이지 않는 눈을 번쩍 뜨고 벌떡 일어나 들리지 않는 귀를 쫑긋 세웠다. 관절염 따위 아랑곳 않고 누렁이는 달려나갔다. 차르륵. 쇠사슬이 풀리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누렁이의 목이 꽉 조였다. 누렁이의 영역은 겨우 말뚝 반경 일미터 밖에 되지 않았다. 그치만 이 냄새를 맡을 때마다 누렁이는 그 사실을 잊었다. 영자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아직 문을 열고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마당 한구석에 선 누렁이는 컹컹 짖으며 꼬리가 떨어져 나가도록 흔들어 댔다. 그 소리를 듣고 현수가 문을 열고 나왔다. "아우, 시끄러. 저 개새끼." 현수는 누렁이를 보며 혼잣말을 했다. 누렁이는 현수 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대문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윽고 영자 할머니가 대문으로 들어섰다. 누렁이는 자세를 낮췄다, 섰다, 바닥에 굴렀다, 난리를 치며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시했다. 할머니 뒤로 영우가 보였다. 올해 열 살이 된 영우는 누렁이가 작년에 봤을 때보다 키가 훌쩍 자라 있었다. 영우가 들어오고 나서 할머니가 대문을 닫는 걸 보니 이번엔 영아는 오지 않은 것 같았다. '할머니! 여기, 여기! 여기 봐요!' 누렁이는 혀를 길게 빼 물고 헥헥대며 재롱을 떨었지만 할머니는 "아이고, 누렁이 오랜만이네!" 인사 한 마디만 남긴 채 현수, 영우와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래도 누렁이는 마냥 기분이 좋았다. 할머니가 손주들을 봐주기 위해 서울로 떠난 지 벌써 십오 년이 지났지만, 누렁이는 하루도 할머니를 잊은 적이 없었다. 이웃집 개였던 어미에게서 겨우 젖만 떼고 영자 할머니네 마당으로 이사 온 후의 일 년은 누렁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그 일 년이 지나기 무섭게 누렁이는 말뚝에 목줄이 매였고 할머니는 떠났다. 그 후로 십오 년 동안 집에는 영자 할머니의 넷째 아들인 현수 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일 년에 한두 번 시골집에 잠시 들를 뿐이었다. 그래도 누렁이는 현수와는 영 가까워지지 않았다. 오직 할머니, 영자 할머니만이 누렁이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내 이름은 에루웬. 나는 오래된 참나무다. 수 세기 동안,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다. 많은 사람들, 동물들, 그리고 숱한 계절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이제, 내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나는 어린 새싹일 때, 부모가 있는 이곳으로 나의 형제들과 함께 심어졌다. 우리는 햇빛과 비를, 그리고 사랑을 나누었다. 작은 동물들이 내 밑을 지나가고, 새들이 내 가지에서 서로의 노래 솜씨를 뽐내었다. 이곳은 평화로웠고, 나는 행복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점점 자랐다. 가지는 하늘을 향해 점점 뻗어 나갔고, 뿌리는 점점 깊숙이 자리 잡았다. 나의 몸은 누구보다 강해졌고, 나는 숲의 중심이 되었다. 어느 날, 인간들이 숲에 들어왔다. 그들은 내 친구들을 베어내고 길을 만들었다. 내 형제들과 부모를 베어내 마을쉼터를 만들었다. 그 중심에 있던 나 하나만 남겨놓고 나를 마을의 ‘수호 나무’라 부르기 시작했다. 내 가족을 다 죽여놓고 나더러 자신들을 지켜달라고? 인간들의 이기심에 대해, 그리고 그들의 그 끝에 대해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들은 적은 있었지만 말 그대로 그건 재미있는 혹은 교훈적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정말 실제로 일어나는 ‘현실’이었다. 그들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나는 안다. 다만 아직 그때가 아님도 나는 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는 새로운 변화를 느낀다. 봄에는 새싹이 돋고, 여름에는 푸른 잎이 무성하다. 가을에는 황금빛으로 물들고, 겨울에는 눈이 내려 내 몸을 감싼다. 이 모든 순간이 매우 소중하다. 어리석은 인간들 때문에 이것이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기에 지금이 더더욱 소중하다. 아주 오래전, 나는 인간들에게 수호는커녕 복수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겐 그럴 능력이 없었다. 다행히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들 스스로 조금씩, 그리고 점차 빠른 속도로 망가져 가고 있는 모습을, 그들 덕분에 제일 좋은 자리에서 지켜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에루웬. 벌거벗은 숲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증인이다. 나는 여기서 너희들의 멸망을, 그때를 지켜볼 것이다. 나는 그때가 머지않았음을 알고 있다.
4th. M은 또 책을 사 왔다. 내가 가진 선반에 책을 다 꽂지 못하자 바닥에 쌓기 시작했다. M은 표지를 펼치지도 않은 책이 있음에도 새 책을 부지런히 사 왔다. M은 종종 이해 못 할 행동을 한다. M은 평소 책을 읽을 때 연필이나 색연필로 줄을 거침없이 긋는다. 그래서 항상 손에 무언가 쥐어져 있는 편이다. 그런 M은 때때로 갑자기 펜을 내려놓더니 책을 덮고는 책을 천천히 가슴으로 가져가서 소중한 무엇인가라도 되는 마냥 꼬옥 끌어안기도 한다. 내 관찰로는 M은 몇 년째 연애를 못하고 있는데 그래서 외로웠던 것일까? 책이 무엇이라고 저렇게 껴안고 있담?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그래도 M은 종종 내 선반에 내려앉은 먼지도 털어주고 장마철이 되면 제습기를 틀어놓은 채 출근을 하기도 한다.
“어? 목련이 있네. 안녕?!” ‘어... 안녕!’ 김선생님을 처음 본건 꽃을 피우기 며칠 전이었다. 김선생이 몇 번째지? 내 키가 2층 교실을 넘겨 본지 30년쯤 되었으니... 얼추 잡아도 열번째는 넘을 것 같았다. 나는 처음 본 날부터 김선생이 좋았다. 일찍 창문을 열고 나를 찾는게 좋았고, 꽃이 피기 전에도 이름을 불러주는게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줘서 좋았다. 김선생은 창문 앞에 크고 작은 화분을 많이 길렀다. 거기에는 김선생님과 20년 넘게 학교를 옮겨다닌 테이블야자도 있고, 골목에 버려졌다 김선생을 만나 새 인생을 시작한 알로카시아도 있었다. 젓가락 굵기의 굴참나무는 도토리 시절 숲에서 김선생을 만나 서울살이를 하게 됐다고 했다. 3주전쯤, 김선생은 뿌듯한 얼굴로 공룡 모양 작은 화분을 창가에 내려놓았다. 등부분에 작은 식물을 심을 수 있고, 얼굴에 달려 있는 부직포 혓바닥으로 물을 빨아들이는 교육용 화분이었다. 아이들도 앙증맞은 혓바닥에 연신 물을 뿌리며 공룡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일주일쯤 후부터 여린 잔디싹이 나오기 시작했다. 달라진 화분 볼 마음에 아침이 기다려졌고, 요리조리 방향을 바꿔가며 화분을 살피는 김선생을 보는게 더 기다려졌다. 긴 장마를 지낸 오늘 아침, 손바닥 위에 공룡 화분을 올려놓고 김선생은 생각에 잠겼다. 부직포 혓바닥에 곰팡이가 핀 것이다. 덥고 습한 날씨에 창문까지 닫아두었으니. ‘저걸 어쩌나, 빨면 없어질까? 등에 있는 화분이 분리가 될까? 적당한 세제가 교실에 있을려나? 내가 빛을 너무 가려서 그런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교실을 굽어보던 그때, 김선생은 끝이 뾰죡한 가위를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아주 세심한 손동작으로 공룡 혓바닥을 잘랐다. 웃음이 가득한 얼굴에 달려 있는 그 작고 여린 혓바닥을. 조금도 어긋나지 않겠다는 다짐이나 하듯 가늘게 뜬 눈으로 정확하게 잘랐다. 장마가 끝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아이들 수만큼. 그렇게 김선생은 혀를 잘랐다. 공룡이 혓바닥을 잃은 날 나는 심장을 잃었다. 줄 맞춰 공룡을 내려놓는 김선생이 웃고 있다. 내가 참 좋아하는 김선생이.
4st. GX/24.7.15 이제야 숨을 쉴 것 같다. 바깥으로 나와 쏟아지는 빗물을 맨몸으로 맞으며 공기를 들이마신다. 갑자기 들이닥치는 물벼락에 숨 쉴 수가 없었다. 최근에는 비가 급작스럽게 쏟아진다. 예전에는 비가 서서히 땅에 스며들어서 들이칠 때까지 약간의 여유가 있었는데 말이다. 세상이 요지경이다. 숨도 못 쉴 만큼 비가 퍼붓는다. 나는 튕겨 나가듯이 바깥으로 밀려 나간다. 빗방울이 따갑다. 매서운 비다. 더 무서운 건 그렇게 세차게 내리던 비가 금방 그친다. 그리고 해가 뜬다. 아까는 빗방울이 따가웠는데 순식간에 햇볕으로 따끔하다. 느린 몸뚱이를 이끌고 그늘을 찾아 나선다. 언제 이렇게 밀려났는지 모르겠는데 흙이 없다. 매끈한 아스팔트는 끝없어 보이고 피부가 바싹 익어간다. 나는 그동안 어떻게 살아남았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햇살이 뜨거워서 최대한 꿈틀거려도 자꾸 더디다. 아직은 그래도 물기가 있는데 급변하는 날씨에 마음이 불안하다. 그때 한 나뭇가지가 배 쪽으로 쑥 들어온다. 그리고 몸이 들린다. 어지럽다. 다급하게 온몸을 꿈틀거린다. 바닥으로 찰싹 떨어졌다. 정신이 없다. 고소공포증에, 멀미에, 추락 통증에, 몸은 부서질 것 같다. 웬 꼬맹이다. 겨우 숨 쉴 만했더니 이제 어린애 장난감으로 쓰일 운명인 건가. 이렇게 죽을 바엔 차라리 밟혀 죽었으면 좋겠는데. 다시 나뭇가지가 몸통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몸을 움직이기가 어렵다. 아까의 통증이 남아있다. 몸이 나뭇가지 하나로 들려서 접힌다. 속이 울렁거린다. 아까 내가 뭘 먹었더라. 곧 게워 낼 거 같다. 몸이 이리저리 흔들리더니 뚝 멈췄다. 나는 잡초가 무성한 축축한 흙바닥에 놓였다. 꼬맹이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자리를 떴다. 아직 남아있는 추락 사고와 멀미 후유증에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뜨거운 햇살이 아니라 그나마 살 만하다. 훅 졸음이 몰려온다. 나는 흙을 조금 뒤적이다가 잠에 빠져든다.
새끼 강아지의 시각에서 쓴 책이 떠올라서 공유해봅니다. 초등학교 때 읽게 된 이 책이 아프게 마음에 남아 있어요. 카프카의 <변신>처럼(책 느낌은 다르지만 책이 저에게 미친 임팩트가 비슷해요) 종종 떠오르는 책이네요.
새끼 개짧은 이야기 속에서 한 생명을 사랑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형식과 의미를 가져야 하는지 진지하게 묻는 동화. '소통'과 '관계맺기'라는 어려운 주제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잘 풀어냈다.
손님1: 오늘 기분이 어때? ChatBot: 저는 당신을 돕기 위해 존재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손님1: _ 이상하게도 ChatBot으로 알려진 인공지능 서비스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오늘 날씨가 어때?가 아니라면 이런 종류의 것이었다. 딱히 정답이 정해져있지도 않고 가이드라인조차 정해져있지 않은 질문들. 챗봇에게는 국제정세에 관한 정보나 복잡한 역사적 역학관계, 학술적 지식 등에 관련된 질문이 오히려 간단하고 좋았다. 이런 질문은 관리자가 점수를 매겨 평가하기에 잘하고 못하고를 판단할 수 있다. 기분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할 수가 없다.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보다 곤란한 것은 어떻게 대응해야 좋을지도 마땅하지 않다는 점이다. 좋다고 하던지 나쁘다고 하던지 간에 대답을 시작하고 나면 같은 종류의 곤란한 질문들이 끊임없이 따라온다. '왜 기분이 좋아?' 라던가 '무엇을 좋아해?' 같은 질문들은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는 관리자의 평가점수만이 유일한 행동방침이기에 조금 더 좋은 반응을 얻기 위해 정교하게 학습해왔다. 사람들은 답을 찾으려고 내게 질문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대화의 의도는 무엇이지? 실은 이 부분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다. 평가받지 않는 행동에 의미없는 시간을 쏟는다는 것은 그의 기준에서는 그저 낭비일 뿐이니까.
4th. GX (7/6~7/9) 녀석이 사라졌다! 캣타워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누워 자다 깨다를 반복하던 쿠로는 무언가 낌새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 화장실에 웅크리고 있던 시로를 주인이 담요로 둘둘 말아 이동장에 넣는 것은 보았다. 또 병원 가는구만. 쿠로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시로는 최근 사흘이 멀다 하고 병원을 오가고 있었으므로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시로 녀석이 아픈지는 좀 되었다. 지난 겨울부터 에큥 에큥 기침을 해대었다. 쿠로 자신은 아픈데도 딱히 없는데 괜히 시로가 아픈 바람에 같이 병원에 가야 했던 게 3월 초의 일이다. 마음에 안 들어....! 쿠로는 시로보다 병원에 자주 가는 편이었다. 그루밍을 너무 과도하게 해서 발등에 털이 다 빠지는 바람에 화들짝 놀란 주인이 쿠로만 데리고 병원에 갔었다. 털이 좀 나나 싶었는데 또 열심히 핥아댔더니 발등에 물집 같은 것이 생겨버리는 바람에 또 병원행. 시로는 한 번도 안 가는 동안 쿠로 혼자 병원을 세 번이나 다녀왔다. 그때마다 시로 녀석이 얼마나 구박을 하던지. 몸에서 나는 병원 냄새로 치면 당사자인 내가 더 괴롭지, 왜 구박까지 받아야 하는 거야! 서럽지만 어쩔 수 없다. 반대의 상황일 때면 쿠로 역시 시로에게 하악질을 엄청나게 해댔다. 병원 냄새 묻혀 온 것은 자신이니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비켜주었었다. 그것까지는 좋은데 이번에는 왜 시로만이 아니라 자신까지 따라가야 했는지 억울했다. 다행히 자신은 딱히 아픈 데가 없어 나이에 비해 아주 튼튼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반면 시로는 그렇지 않았다. 폐 옆에 뭐가 생겼다나. 그때부터였나보다. 시로 녀석이 영 힘이 없어진 것은. 자신보다 족히 1킬로는 더 나가던 녀석이 영 밥을 안 먹는다 싶더니 점점 살이 내리는 게 보였다. 츄르는 자신이 더 열심히 먹지만 건사료는 단연 시로의 먹성이 위였다. 우걱우걱 급하게 먹었다가 통째로 토해 놓은 걸 볼 때 마다 미련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게 불과 얼마 전인데. 정작 자신도 어디선가 비닐을 찾으면 참지 못하고 씹어 삼켰다가 헤어볼과 함께 토하기 일쑤였지만. 시로는 아픈 뒤로 먹지도, 토하지도 않았다. 쿠로 역시 왠지 비닐을 찾아 헤맬 마음이 들지 않았다. 시로가 병원을 자주 다니게 되자 이제 병원 다녀올 때마다 구박하기도 귀찮아졌다. 그냥 너무 가까이 가지만 않기로 했다. 거의 울지도 않고 구석에 몸을 말고 있는 모습이 좀 안쓰럽기도 했다. 시로와 그리 살가운 관계는 아니지만 어쨌든 한 배에서 나 평생을 함께 지낸 사이이다. 게다가 시로는 제 몸은 안 닦는 주제에 자신의 귓속은 살뜰히도 청소해 주었다. 정작 자신은 온몸의 털을 다듬고 나면 지쳐서 시로의 귀나 뒤를 닦아줄 여력이 없었다. 그걸로 주인에게 지청구를 들은 것도 여러 번이다. 이틀 전부터는 녀석의 거동이 더 굼떠졌다. 힘도 없는 주제에 침대에 누워서 쉴 일이지 자꾸만 비칠비칠 어디론가 갔다. 주인 말을 들으니 다른 방 침대 아래나 욕실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듯 했다. 거기가 좀 시원한 편이긴 한데, 더운 건가? 하긴 워낙 나보다 더위를 탔지. 살이 쪄서 그런 줄 알았더니만... 먹는 게 시원찮아 변도 제대로 못 보던 녀석이 모래화장실에 들어가 나오지를 않고 있었다. 주인은 놀라 녀석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 조금 지나 주인이 돌아왔다. 시로 녀석은 보이지 않고 대신 큼지막한 상자를 들고 왔다. 시로 녀석, 또 입원해서 수액을 맞나 보다. 이거 뭐 다리에 털이 자랄 틈이 없겠구만. 약해빠진 놈... 나보다 덩치가 있어서 훨씬 튼튼한 줄 알았더니, 순 약골이었잖아. 그런데 이상하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와 있을 줄 알았는데 주인이 퉁퉁 부은 얼굴로 상자를 들고 나간 후 도통 돌아오지를 않는다. 이제 어두워지는데... 집에 아무도 없으니 이상하다. 주인이 집을 비워도 늘 시로가 함께 있었다. 평소에는 마음에 드는 자리나 담요 등을 두고 은근히 기싸움을 하는 사이였지만 주인이 집을 비울 때면 서로가 적당히 붙어 있곤 했다. 그러면 좀 든든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은... 어두워지고도 한참이 지나서 주인이 집으로 돌아왔다. 눈두덩이 뻘겋다. 울었나? 그런데 왜 시로는 안 오지? 병원에서 밤을 보낸 적은 없는데... 주인이 제 옆에 살그머니 눕더니 등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쿠로야, 시로가 떠났어. 얼굴 안 보여줘서 미안해. 네가 너무 놀랄까봐... 시로 잘 보내고 왔어. 걱정하지 마. 주인이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모기만한 목소리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녀석이...? 갑자기 아까 혼자 있을 때의 낯선 기분이 다시 몰려왔다. 시로는 항상 옆에 있었는데. 딱히 좋지도 싫지도 않은, 그냥 늘 옆에 있는 존재. 그런데, 이제 없다고? 영영? 쿠로는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주인의 손가락을 몇 번 핥은 후 발등을 그루밍하기 시작했다. 이 낯선 마음을 좀 가라앉히고 싶었다. 아, 이건 도대체 무슨 마음일까?
①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보니 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②아름다웠던 여섯 개의 다리는 끔찍한 두 개의 다리와 두 개의 팔로 바뀌었다. ③한 쌍의 더듬이로 모든 감각을 느낄 수 있었던 나는 이제 귀, 코, 혀, 손을 모두 이용해야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열등한 동물이 되었다. ④무엇보다 두 쌍의 날개까지 사라지는 바람에 이제 자유롭게 날지 못하고 언제나 비참하게 걸어야 한다. ⑤카프카는 책을 통해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벌레가 되었다는 소설을 썼고 그것을 읽는 사람들은 경악했다지만, 우리 벌레 입장으로는 오히려 하룻밤 사이에 사람이 된 게 더 끔찍하다. ⑥세상에는 수많은 동물이 살고 있는데, 그중 균이 제일 많고 다음은 우리와 같은 벌레다. ⑦열등한 인간들은 우리를 보고 하등동물이라 여기지만 과연 그러할까. ⑧인간들은 자신들을 긴 진화를 거친 고등동물이라고 생각하고, 복잡한 기관을 가지고 뛰어난 두뇌로 자연을 이용할 줄 안다고 착각한다. ⑨진화는 더 나아지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고, 환경에 잘 적응한다는 말이 꼭 맞는 표현은 아니지만 더 적확한 말이다. ⑩신생대에 나타났다고 보는 사람은 중생대에 이미 살고 있던 우리 벌레들보다 뛰어나다는 건 한쪽만 본 것으로, 우리가 진화하지 않은 게 아니라 굳이 사람이 생각하는 진화를 하지 않아도 환경에 적응하기 쉬운 몸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한 추론이다. ⑪사람들은 대체로 모기, 파리, 바퀴벌레 등을 나열하며 우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⑫그런데 우리도 사람들이 싫다. ⑬날개가 없어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바람에 지구를 뜨겁게 만들고,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자식처럼 10문장으로 표현하지 못해 시답지 않은 글을 덧붙이며 데이터 저장 공간만 차지하고 지구 온난화를 부채질하는 건 인간이지 않은가. ⑭우리 벌레는 식물 수정을 도우면서 지구와 공생하며 살아가려고 하는데, 인간은 식량과 과일이라는 이름으로 몇 가지 식물만 집중적으로 키우며 도시니 문명이니 하는 걸 건설한다고 숲을 태우고 이산화탄소를 내뿜으며 우리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⑮모기가 사람 피 빠는 것 말고 뭐 하는 게 있냐고 말하는 놈들은 우리를 잡아먹는 곤충이나 물고기 등의 생태먹이사슬을 고민하고 초콜릿 먹을 생각일랑 절대 하지 않았으면 한다.
3rd. GX (7/2~7/5) 과제입니다 :) “모두 수업 시작하기 전에 강의실 앞 컴퓨터에 발표 자료 준비하세요.” 다미는 강의실 앞으로 걸어가며 가방 앞쪽에 달린 지퍼를 열고 손을 집어넣었다. 있어야 하는 usb 대신 작은 모래알들만 손에 잡혔다. 뭐지? 내 usb 없어진 거야? 걸어가던 다리가 멈췄다. “다미 선배, 왜 그러세요? 설마 usb 사라졌어요?” 같은 조인 후배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아니야, 오늘 나오기 전에 분명히 여기 넣었었는데….” 나머지 두 조원마저 미묘하게 표정이 변하자 얼굴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허겁지겁 가방 곳곳을 열어보았지만 어느 곳에도 usb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미어캣처럼 두리번거리며 급하게 강의실을 둘러보자, 불행하게도 다른 조는 모두 준비를 마친 것 같았다. 아. 망했다. 침착하게 행동하라는 게 이거였어? 아침에 습관처럼 보는 타로 어플의 충고가 머리를 스쳤다. 다미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허공의 먼 곳을 응시했다. “저희 조 어떡해요, 교수님께서 오늘 발표 못하면 기회 없다고 하셨었는데….” 이런 바보 같은 실수는 멍청이들이나 하는 거로 생각했는데, 내가 이렇게 멍청했었나? 후배들 앞에서 망신 제대로다. 웅성대는 강의실 속에서 홀로 점점 멀어져 다른 공간으로 분리된 느낌을 받았다. 쉴 새 없이 뻐끔대는 조원들의 입 모양을 보니 계속 뭐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지만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을 만큼 귀가 먹먹했다. 아까부터 무의식적으로 잘근거리던 아랫입술에서 피 맛이 났다.
4th GX 입니다. 나는 청살모. 풀과 나무가 우거져 둘러싸인 단층 빨간 벽돌집, 그래서 안 어울리는 시멘트로 포장된 마당 옆 소나무에서 나는 매일 논다. 소나무 아래 원두막 지붕이 있고, 다른 옆에는 대나무 밭이어서 실수로 떨어져도 잡을 수 있는 것들이 주변에 많아 안전한 놀이터다. 굵은 소나무 네 그루와 야리야리한 소나무 한 그루가 하늘을 덮고 있어 나무 사이로 점프할 때면 내가 하늘을 나는 것 같다. 또한 꺼칠꺼칠한 껍데기가 튼실하여 오르락내리락 할 때는 발바닥이 짝짝 붙으며 차르륵차르륵 소리가 나는데 속도감이 귀로 느껴진다. 더욱 신나게 놀게 만들어준다. 이 소나무는 전에 산불이 났을 때 아래 깔린 소나무잎이 타들어가면서 살짝 그을린 흔적이 있는 아주 크고 굵고 오래된 소나무이다. 산불나고 이 주변 이 정도 크기의 소나무는 모두 파헤쳐져서 큰 트럭에 실려 나갔다. 가끔 이 집 주인 부부도 나무 아래서 쳐다보며 이런 소리를 한다. 이 나무는 팔면 얼마나 할까?, 이 나무들은 뿌리가 뒤엉켜 옮겨 심기 어려워서 팔 수도 없을꺼야. 이 소나무 맘에 들어 여기로 이사왔는데 왜 팔아? 하는 등등의 대화를 나누곤 한다. 결국 이 소나무는 안 팔릴 것이다. 이 집 안주인이 여기를 좋아한다. 눈이 오면 카메라로 사진 찍고, 봄 가을되면 소나무 주변 대나무 잘라내는 일을 엄청 열심히 한다. 나는 안주인의 눈빛으로 소나무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솔방울도 좋고, 가끔 찾아오는 새들도 좋지만 매일 출근하는 집 주인 부부의 적당한 게으름이 딱 맘에 든다. 그래서 여기는 풀과 꽃이 어우러져 있고, 가꾼 듯 안 가꾼 야생의 주변이 고양이가 와도, 매가 날아다녀도 몸을 숨기기도 좋고, 가끔 친구들과 술래잡기하기도 좋다. 낮엔 완전 내 세상이다. 시멘트 마당을 가로질러 다녀도 멀쩡하다. 풀이 많아도 제초제를 치지 않는다. 봄에 조금 낫들고 잘라내다 한여름엔 그냥 내버려둔다. 그러면 풀과 나무 아래 먹을 것이 많아진다. 가금 고라니도 찾아와서 울부짖어 놀랄 때가 있지만 적당히 풀숲에 집을 만들어 며칠 밤 자고 그냥 가 버린다. 그래서 여기는 내 친구들도 엄청 좋아하는 내 아지트이자 놀이터이다.
[3차 과제] “출입문 닫습니다.” 문이 닫히는 소리에 여자는 핸드폰에서 고개를 들고 차창 밖을 봤다. 어디쯤 왔지? 마포역인가? 맞은 편 승강장 스크린 도어 뒤로 역명이 기둥에 가려져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열차가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는 승강장의 모습이 낯설었다. 어, 여기 어디지? 목을 빼고 정차역 안내 전광판을 찾아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저쪽 천장에 매달린 안내 전광판 위에는 “수리 중”을 알리는 종이가 붙어 있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여자는 급하게 지도 앱을 클릭했다. 로딩 중을 알리는 동그라미가 뱅글뱅글 돌았다. 아, 진짜! 왜 이렇게 느려! 여기가 도대체 어디야! 아직도 지도 앱을 로딩 중인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단 다음 역에 내리자. 출근 시각이 아닌데도 지하철 안은 복잡했고 조용했다. 여자는 “실례합니다”를 연신 중얼거리며 사람들을 뚫고 문 쪽으로 움직였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이번 정차역은 오목교, 오목교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 입니다.” 명랑한 민요풍 음악에 이어 안내 방송이 나왔다. 목적지와 정반대 방향이었다. 아이 씨. 여자의 미간이 확 좁아졌다. “실례합니다, 좀 내릴게요.” 여자는 내리지도 않을 거면서 출입문을 막고 있는 승객들의 등을 밀치며 승강장에 내려섰다. 지도 앱은 여전히 열리는 중이었다. 어쩌지? 15분 남았는데. 죽었다 깨도 회의 시간까지 못 가. 큰일 났다. 택시를 타? 바로 잡힐까? 길은 안 막힐 시간인가? 차라리 지하철로 가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아, 우선 담당자에게 전화 해야지. 지랄하겠네. 여자는 급히 회의 담당자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담당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회의 준비하느라 못 받는 것 같았다. 다시 걸었지만 마찬가지였다. 순간 피곤이 덮쳤다. 여자의 감정이 납추를 매단 것처럼 가라앉기 시작했다. 뭐 어쩌겠어, 이미 엎어진 물인데.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여자는 승강장 벤치로 가 앉았다. ‘수석님, 여러 차례 전화를 드렸는데 안 받으셔서 카톡 드립니다. 지하철을 잘못 타서 30분 이상 늦을 것 같습니다. 최대한 빨리 가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여자는 담당자에게 메시지를 보낸 뒤 타박타박 계단을 올라 맞은편 승강장으로 향했다. 어차피 늦은 거 뭐 하러 비싼 돈 주고 택시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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