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GX] 1. 미셸 트랑블레처럼 일상 포착하기

D-29
43세 강춘남씨는 모자랄 것도 없지만 넘치는 것도 없는 중년으로 가고 있는 여성이다. 아담한 체구에 머리는 컷트이고 종종 딸 책가방을 대신 매고다니는 통에 뒷모습이 헷갈릴 때도 있지만 눈가의 주름과 머리를 뒤적뒤적 하면 보이는 세치로 영락없는 중년 여성이긴하다. 남들 보기에 멀쩡한 남편이랑 딸과 경기도 외각에 걸으면 지하철이 코앞인 소형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어,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 뭐랄까 중산층이라고 해야 하나 서민층이라고 해야하나 고민하다 그냥 나는 그래도 중간층이지 라고 생각하는 강춘남씨다. 멀쩡한 회사에 다니는 덕에 그래도 먹고 싶은 건 사먹고 입고 싶은 건 사 입지만 하루종일 회사일을 하고 흐느적거리며 지하철을 타고 퇴근길에 딸을 학원에서 픽업하고 집안일을 하고 잠이 드는 것이 그녀의 매일의 한달의 일년의 그리고 어느덧 10년을 꽉 채운 일상이다. 딸을 재우고 핸드폰을 몰래 열어 화면밝기를 가장 어둡게 하고 구독해 놓은 인테리어 채널을 보다가 혼자사는 집을 보면서 아.. 저렇게 꾸미고 자유롭게 살면 좋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다가 이내 새벽 1시가 다 된 시간이니 그만 핸드폰을 끄면서 옆에서 자고 있는 딸아이의 손을 꼭 쥐고 잠을 청한다. 회사에서 뜬금없이 우리도 글로벌 문화를 갖고 세계로 뻗어나가겠다며 영어이름을 쓰기로 한다. 촌스러운 이름을 더 이상 안 쓸수 있다는 생각에 기쁜 춘남씨는 몇일 간 고민하다가 Alice라는 이름으로 정한다. ABC순으로 회사명부가 작성되다 보니 회의시간마다 부서장님은 그럼 엘리스가 말해보라며 자꾸 내 이름을 불러댄다. 강 씨라서 중고등생 내내 출석번호 1번으로 툭하면 선생님께서 춘남이가 풀어봐라 했던 기억이 불현듯 나며..왜 엘리스라고 이름을 골랐을까.. 후회하는 춘남씨다. Zollar라고 바꿔야 하나..고민하다 다시 영어이름 검색하다가 인테리어 검색하다가 딸램의 손을 꼭 쥐고 잠이니 자야겠다고 생각한다.
작가님이실까요?? 강춘남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네요~^^
ㅎㅎㅎㅎ 감사합니다..전 그냥 직장인이예요~
ABC순이라 앨리스 ..가 부서장에게 자꾸 이름 불린다. 학창시절에 1번이라 이름 불리듯 zollar라고 바꿔야 하나 ... 여기서 뿜었습니다. 위트가 넘치시네요.
ㅋㅋ 개그코드가 맞았나요?ㅋㅋ 감사합니다 ~~
@박산호 안경을 쓴 그녀는 얼굴이 동그랗고, 눈도 동그래서 전체적으로 귀여운 인상이다. 피부는 하얗고 키가 작지만 자신의 체형에 어울리는 옷을 잘 골라 입는다. 5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여러 스타일로 부단히 실험해본 결과다. 그녀는 거의 매일 같이 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다. 즐겨 마시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옆에 두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펼쳐 한 장 한 장 집중해서 읽는다. 읽다가 공감이 가거나 나중에 글을 쓸 때 참고하고 싶은 부분이 생기면 그 부분을 가져간 노트에 펜으로 꼭꼭 눌러쓰고 입속에서 소리내지 않고 읽어본다. 마음에 든다. 고개를 끄덕인다. 책을 읽다 보니 조금 허기가 져서 지갑을 들고 카운터로 가서 진열장 속에 든 케이크와 빵들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마카롱 케이크를 고른다. 케이크를 테이블로 가져가 포크로 한 입씩 떠먹으면서 다시 문장을 읽는다. 문장이 달콤한지 케이크가 달콤한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즈음 핸드폰이 울린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배고프다고 투정하는 문자. 그녀는 한숨을 쉬며 남은 케이크를 한 입에 쓸어넣고 책을 챙겨 에코백에 넣고 일어선다. 오늘치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 벌써 끝나버렸구나, 싶어 가볍게 한숨을 쉬며.
카페의 포근한 분위기와 달콤한 케잌향이 코끝을 감싸는거 같아요~ 그런데 이런 묘사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작가님 봬니 반갑습니다^^
@거북별85 반가워해주셔서 감사해요. 아침에 덧글 읽고 기뻤습니다.^^
“여기요, 여기! 빨리 좀 오세요. 빨리!” 선주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빨리요, 빨리!” 마치 내 행동이 달팽이처럼 느릿느릿하다는 듯이 연달아 불러대며 오른 팔을 들어 나를 향해 크게 손짓했다. 선주의 목소리가 야외임에도 상당히 크게 들려, 나는 부끄러운 감정이 솟아올라 멈칫 주위를 살폈다. “여기가 명당이에요. 명당!” 어느새 선주는 장미축제에 몰려든 인파를 뚫고 장미꽃으로 가득한 작은 화원 안으로 들어가 우뚝 서 있었다. 하루에 만보씩 걷는데도 갱년기라 그런지 계속 살이 찐다며 불평하던 선주지만, 몸놀림은 잽쌌다. “빨리 찍어요. 빨리!” 연신 불러대는 선주 때문에 나는 쭈뼛쭈뼛하면서도 그녀의 요구대로 하는 게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임을 잘 알기에, 빨간색 케이스에 담긴 그녀의 휴대폰을 얼른 건네받았다. 사방이 장미꽃으로 둘러싸인 채 선주는 무릎을 약간 굽히고 상체를 구부정하게 숙이고는 양 팔을 겨드랑이에 붙여 팔꿈치를 구부린 후 나머지 손가락은 접고 검지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을 겹쳐 양 손으로 하트 표식을 만들었다. 요즘 TV에서 연예인들이 툭하면 하는 그 포즈였다. 사진을 찍을 때는 고개를 살포시 숙여야 얼굴이 작게 나온다며 내 사진을 볼 때마다 조언했던 선주답게, 그녀는 고개를 살짝 아래로 향하게 했는데 그러자 두툼한 턱이 이중으로 겹쳐졌다. 선주는 분홍색 립스틱을 짙게 바른 입꼬리를 치켜올리고는 만면에 미소를 띤 채, 눈짓으로는 나에게 어서 사진을 찍으라고 독촉했다. 빨간색도 아닌 그렇다고 자주색도 아닌 그 두 색을 섞은 듯한 등산용 점퍼를 입은 선주가 꽃분홍색 장미꽃에 둘러싸여 있으니, 마치 상체는 사라지고 그녀의 머리만 동동 떠있는 느낌이 들었다. 선주는 어딜 가나 항상 채도 높은 등산복 차림인데, 등산복이 움직이기도 편하고 땀도 흡수가 잘 돼 가성비가 좋다며 일상복으로 안성맞춤이라고 애용했다. 오늘 입은 등산복은 올해 대기업에 취직했다는 선주의 큰딸이 어버이날 선물로 사준 것이라고 일전에 자랑했던 그 옷이었다. “뒤로 멀리 가서도 찍으세요. 꽃 다 나오게. 멀리!” 내가 휴대폰의 사진 촬영 버튼을 누르자마자, 그 즉시 또 다른 요구가 이어졌다. 선주는 미소 띤 표정은 유지하면서도 턱을 까딱까딱 움직여, 나에게 멀리 가서도 찍으라고 지시했다. 나는 뒷걸음질 쳐, 그녀가 원하는 대로 전체 장미꽃 화원을 담아 사진을 찍었다. 선주가 장미꽃밭에 폭 파묻혀 있는 광경이었다. “한 번만 찍지 말고, 여러 번 찍어요. 여러 번!” 사진 찍는 내 모습이 영 탐탁하지 않은지, 선주는 복화술하듯 또 다른 지시를 내렸다. 내가 약간씩 각도를 달리하며 여러 번 촬영 버튼을 누른 후에야, 동상처럼 있던 선주가 몸을 일으켜 화원 밖으로 걸어 나왔다. “보자 보자, 잘 나왔나 보자~.” 나를 향해 오른팔을 뻗은 선주에게 휴대폰을 건네자, 그녀는 검지손가락을 좌우로 움직여가며 사진을 확인했다. 선주는 휴대폰을 눈에 가까이 대고 사진을 살펴보더니 “이 사진 잘 나왔다. 잘 나왔어!”하며 다시 입꼬리를 올렸다. 사진 찍을 때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그러더니 휙 장미 화원 쪽으로 몸을 돌려 “아이구 고마워라, 장미야 고마워.”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간혹 그녀가 10대 소녀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바로 이때도 그랬다. “장미 덕분에 인생샷 건졌네요. 호호” 나는 만족스런 표정을 짓는 선주를 바라보며, 카톡 프로필 사진도 꽃밭에서 찍은 사진이더니 꽃을 좋아하거나 꽃과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거나 둘 중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①그는 부자가 아니다. ②살면서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진 않는다. ③가끔은 주변 사람들에게 무엇이든 나누어주는 것을 기쁨으로 여긴다. ④외모가 빼어나지도 않다. ⑤키가 크지도 작지도 않다. ⑥덩치도 유달리 눈에 띄는 편도 왜소한 편도 아니다. ⑦얼핏 보면 나쁘지 않은 외모인가 싶다가도 때로 촌스러운 모습도 보인다. ⑧엄청난 권력도 없다. ⑨집에서도 그렇고 사회에서도 직장에서도 그렇다. ⑩딱히 권력을 잡을 욕심도 별로 없다. 내세울만한 능력조차 그다지 없다. ⑫하지만 그는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한영그룹의 구내식당 메뉴는 5년 전 사업자가 바뀐 이후로 변함이 없다. 맛은 물론 성의조차 없는 음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쉴 새 없이 음식을 넘기고 있다. "맛있어요?" 숟가락을 뜨지도 않고 그가 물었다. "네. 그럼요. 전 너무 맛있는데요." 배시시 웃는 그녀를 보자 그도 신기한 듯 웃었다. "음식은 변함이 없는데 혜선 씨가 변했네요." 그녀는 쫓기듯 음식을 꼭꼭 씹으면서 말했다. "맛없는 걸 몇 달 먹었더니 식욕이 새로 태어나서 그래요." 그녀는 빙그레 웃고는 식판의 음식을 입에 집어넣었다. 그는 할 수 없이 음식을 바쁘게 집어 먹었다. 그녀는 분명 식사 시간을 아껴 산책하려는 걸 테지. 같이 가자고 하려면 그 역시 서둘러 먹어야만 했다. 그녀는 6개월의 장기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무언가 있어. 그는 그녀의 변화가 의아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정장 옷차림만 입고 다니던 사람이 세련되고 하늘하늘한 블라우스를 입는가 하면, 생전 안 입던 짧은 치마를 입고 나타나곤 했다. 쉬는 시간마다 졸거나 아예 엎드려 잠들던 사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산책하러 다니기 바빴다. 지난주에는 회사 저녁 식사 모임에 나타나 모두를 놀라게 했다. 회식이든 모임이든 아무리 권해도 '집에 가요'하고 냉기를 날려대던 사람이었다. 음미한다는 과정을 생략하고 국에 밥을 말아 마신 덕에 그녀가 숟가락을 놓을 때쯤 그도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그녀는 '잘 먹었습니다'하고 숟가락을 식판에 올리다가 그만 떨어뜨리고는 멋쩍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요즘 내가 이래요. 덤벙거린다니까." 그는 그녀가 숟가락을 집어 올릴 때 유난히 야위어 보이는 손목 끝에서 떨리는 손을 보면서 말했다. "뒷길 쪽 아파트단지에 꽃핀 거 보셨어요? 산책 가실 거면 같이 갈래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좋아요'하고 대답했다. 식판을 정리하고 구내식당을 나서자, 그녀는 품에서 손바닥만 한 수첩을 꺼내어 무언가를 끄적여 적고는 기분 좋은 듯 웃었다. 그는 휴가 전에 그녀가 저렇게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던가 하고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매일 갈아입지만 색과 디자인이 비슷한 셔츠, 교복처럼 입고 다니는 고무줄 허리의 슬랙스, 회사에서는 발이 편한 슬리퍼를 신고 출퇴근 길에는 스니커즈로 갈아신는 직장인 A씨.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요? 라는 말을 자주 듣는 친숙한 외모를 가진 A씨는 남들보다 책을 조금 더 좋아했고,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어서인지 읽는 속도도 유독 빨랐다. 버스나 지하철을 20분만 탈 수 있으면, 책 한 권은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A씨는 항상 가방에 출퇴근 용으로 책을 두 권씩 넣어가지고 다녔고, 이북 리더기를 선물 받았지만 종이책을 더 선호한다는 이유만으로 항상 백팩 속에 책을 넣어가지고 다녔다. 백과 사전을 들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책 두 권쯤이야 무겁지 않지. A씨의 입버릇이었다. 선물 받은 이북 리더기는 멀리 여행을 갈 때 챙겨다녔는데 종이 책을 열 권 넘게 들고 갈 수는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누구는 일년에 책을 100권 읽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읽었으나 A는 100권을 목표로 책을 한 권 읽으면 영화를 한 편 보거나 SNS를 슥 보거나 했다. 대개는 SNS나 영화, 드라마 보는 시간을 줄여 책을 읽는데 A는 그 반대였다.
딸랑~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에 올해로 열여섯 살이 된 고양이 로니는 문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로니로니~ 누나 왔다!” 언뜻 보아도 ‘누나’라는 호칭이 어색하게(누나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많아 보였다) 느껴지는 그녀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층이 많이 나고, 어두운 갈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H는 익숙하다는 듯 곧바로 벽에 걸려있던 앞치마를 두르기 시작했다. “왔구나. 아유 오늘도 정신이 없었어.” 포스기 앞의 작은 원형 의자에 앉아있던 그녀의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연스럽게 자리를 내주었다. 이 모습은 마치 이어달리기에서 다음 선수에게 바톤을 넘기는 장면 같아 보였다. “오늘 많이 팔았나? 좀 쉬어.” H는 왼손으로는 앞치마를 정리하며 오른손으로 포스기의 ‘매출’ 버튼을 눌렀다. “화요일 이 시간에 21만원? 많이 팔았네?” 앞치마 정리가 끝나자, 이번에는 검은색 끈으로 머리를 낮게 묶기 시작했다. 대충 허겁지겁 묶은 탓에 몇 가닥은 바깥으로 삐져나와 있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그라인더에서 곱게 갈린 원두를 포터 필터에 담아 적당한 강도로 탬핑을 한 뒤, 에스프레소가 추출되는 모습을 몇 초 동안 바라보았다. 에스프레소의 마지막 방울이 약간 끈적한 듯 떨어지는 모습이 그녀의 투명한 안경에 비쳤다. 그녀는 설거지가 끝난 그릇들 속에서 분홍색 텀블러를 집어 얼음을 가득 담고는, 냉장고에 있던 우유 중 유통기한이 가장 임박한 것을 찾아내어 텀블러에 우유를 따랐다. 그리고는 방금 전 작은 잔에 받아놓은 에스프레소 위에 ‘초코’라고 적힌 시럽통을 위치시킨 뒤, 정확히 세 번 눌렀다. 그녀가 스테인리스 재질의 길고 가느다란 숟가락으로 시럽과 에스프레소를 섞는 동안에는 주방에서부터 달콤한 냄새가 퍼져 나갔다. 손님들이 찾아오기 전에 잠시라도 여유를 찾으려는 듯 H는 방금 자신이 만든 음료가 든 텀블러를 챙겨 원형 의자에 앉았다. 이 분홍색 텀블러와 짝이 되는 듯한 좀 더 진한 분홍색의 뚜껑 한가운데에 ‘OO쌤’ 이라는 라벨은 H가 예전에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절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녀는 빛바랜 나무 탁자 위에 왼손을 올리고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곧 숨을 내쉬는 소리와 ‘피식’하고 웃는 소리의 중간으로 들리는 소리를 내뱉었다. 그녀가 교사라는 직업을 그만두게 된 계기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피식’에 더 가까운 소리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딸랑~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에 올해로 마흔다섯 살이 된 H가 문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어서 오세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2nd. GX (6/28~7/1) WritersGX 첫 번째 과제를 잘 수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떠셨나요? 몸이 좀 풀리셨나요? 이제 조금 더 어려운 과제도 수행하실 수 있으신가요? 『옆집 뚱보 아줌마가 임신했대요』 75~79쪽에서는 티 루 이모가 자신의 삶을 다섯 쪽에 걸쳐 이야기합니다. 사연 많고 힘든, 끔찍하기도 했던 삶입니다. 그러나 티 루 이모는 자신의 삶에 대해 일종의 자부심과 보람마저 느끼는 듯합니다. 티 루 이모의 이야기는 아주 세밀하지는 않지만 당사자가 아니면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 같은 구체성이 있습니다. 특히 ‘이런 인생을 겪은 사람은 이렇게 느껴야 할 거야’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난 부분들이 그 이야기를 더 믿을 만하게, 더 흥미롭게, 그리고 보다 울림 있게 들리게 합니다. 두 번째 과제입니다. 한 한국 노인이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이야기를 10문장 이상으로 적어주세요. 그 노인이 자기 삶에 대해 어떻게 느낄지를 상상해서, 하지만 구체적으로 써주세요. 『옆집 뚱보 아줌마가 임신했대요』 75~79쪽을 참고하세요.
영옥은 거실 소파에 몸을 묻고 눈을 감았다. 커피는 벌써 식었다. 오늘은 영 움직이기가 힘들다. 괜히 옛날 팔팔하던 때 생각이 난다. 대학 3학년 때쯤인 것 같다. 경춘선 기차를 타고 써클 사람들과 어딘가를 갔다. 아니 갔다가 되돌아오는 길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한겨울이었다. 모두 잠바가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나는 뒤집어쓰는 니트만 입고 있었다. 바지는 골덴이었다. 써클 선배가 춥지 않으냐고 물었다. 나는 하나도 춥지 않다고 대답했다. 정말 하나도 춥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집안은 가세가 기울어 엄마는 내게 코트를 사줄 형편이 안 되었다. 그런나 그런 이유로 추위를 안 느낀 것은 아니다. 그때는 내가 아주 건강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가장 건강했던 시기는 대학교 시절이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도 항상 아팠고, 대학원을 다닐 때도 아팠다. 그 이후로도 자주 컨디션이 다운되었다. 그렇다고 무슨 병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야 알게 된 것은 스트레스로 인한 피로와 무기력증이었다. 그런데 대학 때만큼은 그게 없었다. 아마도 세상이 너무 만만해보여서 그랬을 것이다. 철이 없어도 너무나 없던 시절이었다. 쥐뿔도 없는 주제에 왜 그렇게 모든 것이 하찮아보였는지. 그래도 그덕에 스트레스는 없었고 그래서 인생을 통틀어 컨디션도 최상이었다. 그래서 추위도 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겨울에는 무릎 아래로 내려가는 코트를 안 입으면 외출할 수가 없다.
나는 1945년에 태어난 해방둥이다. 7남매 중에 셋째로 태어난 나는 유독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었다. 아버지는 학교 선생이었는데, 우리집은 그 마을에서 유일하게 농사를 짓지 않는 집이었다. 선생 댁 딸이라고 동네에서 나름 대우를 받았는데, 그것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얘기다. 내가 열두 살 때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떡장사를 나서면서 동생들 돌보고 살림을 사는 건 오빠와 내 몫이었다. 맏이인 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시집을 보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들 사는 게 녹록치 않아서 줄줄이 형제가 많은 집은 자식들 한두 명쯤은 식모살이를 보내곤 했는데,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우리 어머니는 재혼도 하지 않고 우리 형제들을 다 끌어안고 사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 자리를 알아보고, 대학 간 동생 뒷바리지를 할 겸 서울로 올라왔다. 나는 스물일곱 살에 결혼했다. 그때로 따지면 내 결혼은 늦어도 한참 늦었는데, 사무질 직원 친구인 남편을 만나 1년 연애하고 결혼했다. 어머니가 결혼 전 나에게 한 당부는 하나였다. "아비없이 컸단 소리 듣지 않도록 해라." 어릴 때부터 손이 야무지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왔는데, 일복은 타고 난다더니 시집간 집도 대식구였다. 시할머니, 시부모, 시동생까지 있었는데 그나마 다행이라면 시아버지와 남편의 벌이가 좋아 돈 걱정 없이 살았다. 심통스러운 시어머니와 밉살스러운 시누이도 남편과 시할머니가 다정해서 견딜만 했는데, 남편 사업이 잘못되면서 계속 불운이 겹쳐졌다. 그 긴 세월을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을까. 누가 물어도 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참 열심히 살았다고, 부끄럽지 않다고. 내가 미안한 사람이라면 사는 게 바빠서 한창 사춘기일 때 신경을 써주지 못했던 내 귀한 딸하고 아들. 사실 이제야 손주들 보니까 사춘기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았지, 그때는 사춘기가 뭔지도 모르고 지나왔다. 어쨌든 한 번도 속 썩이지 않고 잘 커준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나는 지금 원망도 여한도 없다.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고 있으니까. 남편이 살아서 같이 하지 못하는 게 조금 아쉽지. 다만 바라는 게 있다면 건강하다가 자식들 크게 애먹이지 않고 가고 싶다. 그게 단 하나의 바람이다.
※ 노년의 '나'에 대한 이야기 '나'는 갇혀 있다네. 누군가 '나'를 서서히 때로는 급격히 좁아지는 기억의 방에 가두어버렸지. 나를 가둔 누구라는 존재는 시간이라네. 하루에 하루를 더하며 무료할 정도로 성실히 살아온 '나'는 그렇게 치매라는 이름으로 하루씩 잃어가는 삶을 살고 있다네. 아, 숨이 차오르면서 기침이 나는군. 칠십 넘는 나이가 되니 숨이 부족해 종종 말을 멈추어야만 한다네. 몇 해 전이라면 숨 한 모금으로 내 살아온 이야기를 전부 꿰어낼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차오르는 기침을 내뱉는 것조차 힘에 부칠 때가 있지. 게다가 기침을 할 때면 이제는 내 몸과 기억의 일부가 재가 되어 푸스스 무너지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되었든 이제까지의 내 삶은 늘 제시간에 출발하고 적당한 속도를 유지하며 늦지 않게 도착하는 열차처럼 선로를 벗어날 이유가 없었지. 무진에서 진군해 온 듯한 안갯속으로 짙게 삼켜지는 지금의 내 모습은 낯선 날 아침 문득 처음으로 마주한 거울 속의 '나'처럼 생경하다네. 자라온 이야기를 해보자면 부모님은 전쟁이 비켜간 고향 현촌에서 유일한 이발소를 운영하셨지. 덕분에 시대에 비해 누추하지 않게 살면서 현명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는 이름에 부합한 기대와 사랑을 받으며 자랐지. 부모님은 내가 공부해서 당신들 보다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다네. 이발사가 아니라. 그렇게 '나'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대학을 나오고 어린 시절 마을에 나타났던 승용차에 마음을 빼앗긴 덕에 자동차 회사에 취직해서 한평생을 다했지. 저 뒤 책장 한가운데 금색 명패가 퇴직할 때 받은 공로패라네. 아내는 직장 생활하며 오가던 농협에서 일을 했는데 치아가 다 보이도록 시원하게 웃는 함박웃음이 얼마나 빛나던지. 그 빛을 항상 곁에 두고 싶다는 마음에 한 발씩 다가가 청혼을 했지. 그렇게 아내는 무던한 내 인생에 들어와 오롯이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빛이 되어준 특별하고도 깊고 고마운 사람이라네. ‘나'는 그런 아내를 정말이지 눈 감는 날까지 내 기억에 담아둘 거라네. 스스로 내는 눈부신 빛에 반짝이듯 늘어나는 흰머리와 주름 한결 까지도 내 마지막 기억에 새기고 싶다네. 하나뿐인 딸아이는 그런 엄마를 닮아 '나'의 두 번째 빛이 되어주었지. 아빠 딸! 사랑하고 사랑한단다! 이제는 점점 '나'의 시간이 아내와 딸의 시간과 다르게 흐르고 있다네. ​ 기억의 방에서 어느 날의 '나'는 지천명의 시간을 살고 있지.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해 막 봉오리를 터뜨리듯 설렘 가득한 딸아이를 '나'와 사이에 두고 아내는 커다랗게 함박웃음을 짓고 있지. '나'는 지그시 그들과 눈을 맞춘다네. 일을 하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었지. 또 다른 날의 '나'는 어쩌면 예닐곱의 어린것이 되어 고향집 이발의자에 앉아 새하얀 보자기를 두르고 아버지의 섬세한 가위질 뒤에 따르는 쇳조각의 지릿한 간지럼을 참고 있거나, 쪽진 머리가 단아 했던 어머니와 하얀 망초꽃들을 헤치며 포르르 잡힐 듯 잡힐 듯 살랑이는 나비를 쫓고 있을지도 모르지. ​'나'는 숨이 버거울 정도로 좁은 기억의 방에 갇혀 있지만 하늘을 유영하는 바람처럼 자유롭고 행복하다네. 어느 기억의 시간을 흐르고 있던지 사랑받고 사랑하던 사람들과 행복하거든. 언젠가 그 모든 날들이 소실점을 향해 기억에서 사라져 가겠지만 괜찮다네. 이만한 삶이면 되었지. 이젠 기억할 시간이 아니라 기억되어질 시간이니까... 아내와 딸아이도 안다네. 잊혀지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나'에게 새겨져 가는 것이라는 걸.. ​
최부녀. 사실 그녀를 볼 때면 경비원 현씨는 자꾸만 사별한 아내 정임이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아내와 현씨는 강원도 정선 토박이였고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고향 선후배로 만나 결혼까지 한 경우였다. 현씨는 일찍부터 어르신들의 뜻대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서 일사천리로 합격했고 그 첫 임지가 고향인 정선군청이었다. 아내는 학창시절부터 육상부로 발탁되어 고등학교도 육상부로 유명했던 강릉으로 유학을 갔던 꿈나무였다. 그렇게 전국체전을 휩쓸던 단거리 스프린터 정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선 대학진학 대신 강릉시청 소속 육상팀에 스카웃되는 쪽을 선택했고 결혼할 때까지 시청소속으로 달렸으나 예전 같은 성적은 거두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기회가 되어 강릉시청 사무직으로 전환했고 또 기회가 되어 고향 정선군청으로 지원해서 발령을 받게 되었다. 물론 현씨와의 결혼을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 좋은 선후배 그이상 그이하도 아닌 관계였는데, 현씨가 정임의 거의 모든 경기를 찾아다니며 응원하는 모습에 격려가 되는가 했는데 다른 감정이 조금씩 싹트기도 했다. 그렇게 그들은 동네의 큰 잔치의 주인공이 되어 부부의 연을 맺고 이듬해엔 어린 날의 정임을 꼭 닮은 딸, 수린이도 낳았다. 강원도의 건강한 환경과 부모의 사랑을 덤북받고 자란 딸은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났다. 현씨에게는 정임과. 결혼하고서의 그 몇해가 자신의 인생에서 제일로 눈부신 시간이었다. 딸 수린이 발달장애로 진단받기 전까지. 딸의 치료와 교육을 위해서 정임은 공무원일을 그만둬야 했고 또 도시로 나가야만 했다. 그렇게 옮겨간 곳이 서울 강서구청이었다. 근처 집값이나 여타 다른 이유가 있었지만 조만간 공립 특수학교가 근처에 생긴다는 것이 서울 강서구로 지원한 가장 큰 이유였다. 그렇게 낯선 서울로 이사온 세식구는 그래도 함께 여서 좋았고 모든 것이 잘 될거란 희망 하나로 감사했다. 다섯살 수린이가 다닐 특수학교도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여덟살엔 완공될 터였다. 그런데 공청회에서 문제가 생겼다.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해당 특수학교를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다른 무수한 행정절차들이 당연히 밟는 수순이었고 거의 형식적인 절차였다. 그런데 벼르고 벼르던 지역주민대표단의 거친 저항과 분노의 웅변장으로 변해버린 공청회장은, 그렇게 예정에 없던 3차에 걸쳐 진행되었고 끝끝내 공립 특수학교 설치안은 전면 재검토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 특수학교 같은 혐오시설은 이 동네에 설치해선 안된다는 강경한 주장이 주민투표를 통해 결정되었다. 마지막 공청회가 있던 날 현장에 있던 현씨와 정임은 청천벽력 같은 이 상황에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 정임은 굳게 다문 입술과 회색 낯빛으로 퇴장하는 주민대표들 앞을 가로막고 무릎을 꿇었다. “제발 아이들을 위해.. 제발 한번만 더 생각해주세요. 특수학교는 혐오시설이 아니예요…“ 무릎꿇은 정임을 대부분 피해지나 갔으나 유독 한 사람, 그 앞에 대고 소리소리 질렀다. 주민대표였다. ”아이들 팔아서 그렇게 그런 시설을 만들고 싶으실까. 우리 애들은 어쩌라구? 우리 동네 물흐리고 집값 떨어뜨리고 우리 애들도 옮으면 어떡해요! 제발 이렇게 부탁할게요. 딴데 가서 알아봐요. 아실만하게 생긴 분이 왜이러실까, 참나!” 그렇게 한가득 교양있는 욕 같은 말을 한가득 쏟아내고 지나가는 그녀의 발을 잡고 매달리는 정임은 그렇게 서러웠지만 그럴 수 없었고 그래선 안되는 마지막 병참 저지선처럼 정임 뒤를 이어 무릎꿇은 장애아이들의 부모들을 아우르며 주민대표에게 매달려 끌려가다시피 하며 피가 나는지도 모른채 아랫입술을 하염없이 깨물고 깨물었다. 구청 공무원인 현씨는 현장을 진행하는 위치인지라 그렇게 또 주먹을 움켜쥐고 아랫입술을 깨문 채 고개숙일 수 밖에 없었다.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이 떠올랐습니다. 지인들과 보고는 눈물을 펑펑 쏟았던 기억이 나네요. 이렇게 글로 읽으니 또 새로운 감정이 듭니다.
네. 저도 그 영화 봤습니다. 그 사건을 떠올리며 끄적여본 겁니다. 아. 그 사건을 뉴스로 처음 접하고서 황당함과 분노가 묘하게 교차했던 기억이 너무 강렬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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