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작가의 <산 자들>을 읽으며 생각을 나눠봐요.

D-29
형식은 무제한입니다. 책에 대한 감사을 남기셔도 좋고, 인용구를 남기셔도 좋습니다. 자유롭게 이야기 나눠보아요.
조금 반가웠고 꽤 어색했다. 연아는 희정 역시 결혼하게 되더라도 자신에게 연락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둘은 행사장 뒤편에서 함께 커피를 마셨다. 연아는 자신들이 몇 년 전에 제대로 치르지 못했던 의식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산 자들 - 장강명 연작소설 p.76 「대기발령」, 장강명 지음
원래 장강명 작가를 알고 있었지만 이 분 책을 적극적으로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책이었어요. 너무 감탄하며 읽었던 기억이… 집에 책이 있는지 찾아봐야겠지만, 다시 읽으며 소감 나누고 싶네요~
"한국에서 먹고사는 문제의 고단함과 쓸쓸함을 지적이고 균형 잡힌 시선으로 포착하는 10편의 연작소설" 이라는 <산 자들>에 대한 책 소개를 보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네요. 제가 읽었던 <5년 만에 신혼여행> 속 장작가님은 마냥 재미있어 보이는 분이였는데... 저도 <산 자들> 함께 읽겠습니다.
제 경우에는 어쩌다가 보니 황석영 작가의 <철도원 삼대>에 이어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요. 두 책을 연달아 읽으며 느꼈던 점은 노동 문제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과 실태에 대한 개선이 너무나도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100여년의 노동운동사를 다루고 있는 <철도원 삼대>를 보면 너무나도 명명백백합니다. 최근 국내의 상황을 보고 있자면,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오늘 막 출퇴근 길에 1부 자르기까지 읽었습니다. 저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노동자로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남일같지 않더군요. 몇몇 장면은 실제 직장생활에서 겪거나 보았던 것 같은 기시감도 들었습니다. 1부의 말미를 장식하는 <공장 밖에서>는 대놓고 쌍용차 파업 사태를 묘사하고 있기도 합니다. 가장 맘에 들었던 부분은 이 책의 소설들이 가지고 있는 관점의 중립성이었습니다. '을'의 입장만 이야기 하지 않고, '갑'의 사정도 함께 이야기 해 주는 점이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남겼던 것 같아요. 나머지 이야기를 읽어 내려갈 내일 출근길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밤입니다. 다른 분들의 감상도 궁금하군요.
집에 책에 없어(분명 사서 읽었는데 왜…;) 도서관에 가서 빌렸습니다. 첫 작품이 ‘알바생 자르기’였군요. 이 작품은 작년에 수업시간에 활용한 작품이라 외우도록 읽었던 소설입니다. 처음에 이 소설을 읽으면 마음이 찜찜합니다. 은영에게 이입하여 읽으며 여자아이를 괘씸해하다가 마지막 여자아이의 상황이 훅 찔러오기 때문이죠. 군데군데 세심하게 심어놓은 우리 사회의 부조리(회사 접대 문화, 여성 대상화, 비정규직 처우, 관제파업 등…)를 짚어보기에도 좋은 소설이었지만, 끝내 ‘여자아이가 싸가지없다’는 아이들이 제법 있어서 조금은 난감하기도 했습니다. 왜 우리는 이토록 사용자의 시선을 가지게 된 걸까요?
저도 오늘 오전에 <알바생 자르기>를 읽었습니다. 보통 이런 에피소드는 어느 쪽 하나는 부당한 대우를 당하거나 한다는 이분법 적인 시각을 갖게 하며 결국엔 한쪽의 편을 들게 되는데, 이 이야기는 그렇지 않아 매우 신선했습니다. 각각의 입장들이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져 모두 이해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느 캐릭터 하나 크게 잘못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 때문일까요? 노동, 근로에 대한 고민이 짧아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저는 처음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떻게 보면 그런 바닥에서는 우리가 더 약자야.'라는 말에 공감했었어요. 그런데 소설을 몇 번이고 다시 읽다 보니 그게 얼마나 염치없는 말인가.. 싶더라고요. 은영은 자신 나름대로 여자아이를 배려해주려고 했는데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하지만 '착하고 약한 피해자'를 상정해놓고 마음대로 동정했다가 실망했던 거죠. 여자아이는 정당한 요구를 했음에도 뒤통수를 친 게 되는 상황, 정규직이거나 직위가 높은 사람은 퉁명스러워도 되고 근무시간에 잠시 딴짓을 해도 되지만, 여자아이 같은 말단 비정규직은 싹싹해야 하고 잘 웃어야 하고 근무시간 내내 일이 있든 없든 딴짓을 해선 안 되는 상황... 이게 사실은 정말 이상한 건데 우리는 여기에 너무 익숙하구나, 싶었어요. 이 책 작가의 말에 '공감 없는 이해는 자주 잔인해지고, 이해가 결여된 공감은 종종 공허해집니다.'라는 문장이 저한테는 정말 확 꽂힌 문장이었는데, 은영은 여자아이에게 '이해가 결여된 공감'을, 은영의 남편은 '공감 없는 이해'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타맨님 말대로, 누구 하나 크게 잘못하지 않았는데 누군가는 불행해지고 씁쓸한 뒷맛만을 남기네요. 그래도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기 위해 '왜, 어떻게, 그런 현장이 빚어졌는지를' 이렇게 자꾸 들여다보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역시 작가의 말에서 가져온 표현이에요) 쓰다 보니 이 책은 정말 저한테 인생책이네요. 저를 깊이 반성하게 했거든요.
저 역시도 여러가지로 생각해보고, 반성해 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알바생 자르기'를 읽으면서, 은영의 입장에 많이 이입되었는데요. 일단 저도 직장생활 10년차가 넘어, 슬슬 중간 관리자로 넘어가는 고비에 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 연차와 관계없이 어떤 식으로든 하급자를 관리하고 평가하는 입장이 되어 보면 스스로도 '을'임을 망각하고 '갑'의 입장을 대변하게 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흰벽님 말씀처럼 여자아이가 정당한 요구를 하는 것임을 저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애 보통이 아니네'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입니다.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한국의 군대 문화도 한 몫하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해요. 1~2년 남짓의 짧은 군생활동안 부당한 대우를 강요받는 이등병에서부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병장까지 압축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이등병 시절의 부당한 대우는 미래에 누릴 권한에 대한 대가로, 병장시절에 후임에게 행하는 갑질은 이등병 시절의 고생에 대한 보상으로 여기는 문화가 있거든요.(저도 사실 전역한지 10년을 훌쩍 넘긴 아저씨라, 요새 군대는 좀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갑질을 정당화하고, 죄의식을 희석시키는 알고리즘이랄까요. 자연스럽게 하급자에게도 순종적이고 굴종적인 태도를 강요하게 됩니다. 이런 왜곡된 사상이 20대 초반에 강하게 의식화되면서, 사회의 병폐를 반복적으로 되물림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예전부터 쭉 해왔습니다. 두서 없다 적다보니 이야기가 약간 옆으로 샌 거 같은 느낌도 드는군요. 그런데 여기까지 생각해보고 다시 이 책의 이야기들을 들여다보니, 이 책에서 다루는 주된 갈등들도 '갑' 대 '을'인 경우보다 '을' 대 '을' 혹은 '을' 대 '병'인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이 책의 관점이나 논조가 중립적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어요.
요새 군대가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훈련받다 죽는 상황이 여전히 있는 걸 보면 그렇지도 않은 거 같아요 ㅠㅠ 무엇보다 저는 군대 갔다 와야 사람 된다 그런 말이 너무 싫더라고요.(요새는 이런 말 안 하는 거 같지만..) 자연스럽게 수직적 질서를 체화시키는 것 같아서요. 그게 사람 되는 거라고 믿게 만드는 사회라니… 수면부족님 말씀대로, 저도 그랬고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이 소설을 중립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게 얼마나 우리가 갑의 시선에 익숙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갑이 아닌데도요. 오늘밤은 숙면하시길^^
한동안 독서모임에 열심히 다니다가 개인사정으로 오랫동안 쉬게 되었는데, 오랜만에 이렇게 이야기 나누며 책을 읽으니 역시나 한층 더 즐겁네요. 이 방에 계신 스타맨님과 흰벽님 모두 좋은 밤 되시길 바랍니다. ^^
얼마 전 그믐에 가입하고 함께 책 읽는 재미를 알게되었습니다. @수면부족 님 통해 <산 자들> 함께 읽게 되어 저도 무척 즐겁습니다.
그녀는 자신들이 마분지로 만든 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사히 강기슭에 이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산 자들 - 장강명 연작소설 p.122 「현수동 빵집 삼국지」, 장강명 지음
그 아가씨도 처음 자기네 회사에 면접 볼 때에는 그런 태도가 아니었을걸? 성격이야 싹싹하지 않았다고 해도 최소한 근태는 나쁘지 않았을 거야. 그걸 자기가 망친 거지. 지각해도 아무 말 않고, 손님 접대를 안 해도 아무 말 않고, '불쌍한 애'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아무 지적도 안 했지? 그러니까 애가 그렇게 된 거야. 사람들이 다 자기나 나 같지 않아. 어떤 사람들한테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이 동기를 부여해 주고 자세를 교정해 주고 질책을 해 줘야 돼. 자기는 알량한 동정심 때문에 그걸 안 한 거지."
산 자들 - 장강명 연작소설 1부 자르기 / 알바생 자르기 p24, 장강명 지음
이 부분을 읽으며 만일, 알바생 성혜미가 싹싹한 성격이었다면 달랐을까? 생각해 봅니다. 알아서 손님이 오면 커피도 타고, 직원들에게 친근하게 대하며, 출근도 늦지 않고, 은영에게도 싹싹하게 굴며 일도 잘 한다면.... 하지만, 한 달 월급 165만원의 언제든 잘릴 수 있는 알바생.... 거의 2년이 다 되어 가는 긴 시간 동안 한 회사를 다니면서도 성혜미는 그곳에 정을 붙일 수 없었다면, 이건 성혜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아이유)이 떠올랐습니다. 게다가 보험료 미지급 건으로 요구한 금액이 고작 150만원이라니...ㅜ.ㅜ 을이 갑이 되기는 너무도 어렵지만, 을이 조금만 방심하면 순식간에 병, 정으로 떨어지는 사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요. 한 달 월급 165만원에 싹싹함까지 요구해도 되는 건지 생각해볼 문제네요. 을이 조금만 방심하면 병, 정으로 떨어지는 사회… 너무 와닿고 소름 돋네요 ㅠ
싹싹한 성격이었어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상황의 본질은 고용한지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하는데, 성혜미의 업무 자체가 정규직으로 고용한 만한 성격이 아니었다는 데 있었으니까요. 저는 이 대목에서 <미생>의 '장그래'가 떠올랐던 것 같아요. '장그래'는 싹싹한 성격에, 업무성과도 있었지만 결국 정규직이 되지 못했죠.
아~ 장그래! 상황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 한 장그래나 성혜미, 이지안은 정규직 전환이 될 수 없었던 거네요. 이 고요한 현충일 아침 부터 입안이 씁니다.
정신없이 몰입해서 읽다보니 저는 오늘 퇴근길에 완독했는데, 곱씹을만한 대목이 많았던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2부의 주제는 싸우기인데, 싸움의 양상이 대부분 '을' 대 '을'의 구조로 이뤄져 있다는 점이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 어제 흰벽님과 나누었던 이야기와 상통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돌이켜보면 현실세계에서도 '갑'과 '을'의 갈등보다는 '을' 대 '을'의 갈등이 많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기생충>에서도 결국 주된 갈등은 '부자' 대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 대 '가난한 사람'의 양상이었던 것 처럼요.
완독 축하드려요! 다 읽으셨더라도 한 편씩 다시 곱씹으며 생각 나눠주시면 좋겠어요 ㅎㅎ
저는 한 때 작가를 꿈꾸다 생계문제로 현재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터라, 3부에 나오는 <음악의 가격>에도 적잖은 공감을 느꼈습니다. 오늘 밤은 <음악의 가격>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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