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들레르 산문 시집 <파리의 우울> 읽기 1

D-29
반갑습니다. 시를 안 읽은지 꽤 오래되었네요.보들레르 시를 시작으로 프랑스어로 번역된 시들도 읽어나가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다시 월요일 아침부터 시 한편 읽고 갑니다. <이방인>과 <늙은 할멈의 절망>을 이어서 읽었네요. <이방인>의 마지막 문장이 인상깊습니다. 덜컹거리는 미을버스틑 타고 멀리 보이는 아파트 고층 아파트 너머에 보이는 구름들을 보면서 읽었네요. 구름을 보고 작품을 썼던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나 구름을 그리고나 사진으로 남겼던 예술가들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궁금해져요. 고도로 편리해진만큼 의존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 현대인으로서는 무심히 흘러가는 구름이 남다르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늙은 할멈의 절망>을 보고 비슷한 느껨을 받은 적이 있는데요, 어느 심리학책에서인가 유아들이 안경을 낀 사람에 대한 경계 혹은 거부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는 내용을 본 기억이 나거든요. 여기서는 아이가 솔직하게 반응한 것이지만 타인이 자신을 기피한다는 것을 깨닫게된 사람의 마음을 떠올립니다. 환대라는 고대 세계의 오랜 전통을 생각해보기도 하구요. 이젠 이런 미음가짐이 사라져가는 것은 아닐지, 다음 세대는 ‘환대’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도 해봅니다.
서문에서 이 시집이 "머리도 꼬리도 없다고 말하면 부당하다" 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그는 기존의 형식을 버리고 새로운 형태의 시집을 만들었다고 하며, 아무런 순서 없이 읽어도 "어렵지 않게 다시 결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몇 도막이 형을 기쁘게 할 것"이라고도 말합니다. 시인은 "이 뱀을 통채"로 드린다고도 합니다. 19세기 당시 유럽의 시집, 특히 독일 시집은 기승전결의 형태를 고수하고 있었을 때, 그런 "기존의 형태"를 벗어버리겠다고 선언하는 시인 보들레르의 자신감이 느껴지는 서문이었습니다. 특히 "리듬도 각운도 없이 음악적"이라는 표현과 [...] "충분히 유연하고 충분히 거친"이라는 서로 상응할 수 없는 단어들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많이 기대되는 시집입니다.
아주 아주 어렸을 때,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 라는 책은 엄청난 감흥을 내게 주었습니다.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가슴이 먹먹해지고 웅장해졌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첫 번째 시 "이방인"은 그런 옛 감정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구름을 사랑하지요.......!" 그러다가 얼마전 방송에서 보았던 드라마 <션샤인>의 대사도 떠올랐습니다. "난 원체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 [...]" 문득 보들레르의 "이방인'의 마지막 귀절이 백수십년을 지나 한국 드라마에서 꽃을 핀 것은 아닐까 하며, 혼자 웃어봅니다. ㅎㅎㅎ
@ICE9 첫 시 <이방인>은 알베르 까뮈가 그 소설, <이방인>으로 삼았습니다. 이 때의 이방인은 외부에서 온 자가 아니라, 원래 살고 있는 곳에서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생각하는 자입니다.
@muwilee 보들레르가 <파리의 우울> 산문시 창작에 영향을 받은 것은 알로이시우스 베르트랑의 <밤의 가스파르>(제안들, 조재룡 옮김)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4073010 입니다. 참고해주세요:-)
저는 <밤의 가스파르>를 라벨의 작품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베르트랑의 시가 보들레르에게도 영향을 미쳤군요. https://youtu.be/VBmOKrAX0E8?feature=shared
@아흐레 @라비 @muwilee 반갑습니다! <파리의 우울>은 도시의 변두리를 산책하면서 쓴 환상적 알레고리 산문시의 성격을 지닙니다. 참고만 해두셔요^^
구름을 사랑하지요... 흘러가는 구름을... 저기... 저... 신기한 구름을!
파리의 우울 <이방인>,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시 <이방인>을 처음 읽은 건 《악의 꽃》에 실린 <백조>를 읽은 뒤였습니다. 다시는 되찾지 못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고통을 그린 <백조>를 읽은 뒤여서, '이방인'이라는 제목이 보들레르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마지막 문장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는데요. "흘러가는 구름을 사랑"한다는 말에서 어느 것에도 매여 있지 않고 자유롭게 "흘러가는", 고정되어 있지 않아 무엇이라 규정지을 수 없는, 지금 이 순간, 모든 순간의 새로움이 느껴집니다. 또한 좋아하지 않는 것에 대해 대답할 때의 단호한 말투가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을 바라보며 구름 조각이 띄엄띄엄 흘러가듯이 멈칫멈칫 더듬거리듯 여운을 남기는 말투여서 그의 벅찬 감정이 마음속에 그려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서 구구절절 말하지 않지요. 그저 사랑할 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과 의미가 말줄임표에 담겨 있어서, 이 문장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시집 뒤표지에 앙드레 브르통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앙드레 브르통은 말줄임표가 구름처럼 보인다고 말했는데, 저에게는 시어 덩어리도 크고 작은 조각구름처럼 보였어요. (구름을 사랑하지요)... (흘러가는 구름을)... (저기)... (저)... (신기한 구름을)
이 모든 것들이 나를 통하여 생각한다. 아니 그것들을 통하여 내가 생각한다(몽상의 강대함 속에서, 자아는 이내 소멸해버리고 말지 않는가!). 그것들이 생각한다. 나는 말하는데, 그러나 궤변도, 삼단 논법도, 연역법도 없이, 음악적으로 회화식으로 생각한다.
파리의 우울 P 13,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시인이 세상을 보는 게 아니라, 세상이 시인을 통해 생각한다는 인식이 인상적이네요.
저도 이 대목이 인상적이었어요. 장 그르니에가 쓴 고양이 물루에 관한 글이 떠올랐어요. '나는 저 꽃이에요. 저 하늘이에요. 또 저 의자예요. 나는 그 폐허였고 그 바람, 그 열기였어요. 가장한 모습의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나요? 당신은 자신이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를 고양이라고 여기는 거예요...... 고개를 돌리고 순간을 지워버리세요. 생각의 대상을 갖지 말고 생각해보세요. 제 어미가 입으로 물어다가 아무도 찾아낼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가도록 어린 고양이가 제 몸을 맡기듯 당신을 가만히 맡겨보세요.' 물루는 행복하다... 놀이를 하되 놀고 있는 제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볼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그를 바라보는 것은 나다... 매순간 그는 제 행동 속에 흠뻑 몰두해 있다. (장 그르니에, 《섬》, <고양이 물루>) 우리는 다들 무언가에 몰두해 본 경험이 있을 거예요. 고양이처럼 항상은 아닐지라도. 그 때 우리는 자신도 잊고 시간의 흐름도 잊지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연주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운동을 하거나 무엇을 하든 그 일에 몰입할 때.
섬 - 개정판1997년 8월 첫선을 보인 이래 이십삼 년간 독자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받아 온 장 그르니에의 『섬』이 2020년 10월, 번역도 디자인도 새롭게 단장한 개정판으로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3. 예술가의 고해기도와 4. 장난꾸러기를 읽었습니다. 마음이 복잡합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이런 극도의 반어법으로 예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청명한 가을날"에 시인은 "환희, 고독, 정적, 순결함..."을 느낍니다. 그러다가 "하늘의 그윽함에 아연실색하고" "바다의 무심함" 과 "자연경관에 분노"합니다. 영원히 아름다움을 무자비한 마녀라고 부르고, 언제나 승리하는 자라고 부릅니다. 자신의 욕망과 오만함이 자연 앞에서는 부질없음을 고백하면서 "그 아름다움에 시인은 패배하기도 전에 공포의 비명을 지릅니다." 라고.... 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극도의 반어법으로 이야기합니다.
@숨쉬는초록 라벨과 보들레르 등등 당대 상징주의 예술가들에게 알로이시우스 베르트랑의 <밤의 가스파르>가 상당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운문 시집 <악의 꽃>과 다른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을 창작하게 된 보들레르의 의도, 1860년대의 파리를 상상하면서 읽으시면 더 읽는 즐거움이 있으실듯 합니다. 대도시 파리의 변두리 산책자로서 익명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보들레르. 그로테스크와 판타스틱^^;; 기이하고 환상적인 도시 인물들의 환상적 알레고리 산문시(이야기)의 특성을 만들어내는 구성 능력도 주제와 함께 고려해보시면 더 즐거움이 있으실 듯 합니다.
구름을 사랑하지요... 흘러가는 구름을... 저기... 저... 신기한 구름을!
파리의 우울 11p,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 하늘의 우울한 궁륭아래, 그 하늘처럼 황량한 땅의 먼지 속에 발을 파묻으며, 그들은 끝없이 희망을 품도록 벌받은 자들이 지어 마땅한 그런 체념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나아가고 있었다.
파리의 우울 20p, 6.저마다 제 시메르를,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여기서 ‘시메르’라는 것은 뭘까요. 알 수는 없지만, 오늘 아침에 는 이 시를 읽으면서 여러 생각이 듭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도 ‘분명히’ 어디론가 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저 뿐만 아니라 인류세를 사는 사람들의 모습같다고 느꼈습니다. 어렸을 때 읽은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도 생각이 나고요. 나비 애벌레들이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거대한 산을 이루면서, 때로는 서로를 짓밟으면서 거대한 ‘자신들’로 이루어진 산을 올라가는 모습이 생각났네요. 우리가 사는 모습들, 삶의 조건들이 단순해지고 획일해진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습니다. 인도에서 농부들이 개발한 쌀품종만 5천 여 종류가 넘었다는 글을 본 기억이 나는데요, 과학과 자본의 힘을 빌린 인간의 욕망은 이 모든 전통을 단일화하고 지워버리는데 주저함이 없어 보입니다. 과학과 자본은 어떻게 쓰이나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으니까요. 도시 주변을 걸으면서 시인의 눈으로 보는 사람살이를 잠깐 생각햐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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