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사색하는 책 읽기 1

D-29
저도 @Dalmoon 님처럼 아버지가 9년 전에 돌아가셨요. 지금도 겨울을 제외하고 계절마다, 1년에 한 번씩 가는데요, 아버지의 부재는 여전히 슬픕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눈물이 수도꼭지 터지듯이 나오지는 않거든요. 제 경험으로 누군가 비슷한 슬픔을 겪는 사람을 위로하기도 하고, 유년 시절의 추억이 더 새록해지고, 기일이면 가족들과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웃으면서 나눠요. 그럼에도 어느 순간 문득 아버지의 부재가 느껴지는 때가 오면 울컥합니다. 가끔 느닷없이 찾아오는 그 진한 슬픔이 반갑기도 하고요.
'반가운 슬픔'이라는 표현이 참 인상 깊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면서도 가슴이 아려오네요.
슬픔은 사라지지 않고 맘 속 어딘가 있다가 문득, 울컥하고 나오는 걸까 싶기도 하네요.
말씀하신 문장을 읽고 이 책을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시간은 아무것도 사라지게 만들지 못한다. 시간은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는 예민함만을 차츰 사라지게 할 뿐이다." 흔히들 '시간이 약이다'라며 큰 슬픔이나 어려움을 견디라고 말합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라 생각하는데, 저는 사실 이 말이 탐탁지 않습니다. 해결되지 않고 덮어버리는 느낌때문이었는데, 롤랑 바르트의 이 표현이 제게 탁 와 닿았습니다. 이미 벌어진 슬픔의 원인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죽음이라면 더욱 그러하겠죠. 하지만, 그 슬픔에 대한 나의 반응이 시간이 흘러 무뎌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 봅니다. 그러기에 슬픔 속에서도 살아남은 인간은 또 남은 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겠죠.
그렇죠. 슬픔의 원인, 여기서는 죽음이 없어지지 않는데 슬픔이 없어질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말씀대로 무뎌지는 거라 표현할 수 있을 거 같네요.
글을 단 분들이 부모를 잃으신 분들이라 덧글을 달기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저는 외국살이에서 부모님만큼 의지했던 지인을 6년 전에, 제가 우윳병 줘가며 키웠던 반려묘를 2년 전에 잃었어요. 둘을 잃은 직후에는 잠도 오지 않고, 밥도 넘어가지 않고, 무기력해지고 세상 사는 재미를 다 잃은 느낌이었어요. 그 상실감과 슬픔은 제가 책에서 경험한 것돠는 다른 차원의 것이었더라구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을 떠올리는 빈도가 점점 줄어들었어요. 그들을 잃은게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제는 그 당시만큼 예민하게 떠올리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올려주신 문장에 크게 공감가서 저도 밑줄 그어놓았어요.
그들을 잃은 게 슬프지 않은 건 아니다. 여전히 슬프다. 이게 바르트와 같은 경험일 거 같습니다.
내 슬픔은 삶을 새로 꾸미지 못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내 슬픔은 사랑의 끈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사랑의 단어들이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아주 자명해진 내 슬픔의 이유......
애도 일기 (리커버 에디션) 1977.11.6,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이 구절을 발췌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 경우는 읽으면서 바르트와 마망의 관계는 좀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사랑,이라는 관계가 확실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이 구절이 납득이 되었습니다. 통상 부모의 죽음이 상실의 슬픔을 가져오겠지만 그 슬픔이 반드시 사랑의 상실에 기인하는 건 아닌 것도 같은데 바르트는 틀림없이 사랑을 잃었다고 생각이 되네요.
바르트와 그의 어머니는 특별한 관계였던 만큼 사랑의 말을 서로 자주 했겠지만, 전 반대의 이유에서 이 문장이 인상 깊었습니다. 상실의 슬픔 이후 사랑한다는 말을, 사랑의 단어들을 제대로 전달한 적이 없었다는 자책과 후회가 저를 많이 괴롭혔었고, 그 이유로 많이 슬펐으니까요.
아 충분히 공감되는 이유입니다.. 마음을 충분히 전달하면 좋을 텐데 그게 쉽지는 않은 거 같습니다. 바르트는 정말 충분히 전달했을 거 같은데, 꽤 드문 경우인 거 같아요. 아버지의 부재가 모자 관계를 특별하게 한 건가 하기도 합니다.. ㅎ
화제로 지정된 대화
안녕하세요~ 함께 나누고 싶은 두 번째 주제를 올려봅니다. 문장수집에 발췌한 1978. 6. 13 자와 다른 몇 곳에서 바르트는 어머니의 사진 한 장을 언급합니다. 해설에서도 언급되고 널리 알려져있듯이, 어머니에 대한 또 하나의 애도의 기록인 <밝은 방>에서 다루어지는 사진입니다. 여러분에게도 바르트의 어머니 사진처럼, 여러분을 사로잡은 애도의 순간 혹은 대상이 있으신가요?
지금도 가지고 있는 사진인데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함께 사진첩을 보다가 아버지의 돌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미 그 전에 본 사진이지만, 이제는 (물리적)으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버지의 돌사진은 저에게 이전과는 다른 기분을 느끼게 하더군요. 아버지도 누군가의 아들이고, 유년 시절이 있었고, 시대적으로 나보다 더 힘든 세월을 거쳐 부모가 되고 늙었으며, 이제는 이름과 기억만이 남은 존재가 되었음을 새삼스레 인식한 순간이었습니다.
바르트에게도 그랬지만 사진은 정말 마음을 찌르는 뭔가가 있는 거 같습니다. 아버지의 돌사진이라니 말씀대로 많은 생각이 나셨겠습니다. 제 경우도 아버지가 세상을 뜨셨는데 돌아가시고 나서는 아버지의 앨범을 보지 못했습니다. 어떤 기분이 될지 모르겠네요... 조만간 앨범으로 아버지를 찾아뵈어야겠습니다...
저는 지난번 답글에 언급했던 친언니같던 지인이 세상을 떠난 후에 함께 찍었던 사진들을 모두 없앴어요. 곁에 두는 게 정말 몸서리쳐지도록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 몇해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언니의 모습이 기억나지 않아요. 작년까지는 목소리가 기억났었는데, 이젠 목소리도 기억나지 않구요. 함께 갔던 와이너리에서 환하게 웃던 모습을 찍은 사진이 제 머리속에서 대충은 그려지는데, 세세하게 기억나지 않아서 안타까워요. ㅠㅠ
처음에 사진을 없애신 이유와 나중에 후회하시는 게 다 이해가 되네요. 이 책을 읽으면서 각자의 애도의 순간을 되짚어보게 되는 거 같습니다. 잘 헤어지는 법을 고민해 보게 됩니다.
오늘 아침 너무 힘든 걸 참으면서 마망의 사진들을 다시 들여다보다. 그러다가 사진 한 장에 완전히 사로잡히다. 필립 벵제 곁에 서 있는, 온화하고 수줍어하는 작은 소녀 모습(1898년 셴비에르의 겨울 정원). 울고 말다. 이건 결코 자살 충동이 아니다.
애도 일기 (리커버 에디션) p.154,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저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꽤 지났습니다. 처음엔 사진만 보면 눈물이나다가 지금은 가끔 사진을 보고 가족들이랑 추억을 얘기하고 사진이 찍힌 곳에 가서 비슷하게 사진도 찍고는 합니다.
말씀대로 사진은 상실의 느낌을 더하게도 하고 덜하게도 하는 거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렇게 무거운 마음을 견딜 수 있는 건, 그 무거운 마음을 어느 정도는 (완전히 성공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닌 채로) 입으로 발설하고, 문장들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악귀를 추방하는 능력, 이 통합의 힘을 내게 부여하는 건 그동안 내가 쌓아 온 교양, 글쓰기에 대한 나의 즐거움이다: 나는 통합한다, 언어를 수행하면서.
애도 일기 (리커버 에디션) p.185,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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