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북탐독] 1. 속도의 안내자⭐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

D-29
어렸을 때부터 여러가지 특이한 경험을 많이 하면서 살았어요. 가끔 친구들이 너의 이야기는 드라마로 만들면 사람들이 에이~ 어떻게 저런 일이 한 사람한테 일어나? 하면서 작가가 너무했네! 라고 할 거라는 말을 종종 할 정도에요. 그런데, 그 많은 사건 사고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게 유독 짙게 남아 있는 기억은 작은 이모부와 함께 했던 여름방학의 오후에요. 장녀인 친정어머니덕에 저는 이모들이 꽤 여러명 있는데, 그 중에서 작은 이모는 제일 먼 사이였지만 작은 이모부는 제가 가장 좋아하고 잘 따르던 어른이였어요. 유연한 사고를 가진 분이기도 했고, 다양한 경험을 했던 분이라 항상 이야기거리가 풍부했고, 첫조카인 저를 꽤나 예뻐해주셨던 분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일찍 돌아가신 탓에 제가 나쁜 기억을 가질만한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1학년 여름방학때 바쁘신 맞벌이 부모님이 작은이모네집에 저를 일주일정도 보냈었는데, 정말 매일이 방학 그 자체였어요. 학원 뺑뺑이를 돌지 않아도 되었고, 여치며 곤충채집숙제를 도와준다고 들로 뒷산으로 저를 데리고 다니며 함께 곤충채집도 해주셨었고, 옥수수를 어떻게 따서 찌는 건지도 배운 날이었고, 옥상에서 맛있는 고기를 구워 저녁밥을 챙겨주기도 하셨었죠. 주저리 주저리 길게 써봐도 그 날의 그 기억은 어째 제대로 전달이 안되네요. ^^;
부모님의 이혼으로 멘탈이 흔들렸을 고3 때의 기억이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전혀 기억에 없는 것이 그 우울했던 감정과 정서만 남아서 저의 삶의 변곡점이 된 것 같습니다. 대학시절 고향을 벗어나 나혼자 스스로 뭔가 성취해내가면서 성격도 바뀌었는데요.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의 우울하고 힘들었던 마음은 여전히 끄집어 내기 싫지만 잊혀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위에 말했던 갇혀 있는 과거가 절대 잊을 수 없는 제 인생의 챕터입니다. 다 성인이 돼서 있었던 일인데다, 아주 평탄한 어린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저에겐 어렸을 때부터 응어리진 감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기억이라는 것이 다 정확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같은 사건이라도 내가 기억하는 것과 또 다른 사람이 기억하는 것이 다르니까요. 그래서 좋은 기억이라면 모르겠지만 나쁜 기억들에 얽매여 살아가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되네요.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두 번째 질문은 작가님께 드리려고 해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인데 평소 인물을 그릴 때 어떤 부분에 신경을 쓰시는지요? 또 <속도의 안내자>에서 특별히 공을 들인 인물이나 마음에 남아 있는 인물이 있다면 누구인지 궁금합니다.(모두 궁금하시죠....?)
소설을 쓸 때 저는 먼저 저를 봅니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 나라면 어떤 감정을 느낄까 하고요. 일단 보편적인 인간이 느끼는 감정에 집중하고 그리려는 인물에 특수성을 입힙니다. 환경과 성격, 살아온 배경(부모와 형제 등 가족이나 친구)과 지식과 현재 인물이 가진 문제를 되짚어 보죠. <속도의 안내자>에서 가장 공들은 인물은 당연히 주 화자인 채윤입니다. 소설 속 채윤은 초반에 세상에 대한 희망이 별로 없습니다. 조금만 읽으시면 알겠지만 가족의 부재나 현재 삶의 고단함이 가장 큰 이유였죠. 채윤 말고도 공을 들인 사람은 한성태와 채윤의 고모 명은주였습니다. 두 인물 모두 과거에는 큰 꿈이 있었지만, 현실에 이용 당하고 꺾인 인물이죠. 하지만 둘은 포기하지 현생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안타깝고, 어떤 의미에서 응원하며 그렸습니다. 작가로서 그들의 삶을 여전히 응원합니다.
속도의 안내자 순식간에 책장이 훅훅 넘어가네요!
본인의 바람보다 포기를 먼저 해야 가족이 평온하다는 걸 아이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주산과 부기를 배우며 미래의 어느 날 대학생이 될 자신의 모습을 기약했다. 어느 새 집안일은 고등학생이 된 아이의 차지가 되었다.
속도의 안내자 p.136, 이정연
학교를 다니면서 시골집을 돌보는 생활은 그야말로 정신없었다. 반항을 하고, 꿈을 꾸는 사춘기는 시간이 없는 아이에게 찾아올 겨를이 없었다.
속도의 안내자 p.136, 이정연
고마운 사람들인데 자꾸 서운해지고, 자신을 뺀 가족들의 모습이 훨씬 안정되어 보이는,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인데도 가슴이 싸늘해지는 일이 많아졌다. 죽은 엄마나 아이를 버리고 나간 아빠처럼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 혼자 남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차츰 고개를 들었다.
속도의 안내자 p.136, 이정연
명은주편을 읽으면서 어릴때 입었던 채울수 없는 결핍이나 마음의 상처를 되돌리고 치유하고 싶은 욕망이 이런 약을 만드는걸로 이끈건 아닐까 싶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자신의 필요성을 증명해야만 한 귀퉁이에 끼일수 있다는게 슬프고 안타까웠습니다. 명은주 만의 이야기가 아닌 일반 가족에서도 비슷한 역할을 떠맡는 경우가 있을것 같습니다. 맞벌이 가정의 장녀나 장남들이 어른의 역할을 떠맡아 동생을 돌보며 어릴때부터 어른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그렇지 않을까 싶어집니다. 자신의 삶의 에너지를 갈아서 유능감과 성취와 성공을 위해 달린다고 하여도 멈추거나 내려오는 지점에서 신약처럼 더 급속히 늙어버리진 않을까 싶어집니다. 요즘의 멀쩡한 직장인들의 번아웃도 비슷한것 같습니다. 저역시 누군가가 인정을 해주어야 나의 존재가 여기 있어도 괜찮을것 같다라는 생각과 무엇인가 잘못되어있다면 그건 결국 내탓이 아닐까 내가 더 제대로 했어야 하는건 아닐까 싶어지는 순간들이 계속 되풀이 될때가 있습니다. 어릴 때 엄마의 과한기대와 신경질적인 질책 속에서 시작되어 그 이후로 제 내면에서 계속 스스로에게 합니다. 실제로는 저의 완전무결한 따스한 엄마라는 환상의 기대도 포함되어.. 일반적인 훈육에서도 과하게 상처받은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과한 기대로 상처를 주고 받는 관계들이 어쩌면 저의 삶에서 계속 반복되는것 같습니다. 삶의 유한함을 받아들이듯 서로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며 살아갈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나에게 완전함을 바라지 않고 다정히 대할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장녀로 태어나 @나무색 님이 말씀하시는 부분이 무엇인지 대강 알고 있어요. 알게 모르게 그런 생각이 글에서 나오고 있고요. 명은주도 저의 어떤 부분을 넣어 만든 인물입니다. 인정의 욕구는 비단 현대가 아니라도 인간에게 있는 본연의 욕망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약간 곁가지 이야기인지도 모르지만 명은주의 어린 시절이 참 잘 묘사되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학대를 받는다고까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눈칫밥을 먹으면서 궂은일을 도맡아야 하고, 그럼에도 이기적인 욕망과 고까움을 속으로 품고 있는 어린 소녀의 마음이 아주 잘 다가왔습니다. 큰아버지 부부도 쉽게 비난할 수 없는 인물들이었고, 사촌오빠도 인성이 좋은 사람인데 명은주에게 오히려 부담이 되는 관계 같은 게 현실적이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어요. 채연이 명은주와 똑같은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는 게 참 안타깝고 아이러니했습니다. 명은주에게 실제 작가님의 모습이 반영되었다는 말씀을 들으니 기분이 묘하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독자들도 잘 따라가면서 읽으면 좋겠네요. 소설에서도 그렇지만 실제 삶에서 완벽한 악인도 선인도 없다는 게 평소 생각입니다. 큰아버지 부부도, 고모인 명은주도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거나 그런 운명으로 이끌어갈 운명인 처지였지요. 그래서 명은주의 모습은 저이기도 하고, 주변의 많은 사람의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저는 첫 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이 정말 싫어요. 내 삶이 아닌 다른 가족을 위해 나를 희생함으로써 내 존재감과 필요성을 인정받게 되니까요. 나이가 들면서, 이 말이 얼마나 가혹한 가스라이팅인지 알게 되더라고요.
맞아요. 가스라이팅은 성적이거나 갑질에만 국한된 게 아니에요. 장녀니까, 신입사원이니까, 여자니까, 남자니까, 어리니까, 경험이 많으니까. 그런데 그걸 뛰어넘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말이죠. 생각해보니 저도 종종 들었고, 그게 참 안 좋게 작용했던 것 같네요.
가스라이팅의 정의에 딱 부합하는 단어인 거 같습니다.
첫 딸은 살림 밑천이라고 쉽게들 하는 그 말이 정말 얼마나 가혹한 가스라이팅이냐는 연약마녀님의 글에 너무 공감가요. 그런 사회적인 가스라이팅이 유독 한국 사회에 많이 존재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여자여서...남자여서...첫딸이어서, 첫아들이어서...이렇게 내게는 선택지가 없었던 것에 대해서도 사회적으로 기대하는 모습이 있는데, 그것들 또한 사회적인 가스라이팅이지 싶어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일요일 오후를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도수가 낮은 술과 함께 보내다가 <속도의 안내자> 5장 '시간을 거슬러'를 이야기하려고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알코올 냄새가... 날까요?ㅎㅎ) 5장은 승원의 신약을 둘러싼 양상이 보폭을 넓혀 나아가는 챕터였습니다. "분명한 건 수취인들이 달라졌고, 승원의 전략이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거였다."(158쪽) 그래서 '채윤'이 이전의 임상실험자뿐만 아니라 "서초동의 고급 아파트"(159쪽)과 같은 곳을 찾아가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또 이전의 임상실험자들은 과격해졌죠. "약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점점 미쳐 가고"(167쪽) 있고, 그것은 '채윤'에게 신체적 폭력으로 체감되기도 합니다. 뉴스에서는 "중국의 한 제약사가 노인을 대상으로 노화방지제를 개발했으며, 두 달 뒤에 판매할 예정이라는 소식"(170쪽)이 전해지고, 사라졌던 '태경'이 '채윤' 앞에 나타나서는 알바를 그만 두지 않는다면 '채윤'이 실종될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남기기도 합니다.
일요일 오후에 도수가 낮은 술이라니, 알코올 냄새라기보다는 느긋하고 편안한 오후가 떠올라 기분이 좋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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