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연 작가님께 질문이 있습니다. 『속도의 안내자』를 읽는 독자들은 작가님의 마사회 근무 경력을 의식하게 되는데, 그게 좀 답답하게 느껴지지는 않으신가요? ‘이 작가의 전직이 이러하기 때문에 이렇게 썼다, 이 부분 묘사가 자세한 것은 전직 때문일 것이다’라는 식으로 반응이 너무 고정되지 않나 해서요.
콩콩
말씀하신 것처럼 독자가 본다면 안타깝지만, 많은 경우 직접 경험은 쓰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줘요. 소설은 완벽한 현실의 재현은 아니기에 아무리 경험이 바탕이 되더라도 상상(허구)가 같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속도의 안내자>를 예로 든다면 도핑검사소 아르바이트생은 남녀가 모두 있지만, 제가 집필할 당시 소변을 받는 아르바이트는 신체적인 위험이 있어 남자 아르바이트생만 고용했어요. 거기에 제 상상력을 보태서 여자 채변 아르바이트생을 그렸고요. 전직이 없었고, 그것을 인터뷰하고 관련한 지식이 없었다면 허구를 써나가는 것도 힘들었을 거예요. 순발력과 말이라는 동물을 잘 알고 있다면 여자 아르바이트생도 가능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고정보다는 확장할 수 있어 전직이나 경험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시상식 전에 한 인터뷰였어요. 이렇게 회자될 줄 알았다면 좀 더 쉽고, 유쾌하게 할 그랬어요.
jegomoth
삶과 밀착해야 오래 쓸 수 있을 것 같다, 어디에 생각이 머물면 그걸 기반으로 창작을 확장할 것이다라는 말씀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속도의 안내자"도 삶과 밀착한 묘사들이 돋보이고 이야기의 기반이 되는 작가의 고민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콩콩
저는 소설의 사건과 인물을 첫 번째로 저와 제 주변에서 찾기에 그런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실제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사건과 작가로서 허구가 버무러져서 이야기를 확장하고요.
안슈씨
“ 배달을 가면 몇몇은 겁에 질려 있기도 했지만, 거의 채윤을 반겼다. 그리고 채윤이 가져온 배달품을 품에 소중히 안았다. 배달지는 아파트나 오피스텔, 배인상이 사는 시골집 같은 곳도 있었으나 한성태가 사는 주택보 다 못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
『속도의 안내자』 p. 86, 이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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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슈씨
“ 늙는 것을 고민할 나이도 아니지만, 젊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살지 않았다. 그래서 젊음과 늙지 않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고,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돌리고 싶지 않은 젊음, 돌려봤자 아프기만 한 과거. ”
『속도의 안내자』 p. 88, 이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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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맥주
@이정연 작가님께 한 가지 더 질문이 있습니다.
최근에 발간된 소설집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에 수록된 「등대」도 잘 읽었습니다. 다른 수록작들과 달리 장르물의 분위기가 담겨 있고 범죄의 기운과 서스펜스가 감돈다는 점이 특이했습니다. 혹시 평소 스릴러 소설을 비롯한 장르소설에 애정이 있으신가요? 이런 서스펜스를 좋아하시는지요? 나중에 본격 서스펜스/스릴러 소설을 쓰실 의향도 있으신 지 궁금합니다.
김하율
저도 요즘에 이 장르에 관심이 많이 가서 답글을 안 달 수가 없네요 ㅎㅎ 저는 사회파 미스테리를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 미미여사의 화차가 전형적으로 잘 쓴 작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이런 추리물들은 확실히 시대적 흐름을 타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좀 낡은 느낌이 아무래도 더 든다고 할까요. 탐문하는 방식도 그렇고 씨씨티비와 핸드폰의 도입은 그 이전과 이 이후의 시대로 나뉘는 거 같습니다. 추리소설작가들이 제일 싫어하는게 씨씨티비라고 하던데요.ㅎㅎ
얼마 전 읽은 추리장르 소설에서 작가가 핸드폰 열쇠고리에 도청장치를 심어놓은 부분을 어떤 독자가 이렇게 지적하는 걸 보았는데요. 작가님, 그건 앱 하나만 깔면 끝이에요. 왜 이런 구닥다리 장치를?
어렵습니다 ^^;
콩콩
맞아요. 시대에 따라 어떤 장치가 아주 예전 것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죠. 하여 작가가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그리는지 생각해 그 장치를 같이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CCTV나 도청 장치도 때에 따라서 맞거나 아니면 허술한 장치가 되어버리니까요. 그것도 작가의 고민 중 하나라 정말 어렵네요.
장맥주
이제 경찰을 주인공으로 삼으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요. 과학수사 기법이 발달해서 추리라는 게 의미가 있나 싶어서요.
콩콩
그런 이유로 요즘 회귀 드라마, 소설이 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종종 해요. 연락이 안 되고, 과학은 그만큼 안 따라가고. 재미 있는 건 기술이 없을 수록 사람이 하는 것이 늘어나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지는 아이러니가 있죠.
장맥주
일리 있는 분석이네요. 만들기도 해결하기도 간편한 역경이니까요. 저는 회귀물이나 빙의물은 잘 몰입하기가 어려운데, 그런 역경 만들기가 너무 안이하게 느껴져서 그런 거 같아요. 그 와중에 환생물은 거부감이 덜한 건 왜 그런지 모르겠네요. 환생이라는 개념은 보다 오래 되어서 그럴까요.
콩콩
환생은 아무래도 더 힘든 것이라, 그러니까 우주의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와 같은 개념으로 그냥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는 게 아닐까요. 저는 어릴 때 '스타워즈'를 보며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이해해버렸던(?) 것 같아요.
새벽서가
오호! 비슷한 감정을 갖고 계시다니 놀라워요. 저도 빙의물은 귀신이라던가, 빙의, 굿, 이런 것들에 공감이 안되어서인지 이번에 ‘파묘‘라는 영화를 보면서도 이건 뭐지? 라는 생각밖에 안드는거에요! 그런데, 전 윤회라는 건 믿어요. 온집안 식구가 100년 가까이 천주교 신자이지만 한 분, 어머니은 불교신자시고 어릴 때부터 성당보다는 절에 갈 때 더 편안한 느낌을 갖기도 하고 사람이 한 번만 살고 말지는 않을거라는 묘한 믿음(?)도 있어요. ^^;
다음 생애엔 그늘을 크게 만들 수 있는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는 희망을 갖고 있어서일지도 모르겠어요.
소설쓰는지영입니다
@김하율 휴대폰만 해도 쓰지 않는 기능이 더 많은데 계속 뭔가 더 업그레이드 되잖아요. 전 지금도 충분, 아니 넘치는데 말이죠. 근데 제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른 체로 지내기엔 소설을 쓰는 입장에선 알아야 하고... 저도 정말이지 어렵습니다.
콩콩
앗, @장맥주 님. 어떻게 아셨어요? 실은 요즘 부쩍 스릴러나 범죄 장르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본격'까지는 아니지만 다음에 발간할 소설도 심리 스릴러를 표방해 쓰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