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딸을 망치는 거다
정치인은 아들보다는 딸과 그 부인 때문에
곤욕을 겪는다.
왜 이렇게 여자들은 아빠 찬스 같은 걸 마구
써먹으려 드는가?
세상을 거저 얻으려는 심보다.
자기의 의지나 주체성보단 그냥 세상 흐름에 맡기는 심리,
이래서 여자들이 아직은 아니란 소리를
계속 듣는 것이다.
자신이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 게 아니라,
남이나 세상 흐름에 그냥 묻혀가려는 노예 근성.
모두 자신들이 자초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 자들은 핑계를 또 잘 댄다.
아주 그럴듯하게 아닌 척을 잘한다.
연기에 도가 텄다.
변명을 늘어놓고 자존심은 상하는지 사과도 잘 안 한다.
부모도 자식한테, 특히 딸에게 쉽게 살도록
그녀의 인생엔 실은 현실적인 도움만 되는 걸
밀어주려고 한다.
그러니 더욱 딸들은 세상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한다.
자기 자식만 잘되면 끝이다.
댄스 댄스 댄스
D-29
Book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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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모든 소설 내용이 현실과 환상 세계를 넘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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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소설에서 주인공은 대부분 평범한 상식을 가진 남자이다. 이런 사람에게 이상한 여자들이 모이고, 이상한 일이 계속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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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인간은 그런 걸 멈추지 않는다, 라고 말한다. 특히 전쟁은 멈추지 않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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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전엔 전쟁을 해도 적이 뚜렸했는데, 지금은 그 적이란 것이 실체가 불분명해 그것을 향해 내가 분노를 표출할 수도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현대가 더 불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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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글을 쓸 수 있는 이유
계속 글을 쓸 수 있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다 보면 새로운 뭔가가
계속 내 머리에 떠오른다.
머리가 열려 있고 말랑말랑해지는 것 같다.
내가 술을 마시고 책과 잠시 담을 쌓으면 도저히
글을 쓸 수 없을 때가 있다.
글에 들어가기가 힘들다.
남의 잘 쓴 글을 보면 도대체 이렇게 쉽게 어떻게
글을 쓸 수 있지,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이제 책과 사색과 글쓰기를 해서 나도
그렇게 계속 글을 생산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마 나는 내 생명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책과 사색과 글쓰기를 놓지 않으면 계속 새로운 게
떠오르고, 더 구체적으로 생각이 정리가
되면서 계속 쓸 수 있을 것 같다.
쓸수록 그 생각이 다듬어지고 더 정교해진다.
그 생각은 더는 장황해지지 않고 단 한 줄로
요약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세계에 빠진 것은 나만 안다.
남은 그 세계로 들어오지 못한다.
책과 글쓰기에 관심이 없으면
내가 있는 이 세계로 들어오지 못한다.
내가 다른 사람의 세계에 들어가서 그 세계를
이해하거나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하고 같다.
나는 글에 대한 세계에 깊이 빠져 있다.
그 세계에서 죽기 전까지 머물 것 같다.
남들은 자기 생각으로 귀촌이 어렵다고 하는데
그건 그들의 세계에서 나를 생각해 그런 것이다.
글의 세계에 빠지면 장소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촌에서도 얼마든지 글의 세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
나는 글의 세계에 있기 때문에 장소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귀촌해서 촌에서도 책의 세계에 머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귀촌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방해 요소를
아예 의식도 안 하고 책으로 귀촌 생활을 너끈히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책의 세계에 빠지면 그렇게 된다.
이건 나의 세계이고, 남의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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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이 나올 때도 되었는데
인간의 보편적인 생각을 글로 표현해야 노벨상을 받는가,
아니면 그 나라 특유의 사건 을 다뤄야 노벨상을 받는가.
지금 우크라이나 사람이나 팔레스타인 사람이 글을 잘 쓰면
그가 노벨상을 받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나저나 한국에서도 이젠 좀 노벨문학상이 하나는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우리는 일본처럼 그 장인 정신이 없어 한류나
국력에 비해 노벨상이 안 나오는 것 같다.
좀 하다가 지쳐 포기한다. 한눈을 팔아 다른 것을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기초나 기반에 대한 것에
투자를 안 한다.
지도자가 그런 것에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젠 그런 지도자가 나와 표시는 안 나지만
매우 중요한 기초나 기반에 대한 투자를
대대적으로 해야 노벨문학상도 승산이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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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기
같은 직장에 다니거나 업계에서 나와 하는 일이
비슷한, 나와 매일 같이 지내고 나를 너무나
잘 아는-그러나 정작 중요한 건 알지 못하는-
그런 사람에겐 내 마음을, 나에 대해 오히려 더
잘 터놓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그에게 내 마음을 터놓으면 다음 날 어색하고
지금까지 고수한 내 캐릭터에 혼선이 생기고
일에서도 내 페이스를 잃을 것 같기 때문이다.
뭔가 그에게 약점을 잡힌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선뜻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 약점을 그는 알고 그의 약점을 나는 모르면 뭔가
균형이 안 맞아 내가 손해 보는 것 같아
지내기가 불편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 구설수, 스캔들, 입방아, 쇼킹뉴스,
남의 안줏거리, 심심풀이 땅콩, 이런 것에
내가 희생양, 타깃이 되기 싫은 것이다.
그들은 괴로운 내 전후 사정을 모르고 그냥
편하게 나를 일반화의 범주 안으로
던져버리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말함으로써 잃는 게, 말하지 않음으로써 잃는 것보다 많다.
“저 인간에게 내가 왜 이러지?” 결국 이렇게 된다.
앞으로 그는 색안경을 쓰고 날 볼 것 같고
그 프레임과 선입견으로 나를 대할 것 같은,
마치 공감이 아닌 동정(Compassion)하는 듯한
시선을-설사 그는 그렇지 않더라도-나는 그걸
견딜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 오히려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
나를 모르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게 솔직히 나에 관해
더 잘 털어놓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는 지금 나와 엮인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걸 터놓아도 나중에 만나도 별로 신경 안 쓰고
불편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에게 자기에 대해
더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것 같다.
좀 실수해도 뒤끝이나 뒷담화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후사에 마음이 놓이는 것이다.
오히려 매일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에겐 덜 중요하고
심각하지 않고 얕은 대화만 하고
나와 별 상관없는 그 사람과는 내겐
중요하지만 남에게 발설하기 꺼려졌던
그런 것도 털어놓는다.
그에게 나를 다 터놓아도 안심이 된다.
그렇게 되면 내가 지금 혼자 끙끙 앓고 있는 거지만
누구와 꼭 터놓고 이야기했으면 하는 것을 그에게 드디어
터놓았기 때문에 나는 그 순간, 맺혔던 게 뚫리는 것
같고 뭔가 후련해지는 것이다.
상대도 자기에게 중요한 얘기를 해줘 자기를
-얘기 중에 나는 감복(Admiration)해 눈물까지 흘린다-
적어도 가볍기만 한 관계가 아니라
깊은 관계, 믿을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해 준 것에 대해
고맙게 여기며 나를 더 아끼고 나중에라도 그 기억이 그에게서
잘 지워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나도 내 얘기를 들어준 것에 대해 감사하고
그를 다시 만나 더 대화하고 싶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같이 지금 지내는 관계가 이런 점에서 볼 때
서로에게 꼭 필요하고 중요한 관계라고 보는데,
“어때?”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게,
일상을 공유하던 사람과도 이젠 헤어져 서로 이해관계가
줄어들면 나에 대해 이제 그에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터놓고 안 터놓고는 사람이 아니라
내 일상과 그것의 공유가 더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실제 같이 근무하던 사람과 데면데면 지냈다가도
헤어지면 더 친해지고 서로 터놓는 관계로
충분히 발전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신 보기 힘들 것 같은, 그냥 스치는, 내 일상과 거리가 먼,
내 스토리의 이면과 전후 맥락을 모르는 사람에게 더 쉽게
자기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것도
그 후일담에 대한 불안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있더라도 내가 들을 위험이 사라져,
그것으로 관계가 틀어져 이상해질 우려가 사라지기 때문에.
그래서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깊은 대화는
그 위치에선 조심하고 삼가는 것이다.
일이 잘못되면 같은 직원끼리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런 일이 생기기 전에 미리 차단하고 여지가
생기는 걸 사전에 방어하자는 차원이다.
사람보단 그와의 지금 포지션이
나에 대한 이야기에 더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관계는 다 필요한 것 같다.
긴장되고, 할 말 다 못하고, 뭔가 견디고, 항상 미흡해서
찜찜한 관계와 그래 거기서 생기는 경직(Rigidity)과 스트레스를
무람없이 상대에게 거리낌 없이 털어놓고
더는 가벼운 대화 말고 이젠 나에 대해, 아직 못다 한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할 수 있는 관계가.
하나만 있으면 뭔가 생활에 밸런스가 균형을 잃을 것 같다.
그래, 그런 관계를 일부러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긴장과 그것의 해소(Relief)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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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연결
작가는 확실히 특이한 사람들이다.
그의 말을 잘 이해하고 알아듣는 사람이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
그래서 그는 글을 통해 가상으로 자리를 옮겨
현실에서 안 먹히는 자기 생각을 거기서
자신이 가공한 인물들과 나누려고 한다.
자기 말을 알아듣는 그 사람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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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이 다 타성에 젖어 못된 짓을 한다고 해도 내가 그게 싫으면 안 해도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으면 혼자라도 그렇게 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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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컨디션이 엉망이어서 만사가 다 귀찮으면 아무리 잘 쓴 글도 못 쓴 것 같은 느깜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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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믿을 수 없고, 자기 생각이 우선이고, 더 가지려 하는 이런 게 인간의 진짜 본성임을 작가들만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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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해 포기한 것이다. 그녀는 노숙자에게 자기가 산 옷을 덮어주었다. 그렇게나 인간을 믿었다. 너무 순수하게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보이스피싱으로 친구들과 유럽 여행갈 돈을 다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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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집에 오니까 조용해서 너무 좋다. 나는 웅성거리는 인간들의 소음을 듣기가 너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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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식을 더는 못봐주겠다
지금은 접시만 더럽게 크고 포크나 사실
나이프까지 필요 없을 것 같은데 형식은 다 갖췄다.
(작은 채소를 나이프로 잘도 썬다.
접시에 야채가 80% 이상이고, 고기는 그 이하여야
품위가 있는 것이다.
고기만 많이 있는 것도 격 떨어지는 일이다.)
저렇게 양이 적은 음식에 이렇게 무겁고 소리 나는
것들이, “왜 필요하지?”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냥 손으로 집어 먹으면 될 것을.
음식보단 그런 장식이 더 많다.
정작 음식은 새 모이처럼 작고
(이게 작을수록 더 고상해 보이고
먹을 때도 마치 귀찮아 할 수 없이 먹는 것처럼
뜨다가 바로 쨍 소리가 나게 놓고 나가버려야 한다.
절대 맛있게 먹는 것처럼 보이면 안 된다.
없어 보인다.)
다 먹으면 그게 반복된다.
접시 무게가 10이라면 음식 무게는 0.5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다.
뭐가 주이고 뭐가 종인지 모르겠다.
정말 주객이 전도되었다.
이것도 문화라면 문화인데 인간들이 배가 부르면
이런 쓸데없는 것을 문화로 치고 그걸 또
세분화하고 세세하게 자기들만 아는 용어를 만들어 벽을 친다.
이래 명품 가방들도 쓸데없이 비싸기만 한 것이다.
누구는 이런 걸 보고 이래서 한 번 전쟁도
필요한 법이라고 그래야 인간들이 겉치레를 좀 줄이고
기본으로 돌아가고 꼭 필요한 것만 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그 물건의 본래 용도로 돌아가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방이면 가방의 용도대로, 음식이면 음식의 용도대로
음식과 가방 가지고 쓸데없는 짓을, 더는 안 하게.
오늘따라 왜 이렇게 그들의 말이, 되게 와 닿지?
내가 가지지 못하고, 못 해봐서 배가 아파 그러나.
이건 순전히 보여주기식이고 남들에게 과시하고
우린 너희와 달라, 그렇게 무식하고 미련하고
싸 보이는 건 거들떠도 안 본다는 것을 전시하는 것이고
그 문화를 주도하고, 그걸 가지지 못한 인간들은 또
따라하기 바쁘고.
이게 인간들이 사는 세상의 리얼한 모습이다.
그들이 그렇게 가식을 떠는 건
남 기죽이는 게 진짜 목적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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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연결
작가는 확실히 특이한 사람들이다.
그의 말을 잘 이해하고 알아듣는 사람이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
그들의 질문이 너무 원초적이고 근본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가 다루는 글을 통해 가상으로 자리를 옮겨
현실에서 안 먹히는 자기 생각을 거기서
자신이 가공한 인물들과 나누려고 한다.
자기 말을 알아듣는 그 사람들과.
그걸 만들어서라도 그들은 거기서
그걸 맘껏 외치고 싶은 것이다.
그게 너무 중요해서 안 그러면 자기 속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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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취향 존중
누구나 이런 게 있는 것 같다.
한 가지는 있는 것 같다.
내가 뭐를 한다고 하면 듣는 사람은 특히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은 그냥 나를 많은 사람들의
범주에 집어넣으려고 한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만약 여행을 좋아한다고 하면 요즘 코로나 때문에
보복 여행이라고 남들과 똑같이 우르르 여기저기
남 따라서 몰려다니는 거겠지, 하고.
그러나 나는 코로나 이전에도 여행을 해왔지만
그는 그런 것까지 모르고 나를 싸잡아서 많은 사람들과
동일시해 버린다.
물론 그런 취급을 받는 나는 기분이 좋지 않다.
그는 내가 남 따라서 그 보복 여행도 시들해지면
나도 같이 그럴 거라 여긴다.
그러나 나는 본래 기질이 역마살이 끼어 한곳에
정착이 안 되고 그러면 불안증이 일고 바다나 먼 산을
우두커니 초점 잃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런 기질이 있어 그런 것까지 모른다.
물론 나도 요즘 트렌드를 좇아 하는 것도 있다.
그러나 여행만은 아니라고 진짜로 내가 좋아,
아니, 그게 내겐 운명으로 다가와 그렇다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남은 나를 잘 몰라 실수하는 것이다.
나도 남이 뭐를 좋아하면 그를 일반화의 범주에
집어넣는 우를 충분히 범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도 한가지는 안 변하고 그것을
평생 마치 운명처럼 하는 게 있듯이 남도 그런 게
하나쯤은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범주화하는
잘못된 생각을 경계해야 한다.
비유가 아닌 여기서 글을 쓰는 리얼인, 나는
그게 책이고 글이다.
나는 그걸 사람들의 흐름이나 트렌드에 맞게 하는 게 아니다.
내 운명인 것 같다.
나는, 한국 사람 반 이상이 일 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안 읽는 지금
끝없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귀촌하려는 이유는 이게 가장 큰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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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엔 우리나라가 지하철에서 남에게 간섭하며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데 지금은 그것보단 남에게 안 엮으려고 하는 걍향이 더 세지고 있는 것 같다. 이제 그게 한국 사회에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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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남녀 차이
‘나는 솔로’에서 남자는 사회성이 떨어져 자기가
학력이 높다는 것을 자꾸 언급하는데
여자는 학력이 세도 은근슬쩍 그런 말을 피해간다.
남이 그런 것에 거북해하고 위화감을 느낀다는 것을
사회성이 높아 이미 아는 것이다.
여자들이 더 따지면서도 안 그런 척을 더 잘한다.
아빤 찬스를 더 잘 써먹는 것은 딸들이
압도적으로 더 많기 때문이다.
이래서 이렇게 안 그런 척하는 것 같으니까
꼭지가 돈 놈들이 자기 여친에게 데이트 폭력을
일삼는 건지도 모른다.
싫어도 직접적으로 안 하고 상대를 생각한다면서 한다는 게
오히려 그런 것을 잘 모르는 남자들에게는
역효과를 부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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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내시경을 받을 때 마취 주사를 맞으면 바로 잠들어 버린다. 그것도 눈을 뜬 채. 그러는 동안 또 꿈을 꿀 때도 있다. 그럴 때 의사는 마음만 먹으면 그 환자에게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게 끔찍하다. 특히 맘에 드는 여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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