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 댄스 댄스

D-29
인간은 믿을 수 없고, 자기 생각이 우선이고, 더 가지려 하는 이런 게 인간의 진짜 본성임을 작가들만 안다.
인간에 대해 포기한 것이다. 그녀는 노숙자에게 자기가 산 옷을 덮어주었다. 그렇게나 인간을 믿었다. 너무 순수하게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보이스피싱으로 친구들과 유럽 여행갈 돈을 다 날렸다.
아, 집에 오니까 조용해서 너무 좋다. 나는 웅성거리는 인간들의 소음을 듣기가 너무 힘들다.
인간의 가식을 더는 못봐주겠다 지금은 접시만 더럽게 크고 포크나 사실 나이프까지 필요 없을 것 같은데 형식은 다 갖췄다. (작은 채소를 나이프로 잘도 썬다. 접시에 야채가 80% 이상이고, 고기는 그 이하여야 품위가 있는 것이다. 고기만 많이 있는 것도 격 떨어지는 일이다.) 저렇게 양이 적은 음식에 이렇게 무겁고 소리 나는 것들이, “왜 필요하지?”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냥 손으로 집어 먹으면 될 것을. 음식보단 그런 장식이 더 많다. 정작 음식은 새 모이처럼 작고 (이게 작을수록 더 고상해 보이고 먹을 때도 마치 귀찮아 할 수 없이 먹는 것처럼 뜨다가 바로 쨍 소리가 나게 놓고 나가버려야 한다. 절대 맛있게 먹는 것처럼 보이면 안 된다. 없어 보인다.) 다 먹으면 그게 반복된다. 접시 무게가 10이라면 음식 무게는 0.5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다. 뭐가 주이고 뭐가 종인지 모르겠다. 정말 주객이 전도되었다. 이것도 문화라면 문화인데 인간들이 배가 부르면 이런 쓸데없는 것을 문화로 치고 그걸 또 세분화하고 세세하게 자기들만 아는 용어를 만들어 벽을 친다. 이래 명품 가방들도 쓸데없이 비싸기만 한 것이다. 누구는 이런 걸 보고 이래서 한 번 전쟁도 필요한 법이라고 그래야 인간들이 겉치레를 좀 줄이고 기본으로 돌아가고 꼭 필요한 것만 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그 물건의 본래 용도로 돌아가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방이면 가방의 용도대로, 음식이면 음식의 용도대로 음식과 가방 가지고 쓸데없는 짓을, 더는 안 하게. 오늘따라 왜 이렇게 그들의 말이, 되게 와 닿지? 내가 가지지 못하고, 못 해봐서 배가 아파 그러나. 이건 순전히 보여주기식이고 남들에게 과시하고 우린 너희와 달라, 그렇게 무식하고 미련하고 싸 보이는 건 거들떠도 안 본다는 것을 전시하는 것이고 그 문화를 주도하고, 그걸 가지지 못한 인간들은 또 따라하기 바쁘고. 이게 인간들이 사는 세상의 리얼한 모습이다. 그들이 그렇게 가식을 떠는 건 남 기죽이는 게 진짜 목적인지도 모른다.
작가의 연결 작가는 확실히 특이한 사람들이다. 그의 말을 잘 이해하고 알아듣는 사람이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 그들의 질문이 너무 원초적이고 근본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가 다루는 글을 통해 가상으로 자리를 옮겨 현실에서 안 먹히는 자기 생각을 거기서 자신이 가공한 인물들과 나누려고 한다. 자기 말을 알아듣는 그 사람들과. 그걸 만들어서라도 그들은 거기서 그걸 맘껏 외치고 싶은 것이다. 그게 너무 중요해서 안 그러면 자기 속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기 때문이다.
남의 취향 존중 누구나 이런 게 있는 것 같다. 한 가지는 있는 것 같다. 내가 뭐를 한다고 하면 듣는 사람은 특히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은 그냥 나를 많은 사람들의 범주에 집어넣으려고 한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만약 여행을 좋아한다고 하면 요즘 코로나 때문에 보복 여행이라고 남들과 똑같이 우르르 여기저기 남 따라서 몰려다니는 거겠지, 하고. 그러나 나는 코로나 이전에도 여행을 해왔지만 그는 그런 것까지 모르고 나를 싸잡아서 많은 사람들과 동일시해 버린다. 물론 그런 취급을 받는 나는 기분이 좋지 않다. 그는 내가 남 따라서 그 보복 여행도 시들해지면 나도 같이 그럴 거라 여긴다. 그러나 나는 본래 기질이 역마살이 끼어 한곳에 정착이 안 되고 그러면 불안증이 일고 바다나 먼 산을 우두커니 초점 잃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런 기질이 있어 그런 것까지 모른다. 물론 나도 요즘 트렌드를 좇아 하는 것도 있다. 그러나 여행만은 아니라고 진짜로 내가 좋아, 아니, 그게 내겐 운명으로 다가와 그렇다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남은 나를 잘 몰라 실수하는 것이다. 나도 남이 뭐를 좋아하면 그를 일반화의 범주에 집어넣는 우를 충분히 범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도 한가지는 안 변하고 그것을 평생 마치 운명처럼 하는 게 있듯이 남도 그런 게 하나쯤은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범주화하는 잘못된 생각을 경계해야 한다. 비유가 아닌 여기서 글을 쓰는 리얼인, 나는 그게 책이고 글이다. 나는 그걸 사람들의 흐름이나 트렌드에 맞게 하는 게 아니다. 내 운명인 것 같다. 나는, 한국 사람 반 이상이 일 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안 읽는 지금 끝없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귀촌하려는 이유는 이게 가장 큰 이유이다.
전엔 우리나라가 지하철에서 남에게 간섭하며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데 지금은 그것보단 남에게 안 엮으려고 하는 걍향이 더 세지고 있는 것 같다. 이제 그게 한국 사회에 자리를 잡았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남녀 차이 ‘나는 솔로’에서 남자는 사회성이 떨어져 자기가 학력이 높다는 것을 자꾸 언급하는데 여자는 학력이 세도 은근슬쩍 그런 말을 피해간다. 남이 그런 것에 거북해하고 위화감을 느낀다는 것을 사회성이 높아 이미 아는 것이다. 여자들이 더 따지면서도 안 그런 척을 더 잘한다. 아빤 찬스를 더 잘 써먹는 것은 딸들이 압도적으로 더 많기 때문이다. 이래서 이렇게 안 그런 척하는 것 같으니까 꼭지가 돈 놈들이 자기 여친에게 데이트 폭력을 일삼는 건지도 모른다. 싫어도 직접적으로 안 하고 상대를 생각한다면서 한다는 게 오히려 그런 것을 잘 모르는 남자들에게는 역효과를 부른 것이다.
수면 내시경을 받을 때 마취 주사를 맞으면 바로 잠들어 버린다. 그것도 눈을 뜬 채. 그러는 동안 또 꿈을 꿀 때도 있다. 그럴 때 의사는 마음만 먹으면 그 환자에게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게 끔찍하다. 특히 맘에 드는 여자에게.
계집녀 자가 들어간 한자엔 안 좋는 뜻이 많다. 이거 왜 그렇지? 남자들이 여자들을 잡으려고 해서 그러나. 남자 일을 망치는 주범이라서.
돈을 벌려고 자기 정체성을 훼손하면서 트로트로 전향하는 인간들의 말을 들어선 안 된다. 예술을 훼손하는 행위다. 이들이 떠드는 것은 다 개소리에 불과하다. 결국 예술을 팔아 돈을 벌려는 수작이다.
나는 왜 여자에게 관심이 많으니 모르겠다. 하긴 이성에게 관심이 많은 것은 당연한 거고 오히려 없으면 외모에서 티가 난다고 한다. 마무래도 이성에게 관심이 사라지지 않아야 외모가 더 좋게 보일 게 분명하다. 외모에 신경을 써서 그럴 것이다. 그런데 도시에 살던 여자는 시골에 가서 살기 남자보다 더 힘들다고 한다. 아마도 남자보다 불편하고 위험하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어 그럴 것이다.
나는 글을 쉽게 쓰려 한다 나는 쓰면 사람들이 읽고 바로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는 그런 글을 쓰려고 한다. 괜히 각 잡고 있어 보이는 그런 글은 안 쓰려고 한다. 내 글이 길면 에세이이고 짧으면 시인 것이다. 시를 나 혼자만 아는 내용으로 쓰지 않으려 한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자기 혼자만의 생각만 쓰는, 그런 거는 가능하면 안 쓰려고 한다. 바로 읽고 무슨 말인지 아는 시만 쓰려고 한다. 그리고 갑자기 비약하는 시도 안 쓰련다. 내 시는, 내용을 보고 바로 아는 그런 걸 쓸 것이다.
인간은 역시 자기 위주다. 이런 건 대놓고 연론 같은 데서 말을 못한다. 어도어 민히진이 뭔가 안 되어 자기의 지금 심정을 마구잡이, 날 것 그대로 터놓으니까 같은 여자들이 공간하고 인기를 끄는 것이다. 그 민희진이 이제 그런 고비를 지나 자리를 잡고 뭔가 해결된 기자회견을 하고 성숙된 모습을 보이면 여자들이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지금 뭔가 잘 안되는 노력은 했는데 성과과 없는 그런 기존 질서에 울분을 토하면서 폭로하니까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지금 자기 입장을 내변하는 것에 관심을 보일 뿐이다. 남자는 같은 여자에게, 약한 존재라고 비난하면 자기의 입지가 추락해 하지 못한다. 그래 김호중이 돈만 아는 방송에서 돈만 좆다가 남자로서 사고를 치니 벌떼처럼 그동안 쌓인 자기의 지꺼기 감정을 거기에 퍼붓는 것이다. 다른 건 거기에 없다.
살며 내가 추구하는 것들(작가의 말) 살며 내가 추구하는 거로 작가의 말을 대신하고자 한다. 나는 공자나 맹자처럼 현실 철학자보단 그것을 한 단계 넘어서는 걸 주장한 철학자들을 섬기고 따른다. 노자처럼 무위자연(無爲自然), 인간은 우주의 큰 흐름에 맡기며 사는 게 제일인 것 같다. 인간이 감히, 그 큰 변화를 틀면 인간과 지구에 변고가 생기기 때문이다. 다른 건 전부 자연법칙에 따라 죽는데 뭐 잘한 게 있다고 인간만 의학이 발달해 왜 그렇게 오래 사나. 늙을수록 점점 기분이 안 좋아지고 자고 일어나도 옛날처럼 개운하지 않고 피곤만 누적된다. 이게 다 자연법칙에 따라 죽을 때가 되었다는 신호다. 이제, 그만 저세상으로 가라는 것이다. 솔직히, 여기서 생명 존중은 없고 마치 고무줄처럼 돈 받은 만큼만 생명을 늘려준 서비스를 받은 것이다. 이걸 어기니 기후 위기 같은 이상한 일이 자꾸 발생하는 거다. 자연의 부적용이고 노여움이다. 요즘엔 너무 오래 사는 늙은이들을 환영하는 곳이 어디 한 군데라도 있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그래 나는 이걸 실천하러 119에 실려 가 연명(延命)이 안 되려고 자연에 따라 좋아하는 독서를 하며 죽는 게 소원이라 시골로 정년이 되면 내려갈 생각이다. 자연에 따라 좋아하는 것을 하며 잘 죽으러 가는 것이다. 가장 잘 죽는 게 좋아하는 걸 하다 죽는 거라지 않나. 자연에 따라, 나고 자라고 때가 되면 죽는 게 자연의 순리이며, 내가 살며 추구하는 절대 가치다. 좋아하는 것을 하며 자연법칙에 따라 죽을 때가 되면 반드시 죽는 거. 장자처럼 인간 세상에 살면서도 마치 대붕(大鵬)처럼 위로 솟구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이다. 인간인 이상 인간이 추구하는 걸 물론 나도 하면서도 그 위로 올라가 인간에게서 벗어난 것을, 인간 존재이기에 주장하는 것을 넘어서는 것을 추구한다. 인간에게만 묻혀 살면 뭔가 인간이 너무 초라해, 아니, 나 자신이 초라해 견딜 수가 없다. 내 특수한 삶을 일반화의 범주로 편하게 퉁쳐버리고 거기에 매인 인생을 벗어나긴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그래도 몸부림쳐 내 인생의 천편일률적 숨 막힘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걸 안 하면 나는 제대로 살지 못할 것 같다. 나는 기존 질서를 못마땅하게 여겨 그것을 파괴하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생각과 글들을 보고 싶어 한다. 그들은 기존 질서와 체계를 파괴하고 (거기에만 머물러 있으면 그들은 불행하다) 그들에게 맞는 질서를 만들어 거기서 신나게 놀다 저세상으로 가는 것이다. 한 세상, 잘 놀다 간다며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면서 자기만의 세계와 판(Structure)을 구축하는 것이다. 스피노자, 쇼펜하우어, 니체처럼. 인간 세상에서 생겨 바뀌지 않는 것을 찾아내 말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경청하고 싶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자기 위주라는 것, 자기주장(생각)만 중요해 남을 거기에 집어넣으려 한다는 것, 그래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인간은 탐욕을 벗어나기 어려워 더 가지려 한다는 것, 인간에겐 상대적인 결핍이 있어서 자기 집단에서 경쟁해 거기서 각자 지지 않으려고 혈안이라는 것, 자기와 처지가 비슷한 인간끼리만 싸운다는 것, 거기서의 경쟁 심화로 자살도 불사한다는 것. 그들은 인간 세상에 있는 인간이지만 거기서 벗어나려고 노력해 아주 냉정하고, 시야를 넓고 높게 보는 사람들이다. 거기서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도 자연의 한 변화의 일부에 지나지 않고 인간 중심적인 사고는 자기 멋대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거다. 자연은 그런 인간의 생각과 무관하게 아주 묵묵히 제 갈 길을 갈 뿐이다.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회의(Skepticism)한다. 리얼리즘과 자연 그대로 본다. 하드 보일드하다. 인간이 살며 그래도 이것은 지켜야 하는 거, 간단히 말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추구하고 싶다. 잘난척한다고 비꼬지만 사실 정치적 올바름은 인간이면 추구해야 할 이상이다. 인간의 보편적 진리다. 현실에 충실한 인간으로서, 잘 안 되지만 그것조차 포기하면 인간에게 남는 게 뭔가, 왜 사는지 의문이 들게 된다. 사실 인간에게 의미 빼면 시체다. 인간세계에서 생긴 정신적인 것은 모두 의미를 찾으려는 몸부림의 소산이다. 다양성(다원주의, 多元主義)이 좋은 거고, 어쩔 수 없이 계층이 생기지만 강자가 만든 그런 질서에서 낙오되고 소외된 그렇지만 그 흐름에서만 약자인 이런 사람들의 말을 더 듣고 그들이 추구하는 것을 실현하도록 도와주고 싶다. 같은 인간으로서 너무 한쪽으로 힘이 치우치는 게 싫어 균형을 잡으려는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으려는 것이다. 그들이 이 질서와 체계에서, 강자가 된 건 순전히 우연으로 그렇게 태어난 것뿐이다. 운에 따라 편하게 태어나기도 하고 고되게 태어나기도 한다. 인간이니까 이걸 어느 정도 바로잡겠다는 거다. 인간이 아니면 이런 걸 왜 굳이 하겠나? 이걸 바로 잡으려는 게 인간과 동물의 최대 차이라고 본다. 동물의 세계에서나 존재하는 약육강식이 아닌 가능한 한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인간의 세계. 인간은 상대적인 결핍과 빈곤에 불행해지기 때문이다. 종교든 나라든(무정부주의자, Anarchist) 뭐든 한 인간의 자유로운 영혼을 억압하는 것을 싫어하고 고치려 한다. 모든 기존 틀을 깨고 자유롭게 사고하고 싶은 것이다. 내 자유로운 사고에 방해되는 인간의 기존 OS(Operating System)를 갈아엎고자 한다. 가장 큰 가치는 인간의 자유로운 사고이고 그렇게 되어 자기만의 타고난 기질에 따라 자아를 맘껏 실현하는 거라 보기 때문이다. 이래야 자기 고유의 기질(Disposition)을 실현해 타인에게도 한없이 이타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런 가치들을, 나는 살며 추구한다. 이 외에도 더 많을 것이고, 아직 찾아내지 못한 것도 있고 앞으로도 계속 발굴할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들을! 따라서 이 글은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다.
싫은 사람(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대화에서 남는 건 그들과의 대화에서 내 글감만 얻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자기가 싫어하는 현 상황을 서서히 자기 글에서 망가지게 한다.
글은 지금의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그러니 고치지 말고 그냥 둬라.
내가 어려울 때 위에서 내려다보며 느긋하게 나를 꾸짖던 인간은 후에 다신 안 보려고 하고 같은 동료로서 공감을 해주거나 아예 내 창피한 상황을 모르던 사람은 그래도 상대는 해준다.
어릴 적 추억들 우리 집은 시골 초가집이었고 천장에선 쥐들이 마치 놀이터인양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시끄럽게 굴었다. 여기저기 오줌을 싸서 천장에 지도도 그리고 괴물도 그렸다. 야심한 밤에 천장을 보고 있으면 그 괴물이 내 목을 졸랐고, 특히 병 앓이를 하고 몸이 허약할 땐 허깨비로 보여 까무러치기도 했다. 할머니가 끓여준 개장국을 먹고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설날, 어머니가 해주는 지고추를 넣은 만두를 나는 좋아했다. 머리통을 때리듯 매콤하면서도 배를 채우는 포만감. 잘먹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감자를 채 썰어 고추장에 버무려 밥과 같이 가마솥에 찐 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에 올려 비비면 여기가 바로 맛의 유토피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어머니가 안 계서 이젠 더이상 먹을 수 없지만, 아직도 추억에 잠겨 가끔 입 안에 군침이 돈다. 다신 먹을 수 없다. 초가집은 머금도 있던 바람이 솔솔 스며 나와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흡수했던 온기를 뿜어내 따뜻하다. 구들은 따뜻하고 거기에 바닥이 울퉁불퉁해 누우면 마치 마사지 받는 효과라 등이 시원하다. 짚을 넣은 흙벽돌은 신축성도 일품이다. 습할 땐 습기를 빨아들이고, 건조할 땐 머금었던 물기를 내보내 가습기 역할을 한다. 마치 흙벽돌이 숨을 쉬는 것 같다. 조상들의 지혜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으로 치면 황토집인데, 이렇게 사람과 자연이 일체하는 집에서 생활하면, 자고 일어났을 때 항상 몸이 개운하고 가뿐했던 것 같다. 예전 시골엔 계절마다 즐기는 놀이가 있었다. 추석에 집집마다 돌며 거북이놀이를 했는데 들고 간 바케쓰에 떡이며 고기, 술을 주인이 담아주고 한바탕 신명나게,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하며 주인집 마당을 한 바퀴 돌고 다음 집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정월대보름엔 망월놀이라고, 산꼭대기에 올라 낫으로 대강 구멍을 낸 깡통에 송진 묻은 고지박(소나무 썩은 가지)를 넣어 불을 붙여 돌리면 화환(火環)이 되는데, 그게 어느 정도 탄 후 힘껏 던지면 그야말로 겨울 밤하늘을 수놓는 휘황찬란한 불꽃놀이가 되는 것이다. 산봉우리마다 다른 부락에서도 망월하는 모습이 장관이었는데, 우리는 소리를 지르며 그 동네 아이들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이처럼 어릴 적 추억거리를 생각나는 대로 적으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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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이번이라고 뭔가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희망할 근거는 없었다.셰익스피어 시대에는 어느 여성도 셰익스피어의 비범한 재능을 갖지 못했을 거예요.횡설수설하는 사람들은 그녀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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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세계문학선] #01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함께 읽기[그믐밤] 8. 도박사 1탄, 죄와 벌@수북강녕[브릭스 북클럽]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커다란 초록 천막》 1, 2권 함께 읽기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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