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읽기] 갈증, 예수의 십자가형이 진행되기까지의 이틀간의 이야기

D-29
p50 내가 이 지역을 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나에게는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의 땅이 필요했다. p95 나는 가뭄의 나라에 강림했다. 나는 갈증이 지배할 뿐아니라 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곳에서 태어나야만 했다. 이런 구절들로 미루어 이 책의 '갈증'이 육체적 목마름만을 의미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하튼 제가 근래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심오하네요.
얇지만 쉬이 넘어가지는 책은 아니었어요. '갈증'이라는 단어 하나로 이 정도의 글을 풀어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작가의 역량이 느껴졌습니다.
나는 골고다 언덕까지 거리를 계산해 본다. 불가능 하다. 나는 얼마 못 가 죽고 말 것이다. 그것은 희소식에 가깝다. 십자가에 매달리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내가 십자가에 매달릴 거라는 것을 안다. 그러니 어떻게든 버텨야만 한다. 자, 아예 생각을 말자. 아무 소용 없으니. 그냥 앞으로 나아가자. 십자가를 더 무겁게 만드는 이 진창에 푹푹 빠지지만 않으면 좋으련만!
갈증 p70,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겸허히 받아드린다'라는 단어를 떠올려야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살면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삶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배웁니다. 그럴 땐 전 겸허히받아 드려야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듯 제가 하루를계획 세우는 것 역시 이 겸허히 받아 드리는 것에 당황하지 않으려고 하는 저만의 방법이기도..당황했지만 당황하지 않은듯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떠올리지 않으려고 늘 계획을 세우기도..그리고 계획은 늘 수정될 수 있다는 자세로 말이죠.
겸허히 받아들인다... 저는 과연 확정된 결말 앞에서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그것이 고통이나 실패를 동반한다면 더더욱 벗어나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보지 않을까 싶거든요.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어떤 순간엔 고통이나 실패가 무조건적으로 동반되는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것 이후를 생각해야하는데 그 상황에 얽메여 벗어나지 못하는 게 보통의 사람들이 아닐까도 생각해봅니다.
자, 이제 나는 그 어마어마한 무게를 다시 들어 올린다. 나는 어떤 고통이 기다리는지 잘 알면서도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선다. 마태오의 복음서 11장 30절,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나한테는 그렇지가 않아. 친구들 그 좋은 말씀은 나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
갈증 p71,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나이가 들어가면서 바뀌는 삶에 자세 중 하나는 누군가를 향해 쉽게 하는 충고나 조언은 삼가하자 라는 것이다. 힘든 시간을 지나는 이에게 '이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은 절대 하고 싶지않다. 이또한 지나가 본 나에게나 공감이 되는 말이지 그 시기를 힘들게 지나가고 있는 이에게 조용히 물한잔을 내미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참 예전엔 그랬었지(반성 중..ㅠㅠ) [아들아, 인생은 자고로 말이지..] 지금은 그 입을 다물고 묵묵히 지켜 볼뿐이다. 언젠가 도움이 필요해 뒤를 볼때 그 자리에 우리가 있으면 되는 것이다.
지나보면 별 거 아니야~ 라는 말은 지나본 자들이 할 수 있는 말이죠. 지나치기 전이나 지나가고 있는 사람에게는 지금 당장 직면한 것들이 너무나도 높고 크고 벅찰 수 있는데, 지나고 보면 별 거 아니야~, 시간이 다 해결해줘~ 같은 말들은 그들에게 별달리 도움이 되지 않을거라 봅니다. 차라리 그 시기를 잘 넘어갈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게 더 돕는 일 같아요
소설 [갈증]을 읽고 이 소설에 대한 댓글을 달면서 다시 한번 더 소설을 읽는 느낌이 참 좋은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믐에 자꾸 들락날락 하게 되는지도..작가가 의도한바를 제대로 알아채지 못한체 스스로가 느끼는 대로 해석하더라도 다시 구절구절 읽다보면 우리의 일상에 적용해야되는 마음들도 발견하게 되네요^^ 오늘도 댓을 달면서 또 배우고 갑니다.
<갈증> 뿐만 아니라 저자의 저서를 읽다보면 저자가 사용하는 단어의 역량, 그리고 그것을 잘 번역하는 번역가의 역량도 느낄 수 있었는데요. 전혀 몰랐던 단어, 대략적인 뉘앙스만 알았던 단어들을 적확하게 사용한 작가를 보면 정말 감탄이 나오더군요. 다들 이 책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단어들이 있으셨나요?
저는 '페트리코르' 라는 단어를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 단어, 자주 쓰고 싶어지더라구요. 건조한 흙 위에 비가내릴 때 나는 흙 냄새, 라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비올 때 나는 습한 흙 냄새를 지칭하던 단어가 한국어로는 없는 것 같더라구요. 매번 비올 때 나는 그 냄새가 좋던데~ 라고만 말했는데 이젠 페트리코르가 좋네~ 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듣는 쪽이 알아들어 주어야하는 또다른 미션이 있지만요 ㅋㅋㅋ
갈증을 읽으면서 갈증보다 더 강렬한 욕구가 생각나는 게 있으시던가요? 있다면 무엇이, 없다면 왜 갈증이 강렬한 욕구인지 한 번 얘기해보면 좋겠습니다
갈증을 사전적 의미로 본다면 갈증은 가장 낮은 단계의 선제적 욕구인데 거기에 비견할 어떠한 욕구를 생각해 보면 기아나 배설 등의 단어만 떠오릅니다. 하지만 갈증을 예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의 목마름으로 본다면 답은 달라질 수 있도 있습니다. 저는 제 아이를 떠올립니다. 그 녀석에 대한 사랑은 주어도 주어도 모자른 것 같습니다. 하루종일 아이가 제 가슴 속에서 뛰어 놉니다. 그래도 아이에 대한 마음은 무언가 부족한 듯 다른 의미의 목마름으로 다가옵니다.
좀 더 근원적인 질문으로 받아들여주신 것 같아서 제가 더 놀랐습니다ㅎㅎ 이 책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나를 존재하게 하는 것'에 대해서도 나눠본 적이 있는데, 그 때 많이 나온 얘기 중 하나가 바로 자녀였어요. 이 아이를 통해, 이 아이를 위해 자신이 무언가를 하는 것으로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하시더라구요.
'갈증'이라는 단어를 자꾸 되뇌이며 생각하다보면 목마름의 갈증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겠다 싶지만 목마름이 아니더라도 무언가에 대한 기대의 갈증으로도 여겨지네요 부모가 자식에 대한 갈증, 연인사이의 갈증 등 인간이 서로에게 원하는 마음들이 충족되지 않을때의 갈증 역시 목마름의 갈증 만큼 인간에겐 꼭 필요로 하는 욕구 갈증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나를 희생한 건 만인의 선을 위한 것이란다. 헛소리! 임종을 앞둔 한 아버지가 자식들을 불러 모아 놓고 이렇게 말한다. [얘들아, 나는 개처럼 살았다. 나 자신에게 어떠한 쾌락도 허락하지 않았고, 혐오스러운 직업에 종사했으며, 단 한 푼도 허비하지 않았다. 너희를 위해, 너희에게 훌륭한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그 모든 것을 했다.] 이것을 사랑이라 부른 자들은 괴물이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말했다. 그럼으로써 그런식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공식화했다.
갈증 p103,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예수는 자신의 희생이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갚아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따위 것인 십자가의 매달림을 보여주니 너희는 나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 싫어서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고 합니다. 위 문장에서 자식들을 위해 헌신한 아버지가 사랑이란 미명하에 죽어가면서 자식들의 가슴에 멍애를 짊어지게 하는 부분이 나오네요. 예수는 이것을 사랑이라 부르는 자들은 괴물이라고 말하지요. 사랑은 조건이 없어야 하는데 어떤 이유에서 헌신했다고 해도 그것을 내가 이렇게 살았다는 것을 너희들도 뼈에 사무치게 느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이지 최악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번이라도 그런 말을 하거나 그런 느낌을 준적이 없나요?" 하고 묻는다면 선뜻 자신있게 대답할 수는 없겠습니다.
부모로서 나중에라도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소릴 정말 하지말아야지 라는 다짐을 합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행하는 모든 사랑은 돌려받기 위한 조건부 사랑이 아님에도 부모 역시 사람인지라 그것을 확인 받고 싶어함이 없지 않다는 생각에 늘 다짐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자식이 자랄 수록 기대하는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자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들이 신자들에게 뭔가 불편함을 제공했나 봅니다. 예수나 하느님의 심정을 인간이 임의로 표현하는 것에서요. 물론 신이나 성인이 그런 의도를 가지지 않고 정말 순수하게 자기 희생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느냐, 희생했음을 늘 마음속에 새기고 기억해야 하느냐는 결국 개인의 몫으로 넘어가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사랑은 조건이 없이 행해져야 한다지만, 아마 대부분은 '그냥' 사랑하진 않을겁니다. 하물며 부모자식 관계에서도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는 보상(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이 묻어있으니까요.
아무것도 아닌 것에 행복해하는 나 자신을 축복하며 며칠 동안 종일 길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행복했던 게 아니었다. 나는 가벼움을 즐기고 있었다.
갈증 p81,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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