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카프카의 <변신>에서 벌레의 상징성은 가족에게 부양 능력을 상실한 그레고리가 해충에 지나지 않으며 누군가에게는 바퀴벌레, 또는 딱정벌레와 비슷한 모습으로 독자마다 각자 스스로 상상의 여지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레고리가 벌레로 변신한 후에 벽을 기어다니기도 하고 자유롭게 가구 밑을 탐색하기도 하는데, 이를 알고 난 여동생 그레타가 오빠를 위해(?) 가구를 치워 주는 걸로 봐서 가구 밑에 숨기 힘들 정도로 크기나 모양은 아주 거대했을 거라고 봐요. 여동생 그레타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장면에서 방에서 나온 그레고리는 인간이었을 때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죠. 그걸 본 하숙인들은 불만을 표하면서 집을 나가겠다고 하는 장면에서도 거실에서 모두의 눈에 뛸 정도로 분간할 수 있는 벌레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등을 맞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데 이를 가정부 노파가 처음 발견하고 노파가 빗질을 하며 그레고리 시체를 처리하는 장면이 있어요. 빗질로 쓸 수 있을 정도의 크기가 아니였을까 짐작해 봐요.
[그믐북클럽Xsam] 17. 카프카 사후 100주년, 카프카의 소설 읽고 답해요
D-29
세랑빛
화제로 지정된 대화
그믐클럽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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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피오카푸딩
그는 무한한 연민과 애정으로 가족을 생각했다. 자기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은 누이동생보다도 그 자신이 훨씬 더 절실하게 느꼈다.
『프란츠 카프카 소설 읽기 』 p.9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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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지막
“ 한 달 이상을 그레고르가 시달렸던 심한 부상은 ― 아무도 감히 제거하려 하지 않아, 사과는 눈에 보이는 기념으로 그의 살 속에 그대로 박혀 있었다 ― 아버지에게까지도, 그레고르가 지금 비록 슬프고 구역질 나는 모습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식구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 것 같았다. ”
『프란츠 카프카 소설 읽기 』 돌연한 출발 1부 / 변신 3 / 1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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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L
음악이 자기를 그토록 사로잡는데, 자신이 정녕 짐승이란 말인가? 그가 그토록 갈망하던 보이지 않는 양식(糧食)에 이르는 길이 그에게 나타난 것 같았다.
『프란츠 카프카 소설 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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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나
그는 감동과 사랑에 젖어 가족들을 회상했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멀리 가버려야 한다고 그는 누이동생보다 더 강하게 느꼈다.
『프란츠 카프카 소설 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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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레이
겨우겨우 그 다리를 마음먹은 대로 구부릴 수 있게 되면 다른 다리들은 마치 해방이라도 된 듯 제멋대로 고통스럽게 움직여댔다
『프란츠 카프카 소설 읽기 』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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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프릴
전에는 자신이 남들을 신경 써서 배려한다는 사실이 그의 큰 자랑거리였지만 이제는 자신이 남들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그는 의식하지 못했다. - <변신・소송>
은쏘
그는 갑자기 눈을 뜨고 “도대체 산다는 게 뭔지! 다 늙어서 얻은 평화가 겨우 이런 거라니!”라고 말했다.
『프란츠 카프카 소설 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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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ein
음악이 자기를 그토록 사로잡는데, 자신이 정녕 짐승이란 말인가?
『프란츠 카프카 소설 읽기 』 114/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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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닿늘
“ 아버지, 어머니! 계속 이렇게 지낼 수는 없어요. 아버지 어머니는 눈치 못 채셨겠지만 나는 알아요. 나는 이 괴물을 오빠라고 부르고 싶지 않아요. 나는 우리 모두 노력해서 저걸 치워버려야 한다는 말밖에 못하겠어요. 저걸 돌보고 참아내느라 사람으로서 할 도리는 다했어요. 아무도 우리가 못된 짓을 했다고 비난할 수는 없을 거예요. ”
『프란츠 카프카 소설 읽기 』 교보e북 PC 뷰어 P. 2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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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경서재
[4-2] "그런데 그가 이제 홀로 남겨진 그 천장 높은 텅 빈 방, 그가 5년 동안 지내온 그 방바닥 에 배를 깔고 앉아 있자니 무슨 연유에서인지 그 방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는 서둘러 소파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물론 그는 자기가 하는 짓에 가벼운 수치심을 느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그믐클럽지기
4-3. 「법 앞에서」로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느끼셨겠지만 카프카의 작품들은 난해하고, 많은 해석이 가능합니다. 「변신」은 전염병에 걸려 격리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고, 히키코모리 자식을 둔 가정의 괴로움으로 읽을 수도 있겠습니다.
여러분의 「변신」 해석을 들려주세요. 「변신」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읽으며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정통적인 해석도, 참신한 해석도 모두 좋습니다.
타피오카푸딩
저는 변신속 이야기가 현실적으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카프카가 이 이야기를 통해 뭘 전달하려고 할까, 사회상에 대한 풍자나 메타포, 비유로 설명할수 있을까 생각을 해보다가 그냥 그 상황 그대로 받아들여보자고 생각 했어요. 말이 안되는 판타지 같은 이야기이지만 너무도 담담하고 현실적으로, 어떤 낭만주의나 계몽적 메세지를 담고 있지도 않은것 같아서 더 직접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왔네요. 변해버린 아들/오빠에 대한 애정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고 자신들의 앞길에 방해만 되는,치워버려야 마땅한 존재로 마침내 그레고르가 죽고 없어졌을때 안도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벌레로 변하기 전에도 그리고 마지막까지 숨을 거두기 까지 가족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놓지 않았던 그레고르의 모습이 너무도 대비가 되어 안타까웠습니다. 인간성이란 무엇일까, 결국 인간성이란 내 안위가 위험에 처했을땐 가장 이기적인 존재가 될수밖에 없는 불완전함 을 말하는게 아닐까도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프카가 평생 아버지로부터 억압받는 삶을 살았다고 하는데 이 이야기속에서도 반영된듯 아버지라는 인물에게는 주인공에 대한 애정은 전혀 찾아볼수 없었던것 같아요. 여동생 또한 처음엔 오빠의 방을 청소하며 애정과 연민을 담아 보살피지만 결국엔 제일 먼저 오빠를 없애버리는데 주동자가 되어버렸고,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아들을 사랑하지만 가족들의 결정에 반발이나 저항 없이 받아들이며 눈을 감아버리는 무기력함을 보면서 결국 삶이란 나 혼자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CTL
처음 읽을 때는 나치 독일 무렵 유대인들에 대한 취급을 그린 게 아닐까 생각했고,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는 히키코모리 자식을 둔 가정의 괴로움으로 읽혔는데,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의 가족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많이 씁쓸합니다.
요즘은 부모 자식, 부부, 형제자매 간에도 스스로 독립해서 살 능력이 없으면 벌레 취급하는 것 같은 풍조가 만연한 듯 해서요. 스스로 먹고 살려고 해야 하는 건 바람직하게 추구해야하는 목적이지만, 태어날 때 신체적, 정신적 제약이나 사회적 여건, 불의의 사고나 잘못된 선택 등등에 의해 한 사람 몫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종종 있지요. 예전에 '가족'이나 '마을공동체'의 개념이 존중되었을 때에는 그래도 가족이니 의지하고 책임을 지려 노력이라도 했고, 옛날 이야기에 꼭 한 명 쯤은 나오는 '마을 바보'도 불쌍히 여기고 보살펴주는 마음이라도 있었지요.
각자도생하지 못 하고, 태어나서 늙을때까지 자립의 능력을 준비 못하면, 벌레취급 하듯하는 날카로운 여론이 팽배한 지금, 그레고르 잠자의 가족이 꼭 한국 가족의 낯설지 않은 속마음을 들어내보이는 듯 해서 섬뜩합니다.
신이나
집 안의 경제를 책임지던 큰 아들에게 문제가 생기자 남은 가족들이 그걸 감당해야 하는데 큰 병에 효자없다고 그 기간이 길어지거나 다시 회복될 기미가 없자 차라리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커진 한 가족의 이야기 같아요. 풍족하지 않다보니 병을 고치거나 할 의욕도 노력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 게 참 안타깝습니다.
메이플레이
4-3
가족을 위한다는 일상생활에 파묻혀 본래의 나를 잃어버린 현대인의 모습으로 생각됩니다. 가족을 위해 그저 매일 반복되는 노동은 현대의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같습니다. 자신의 인생의 목적은 없이 그저 가족을 먹여 살리기위해 하루를 힘들게 살아가죠. 그러나 그런 희생에 대해 감사와 사랑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 경제적 수단으로 여기는 가족을 보여줍니다. 더이상 물질적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됨을 깨닫게 되면서 가족의 구성원에서 인정하지 않는 모습은 수단적인 존재임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가족의 연대가 사랑이 아닌 경제적 필요성에 의해 묶인 존재라는 것은 현대의 파괴되어가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에이프릴
그레고르는 벌레로 변하기 전까지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실질적 가장입니다.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한 모습을 보고서는 가족 모두 일자리를 찾아 돈을 벌면서 그레고르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기족 모두 돈을 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첫째아들에게만 의존하여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버지는 지팡이를 가지고 다녔지만 은행원이 된 아버지는 멀쩡한 다리로 신사복을 입고 있습니다. 음악을 공부할 수 있는 고등학교에 가고 싶다는 여동생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어했던 그레고르는 벌레로 변해버려 그 말을 부모님께 전할 수 없어서 안타까워 합니다. 근데 동생은 돈도 벌어오지 못하고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버린 오빠를 밖으로 내쫓자고 합니다. 그리고 아빠는 이 의견에 동의합니다. 눈치를 보며 그레고르 는 움직일 수도 없는 본인 방으로 돌아가 먹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한채 죽어버리고 맙니다. 그레고르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의 모습일 때는 가족들이 모두 좋아했지만 벌레로 변해버려서 돈벌이도 못하는 그레고르는 가족들의 미움을 받습니다.
그레고르의 내면은 변하지 않았는데 외면적인 모습의 변화로 모두로부터 외면당하는 상황이 안타까웠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하지 못하는 사람은 가족들에게조차 소외되며, 많은 사람들은 내면이 중요하다고 얘기하면서도 외면적인 모습이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은쏘
저도 다른 분들과 비슷한 생각입니다. 가족이 의존해왔던 경제활동을 담당하던 그레고르 잠자의 수입이 끊기거나 불안정 해졌을때의 상황을 벌레로 변신했다고 묘사하면서 그레고르가 받는 취급을 더 극적으로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가족들 입장에서 더 이상 인간 구실을 못하는 그레고르를 보는 시선과 그 시선에 점점 무뎌지고 벌레가 된 자신의 상황에 적응해버리는 것에서 이용 가치가 없어진 자에 대한 인식을 뚜렷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poiein
가족을 부양해야만 했던 소년가장의 번아웃이 부양받던 가족 구성원들의 자립을 촉발시킨, 어느 애잔한 벌레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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