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북클럽Xsam] 17. 카프카 사후 100주년, 카프카의 소설 읽고 답해요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2-3. 카프카는 여러 면에서 복잡한 경계인이었습니다. 유태인이었지만 유태인 문화 속에서 자라지는 않았고, 체코에서 태어났지만 독일어로 글을 썼습니다. 법학을 공부해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지만 판검사나 변호사가 되지는 않았고, 보험회사에서 법률가로 일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카프카의 작품에서 법은 정의를 구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거대한 무력감을 주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법 앞에서」는 「변신」만큼은 아니지만 인지도가 높은 카프카의 작품인데요, 신문 칼럼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국회나 법원 앞에서 좌절하는 시도들이 있을 때 소환당하는 글이지요. 사실 입법부와 사법부의 높은 문턱을 비판하는 소설로 읽어도 무리가 없습니다. 카프카 본인도 이 짧은 단편을 각별하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이 단편은 며칠 뒤 저희가 함께 이야기하게 될 『소송』에 극중극 형태로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여러분은 「법 앞에서」를 어떻게 읽으셨나요? 이 작품이 말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여러분의 해석을 들려주세요. 정답은 없습니다. 심지어 『소송』의 등장인물들조차 이 이야기를 두고 논쟁을 벌인답니다.
이 이야기의 앞 부분을 읽었을 때는 “법의 문턱이 높다”라고 생각했어요. 시골 사내가 올라와서 문지기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말을 했지만 말직인 문지기는 본인을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홀을 들어갈 때마다 또 다른 문지기가 있으며, 그 위력은 점점 커진다라고 시골사내에게 겁을 줍니다. 시골사내에게 등받이가 없는 의자를 주며 기다리라고만 말해주는 문지기! 법 앞에서 우리 모두는 평등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를 많이 보았죠. 시골사내에게 법의 문턱은 높아보였고 역시 법은 불평등하다고 생각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시골 사내는 이제 눈도 잘 보이지 않고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가 되어서야 알게되는 사실이 있었죠. 문지기가 지키고 있는 문은 계속 열려있었으며, 오직 시골 사내만이 들어갈 수 있는 문이었다는 것을요. 많이 허망했습니다. 그럼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시골사내는 무엇을 했던 것일까요? 법은 열려있었고, 그 문턱을 두려워서 넘지 못했던 것은 시골 사내였습니다. 시골사내는 법의 문턱도 넘어보지도 못하고 법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존재라는 걸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또한 문은 언제 열어주냐고 한탄만 하다가 본인의 인생을 허비했어요. 그렇지만 의문이 생깁니다. 과연 시골사내가 말직인 문지기를 지나쳐 법의 문으로 들어갔다고 한들 정말 다음 문지기의 문을 넘어가는 과정이 순탄했을까요? 시골 사내는 정말로 그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을까요? 알면서도 문지기가 있어서 못 들어간다고 핑계를 만들고 싶지 않았을까요? 이 이야기를 통해서 과거에도 현재도 법은 항상 부조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부조리에 대응하는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게되었어요. 부조리에 용기있게 맞설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만약 맞서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들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요?
카프카의 글을 언제나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지 않고 구체적이지도 않으며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도, 타당하게도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것 같아요. 난해하지만 그때문에 무슨 말을 하려하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수적으로 동반된다는 점에서 사유의 힘을 길러주는것 같습니다. 저도 법 앞에서을 읽으면서 소시민에게는 너무나 높은 법의 문턱, 문지기 또한 문지기이기에 자신도 들어가본적도 없는 법의 문앞에서 주인공을 기만하는 모습, 또 그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수 없는 참담함과 어리석음을 보았습니다. '권리위에 자는 자는 보호받을수 없다'라는 루돌프 폰 예링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문지기는 문지기일뿐인데 그 의 말만 믿고 문앞에서 여생을 다해버린 주인공의 어리석음이 안타깝고 그게 우리 소시민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처음 문지기가 다음으로 갈 수록 더 힘들어질 거라고 하는 장면에서 '벼룩 효과'가 생각났는데요. 그래도 또 다른 문지기를 계속 만나보려는 노력을 해보면 어땠을까요? 좌절만 하고 있기엔 인간의 수명은 유한하고 또 좌절할 때 하더라도 무언가 끊임없이 할 수 있는 생각만으로도 또 살아가질텐데요. 물론 법이나 소송에서의 좌절로 치환하자면 계속 두드릴 수 있는 관문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조금의 여지만 있다하더라도 단지 문지기의 말만 믿고 있지는 않을 거에요.
소송까지 다 읽었는데도 법 앞에서 라는 작품은 어렵네요. 크게 문지기는 법으로 대표되는 권위와 시골사람은 그 권위 앞에서 절망하는 소시민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여기서 '법'은 '천국'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해요. 죽어야만 갈 수 있는 곳... 그런데 마지막에 노인이 죽어갈 때 문지기가 이제 문을 닫아걸겠다고 한 것이 노인을 들여보내고 닫겠다는 것인지 노인이 죽으면 아무도 들어올 사람이 없으니 닫겠다고 한 것인지 좀 헷갈리는데, 아마 후자이겠지요. 결국, 법을 통해 정의를 얻고자 하는 각 개인은 결코 자신이 만족할 만한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메세지 같아요. 법률가들은 그저 이루어질 수 없는 정의로 마치 이끌어줄 것처럼 하면서 문지기처럼 온갖 이익만 챙기는 사람들이고요.
2-3. 아주 단순화 하여 결론부터 말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법의 입구까지는 잘도 가면서 막상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모습을 보며.. 답답한 마음을 표현한 글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가장 컸습니다. ... 솔직히 이런 해석은.. 제 평소 고민과 닿아 있습니다. 저는 더 많은 사람들이 법을 알았으면 하는 바램이 큽니다. 그 이유는.. 법이라는 인류가 만든 시스템이 오류 없이 작동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법에 대한 의식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법치주의 국가라 해도.. 행정의 주체가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이용하는 것과, 법에 의해 권한을 범위 안에서 사용하는 것은 천지차이라는 것을 우리는 지금 함께 경험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최소한의 원칙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하고, 나아가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원칙들은 수정해야 된다고까지 생각합니다. ...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뜬금 없이 무슨 여행이냐.."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건 제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지대넓얕> 시리즈로 유명한 채사장님의 강연 내용에서 빌려온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말하는대로 채사장'을 유튭에 검색해서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입니다. 이건 사람 마다 차이가 있을테지만.. 기본값이 보수적이라는 것에 저는 일단 수긍하는 편입니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이 특성을 '인지적 구두쇠'라고 표현하더군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평생 보수적으로 살다가 떠날 확률이 기본적으로 높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나마 교육 제도라도 비판적인 사고를 기를 수 있는 환경이라면 나을텐데.. 우리의 교육 환경은 그렇지 못하죠...)
솔직히 저도 그렇게 오랫동안 살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저는 여행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책과 강연이라는 가상 세계로..) 이 여행을 통해 저는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으며.. 지금도 계속 알아가는 중입니다. 그리고.. 한 번씩 깨닫습니다. 그의 말이 맞았다는 것을.. "책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물론 저는 여행의 수단이 꼭 저처럼 책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 그나저나 카프카의 책을 계속 붙들고 있으니.. 카프카화 되는 묘한 느낌이 듭니다. (지금까지의 변화도 신기한데;;;) 모임을 시작하며 저는.. "카프카의 도끼가 내 얼음은 아무래도 못 깰 거 같다." 라고 모임에 썼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남은 15일의 활동을 끝내면 카프카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도 궁금해 집니다. (애증에서 증이 증발하는 중...)
2-3 법 앞에서 사람들은 바보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들을 위해 만든 법인데 결국 사람을 옭아매는 법이 되어버린듯합니다. 그래서 법을 두려워하게 되는 것인지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법 앞에서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당당해져야한다고 말하는 것같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법의 주인인 되어야 할 것입니다.
[2-3] 시골에서 온 남자는 '법이란 누구나 언제든지 다가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들어가지 못한다. <소송>에서는 이 단편을 인용하며, 시골남자는 문지기보다 자유로운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문지기는 시골 남자를 위해서만 그문을 지키고 있었으니까요. '법원은 당신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법원은 당신 이 오면 받아들이고, 가면 내버려둘 뿐입니다.' 법은 결국 어떠한 것도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자유의지에 의해 들어가고 나갈 뿐인 것이죠. 인생을 살면서 법을 만날 일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새 변호사> 첫 번째 단락의 마지막 문장이 비문이네요. 서술어가 빠졌어요. "그런데 나는 최근 현관 앞 큰 계단에서, 법원의 매우 무식한 한 사환이 경마 신참의 단골손님인 전문가의 안목으로, 이 변호사가 두 다리를 높이 쳐들고 대리석에 달그락달그락 발자국 소리를 울리며 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모습을 경탄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https://read.aimeepong.com/parables/9/ https://short-stories.co/@franzkafka/the-new-lawyer-nkeveorklmo0 영역본을 참조해보니, 김태환 번역의 《변신, 선고 외》 (을유문화사)에 실린 <신임 변호사>에는 제대로 번역되어 있네요. "나는 최근에 옥외 계단에서 허벅지를 들어 올리면서 대리석을 저렁저렁 울리는 발걸음으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변호사의 모습을 어느 순박한 법원 직원이 경마 팬의 전문가적 안목으로 경탄하며 바라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아 그렇네요. 저 문장에서는 '내'가 변호사를 바라보고 있는건지 '사환'이 바라보고 있는건지 아무리 읽어도 모르겠는데..;; 아래번역이 맞네요..ㅎ
새 환자를 위해고군분투하는 시골의사 ㅡ 난 로자를 위해서도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고 보면 죽고 싶다는 소년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도 주코 싶은 심정이다
<시골의사> 역시 열린책들판에서 9페이정도의 아주 짧은 소설이지만, 그 파급력은 굉장하기에 이렇게 올려본다. 열린책들세계문학 10 <변신> 프란츠카프카 중단편집에 수록된 작품이다. 이 소설의 이야기 순으로 얼개를 진행하면 (군청에서 고용된 주인공인 의사는) 어떤 중환자에게 왕진을 가야하는 데 추위에 말이 죽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음->갑자기 돼지 우리에서 신데렐라의 호박마차처럼 난데 없이 말이 등장하고 눈깜짝할 사이 환자(소년)의 집으로 도착함->그런데 진찰하니 소년은 아픈 데 없이 건강함->말이 울부짓고 소년 옆구리에 손바닥만한 상처가 나타남->환자의 상처 부위에 벌레를 보고 질색하는 의자-> 의사의 옷을 벗겨 치료하지않으면 죽이려 하는 동네 사람들-> 이 상황을 벗어나려는 의사는 이미 엄동설한에 발가벗 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진다(벌써 후임 의사가 모든 것을 가져가 버렸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건 <변신>의 스토리와 거의 비슷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의 가족은 누이와 부모가 있었다. 결국 소년이 의사와 동일시 하면 의사와 소년은 둘 다 죽을 운명이었다. 소년의 상처부위에는 살아 움직이는 벌레로 인해 의사는 완전히 질색하는 장면도 있다. 벌레는 소년인가. 뭔가 모르지만 이 소설이 내포하는 의미는 꿈일지도 모른다. 카프카가 왜 그의 소설을 사후에 모두 태워버리라고 친한 친구에게 유언으로 남겼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제임스 조이스가 말한 “작가의 불멸성은 작품에 수많은 수수께끼를 남기는 것이다.”라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 수수께끼같은 소설이다. 그럼에도 읽어야 한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 <카프카 단편집> 『단식 수도자』 ■■■■ 오늘부터 17일까지 5일 동안은 『단식 수도자』를 읽겠습니다. 「최초의 고민」부터 「가수 요제피네, 혹은 쥐의 일족」까지입니다. 『단식 수도자』를 마지막으로 <카프카 단편집>은 마무리가 되고요 다음 책으로 넘어갑니다. 어떠세요? 작품 수에 비해서는 예상만큼 어렵지 않으셨지요? 여기서 멈추셔도 일단 책 한 권은 완독을 하신 셈이지만 조금 더 욕심을 내서 <변신,소송>까지 함께 읽어보아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3-1. 여러분이 『단식 수도자』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작품은 무엇인가요? 그 이유도 함께 알려 주세요.
3-1 「단식수도자」는 '소비' 관점에서 읽혀졌는데, 더이상 소비되지 않는 대상의 명멸을 보는 듯해서 마음이 좀 그랬어요.
<단식수도자>가 그나마 제일 이해하기 쉬웠네요. 종교적 수행을 위해 단식을 하는 수도자의 행위가 결국 서커스 단에서 하는 곡예나 다를바 없고 결국에는 서커스 단에서마저도 흥미와 관심을 잃고 대체되어버린 표범의 생명력에 비해 '단식'이라는 행위의 의미조차 무용해져 버리는 씁쓸함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단식수도자를 제일 인상적으로 읽었어요. 주제가 신선하기도 했고 단식행위가 다른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될 수 있다는게 신기했어요. 그걸 감시 하는 사람들, 단식하고 있지 않을거라고 의심하는 사람들, 먹을 것으로 유혹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종교적 단식행위가 이렇게 표현될 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게되었어요
저도 '단식 수도자'를 읽으면서 제목이 '수도자'기에 뭔가 대단히 종교적인 행위인가 했는데 결국은 '광대'를 말하는거더라구요. 제목도 인터넷을 찾아보니 '어느 단식 광대'로 출간되기도 한것 같은데 왜 '수도자'로 번역을 했을까 의문도 들구요. 수도자는 분명 종교아래 세속을 멀리하고 금욕하며 도를 닦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책에서는 어디에서도 종교적인 색채는 없어서 제목과 좀 괴리감이 느껴졌어요. 단식광대라니..너무 황당한 직업이라 그런 직업이 진짜로 있었는지 의문이지만 단식을 통해 말그대로 광대로 살아가며 사람들의 관심으로 연명하며 살았지만 결국엔 단식외에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 사람들의 관심에 멀어지고 비참하고 무의미하게 죽어 '치워져'버린 주인공이 딱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카프카는 이 단식 광대를 통해 무얼 말하고 싶어 했는지.. 어찌보면 100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의 관심이 삶의 전부가 되고, 스스로를 해치면서까지 관심받기가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 실제로 죽음까지도 컨텐츠화되어 버린 작금의 어리석은 세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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