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보르헤스 읽기] 『알렙』 후반부 같이 읽어요

D-29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자히르는 20센타보짜리의 평범한 동전이다. ...(18세기 말 구자라트에서 자히르는 호랑이였다. 자바에서는 신도들이 돌을 던졌던 수라카르타 이슬람 사원의 장님이었다. 페르시아에서는 나디르 샤가 바다로 던져 버리라고 명령했던 천체 관측기였다. 1892년경에 마흐디 감옥에서는 루돌프 칼 폰 슬라틴이 만졌던 터번 주름 속에 싸놓은 조그만 나침반이었다. 초텐베르크데 따르면 코르도바의 유대교 회당에서는 청니백 개 기둥 중의 하나에 있던 대리석 돌결이었다. 그리고 테투안의 유대인 거주 지역에서는 어느 우물의 밑바닥이었다.
알레프 131-132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보르헤스 말만 듣다가 처음 읽는데, 낯선 인물, 낯선 지명, 낯선 역사가 너무 많아 따라가기가 버겁네요. 이런 단어들을 하나도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에 자괴감도 들고요. 어떤 마음으로 읽어나가면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ㅎ
단언컨대 처음 읽으면 누구라도 그러지 않을까요? 여러 번 천천히 읽어보시면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3일에 한 편 읽는 일정을 정한 것도 그 때문이긴 합니다. 그리고 단어를 찾아가면서 읽는 것은 저도 마찬가집니다🥲 저는 스페인어를 모르면서 스페인어와 한국어 번역 대해서 아는 척 하고 있잖아요...
저는 번역서 두 권을 번갈아 읽고 있습니다. ㅎㅎ
화제로 지정된 대화
[~자히르] 우리가 모국어로 어떤 추상적인 관념에 단어를 붙이고 이해할 때, 다른 언어권에서는 굳이 그것에 단어를 붙이지 않고 이해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경이로운 일입니다. 스페인어권 사람들은 영어의 uncanny를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흔히 말하는 남미 문학의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단어가 철저히 외재적 관점에서만 쓰여졌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데려옵니다. 마술과 환상이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는 세계를 생각해보세요. 그들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마술적인 상황을 '마술'이나 '환상'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숨을 쉬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요. 그래서 자히르는 무엇일지 궁금해졌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로잡혀 있는 모든 것, 혹은 당장 뭔가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서 새로 몰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의 이름(표면)은 아니었을까요. 보르헤스에게 자히르가 '동전'이라는 것도 너무 재밌습니다. 이 니켈의 주조물은 화폐의 역사를 가리킴과 동시에, 화폐 개념을 승인한 국가의 경제 시스템에 대한 극도로 집약적인 상징물이자, 사회적 합의로 이뤄진 허구의 산물입니다. 다들 알다시피 과거에는 조개껍데기였던 것들이 오늘날에는 국가의 공인하에 니켈로 주조한 동전이 되었습니다. '돈'은 물질이 아니고 추상적인 개념이며 허구의 산물이지만, 우리는 지폐나 동전이라는 실재의 상징물을 만지면서 돈이란 개념을 구체적인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따라서 동전은 아마 인간이 창조한 것들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면서도 매력적인 상징일 겁니다. 황병하 선생님의 번역은 이런 '동전'에 대한 추상과 구상의 간극이 자아내는 현기증을 깔밋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149쪽, 151쪽). 단편에서 보르헤스는 통속 잡지의 모델인 테오델리나 비야르의 장례식에 참석합니다. 그런 뒤, 어느 길모퉁이의 술집에 들러서 브랜디를 한 잔 마시고 나서 동전을 거슬러 받게 되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자히르임을 알게 됩니다. 그때부터 보르헤스는 떨치기 어려웠던 한 모델에 대한 관심을 동전으로 옮아가게 됩니다. 자히르는 말 그대로 '분명한' 표면이며, 도저히 떨치기 어려운 무언가에 대한 상징물입니다. 그렇다면 보르헤스는 왜 테오델리나 비야르의 죽음에 그토록 몰두했던 것일까요. 그 자세한 이유는 알기 어렵지만, 그녀가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되 '자히르'의 면모를 갖추었다는 점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늘 "올바르다고 인정된 장소에, 그리고 적절한 시간에 단정한 차림새로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세상에 대한 권태를 드러내며 모습"을 나타내며, 그녀는 언제나 "플로베르처럼 절대적인 것을 추구했지만 그것은 순간적으로만 지속되는 절대성"입니다. 이슬람에서는 알라신의 두 속성으로 자히르(zahir)와 바템(batem)을 들며, 각각을 '눈에 보이는'과 '숨겨진'이라고 말합니다. 코란을 해석하는 두 가지 방법을 의미하며 글자 그대로 읽고 나서 숨겨진 의미를 파악한다는 것입니다. 근데 이 두 가지는 선후 관계가 명확합니다. 글자 그대로 읽을 수 있어야 그 숨겨진 의미를 파악할 수 있고, 그 반대는 불가능합니다. 보르헤스는 이를 동전에 빗대어 "예전에 나는 동전의 앞면을 상상했고, 그런 다음에 뒷면을 떠올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서 이 두 가지를 하나로 본다고 말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것들은 본질적이고 내면적인 추상이 아니라 본질과 내면이 현실에서 형상을 입고 나타나는 구상입니다. 이때 구상은 추상의 까뒤집어진 형상, 추상으로 들어가는 구체적인 몸입니다. 본문에서 보르헤스는 아타르(Attar)의 ⟪아스라르 나마⟫를 빌려, 자히르는 "'장미'의 그림자"이고, "'베일'의 구멍"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카발라주의자들의 말을 빌려서 씁니다. "카발라주의자들 인간 소우주, 즉 우주의 상징적 거울이라고 이해했다. 만일 테니슨에 의하면, 모든 것이 그렇게 될 것이다. 모두, 참을 수 없는 자히르까지 그렇게 될 것이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근데 보르헤스가 만물을 너무 이분법으로 나누어 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요. 모든 것을 앞면과 뒷면, 표면과 이면, 구상과 추상으로 나누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요. 근데 그렇다고 말하기도 좀 애매합니다. 왜냐면 보르헤스는 본문에서 자신의 시선이 구체(球體)이기 때문에 동전의 양면을 동시에 본다고 말하고, 관념론의 가르침에 따라서 '살다'와 '꿈꾸다'가 동의어임을 역설하고, 모든 사람이 자히르를 생각하는 세계가 있다면 꿈과 현실의 구분이 무용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치만 보르헤스가 여기서 어설프게 '대립면의 통합' 따위를 설득하려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마지막까지도 동전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문지른다는 것은 오직 자히르 뿐임을 말하려던 게 아닌가 합니다. 한편, 보르헤스가 자히르를 의도적으로 잃어버리고 나서, 6월 말까지 쓰기로 했다는 환상적인 단편은 일전에 다뤘던 ⟨아스테리온의 집⟩과 그 구성이나 내용이 매우 흡사합니다. 이 단편 마저도 어떤 '반전', '까뒤집어짐'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히르의 속성을 일부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알렙환상적 사실주의와 추리소설적 기법, 반복 회귀라는 세계인식, 고도의 압축성 등이 특징으로 꼽히는 보르헤스의 단편 17작품을 한데 묶었다. 표제작인 <알렙>은 이 세상의 모든 사물, 상황, 모든 시간과 공간이 단 한순간으로 압축되어 있는 `알렙`이란 존재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픽션들<픽션들>은 2백 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얇은 책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엄청난 상상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그 상상은 심심풀이 환상이 아니라 삶과 세상의 미궁에 대한 깊은 통찰과 독창적인 사유로 이루어진 상상이다. <픽션들>은 20세기 문학에서 돋보이는 큰 별이다.
주인은 거스름돈으로 내게 자이르를 주었다. 나는 한 순간 그것을 응시했다. 나는 조금씩 솟기 시작하는 듯한 미열을 거느린 채 거리로 나왔다. 나는 그 어떤 주화도 역사나 신화 속에서 끝없이 반짝이는 주화들의 상징이 아닌 주화는 없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 잠을 이룰 수가 없고,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거의 행복하기까지 한 채 나는 돈만큼 덜 물질적인 것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엄밀히 말해 그 어떤 주화가 됐건(예를 들어 20센트짜리 주화) 그것은 다가올 미래의 창고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돈은 추상적이다. 나는 되풀이해 말했다. 돈은 미래의 시간이다. 그것은 근교의 한 오후일 수도 있고, 브람스의 음악일 수도 있고, 지도일 수도 있고, 장기일 수도 있고, 카페일 수도 있고, 재화를 멸시하도록 가르치고 있는 에픽테투스의 금언일 수도 있다. 그것은 파로스 섬의 프로테우스보다 훨씬 더 변하기 쉬운 프로테우스이다. 그것은 예견할 수 없는 시간, 베르그송의 시간으로서, 이슬람이나 ⟨현관학파⟩의 시간처럼 경직된 시간이 아니다. (···) 하나의 동전은 우리의 자유 의지를 상징한다. (나는 이러한 ⟨생각들⟩이 자이르와, 그것이 행사하는 악마적 영향의 첫번째 성격을 부정하려는 책략임을 의심치 않는다.)
알렙 149쪽, 151-152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테오델리나 비야르는 올바르다고 인정된 장소에, 그리고 적절한 시간에 단정한 차림새로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세상에 대한 권태를 드러내며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그러나 테오델리나 비야르의 말에 의하면, 이런 세속적 지루함과 차림새, 그리고 시간과 장소는 즉시 시대에 뒤진 것이 되어 버릴 것이고, 한물간 취향을 규정하기 위해 사용될 요소들이었다. 그녀는 플로베르처럼 절대적인 것을 추구했지만, 그것은 순간적으로만 지속되는 절대성이었다.
알레프 133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예전에 나는 동전의 앞면을 상상했고, 그런 다음에 뒷면을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은 동시에 양면을 본다. 그런 일은 마치 자히르가 유리로 되어 있지 않은 이상 일어날 수 없다. 한쪽 면이 또 다른 면과 겹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은 마치 나의 시각이 구체 형태로 되어 있고, 자히르가 중앙에 있는 것 같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알레프 145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아마도 나는 쉬지 않고 자히르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그것이 닳아 없어지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아마도 동전 뒤에서 하느님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알레프 자히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자히르는 ‘장미’의 그림자이고 ‘베일’의 구멍이다.”
알레프 자히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나는 굉장히 큰 '바퀴'를 보았다. 그것은 내 눈앞에 있지 않았고, 내 눈 뒤에 있지도 않았으며, 옆에 있지도 않았다. 그것은 동시에 모든 곳에 있었다... 미래와 현재와 과거의 모든 것들이 서로 얽혀 짜여서 바퀴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그모든 것이 포함된 직물 속에서 한 올의 실이었고, 나를 고문했던 페드로 데 알바라도는 또 다른 한 올의 실이엇다. 거기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었고, 나는 그 '바퀴'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모든 것을 무한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아, 깨달음의 기쁨, 상상의 기쁨이나 감각의 기쁨보다도 더욱 큰 그것! 나는 우주를 보았고, 우주의 은밀한 설계도를 보았다.
알레프 154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신의 글이라는 작품은 불교 색채가 많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 '그래서 어둠 속에 누워 세월이 나를 잊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구절을 보면, 허무 쪽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고, 지금까지 보르헤스 작품을 몇 개 보지는 않았지만, 그 몇 편만 봐도 박식에 놀라고 상상력에는 더 놀랍니다. 대단하네요.
안녕하세요? 한번 말씀드린 것 같은데··· 공지의 규칙을 다시 한번 참고 부탁드립니다. [이 대화에 답하기] 기능을 활용해주세요. 그래야 [게시판 모드] 기능으로 나중에 대화에 참여하시는 분들께서도 대화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아래에 [신의 글] 화제 지정해놓았습니다. 송구하게도 제가 요즘 신경을 못 써서 늦게 올렸습니다.
아래에 다시 첨부해봤습니다. 그믐은 수정도 제한 시간이 있고, 삭제는 아예 안 되나 봅니다. ㅠㅠ
감사합니다! 아마 일반적인 온라인 커뮤니티와 달리 신중히 의견을 작성해보라는 의도에서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양해 부탁드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신의 글~] 소설에 나오는 치나칸은 마야족의 제사장으로서 보물이 있는 장소를 알려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돌감옥에 감금돼 있습니다. 그는 끝없는 펼쳐진 무료한 시간 속에서, 감옥에 함께 있는 재규어를 봅니다. 그리고 재규어의 몸에 새겨진 반점에서 신의 말씀을 궁구합니다. 마술사 치나칸은 자기 앞에 해석을 기다리는, '글처럼 보이지 않는 말씀'이 무수히 펼쳐져 있었는데도 자신의 무능으로 인해서 그것을 눈앞에 두고도 읽어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현기증을 자아냅니다. 이내 치나칸은 "신의 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유치하고 신성 모독적인 것"이라고 느끼고선, 자기 앞의 상황에서 눈을 돌려 "절대적이고 완전한 것"에 담겨 있는 "오직 하나의 말"을 찾고자 합니다. 이런 치나칸에게 꿈속에서 환한 빛처럼 계시가 내려지고, 현실에서 깨어나면서 "길게 보면 사람은 자신의 상황들 자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자신을 둘러싼 "상황들 자체"에서 감사를 느낍니다. 그리고 비로소 합일된 의식을 얻고 "호랑이에게 적힌 글을 이해"하기에 이릅니다. 하나의 잘 빚어진 대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대상을 둘러싼 전체를 알게 되는 것이라고 치나칸을 말합니다. 소설에 따르면, 신의 말씀에 바로 접촉하려는 자는 신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말씀은 언제나 구체적인 몸으로 말씀되기 때문일까요. 그렇다면 그 '몸'은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단 하나의 중심부로 가는 미로의 무수한 출입구를 상상해보세요. 우리는 미로에 들어섬과 동시에 중심부로 불요불굴 직진하는 게 아니라, 눈 앞에 보이는 단 하나의 입구, 거기서 이어지는 하나의 통로를 구불구불 따라갈 뿐입니다. 제각기 들어오는 입구의 모습과 위치는 다르겠지만 각각의 입구가 데려다주는 중심부는 동일할 것입니다. 이 소설에서 나오는 치나칸도 마찬가집니다. 눈 앞의 재규어에서 신의 말씀을 얻으려고 노력하다가, 그런 행위를 유치하게 여기고 다시 '절대적인 하나'를 구하려는 무용한 노력을 거쳐서, 다시 자신을 둘러싼 상황과 자신을 동일시하기에 이르러서 재규어의 몸에서 신의 말씀을 읽는 일련의 과정을 생각해보세요. 이는 앞선 자히르에 대한 인식과도 닿는 점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곧장 신을 만나지 않고 신의 말씀, 구체적인 물성을 지닌 물건을 통해서 신을 간접적으로 봅니다. 그 구체적인 하나가 입구입니다. 달리 말하면, 입구가 무수히 많지만 그 출구는 하나인 공간입니다. 입구와 현관이 없는 집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보르헤스에게도 현관은 하나이자 전부, 어떤 처음이자 끝입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보르헤스를 두고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보르헤스의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마치 경이로운 현관에 서 있는 것 같았는데 둘러보니 집이 없었다." 보르헤스의 단편에서는 종교와 과학이 모두 읽힙니다. 종교와 과학의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그 각각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식으로 소설을 택한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한편 제가 좋아하는 프랑스의 생물학자 프랑수아 자코브(François Jacob)는 1977년, 자신의 기념비적인 논문 ⟨진화와 땜질⟩에서 현대 과학이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질문을 구체적인 사안으로 대체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합니다. 종교와 신화의 세계에서는 통합적 세계관을 강조하는 반면에 과학에서는 모든 것을 한번에 통합적으로 설명하는 대신에 "개별적이고 잘 정의될 수 있는" 구체적인 현상을 다루면서, 부분적이고 잠정적인 해답을 구함으로써 그 해답을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점진적으로 노력한다고요.
신의 글이라는 작품은 불교 색채가 많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 '그래서 어둠 속에 누워 세월이 나를 잊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구절을 보면, 허무 쪽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고, 지금까지 보르헤스 작품을 몇 개 보지는 않았지만, 그 몇 편만 봐도 박식에 놀라고 상상력에는 더 놀랍니다. 대단하네요.
이게 맞나 봅니다.
아마 그럴 거예요. 보르헤스가 이쪽저쪽의 문화권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실제로도 불교나 노장사상에도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글이 절대 정신을 구성하는 것일까?(나는 스스로 물었다.) 나는 인간의 언어들에 우주 전체를 암시하지 않는 명제는 없다고 생각했다. 즉, '호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을 낳은 호랑이들, 그것이 먹어 치운 사슴들과 거북이들, 사슴들이 뜯어 먹은 풀, 풀의 어머니인 땅, 땅을 낳은 하늘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신의 언어에서 각각의 단어는 사실들로 이루어진 그런 무한한 연결 관계에 관해 말하며, 그것도 암시적이 아니라 명백하게, 점진적인 방식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선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신의 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유치하고 신성 모독적인 것이라고 짐작했다.
알레프 152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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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누워서 쓰는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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