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의 단편집들을 꾸준히 읽어나가면서 느껴진 어떤 답답함의 실체는 뭔가 했는데, 대화가 거의 없다는걸 자각했습니다. 대부분 화자 한 명이나 고립된 존재, 주석, 어딘가에 쓰인 글들로 두 명 이상의 대화가 거의 등장하지 않더라구요. 오랜만에 대화를 만나 청량함을 느꼈습니다.
(5) [보르헤스 읽기] 『알렙』 후반부 같이 읽어요
D-29
서정
russist
청량함이라는 멋진 표현에 동의합니다😃
아마도 보르헤스의 소설은 다른 소설들과 달리 인물을 설득하기보다는 세계관 자체를 설득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합니다. 한 인물이 말하는 방식을 이해한다는 것 은 그 인물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이라는 말에 비춰보면, 대화체를 쓴다는 것은 한 사람, 나아가 한 캐릭터를 직간접적으로 설득하는 일이니까요. 보르헤스의 단편들에서는 캐릭터를 앞세운다는 인상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메타 구조에서는 언제나 배면에 존재하는 화자의 존재가 더 드러나게 마련이니까요. 이런 점이 호불호를 불러오는 게 아닌가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russist
[자히르~] 연속해서 아름다운 단편입니다!
본문에서도 보듯, 자히르(zahir)는 아랍어로 '눈에 보이는', '분명한'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코란에서 알라신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시며, 눈에 보이시며(zahir), 숨겨진(batem) 분"이라고 묘사된다고 합니다. 송병선 선생님은 이 두 가지 속성이 코란을 해석하는 두 가지 방법을 의미한다고 썼습니다. 말하자면 자히르는 신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나 모습, 그 구상(具象)인 것입니다. 마치 하느님의 광대한 말씀이 예수의 몸을 입고 지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처럼 자히르 역시 단 하나임과 동시에 모든 것의 표면으로서 존재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노시스학파가 말했던 형용모순으로서 '전체를 뒤덮은 부분'인 것입니다.
재밌게도 자히르는 역사 속에서 여러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보르헤스는 쓰고 있는데요, 모르긴 몰라도 자히르를 알아보는 사람에게 맞춤한 모습을 입고 오는 듯합니다. 보르헤스에게는 바로 '동전'입니다. 동전으로서 자히르는 보르헤스적인 세계관에 꼭 부합합니다. 동전은 한번에 하나의 표면을 나타내는 동시에 앞뒷면으로 나뉘어 있으면서도 전체로서는 하나의 단일체를 이룹니다. 절대적인 하나로 이어지는 여러 입구로서 자히르. 동전의 한쪽 면에는 '살다'가 씌어져 있고, 다른 한쪽 면에는 '꿈꾸다'가 씌어 있다고 보르헤스는 말합니다. 그러나 보르헤스도 인정하듯이, 두 가지는 모든 점에서 동의어입니다. 한 강연에서 보르헤스는 기이하고 초자연적이며 환상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한 청중의 질문에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russist
“ 차라리 '당신은 왜 사랑 또는 달에 관심을 기울이는가’라고 묻는 게 나을 거예요. 난 거기에 이상한 점이 있다고 생각지 않아요. 물론 uncanny(기이하다)라는 말은 게르만어에만 존재하죠. 로망스어를 쓰는 사람들은 그 단어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요. 하지만 난 그 필요성을 느낀답니다. 부분적으로 내 몸에 영국인의 피가 흐르기 때문일 거예요. 나는 기이한 것을 좋아하는 감수성이 있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죠. 스페인어에는 그런 단어가 없기 때문이에요. 스코틀랜드어에는 eerie(괴상한)이라는 멋진 단어가 있는데, 이 역시 라틴계 사람들은 느끼지 않는 어떤 것을 나타내지요. ”
『보르헤스의 말 - 언어의 미로 속에서, 여든의 인터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윌리스 반스톤 지음, 서창렬 옮김
보르헤스의 말 - 언어의 미로 속에서, 여든의 인터뷰세계 문학사와 지성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노년의 목소리를 담은 기록으로 1976년과 1980년에 한 인터뷰 열한 개를 모은 책이다. 시력을 잃어가던 시기에 대한 담담한 회고뿐 아니라 말년에 이른 보르헤스의 문학, 창작, 죽음에 대한 견해까지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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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ntin
“ 예전에 나는 동전의 앞면을 상상했고, 그런 다음에 뒷면을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은 동시에 양면을 본다. 그런 일은 마치 자히르가 유리로 되어 있지 않은 이상 일어날 수 없다. 한쪽 면이 또 다른 면과 겹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은 마치 나의 시각이 구체 형태로 되어 있고, 자히르가 중앙에 있는 것 같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
『알레프』 145,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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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ntin
이게 뭔 소리야 싶어서 황병선 역을 한 번 더 읽었습니다. 송병선 역 140쪽에 나오는 ‘니벨룽의 보물들’에 이어 황병선 역에선 ‘시구르(지구르트)’가 ‘지그프리트’라고 역주를 달아주셨네요. 니벨룽겐의 반지 혹은 절대 반지 ㅋㅋ 를 대입하니 이해가 조금 더 편해집니다.
이건 그냥 든 생각인데요. (뭐, 오독이라해도 괜찮습니다. 상상은 자유 ㅎ) 이 작품에서 테오델리나 비야르의 역할이 뭘까 고민해보게 됩니다. 보르헤스가 자히르를 얻게된 경위만을 설명하기 위한 역할로는 분량이 상당하잖아요. 테오델리나에게는 동전의 형태라기 보단 패션과 유행선도, 셀럽의 삶을 추구하는 어떤 무형의 삶의 방식이 동전보다 장기간 지속된 자히르로 작용한 건 아닐까 혼자 상상해보게 되네요…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그럼 테오델리나는 자히르가 아니라 batem에 사로잡힌 것인가…? 그만 하겠습니다.
테오델리나의 여동생인 훌리아는 확실히 동전 형태의 자히르로 아마도 죽어가는 듯 해서 의미심장하네요.
그나저나 보르헤스 정말 해박하고요. 가짜를 섞어 구축한 세계관을 펼쳐 풀어놓는 방식에 제발트가 참 많은 영향을 받았구나 싶어 더 읽을 제발트의 작품이 없음이 안타깝고 그렇습니다. (제발디언으로서 제발트 모임 놓친 게 못내 아쉬운)
quentin
지금 생각하니까 헛다리를 짚었네요. 이 책에서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책을 마치기 전에 좀 더 생각해봐야겠습니다.
russist
헛다리야말로 책읽기의 묘미죠!
quentin
후훗!
russist
저도 테오델리나 비야르의 역할이 이 소설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보르헤스가 동전에 그토록 몰두하는 것도 그녀의 죽음을 회피하기 위함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렇다면 테오델리나 비야르야말로 동전의 이면임과 동시에 이 작품 전체에 이상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또 자히르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죠.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발트는 언젠가 다시 한번 읽을 수도 있지요! 또 읽는 것처럼 재밌는 일도 없으니까요.
quentin
“ 그녀는 플로베르처럼 절대적인 것을 추구했지만, 그것은 순간적으로만 지속되는 절대성이었다. 그녀는 모범적인 일생을 살았지만, 내면의 절망은 끊임없이 그녀를 갉아먹었다.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서 도망치려는 것처럼 끝없는 변신을 시도했다. ”
『알레프』 133,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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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
보르헤스가 연상과 기억에 대한 테마를 깊게 생각하고 있는가 싶었던 소설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이야기에서, 어디까지 기억해야 모든 것일가를 흥미롭게 풀어놓는걸 보았을 때와 같은 주제 잡음이 느껴졌어요. 살면서 성서적인 '분명함'이란 무엇인가, 그걸 경험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흥미롭게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russist
그렇게 볼 여지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알라신의 두 속성 중 하나인 자히르를 단순히 알라신이 아닌 만사에 적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반-성서적인 인상도 느껴집니다.
산강처럼
“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자히르는 20센타보짜리의 평범한 동전이다. ...(18세기 말 구자라트에서 자히르는 호랑이였다. 자바에서는 신도들이 돌을 던졌던 수라카르타 이슬람 사원의 장님이었다. 페르시아에서는 나디르 샤가 바다로 던져 버리라고 명령했던 천체 관측기였다. 1892년경에 마흐디 감옥에서는 루돌프 칼 폰 슬라틴이 만졌던 터번 주름 속에 싸놓은 조그만 나침반이었다. 초텐베르크데 따르면 코르도바의 유대교 회당에서는 청니백 개 기둥 중의 하나에 있던 대리석 돌결이었다. 그리고 테투안의 유대인 거주 지역에서는 어느 우물의 밑바닥이었다. ”
『알레프』 131-132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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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강처럼
보르헤스 말만 듣다가 처음 읽는데, 낯선 인물, 낯선 지명, 낯선 역사가 너무 많아 따라가기가 버겁네요. 이런 단어들을 하나도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에 자괴감도 들고요. 어떤 마음으로 읽어나가면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ㅎ
russist
단언컨대 처음 읽으면 누구라도 그러지 않을까요? 여러 번 천천히 읽어보시면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3일에 한 편 읽는 일정을 정한 것도 그 때문이긴 합니다.
그리고 단어를 찾아가면서 읽는 것은 저도 마찬가집니다🥲 저는 스페인어를 모르면서 스페인어와 한국어 번역 대해서 아는 척 하고 있잖아요...
quentin
저는 번역서 두 권을 번갈아 읽고 있습니다. ㅎㅎ
화제로 지정된 대화
russist
[~자히르] 우리가 모국어로 어떤 추상적인 관념에 단어를 붙이고 이해할 때, 다른 언어권에서는 굳이 그것에 단어를 붙이지 않고 이해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경이로운 일입니다. 스페인어권 사람들은 영어의 uncanny를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흔히 말하는 남미 문학의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단어가 철저히 외재적 관점에서만 쓰여졌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데려옵니다. 마술과 환상이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는 세계를 생각해보세요. 그들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마술적인 상황을 '마술'이나 '환상'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숨을 쉬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요.
그래서 자히르는 무엇일지 궁금해졌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로잡혀 있는 모든 것, 혹은 당장 뭔가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서 새로 몰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의 이름(표면)은 아니었을까요. 보르헤스에게 자히르가 '동전'이라는 것도 너무 재밌습니다. 이 니켈의 주조물은 화폐의 역사를 가리킴과 동시에, 화폐 개념을 승인한 국가의 경제 시스템에 대한 극도로 집약적인 상징물이자, 사회적 합의로 이뤄진 허구의 산물입니다. 다들 알다시피 과거에는 조개껍데기였던 것들이 오늘날에는 국가의 공인하에 니켈로 주조한 동전이 되었습니다. '돈'은 물질이 아니고 추상적인 개념이며 허구의 산물이지만, 우리는 지폐나 동전이라는 실재의 상징물을 만지면서 돈이란 개념을 구체적인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따라서 동전은 아마 인간이 창조한 것들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면서도 매력적인 상징일 겁니다. 황병하 선생님의 번역은 이런 '동전'에 대한 추상과 구상의 간극이 자아내는 현기증을 깔밋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149쪽, 151쪽).
단편에서 보르헤스는 통속 잡지의 모델인 테오델리나 비야르의 장례식에 참석합니다. 그런 뒤, 어느 길모퉁이의 술집에 들러서 브랜디를 한 잔 마시고 나서 동전을 거슬러 받게 되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자히르임을 알게 됩니다. 그때부터 보르헤스는 떨치기 어려웠던 한 모델에 대한 관심을 동전으로 옮아가게 됩니다. 자히르는 말 그대로 '분명한' 표면이며, 도저히 떨치기 어려운 무언가에 대한 상징물입니다. 그렇다면 보르헤스는 왜 테오델리나 비야르의 죽음에 그토록 몰두했던 것일까요. 그 자세한 이유는 알기 어렵지만, 그녀가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되 '자히르'의 면모를 갖추었다는 점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늘 "올바르다고 인정된 장소에, 그리고 적절한 시간에 단정한 차림새로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세상에 대한 권태를 드러내며 모습"을 나타내며, 그녀는 언제나 "플로베르처럼 절대적인 것을 추구했지만 그것은 순간적으로만 지속되는 절대성"입니다.
이슬람에서는 알라신의 두 속성으로 자히르(zahir)와 바템(batem)을 들며, 각각을 '눈에 보이는'과 '숨겨진'이라고 말합니다. 코란을 해석하는 두 가지 방법을 의미하며 글자 그대로 읽고 나서 숨겨진 의미를 파악한다는 것입니다. 근데 이 두 가지는 선후 관계가 명확합니다. 글자 그대로 읽을 수 있어야 그 숨겨진 의미를 파악할 수 있고, 그 반대는 불가능합니다. 보르헤스는 이를 동전에 빗대어 "예전에 나는 동전의 앞면을 상상했고, 그런 다음에 뒷면을 떠올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서 이 두 가지를 하나로 본다고 말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것들은 본질적이고 내면적인 추상이 아니라 본질과 내면이 현실에서 형상을 입고 나타나는 구상입니다. 이때 구상은 추상의 까뒤집어진 형상, 추상으로 들어가는 구체적인 몸입니다. 본문에서 보르헤스는 아타르(Attar)의 ⟪아스라르 나마⟫를 빌려, 자히르는 "'장미'의 그림자"이고, "'베일'의 구멍"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카발라주의자들의 말을 빌려서 씁니다. "카발라주의자들 인간 소우주, 즉 우주의 상징적 거울이라고 이해했다. 만일 테니슨에 의하면, 모든 것이 그렇게 될 것이다. 모두, 참을 수 없는 자히르까지 그렇게 될 것이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근데 보르헤스가 만물을 너무 이분법으로 나누어 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요. 모든 것을 앞면과 뒷면, 표면과 이면, 구상과 추상으로 나누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요. 근데 그렇다고 말하기도 좀 애매합니다. 왜냐면 보르헤스는 본문에서 자신의 시선이 구체(球體)이기 때문에 동전의 양면을 동시에 본다고 말하고, 관념론의 가르침에 따라서 '살다'와 '꿈꾸다'가 동의어임을 역설하고, 모든 사람이 자히르를 생각하는 세계가 있다면 꿈과 현실의 구분이 무용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치만 보르헤스가 여기서 어설프게 '대립면의 통합' 따위를 설득하려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마지막까지도 동전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문지른다는 것은 오직 자히르 뿐임을 말하려던 게 아닌가 합니다. 한편, 보르헤스가 자히르를 의도적으로 잃어버리고 나서, 6월 말까지 쓰기로 했다는 환상적인 단편은 일전에 다뤘던 ⟨아스테리온의 집⟩과 그 구성이나 내용이 매우 흡사합니다. 이 단편 마저도 어떤 '반전', '까뒤집어짐'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히르의 속성을 일부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알렙환상적 사실주의와 추리소설적 기법, 반복 회귀라는 세계인식, 고도의 압축성 등이 특징으로 꼽히는 보르헤스의 단편 17작품을 한데 묶었다. 표제작인 <알렙>은 이 세상의 모든 사물, 상황, 모든 시간과 공간이 단 한순간으로 압축되어 있는 `알렙`이란 존재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픽션들<픽션들>은 2백 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얇은 책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엄청난 상상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그 상상은 심심풀이 환상이 아니라 삶과 세상의 미궁에 대한 깊은 통찰과 독창적인 사유로 이루어진 상상이다. <픽션들>은 20세기 문학에서 돋보이는 큰 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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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st
“ 주인은 거스름돈으로 내게 자이르를 주었다. 나는 한 순간 그것을 응시했다. 나는 조금씩 솟기 시작하는 듯한 미열을 거느린 채 거리로 나왔다. 나는 그 어떤 주화도 역사나 신화 속에서 끝없이 반짝이는 주화들의 상징이 아닌 주화는 없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
잠을 이룰 수가 없고,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거의 행복하기까지 한 채 나는 돈만큼 덜 물질적인 것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엄밀히 말해 그 어떤 주화가 됐건(예를 들어 20센트짜리 주화) 그것은 다가올 미래의 창고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돈은 추상적이다. 나는 되풀이해 말했다. 돈은 미래의 시간이다. 그것은 근교의 한 오후일 수도 있고, 브람스의 음악일 수도 있고, 지도일 수도 있고, 장기일 수도 있고, 카페일 수도 있고, 재화를 멸시하도록 가르치고 있는 에픽테투스의 금언일 수도 있다. 그것은 파로스 섬의 프로테우스보다 훨씬 더 변하기 쉬운 프로테우스이다. 그것은 예견할 수 없는 시간, 베르그송의 시간으로서, 이슬람이나 ⟨현관학파⟩의 시간처럼 경직된 시간이 아니다. (···) 하나의 동전은 우리의 자유 의지를 상징한다. (나는 이러한 ⟨생각들⟩이 자이르와, 그것이 행사하는 악마적 영향의 첫번째 성격을 부정하려는 책략임을 의심치 않는다.) ”
『알렙』 149쪽, 151-152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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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st
“ 테오델리나 비야르는 올바르다고 인정된 장소에, 그리고 적절한 시간에 단정한 차림새로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세상에 대한 권태를 드러내며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그러나 테오델리나 비야르의 말에 의하면, 이런 세속적 지루함과 차림새, 그리고 시간과 장소는 즉시 시대에 뒤진 것이 되어 버릴 것이고, 한물간 취향을 규정하기 위해 사용될 요소들이었다. 그녀는 플로베르처럼 절대적인 것을 추구했지만, 그것은 순간적으로만 지속되는 절대성이었다. ”
『알레프』 133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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