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보르헤스 읽기] 『알렙』 후반부 같이 읽어요

D-29
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한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은 그 사람에 의해 미리 결정되어 있다는 대목을 또다시 읽었다.
알레프 독일 레퀴엠,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연상시키는 작품이었습니다. 제사에 관한 해석에 따른 간극은 놀랍네요. 저는 송병선 선생님 번역으로만 읽어서 몰랐어요. 저도 황병하 선생님의 문장이 더 어울리는것 같은데... 미스테리입니다.
그래서 양쪽을 번갈아 가면서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욥기 해석은, 이 작품에 한정해서 생각해보면, 송병선 역이 더 개연성 있게 느껴집니다.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느끼셨을까요? 아, 이 모임은 대화 타래를 엮어가는 모임이니 공지사항을 참조해주세요!
네, 읽어가는 방법은 알고 있습니다. 암튼, 천천히 읽어가보겠습니다.
(아베로에스의 탐색) 나는 연극이 무엇인지 감지하지도 못한 채 희곡이 무엇인지 상상하려고 했던 아베로에스가 르낭과 레인, 그리고아신 팔라시오스의 짧은 글 몇 개 이외의 다른 자료들 없이 아ㅏ베로에스를 상상해보고자 했던 나만큼이나 우스꽝스럽다고 느꼈다.
알레프 130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독일 레퀴엠] 이 단편에서 보르헤스는 오토 디트리히 추어 린데가 쓴 회고록의 편집자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편집자는 원고의 모든 것에 개입하면서도 끝끝내 그 자신은 지면에서 사라지는 존재라는 점에서 보면, 소설가의 역할과 어느 지점에서 만나는 듯합니다. 본문 얘기를 해보면, 오토 디트리히 추어 린데은 고문 및 살인 행위로 사형을 언도받고서, 사형 집행이 있기 하루전에 이 글을 쓴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 진술서는 어떤 의미로 굉장히 전형적인 악인의 그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자신이 죽어 마땅한 인간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흉악범의 태도는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 속 한구석을 굉장히 불편한 방식으로 건드립니다(N번방 사건의 주동자인 조주빈이 포토 라인에서 "악마의 삶을 멈춰줘서 감사합니다"라고 했던 것을 떠올려 보세요). 흉악한 범죄자들은 성찰 능력이 없고 자기 행위에 대해 반성하지 못한다는 통념에 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르헤스는 이 단편에서, 성찰을 동반한 범죄자의 기만적인 정당화 기제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들의 숨겨진 과시욕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는 범죄자의 표현은 변명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말들은 말 그대로 말이고,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진위를 따질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는 다만 한 사람의 행위로 그 사람을 판단해볼 뿐이니까요.) 오토 디트리히 추어 린데가 자신이 죽어 마땅한 짓을 했으며, 사형을 언도한 재판부의 판단이 "공명정대하다"고 인정한 것만 봐도 그러합니다. 살인범은 자기 행위가 범죄임을 알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을 언제나 이해받고자 합니다. 이때 '이해'는 악인들이 마지막으로 매달리는 종교이자 구원입니다. 그러나 이 단편에서도 보듯, 그는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일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나는 수습 시절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을 작정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은 자세히 기술합니다("개인적으로 나의 동료들은 혐오스러웠는데,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주는 고결한 목표를 위해 우리의 개인적 성향을 억압해야 한다고 합리화하려 애썼지만 모두 쓸데없는 일이었다"). 심지어는 사형 판결 역시 자신이 생각하는 선(善)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 중 하나이며, 자신의 패배와 죽음은 더 큰 승리와 역사적 삶을 위한 계획의 일부라고까지 말합니다. "나치즘은 본질적으로 도덕적 행위, 그러니까 이미 부패한 노인에게 옷을 벗겨 새 사람에게 옷을 입히려는 행위이다." 이 대목에서는 몇몇 악인들이 그렇듯이, 자기 정체성을 규정할 때 빛의 그림자를 자처하며 빛을 부각시켜주는 존재라고 자신을 치켜세우는 모습도 보입니다("불행이란 실낙원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익히 일려져 있다"). 아마도 나치의 사고방식이란 '운명을 짜는 것이 신의 소관이라면 우리 자신이 신이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작동한 게 아닐까 합니다. 종교를 극도로 배척하는 방식의 또 다른 광신 말입니다. 나치가 니체와 슈펭글러 속에서 소위 '독일적'이라고 하는 정신을 읽어냈고, 그것을 역사 속에서 실천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합니다. 오토 디트리히 추어 린데가 말하듯이 지난 시대의 독일을 청산하는 것은 새세계의 시작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기 싫어하는 불편한 진실이 있습니다. 바로 잔혹한 살인범, 흉악범도 때때로 진실을 말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 발언의 진실성은 그를 둘러싼 기만적인 상황 때문에 훼손되고 있습니다. 마치 영원한 행복과 성공을 꿈꾸는 이가 그것을 원하는 만큼 선택하고 누릴 수 없다고 느낄 때, 그 정반대편으로 질주해서 (도처에 널려 있는) 완벽한 불행과 실패를 선택했다고 말하는 것처럼요. 드물게 존재하는 보석보다 발에 채이는 돌멩이를 쥐고서 그것을 원한다고 말하는 이의 공허한 자위이자 뒤틀린 금욕주의 같습니다. 모든 패배주의자들, 패배 찬양자들의 논리에 내재한 결함이기도 합니다. 추어 린데는 아마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을 순교자라고 믿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그렇기에 현실의 우리, 이 픽션을 읽는 저는 그의 논리를 때로 일일이 따지고 논파하기보다 그것이 기만적인 정당화라고 잘라 말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재판이 이루어지는 동안 나는 말하지 않았다. 내가 결백을 주장했다면 판결은 방해받았을 것이고, 비겁한 행동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그래서 처형당하기 전날인 오늘 밤 나는 두려워하지 않고서 말할 수 있다. 나는 사면을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받고 싶다. 내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은 독일 역사와 세계 미래사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 나는 내일이면 죽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미래에 다가올 세대들에게 하나의 상징이 될 것이다.
알레프 104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나는 생각했다. ‘난 패배를 기뻐하고 있어 그것은 내가 아무도 모르게 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처벌만이 나를 구원해 줄 수 있기 때문이야.’ 또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난 패배를 기뻐하고 있어, 그것은 끝이고 난 너무 지쳐 있기 때문이야.’ 그리고 나는 이렇게도 생각했다. ‘난 패배를 기뻐하고 있어. 그것은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며, 현재와 과거와 미래의 모든 행위들과 무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고, 단 하나의 실제 행위를 비난하거나 개탄하는 것은 우주를 모독하는 일이기 때문이야.’
알레프 111-112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마지막으로 제 사족이자 사견입니다. 세계전집시리즈의 ⟪픽션들⟫의 뒤표지에 홍보 문구로 이 단편에 나오는 한 구절이 인용돼 있습니다. "나는 내일이면 죽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미래에 다가올 세대들에게 하나의 상징이 될 것이다.⏤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하지만 이 말은 보르헤스의 발언으로 쓰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소설 속에서 나치의 부역자인 오토 디트리히 추어 린데가 했던 발언을 작가로서 보르헤스가 자신의 작업을 칭송하는 말처럼 쓴다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고문기술자임과 동시에 살인자로 처형될 운명에 처한 한 인물이 사형 당하기 직전에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맥락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가 부도덕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한 말도 부도덕하니 쓰지 말라는 수준의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소설 속 화자의 입을 빌려서 뱉은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저 부분만 떼어서 보르헤스가 자신을 칭송한 말인 것처럼 홍보문구를 쓰는 게 올바른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뒤표지에 "서울대 권장도서 100선"이라는 문구와 함께 삽입돼 있는 것을 보니, 더욱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몇 발자국만 더 건너 뛰어도 기이한 상황을 마주치게 될 겁니다. 그런 식이라면, 한 한국 영화에서 부패한 언론사 주필을 연기했던 한 중견 배우의 이름을 걸고서 "대중은 개, 돼지입니다"라는 홍보 문구를 쓰는 것도 허용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렇게 할 리도 없습니다. 소설적 허구와 현실의 관계를 묻는 것과 그 둘을 의도적으로 혼동하고 특정한 목적하에 호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전자가 보르헤스의 작업이라면, 후자는 ⟨독일 레퀴엠⟩에 나오는 오토 디트리히 추어 린데의 작업이니까요.
제가 이거 ‘웃긴다’라고 생각한 지점이 말씀하신 자기 정당화, 유리함, 잘난 면만 기술하는 부분이었어요. 잘 정리해 주신 덕분에 저도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저런 인물의 내면을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quentin 님에게 저도 늘 도움 많이 받고 있습니다😀
보르헤스가 이 작품을 쓴 의도가 뭘까요? 설마 나치를 옹호하기 위해서는 아닐 텐데요.
나치의 1인칭으로 픽션으로 재현하는 것과 나치의 행위를 옹호하는 것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영화 ⟨한나 아렌트⟩를 보셨나요? 거기서 보면 한나 아렌트가 이런 말을 합니다. '이해는 용서가 아니다.' 악의 내면을 이해하는 것은 악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고 악행을 용서하는 것도 아니라고요. 악을 이해하는 것은 악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남은 사람에게 남겨진 의무라고요. 한번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재밌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 나오는 인물은 전형적인 악인이라고 보긴 어렵고 어떤 면에서는 보르헤스적인 세계관을 보여주기는 합니다. 다만 이 부분은 섬세하게 읽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치가 니체의 책 속에서 나치적인 것을 발견했다고 해서 니체를 폄훼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요. 각종 사이비 교주들도 성경적인 베이스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경의 가치가 훼손되었다고 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합니다.
한나 아렌트독일계 유대인 철학자이자 정치 사상가인 한나 아렌트가 1960~1964년까지 겪었던 실화를 다루었다. 한나는 나치 전범인 칼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내용을 보며, “악의 평범성”을 개념화한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은 가족, 유대계 커뮤니티와 사상계 등 모든 사람의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사회적 반감과 살해 위협 속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한나 아렌트. , 에 이은 강인한 실존 여성 인물 3부작의 완성!
화제로 지정된 대화
[아베로에스의 탐색~] 이 단편은 실존했던 무슬림 철학자 이븐 루시드, 라틴어로는 아베로에스로 번역되는 인물을 내세운 픽션입니다. 굳이 한마디로 정리를 하자면, 이 단편은 모든 번역에 내재한 실패 가능성('번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 '그럼에도 어떻게 실패로써 번역이 성공하는가?')을 탐구하는 단편입니다. 단편 그 자체로 꽤 복잡한 구성을 취하는 데다가 주해자(The Commentator)로서 아베로에스라는 인물을 잘 모르면 그냥 지나칠 법한 세부 사항도 많습니다. 차근차근 설명을 해보겠지만, 저도 그리스 철학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아니어서 틀린 내용이 있을 수도 있으니 코멘트 남겨주시면 좋겠습니다. 한국일보에 기고된 김정명의 [이슬람 문화기행]을 보시면, 이븐 루시드(라틴어로는 아베로에스)에 관한 배경 설명이 잘 나옵니다. 라파엘로 그림 ⟨아테네 학당⟩에서는 서양을 대표하는 지성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토론하는 모습이 담겨 있는데, 그중 한명으로서 무슬림 철학자인 이븐 루시드가 등장합니다. 그림에서 그는 피타고라스의 공책을 훔쳐보는 자로 묘사됩니다. 중세 유럽의 역사는 흔히 암흑기로 묘사되는데요, 이 시기에 유럽은 막강한 교회의 권위에 눌려서 이성(理性)의 활동에 제약이 많았다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그리스의 학문적 전통이 유럽에서 명맥을 이어나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슬람 쪽으로 활로가 뚫렸습니다. 8세기 압바스 왕조를 기점으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다양한 저서들이 아랍어로 번역된 것입니다. 번역이 활성화되면서 아랍권은 그리스 철학에 매료되었고 이후 12세기에 이르러서 이븐 루시드의 주해서로 절정을 이룹니다. 이븐 루시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에 주해서를 통해서 당대 최고의 연구 권위자가 되었고, 너무 유명해서 그를 간단히 '주해자'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라파엘로의 그림 속에서 이븐 루시드는 피타고라스의 공책을 훔쳐보는 간악한 이처럼 묘사됩니다. 비록 그가 주해자로서 큰 명성을 얻었을지라도 그의 업적은 그리스 철학에 크게 의존하며, 그 업적을 베껴쓰고 주석을 단 것에 불과하다는 당대의 인식이 라파엘로의 그림에 투영된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그러나 보르헤스의 생각은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이븐 루시드가 그리스의 업적에 기대고 있다고 하더라도 주해자로서 그 위대함이 반감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차적으로 베껴쓰는 행위, 즉 원전을 필사하고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겨적고 해설을 다는 행위야말로 종교적인 찬양의 일종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리스 철학의 아랍 번역서와 이븐 루시드의 주해서 덕택에, 유럽인들은 암흑기 동안 잊혔던 그리스 철학을 훗날 회복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니까요. 그리하여 진정 유럽적인 것은 없으며, 오늘날 유럽인들 자랑하는 냉철한 이성에 바탕한 철학과 과학은 아랍적인 것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습니다. 한편, 이븐 루시드는 이성적 성찰을 목적으로 삼는 철학서와 계시의 내용을 담는 종교 경전이 동일한 진리를 추구하는 저서를 쓰기도 했다고 알려집니다. 철학서와 경전 모두 진리를 추구하되, 그것을 표현하는 양상에서만 차이를 보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이슬람 세계에서 보수적인 신학자들은 모든 진리의 원천이 종교적 계시 안에 있으므로 이성을 진리의 근본으로 삼는 것은 이슬람의 교리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는데요, 이에 맞서 이븐 루시드는 이성과 계시는 모두 동등한 진리이기 때문에 "진리는 진리와 모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런 이븐 루시드의 주장과 당시 보수적인 코란 학자들의 행태는 본 단편인 ⟨아베로에스의 탐구⟩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평생 코란만 들여다본 신학자들은 세계 방방 곳곳을 돌아다니며 경이를 목격한 아불카심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은근히 비난하고 있습니다. 출처: [한국일보] 아테네 학당 속 이방인 철학자, 중세 유럽을 깨우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3212081323776
이븐 샤라프의 무의미한 운율에 놀란 그는 어느 정도 근거를 가지고, 옛날 사람들과 『코란」에 모든 시가 들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혁신을 위한 소망을 무식하고 허세적인 것이라고 비난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말을 들었다. 그것은 그가 옛것을 옹호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알레프 128,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아베로에스의 탐색] 이어서 얘기하면, 단편에서 아베로에스는 아랍어로 번역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읽었고, 그에 관한 주석을 내놓았지만 그 원어를 알지는 못했습니다. 말하자면, 아베로에스를 가로막고 있던 것은 작품의 난해함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시리아어와 그리스어를 모르는 채로 "번역본에 대한 번역에 관해 작업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아베로에스가 일종의 비극론이라고 할 수 있는 ⟪시학⟫에서 비극(τραγωδι'α)과 희극(κωμηδι'α)이라는 단어를 여러차례 접하면서도 그 의미를 몰라서 고심하는 장면은 극도의 아이러니임과 동시에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려는 이가 번역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상황의 축소판이라고 할 만합니다. 한 연구자의 말을 빌리자면, 번역이란 모국어라는 감옥을 철저하게 인식하는 행위이며, 나아가 번역 불가능성을 실감하면서도 그것을 가능케 하려는 노력의 총체입니다. 여차저차해서 어떤 단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한다고 하더라도, 그 단어가 현상의 특수한 면면을 모두 설명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아불카심이 세계 곳곳을 돌며 각종 경이를 보았더라도 그것을 말로 전달하기 어려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요(“가령 벵골의 달은 예멘의 달과 똑같지 않음에도, 그것을 똑같은 단어로 묘사해야 하는 것이다”). 단연코 이 단편의 백미는 아베로에스가 파라치의 집에서 여러 사람들과 저녁 식사를 하며 나눈 대화들일 겁니다. 이 저녁 식사의 대화는 '비극'과 '희극'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고자 하는 아베로에스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몇몇 코란 학자들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놀라움을 보았다고 말하는 아불카심을 탐탁치 않게 여기면서 그를 은근히 몰아붙이자, 아베로에스와 시인 압달리말리크가 아불카심을 거들며 변호해주기도 합니다. '모든 책의 어머니로서 ⟪코란⟫'과 자식으로서 다른 책들의 관계, 결코 표현될 수 없는 경이로운 광경, 언변을 갖춘 변사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공연을 통해서 이야기를 '보여주는' 중국식 연극, 완전히 다른 두 대상 사이에서 같음을 발견하는 시적 은유와 그 쇄신······ 이 모든 소재들이 '비극'과 '희극'의 의미를 추측하는(번역하는) 과정에 대한 또 하나의 메타포처럼 작용합니다. 그 결과, 아베로에스는 "찬사를 비극이라고, 풍자와 저주의 말을 희극이라고" 파악하기에 이릅니다. '아베로에스의 탐색'은 굉장히 의미심장한 방식으로 실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책의 어머니를 운운하며 평생 코란을 들여다본 학자들이 정작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며 놀라움을 직접 목도한 아불카심을 은근히 폄훼하는 모습에서는 모종의 희극성이 느껴지고, 이런 저녁 나절의 풍성한 대화에도 불구하고 종내에는 학자들이 코란에 모든 시가 들어 있으며, "혁신을 위한 소망을 무식하고 허세적인 것이라고 비난"하며 옛것에 대한 찬사로 마무리하는 모습에서는 모종의 비극성이 느껴집니다. 소설의 말미에서도 말하듯, 보르헤스는 아베로에스의 탐색이 애당초 실패할 기획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르헤스는 한 언어에서 표현 가능한 것이 다른 언어에서는 도저히 표현 불가능한 것이 되는 상황을, 이 짧은 단편의 저녁 식사를 통해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번역이 실패하는 과정을 그려냄으로써 번역의 불가능성을 전달하기에 성공하는 아이러니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의미심장한 배경지식을 소개해드리면, 이 단편의 제사에 나오는 역사가 르낭은 ‘아불 왈리드 무함마드 이븐 아흐마드 이븐 무함마드 이븐 루시드’라는 무슬림 철학자의 이름이 ‘벤라이스트’, ‘아벤리스’, ‘아벤 라사드’, ‘필리우스 로사디스’라는 이름을 차례로 거쳐, ‘아베로에스’라는 유럽 이름으로 정착되는 데만 해도 1세기가 걸렸다고 썼다고 합니다.
"아리스투(아리스토텔레스)는 찬사를 비극이라고, 풍자와 저주의 말을 희극이라고 이름 붙였다. 『코란」과 이슬람 사원에 있는 『무알라카』에는 훌륭한 비극과 희극들이 가득하다."
알레프 129,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간만에 머리 굴려야하는 단편이 등장했습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누는 말들이 복잡해서 한참 들여다 봤네요. 닫혀있는 세계의 아베로에스는 결코 알 수 없었던 비극과 희극의 의미와 한정된 자료를 통해 애써 재구성해보려던 화자와 대칭을 이루는 모양입니다. (한동안 그리스 비극을 조금 들여다봤는데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뜻하는 희비극의 의미가 현대인이 생각하는 것과 살짝 다르긴 합니다만) 결론은 또다시 작가가 말하는 작가의 이야기인 것 같네요. 음…한 번 더 읽고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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