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느린속도로 자라는 이유, 정신질환이 치솟은 이유를 SNS와 같은 스크린과의 상호작용이 많아졌기 때문이고 헬리콥터양육 등이 결합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네요.
불안증, 우울증이 높은 세대이니 안전주의문화아래 과잉보호 받게 되었다... 라고 이야기하네요.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고 우리나라도 비슷한 패턴을 보이는거 같습니다. 여기에 우리나라는 극심한 입시경쟁이 더해지는거겠죠?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05. <나쁜 교육>
D-29
오구오구
도리
저도 요즘 ' SNS와 같은 스크린과의 상호작용'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지고 있어요. 몸의 감각으로 들어오는 정보가 내 생각보 다 훨씬 많겠다는 (써놓고 보니 뻔한) 결론이요. 지인이 특수교사인데요. 자폐 아동이 아기일 때 비장애 아기와 차이가 없다가, 발달행동단계에 뭔가를 건너뛴 아이들이 자폐 아동이 되더라는 연수 내용을 알려줬거든요. 예를 들어 기어 다니기 다음에 앉기를 해야 한다면, 안 기고 바로 앉는 식이던가 그렇다고요. 충분히 기어다니면서 몸으로 얻는 감각이 있어야 한다고 그랬어요.
저도 요즘에 몸으로 바로 느껴지는 안전감, 편안함, 신뢰감 이런 게 떨어질 때 막 불안해지고 마음의 상태가 아슬아슬해진다고 느꼈는데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더욱 놀라면서 들었네요.
himjin
“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는 이용자가 뜻 깊은 사회적 관계 형성에 익숙한 사람일 경우에는 혜택을 가져다주고, 이용자가 그렇지 않은 사람일 경우에는 고립과 사회적 비교라는 구렁텅이에 빠뜨려 해악을 입힌다. ”
『나쁜 교육 - 덜 너그러운 세대와 편협한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7장, 274쪽, 조너선 하이트.그레그 루키아노프 지음, 왕수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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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맥주
4장 협박과 폭력을 다시 읽다가 떠올린 게 두 가지 있어요.
(1) 저는 ‘폭력적’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을 의심해요. 폭력이 아닌 것을 폭력처럼 들리게 만드는 마법의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폭력을 행사하는 악한으로 몰아붙이기에 좋지요.
(2) 혐오에 반대한다는 분들이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게 혐오 발언을 하고, 차별에 반대한다는 분들이 자기와 의견이 다른 집단을 악마화하며 차별하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봤습니다. 무기를 쓰지 않기 위해 무기를 쓰고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것보다 더한 아이러니 같습니다. 적어도 후자들의 경우는 자신들의 모순을 인식은 하는 것 같은데요.
도리
저도 요즘 (1), (2) 관련해서 생각이 많아졌는데요. '폭력'이나 '혐오', '차별'이라는 말이 만연하게 쓰여서 그런지 누군가의 입에서 이 단어를 들을 때 멈칫하게 될 때가 있더라고요. 저도 분명 폭력이나 혐오, 차별은 싫고, 이를 근거로 뭔가를 주장할 때도 있었는데요. 어떤 사람은 나와 같은 걸 주장하는 듯한데 그 사람의 의견이 턱턱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의문이 들고 저를 반성하기도 했는데요. 와중에 이런 글을 보니 흥미로워요.
안 그래도 모임 시작의 모임지기님의 말을 읽고 동의하기도 반감이 생기기도 했었는데요. 어서 책을 읽고 참여해야지 싶었는데 제가 아직 그믐북클럽의 <바른 마음> 2장을 읽고 있습니다... 책도 안 읽고 말 얹기가 이상해서 염탐만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요. 이러다가 모임이 끝날 듯해 설익은 생각 남깁니다. 벽돌책 타파가 저는 정말 쉽지 않은데 다들 대단하세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YG
오늘 수요일(5월 22일)은 8장 '편집증적 양육'을 읽습니다. 저는 저대로 읽으면서 많이 반성하게 된 장이었어요.
실제로도 그렇죠. 20세기 때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지금보다 훨씬 위험했죠. 반면, 그때와 비교했을 때 훨씬 안전해진 21세기에 왜 더 보호 편향의 양육이 생겼을까요?
오구오구
계층별 양육방식이 다른 것, 중산층에서는 재능계발중점 양육을 하고 노동계층은 자유방임적 양육을 하는 것에 대한 차이를 잘 설명하네요. 노동계층의 노는 시간이 많은 방임적 양육 방식이 유리한 면도 있지만 사회에 나와서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 또 이 아이들이 아동기 불행의 경험이 많다는 점 등으로 인해 백프로 좋지는 않다고 합니다.
저자들은 설명하지 않았지만, 노동계층 아이들의 놀이방식이 예전처럼 놀이터에서 흙으로 혹은 친구들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요즘은 SNS 노출 방식이라는 점이 큰 문제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1호를 키울때 헬리콥터처럼 양육했는데, 이유는 엄마의 불안이었어요. 그 불안은 여러 요소가 복합되었겠지만 직장다니며 양육하는 것에 대한 보상심리도 컸던거 같아요. 저는 헬리콥터 양육이 잘 먹히지 않아서 1호 사춘기에 갈등을 많이 했는데,, 2호는 노동계층처럼 키우고 있는데.. 학원 안보내고 하고 싶은거 하도록 하고... 문제는 학원에 안가면 친구를 만날 수 없어서 2호는 하교후 주로 유튜브와 인스타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거 같더라구요 ...
편집증적 양육이 성인이 될때까지 작용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대부분 부모들이 사춘기 자녀와 마주하며 양육방식의 변화를 ㅋㅋ 추구하게 되거든요...
바나나
“ 우리가 아이들의 신변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합리적인 예방조치를 빠짐없이 강구해야 하는 것은 분명 맞지만, 안전주의 문화에 질질 끌려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은 아동기에 가질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경험 가운데 일부분을 빼앗기고 만다. ”
『나쁜 교육 - 덜 너그러운 세대와 편협한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p.281 8장 편집증적 양육, 조너선 하이트.그레그 루키아노프 지음, 왕수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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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이런 사고방식을 지닌 학생 들이 대학에 들어가서 안전공간, 트리거 워닝, 미세공격 훈련, 편향태도 대응팀 같은 것들을 요구하리라는 것은 불 보듯 훤한 일이지만,
『나쁜 교육 - 덜 너그러운 세대와 편협한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p.305, 조너선 하이트.그레그 루키아노프 지음, 왕수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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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최근 부쩍 중학생들 사이에서 자주 하는 태도가 있습니다. 주변에서 누군가 실수하거나 잘못하면 '왜 그러니 00아!' ' 00아 에휴~ ' 라며 한숨을 쉬는 식으로 주위에서 짧 은 핀잔을 한 마디씩 얹습니다. 아마도 자기가 들었던 부모의 잔소리를 되돌려 주는 것 같은 느낌의 말을 다른 학생들에게 쏟아냅니다. 표현은 점잖지만 그 속엔 경멸과 비꼼이 담겨 있는 방식의 말하기를 능숙하게 잘 해 냅니다. 일종의 미세공격이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남학생들의 미세공격 발달이 눈에 띕니다
YG
이 칼럼 보셨나요? 이번 달 벽돌 책 주제와 통합니다. 김영민 교수의 '참꼰대란 무엇인가?'
https://naver.me/5JVasES9
장맥주
ㅎㅎㅎ 재미있네요. 참꼰대의 길을 걷겠습니다. 그런데 어감은 그냥 꼰대보다 더 안 좋은데요.
오구오구
잘 보았습니다~~~ 참꼰대 요소 중 "학문적으로 엄격한 사람이었으나 학생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는" 방법으로 학점을 두개 주는 방식 ㅎㅎ 굉장히 타협적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현명하고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좋은 칼럼소개 감사합니다~
시어러
8장까지 읽었습니다. 소셜미디어와 핸드폰으로 뉴스를 쉽게 접하고 상호 소통을 편하게 하는게 앞선 비진실의 가장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7징에 관련내용이 나와서 공감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비교를 할일이 많지는 않았는데 소셜 미디어로 다양한 사람들이 올리는 사진이나 생각, 글들을 보고 비교하게 되니 불안증이나 우울증이 오고 반감이 생기면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는 마음이 적어지 는거 같습니다.
8장에서 나오는 편집증적 육아도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저도 아이를 풀어주면서 적당히 간섭을 하고 싶은데 사회에서 요구하는 중간이 있습니다. 매년하는 영유아 검진만 해도 키, 몸무게 부터 백분위로 나오고 또래에 할수 있는 행동을 몇가지만 못해도 추적관찰요망 이런식으로 나오니 아이의 속도대로 크고 있디고 생각하려 해도 가끔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이 책을 보니 그럼에도 과잉보호를 하지 말아야 겠다고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borumis
죄송합니다. 지금 아이가 은따(참 이런 단어들은 잘도 만들더라구요)로 너무 힘겨워해서 한동안 학교 가길 너무 힘들어해서 전학과 이사를 계획 중입니다... 미국의 사촌오빠가 육체적 폭력 말고 cyber bullying 등도 미국에서 도 최근에 와서야 좀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데... 결국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피해가야하는 상황이네요.. 넷플릭스에서 봤던 산드라 오 주연의 드라마 The Chair에서 cancel culture 문제를 다루고서 언젠가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급 이사를 가느라 너무 집안일들로 정신 없어서 이번 모임에서는 거의 참여를 못했네요.. 아마 8월까지는 독서모임은 좀 힘들겠지만 그 이후 정신차리고 다시 뵙겠습니다~
오구오구
은따. ㅠㅠ 힘든 시간 보내고 계시는군요, 잘 해결되기 바랍니다~
장맥주
아니, 이런 일이... 잘 해결되기를 빌겠습니다.
은따는 저는 단어는 들었지만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건지 잘 모르는데 물리적 괴롭힘보다 더 대처하기 힘들 거 같습니다. 사람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교묘한 사악함에 시달리는 것보다 차라리 툭탁툭탁 싸우는 게 낫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쓰고 보니 이 책과도 아주 무관하지는 않은 이야기가 됐네요.
오구오구
조카가 은따로 괴롭힘을 당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카톡방을 여러개 만들어서 한명이 없는 방, 모두 있는 방 등... 다른 방에서 한명을 은따시키는 방법.. 그 방에 초대되지 않은 아이 험담... 같이 놀다가 한명만 배제 등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더군요..
학교 선생님들 많이 힘드실거 같아요 ㅠ
YG
@borumis 아, 저런. 저도 아이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항상 그런 부분이 걱정입니다. 부디, 아이가 상처 받지 않은 방향으로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네요; 기운 내세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YG
오늘 목요일(5월 23일)은 9장 '놀이의 쇠퇴'를 읽습니다.
저는 강연 등으로 낯선 동네를 가게 되면 항상 먼저 눈길을 주는 곳이 동네 놀이터나 공터입니다. 그나마 놀이터나 공터에서 아이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곳이 있고, 정말 똑같은 오후 늦은 혹은 저녁 시간대인데도 한산한 곳이 있거든요. 그런데 전자와 후자 사이에 강연 분위기도 큰 차이가 있어요. 당연히 후자가 훨씬 낫습니다. 이번 장을 다시 읽으면서 그런 경험을 떠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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