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담 12·12·29

D-29
다음 논제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2. ‘공정’만큼이나 이 책에서 ①‘청년’, ②‘능력’이라는 개념 또한 협소하게 다뤄지고 있지는 않은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①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이 책에서 다양한 ‘청년’ 유형을 사유하기보다는 청년층이 엘리트주의를 맹신하는 특정한 전형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종종 받았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고학력 청년이 자원이나 계층의 도움을 얻는가? (‘고학력’이 획득되는 방식이 과거와 같이 그렇게 단순한가?, ‘고학력자’ 내부의 위계 차이를 간과할 위험이 있지 않을까?) 저임금‧저학력 청년이 인국공 정규직 전환에 분노한 경우는 그저 만들어진 담론을 수동적‧피상적으로 접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는가? (이런 접근이 오히려 그 ‘계층’을 무능력하게 규정할 위험을 내포한 게 아닌가?) 절차상의 공정과 보상을 요구하는 심리가 계급 재생산에의 욕구와만 결탁해있는가? 등이 우선 떠오릅니다. 이런 문제가 함께 사유되지 않으면 ‘기성세대’의 대타항으로 편리하게 만들어지곤 하는 ‘청년’의 전형을 고착화할 위험이 있을 것입니다. ② “한국 사회에서 계층 이동과 부의 재분배를 가능하게 하는 정당하고 합리적인 통로로 여겨졌던 능력주의 모델은 결국 우리의 발목을 잡을 것”(28)이라 말할 때, 로봇이나 무인 기술이 비전문직(주로 생산직)을 대체하게 될 거라는 미래 전망을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1) 맥락상 ‘능력’은 청년들이 직업을 구할 때의 고용 쓸모성과 대치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범위가 너무 한정적으로만 사유되고 있는 건 아닐까요? 2) 이 경우 이어지는 논의에서도 논리의 정합성을 담보하지 못할 위험이 있는데, 저자가 비판하는 공정 담론의 생산자들은 주로 엘리트주의를 견지하면서 전문직에 분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모인 대부분의 토론자가 청년일 텐데요, 이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비단 이론적 지식이 아니라 개인적인 경험과 소회를 편하게 나눠주셔도 대환영입니다.
청년 논의를 확장시키고자 합니다. 제가 이 책에 비판적인 이유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저자는 책 후반부에 이르러 공정 이후의 대안적 세계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는데, 그 핵심 내용은 '차별 철폐'입니다. 따라서 저자는 국가, 젠더, 인종, 소득 등에 따른 각종 stereotype의 형성을 전면적으로 비판합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도 책의 전반부에서 청년층 전반에게 stereotype을 씌우고 있습니다. 그에게 청년이란 일부 정치인들의 정치적 선동에 휩쓸려 비판적이고 자의적인 검토가 불가능한 이들, 신자유주의적 질서 안에서 능력주의라는 환상에 빠져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바라보지 못하는 이들에 불과합니다. 물론 이 내용이 상당 부분 진리를 관통하고 있긴 합니다만, 청년들을 저렇게 우매한 존재로 대하는 태도야말로 본인이 역설하는 '차별'이고 '부정의'이지 않나요?
저자는 마지막으로 가면서 '보편적 정의'(161쪽)를 말합니다. 그 구체적 실현책으로는 '무조건 평등'보다 '선별적 보편주의'(164쪽)을 지지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요. (그러고 보니 이 책은 참 개념이 선명하고 신조어도 많네요.) 라임 님께서 말씀하신 저자의 주장-- '차별 철폐'와 '청년에 대한 stereotype'이 이 부분을 가리키는 것 맞을까요?
- 모든 고학력 청년이 자원이나 계층의 도움을 얻는가? 저는 대한민국에서 학력과 부모의 경제력의 비례관계가 초상위 클래스를 제외하면 많이 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하는 초상위 클래스는 서연고포카를 말하는게 아니라 서울대 안에서도 굉장히 높은 과라던지 5대 의대 등등을 말하는 겁니다. (물론 저도 잘 몰라서... 이런 곳에 가는 사람들이 사교육을 많이 받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포항공대만 봐도 일반고 출신들이 70 % 정도이고 학비 전액 지원이라는 메리트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8년간 학교를 다니면서 느낀 것은 오히려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경험적인 것이고 팩트는 아닙니다.) 다만 포항공대 내에서도 과학고, 영재고로 갈수록 사교육의 비중, 즉, 부모의 경제력의 영향이 조금씩 커진다는 걸 느꼈습니다. 얘기해보면 중학교 때 사교육으로 대학 공부까지한 케이스들이 꽤 많았거든요. 하지만 저자가 예로든 서울과학고와 경기과학고의 학생들이 청담 A 학원을 나왔다는 이유로 그들을 사교육의 산물로 만드는 것은 조금 어폐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재고 출신의 친구들은 확률적으로 뭔가 다른 비범함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이 비범해서 청담 A학원을 가게된 것인지, 청담 A학원을 가서 비범해진 것인지가 단순 통계에서는 빠져있습니다. 만약 청담 A 학원을 나와서 사람이 그렇게 비범해진다면 청담 A 학원의 교육 방식을 공교육에 도입해야 할 것입니다. 일반적인 학생들이 가서 그런 비범한 학생이 된다면 영재고의 교육 방식을 전국 고등학교에 도입하는 것도 좋겠네요. - 한국의 교육, 성적 산출, 대학 입학의 시스템에 관하여 성적순이 곧 능력순이라는 '능력주의'가 잘 못 됐다는 저자의 주장에는 많은 부분 동의합니다. 고등학교 때만 돌이켜봐도 같이 공부해보면 분명 나보다 잘하는 친구인데 성적은 내가 잘 받는 경우가 있곤 했습니다. 한국 교육의 줄 세우기는 우리 부모님 세대 보다는 훨씬 완화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이 줄 세우기로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정시-수시-입학사정관제로 가는 흐름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또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 후자로 갈수록 기준이 애매해진다는 것은 팩트입니다.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 어려운 일입니다. 어렵기에 그것을 제대로 하려면 엄청난 인력과 노력들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대학마다 수십명의 입학사정관을 두고 수천개의 학교들을 팔로우시키는 것이죠. 심지어 이렇게 해도 정성적인 평가라는 것은 사실 정말 어렵습니다. 포항공대에서도 2019년 면접 문제가 '5000원의 제한된 돈으로 바닥의 못을 박아라'라는 문제였습니다. 이는 사실상 평가가 어렵기 때문에 평가를 포기한 것의 예시이고 그냥 제비뽑기랑 거의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정리하자면 단순 능력 평가가 아닌 통합적인 평가로 가야한다는 문제 의식에는 동의하지만 그 자체가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습니다. 조금씩 테스트해나가며 바꿔나가야한다는 막연한 생각만이 드네요.
글쎄요, 포항공대 내의 학생들이 부유하지 않아 보인다는 통계는 어디서 나오나요? 부유함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학생들이 차가 없고, 집이 없고, 당장 먹을 점심의 가격을 걱정한다고 해서 그들이 가난한 것은 아닙니다. 가난의 계층은 그렇게 간단히 정의되는 것도 아니고, 쉽게 가시화되어 우리 삶에서 눈에 띄게 드러나는 것 역시 아닙니다. 다만, 흔히 말하는 서연고 입학생들이 대다수가 가난하지 않다는 사실은 지표로 잘 확인되는 것 같습니다. 해당 대학의 10분위 학생 비율 등 기사는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죠. 선생님의 말씀은 비범하지만 학원비를 치를 능력이 되지 않는 수많은 학생들이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결과인 서포카 수준의 명문대에 가는 일을 실패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야한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가난에 대한 통계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쓴 글이 썩 논리 위에 서있지는 않습니다. 그냥 제가 대학 시험을 치르고 학교를 다니면서 느낀바를 적었습니다. 마지막 말에만 답하자면 저는 솔직히 한국 교육 체계가 사교육 없이도 명문대에 충분히 갈 수 있는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재능이 학원비를 치를 능력이나 노력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구요. (인강 몇 개 들을 정도 돈을 있어야할 거 같아요.) 제가 위에 글에서 말한 것은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영재고나 서울대 의대 같은 곳은 저자가 제시한 통계처럼 사교육이 없이는 힘들 수도 있겠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정도 최상위 학교를 사교육 없이 못 간다고 교육시스템 전체가 공정하지 않다는 저자의 논지는 조금 어폐가 있는 것 같아 말해봤습니다. 의견 감사드립니다~~
https://m.khan.co.kr/national/education/article/202110102128005 https://m.kmib.co.kr/view.asp?arcid=0924160942 국가장학금 통계를 보면 되려 최근 부모세대 경제적 계급이 자식세대 대학입시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최소한 줄어들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사교육 크게 받지 않아도 인강 몇개 보고 공부 열심히 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이런 생각 자체가 비현실적입니다. 대다수 아이들은 뚜렷한 목적 의식이 있어서라기보다 환경/또래 압력에 휩쓸려서 움직이기 때문에 공부를 하지 않는 환경에 있는 아이들은 열심히 하는 능력 자체가 부족합니다. 그런 점에서 부모의 경제력이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나 싶습니다.
너무나도 뒤에 얘기해서 죄송합니다. 이 책과는 어떻게 보면 논외일지 모르지만, 디어 님이 해주신 2019년 포항공대 면접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붙이겠습니다. '5000원의 제한된 돈으로 바닥의 못을 박아라'는 문제는 주어진 상황 내에서 학생들의 과학적, 논리적 사고력을 보기 위한 문제였습니다. 여기에 과학적인 원리를 섞어서 말한 학생들은 자신이 아는 것을 문제 해결에 적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는 어쩌면 그동안 학생들이 생각해 온 '능력'의 정의와는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성적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포항공대에서 지향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능력을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다른 대학과 비슷한 형태의 문제를 푸는 식의 면접이었다면 내신 성적을 뒤집을 수 있는 기회는 없었을 것입니다. 가장 능력주의가 심하게 보이는 대입 면접에서 높은 시험 성적과 등수가 아니라 가치와 탁월함을 추구하도록 돕는 교육 현장(77)을 추구한 사례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평가에 있어서의 다변화가 능력주의를 해체하는 데에 조금은 도움이 될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문제 의식에는 동의한다고 말씀해주셨지만, 여기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어서 적습니다.
1. 책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정유라의 '부모 잘 만나는 것도 능력', 조국 스캔들을 겪으면서 청년들은 상당부분 피로를 느끼게 되었고, 그에 따라 그들 스스로와 사회에 애초부터 엄격한 잣대를 요구하는 듯 합니다. (61-62) 부모를 잘 만나 '올라가는' 현상들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이들이 조금 올라갈 때도 반작용이 심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런데 이 현상은 비단 저임금/저학력 청년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닌듯 합니다. 명절때 모이면 남녀노소 가릴 거 없이 인국공 정규직 전환에 분노하더라구요... 어찌 보면 여러 사태들이 남긴 아픔에 사회가 반응하는 것이며, 국가가 그 아픔을 섣부르게 대처하려다가 남긴 상흔이라고 생각되어 그저 만들어진 '공정' 담론에 쉽게 편승했다고는 보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듭니다. 2. 그러게요. 오히려 AI나 기술발전에 따른 직업에 빠르게 편승하기 위해서는 '(엘리트주의적인) 능력'이 필요할텐데, 상황에 따라 직업 재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이 사회적으로부터 소외될 수 있다는 방향으로 논의가 전개되었으면 더 매끄러웠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토론자님들의 귀한 의견에 감사드립니다. 말씀해주신 지점들에 대해 저 역시 깊이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논제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3. ‘피해입은 특권’이라는 개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리적으로 ‘배를 굶는’ 시대가 지나 갔다고 하지만, 사회적 안전망은 미미하고 재난은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그런데 개인이 사회로부터 입은 혜택을 인식하지 못하면서도, 누리고 있는 특권이 계속해서 이어져야 ‘공정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결국 허울뿐인 공정이 보여주는 것은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타인’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것이고, 이는 빈약한 연대의식과 시민의식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이대남’과 같은 ‘피해입은 특권’을 공략하는 것이 한국사회의 정치 문법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도 문제인 듯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나의 사유재산을 늘리고 특권을 이어받고 싶어하는 그 심리 자체는 이해가 가기도 하는데요, 이에 대해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멘토 HJ)
제 경험 중에서 '피해입은 특권' 개념과 관련있는 것을 떠올려 봤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코로나로 인해 저희 학년은 수학 여행을 가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졸업 여행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학생회장 후보를 당선 시켰고, 3학년이 되어서는 2학년이 수학 여행 비스무리한 것을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3학년 내에서 말이 많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우리도 못 갔는데, 너네도 가지말아야지'라는 잘못된 분위기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특권(수학여행)이 피해를 받았다는 특수한 상황에서 타인(2학년)을 적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발생한 분위기였습니다. 타인을 친구로 여기는 사고 방식을 가졌더라면 더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졌을 겁니다. 피해입은 특권에서 비롯된 이기적인 사고 방식은 공동체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은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생각은 정치가의 입장에서 롤대남, 틀딱과 같은 혐오 표현에서 시작된 사회 갈등과 '피해입은 특권'이 그리 나쁜 요소인 것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환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포카전에서 마지막 경기로 농구가 진행되었고 양교 학생들은 자신의 농구 팀을 목이 터져라 응원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눈 앞에 적이 보일 때 더 단결하고 집단에 충성심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사람들이 이해 관계에 따라 찢어진 상태에서, 정치가는 한 쪽을 공략해 충성심으로 가득한 지지자 세력을 손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치가에게, 양 쪽으로 갈라진 지금 사회를 개선하기를 바라는 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피해입은 특권'에 대한 시화님의 의견을 잘 보았습니다. 저도 실제로 '피해 입은 특권'은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왜곡된 공정담론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화님의 개인적인 경험뿐 아니라 사회적인 경험에서도 그렇지요. '조국 사태' 때 고려대학교에서 있었던 '조민 입학 취소 시위'가 이를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논제에 맞는 논의를 위해 조국 사태를 둘러싼 개인의 잘잘못은 일단 제쳐두겠습니다.) 그 때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은 훼손된 공정에 대해 외치고 있었습니다. 힘들게 공부했던 자기자신의 권리에 대한 당연한 외침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쨌든 이 외침에서 '공정하게 얻어진 특권'에 대한 반성과 의심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이렇듯 '공정'은 '공정하게 얻어진 특권'을 어떤 의심도 없이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위험합니다. 저자 역시 이런 뉘앙스로 지적을 한 것일테고요. 그렇게 아무런 의심 없이 정당화된 특권은 조금이라도 상처받았을 때 '피해 입은 특권'이 되어 다시 '공정'을 외치게 될 겁니다. 시화 님의 말씀대로 이러한 공정은 정치인들이 이용하기 좋은 먹이감이 되겠지요. 어쨌든 이에 대해 계속해서 사고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산주의 체제가 아닌 이상 남들과는 다른 개인의 노력이 무언가 특별한 것으로 보상받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사회의 원리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특권'이 올바르게 정당화될 수 있는 원리는 무엇일까요? 그래도 공정일까요? 공정이여야만 한다면 그 공정담론이 왜곡되지 않는 방법으로 공정을 사유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요?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공정이 특권을 정당화할 때 작동하는 현대의 중요한 심리적 기제가 '능력주의'에 대한 맹신이 아닐까 하는 의문입니다. 공정담론 속에 깃들어 있는 능력주의에 대한 맹신을 파훼할 수 있다면, 어쩌면 우리는 진정한 공정을 상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질문을 너무 많이 던졌는데, 이에 대한 토론자분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4. 번아웃을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과 구조가 맺고 있는 관계의 문제’로 볼 것을 제안하는 대목에 공감이 되었습니다.(<엘리트 세습>에서는 편향된 구조의 문제가 계급 세습을 이어나가야 하는 엘리트 계층에도 극심한 피로감을 주는 것으로 분석했던 것이 떠올라 흥미롭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자도 인정하고 있는바, 구조의 변혁 자체가 개개인의 과업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에 저자가 제안하는 기초 원리는 ‘돌봄 윤리’인데, 관계적 존재론, 급진적 자기돌봄 등의 이론 자체에는 큰 공감이 되지만 결국 개개인의 실천에 맡겨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근원적인 한계를 노정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가 됩니다. (특히나 신자유주의가 일상을 잠식한 상황 속에서 당장 대의를 위해 ‘직무 불안정성’을 견디거나 이해하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요? - 멘토 HJ) 결국 문제의식을 자각하고 돌봄 윤리를 실천해나가는 건 일부에 지나지 않을 듯하고, 정작 공정 담론의 생산 계층들에게 이런 호소가 얼마나 유효하게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이 남습니다. 그렇다면 한 청년 독자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아, 참여하신 분들께 묻고 싶은 질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얼마 전 일본 사회운동가가 쓴 책을 읽다가(<어른 없는 사회>) 신박한 주장을 봤는데요, '남녀고용평등법'에 대해 '왜 모두 똑같은 걸 원한다고 생각하지?'라는 의문을 제기한 것이었습니다. 음? 그러고 보니 '(누가 봐도) 좋은 기회'를 두고 '공정'이란 담론이 이렇게 뜨거운 것도 모두 같은 것을 원하기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던데요-- 모두가 의사 되기를, 모두가 SKY를, 모두가 고연봉 정규직을. 부적절한 생각일까요? (앗, 그나저나 제가 토론에 끼면 반칙일까요ㅠ)
그럴리가요, 선생님! 저도 방금 선생님이신 걸 알았습니다. ㅎㅎ '(누가 봐도)좋은 기회'라는 것 또한 깊이 생각해봐야 할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해주신 대로 공정담론이 이렇게까지 뜨거운 이유와도 직결되어 있는 것 같고요. "누가 봐도"라는 말을 '객관적'이라는 말로 달리 말해도 된다면, 제 생각에는 객관화될 수 없는 것들이 '돈'으로 객관화될 수밖에 없는 사회가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라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직업이든 대학이든 혹은 전공이든 전부 연봉과 스펙 등의 지표로 통계화되고 수치화되니까 객관화된 것처럼 보이게 되고, 마치 교환가치를 가지고 있는 '재화'처럼 표상됩니다. 한정된 재화를 탐내는 것은 경제학적 인간의 당연한 생리이니, 모두가 같은 것을 바라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도 무리는 아닐 거 같습니다. 또한 재화를 분배하는 것이 정치라면, 이 분배와 직결된 '공정' 담론에 대한 목소리도 이쪽저쪽에서 계속 뜨거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요. 쓸데 없이 말이 길어진 것 같은데, 저도 다른 분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차별 철폐'는 그 부분이 맞습니다. '청년에 대한 streotype'은 책의 전반부에서 '공정이라는 구실 좋은 개념에 매몰된 청년들을 비판하는 내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청년들을 이러한 본인의 청년상 안에 가두는 듯한 어조가 또다른 '차별'이라고 저는 주장하는 것이구요.
젊은 세대를 보는 시각이 고정되기 쉽다는 데 동의합니다. 세대론적 구분을 다 믿진 않으면서도 저부터 자꾸 '요즘 젊은 세대는..' 하게 되더라구요(ㅠ). 그나저나, 이제 김정희원 선생님께서 날아오실(ㅎ) 텐데, 지금까지 의견 나누는 중 궁금했던 내용도 정리하고 또 책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논의를 더 이어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들 학기 중에 바쁘지요? 그래도 한번씩 더 관심 기울여 줬으면.
안녕하세요, 토론자분들! 독서모임 기간도 이제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토론자분들께서 제시해주신 모든 의견들이 흥미롭고 유익했지만, 아직까지 많은 논의가 다양하게 진행되지는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조금 남네요. 책에 대한 얘기도 생각보다는 부족하다는 느낌이고요. 그래서 다시 토론이 활발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일단 지금까지의 주제들을 간단히 정리하고,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대목을 인용하고 간단한 코멘트를 한 분씩 남기는 것으로 진행해보면 어떨까 싶은데요. 먼저 간단히 지금까지의 주제들을 정리하자면, 1. 공정-공정담론을 둘러싼 이야기 ➀공정 자체에 대한 이야기: 현대 사회에서 공정은 어떻게 정의되어 있는가? 공정을 구성하는 기본적 개념(예컨대 평등, 올바름, 도덕 등)은 무엇인가? 논리적이고 관념적인 차원을 떠나, 현실적으로 공정은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공정-공정담론은 어떻게 이야기되어야 하는가? 필요 없다면 ‘공정 이후의 세계’는 과연 이상적일까? ➁사회 갈등과 저마다의 불공정: 파편화된 사회에서 공정이란 통일될 수 있는 담론일까? ‘저마다의 불공정’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면 우리는 저자의 말처럼 공정 이후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➂공정담론을 이용하고 부추기는 사회: 공정담론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누구인가? 정치 집단은 실제로 어떤 의도를 가지고 공정담론을 이용하고 왜곡할까? 그 결과로 사회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➃공정을 왜곡하는 기제들: 잘못된 능력주의? 피해입은 특권과 특권주의의 정당화? 이런 것들을 해결하면 공정에 대해서도 올바르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니면 공정 담론은 결국 변질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2. 책의 내용과 형식에 대한 이야기 ➀제목의 ‘공정 이후(post)’라는 말이 주는 뉘앙스: 공정 이후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직은 시기상조가 아닐까? 반대로, 공정이 훼손되고 모두가 그 담론에 지친 상태에서 그 이후를 바라보는 상상력은 현재를 벗어나는 중요한 계기가 되지 않을까? ➁저자가 청년이나 능력을 바라보는 관점: 현대 한국의 청년 전반을 능력주의를 맹신하고 정치적 공정담론에 무기력하게 이용당하는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문제적이지 않을까? 반대로, 그것이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고, 어느 정도의 집단을 형성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비판적인 관점을 설정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 제가 토론자분들의 논지를 흐리거나 왜곡한 것이 있다면, 편히 아래에 댓글로 피드백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인용문을 하나 제시하면서 다시 논의를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너무 체계적인 코멘트를 작성하려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편하게 인용문에 대한 인상을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우리는 삶의 원리이자 가이드라인이면서, 동시에 정책적 기반으로서 새로운 의미의 보편을 구상해야 한다. 오래전 철학자들처럼 “남성 일반”에게 적영되는 것이 곧 “보편”이라고 말하던 그런 일방적인 의미가 아니다. 기존의 보편 이론은 남성, 백인, 이성애자, 비장애인의 시선에서 일반화를 추구하는 이론이 가능하다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구축되었다. 하지만 동시대의 많은 학자들과 활동가들은 이제 정반대의 입장에서 보편을 말한다. 즉 기존의 권력관계를 영속화하지 않으며, 공통 기반으로서의 인간성을 그 어떤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미로서의 보편이다. 모두를 돌아볼 겨를이 없다는 이유로 뒷자리에 버려지는 이들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결의다. 우리 모두 동등한 주체로서 상호연결되어 있으므로, 모두가 전적으로 평등하며 존엄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160~161) 근대의 이성적 주체가 실패한 이후, 쉽사리 ‘보편’을 결정하는 것은 현대 철학에서 기피되어 왔습니다. 원초적으로 그 보편을 누릴 수 있는 주체가 한정되어 있고, 그럴 경우 타자에게 보편은 강요된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를 묶어줄 보편을 끝없이 상상하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인간적이고 낭만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공정-공정담론의 편향된 보편을 비판하지만, 보편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공정 이후’에 그 편향된 보편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던 듯합니다. 저는 이 믿음이 좋았습니다. ‘공정 이후’에 ‘우리 모두’를 또 다시 연결해줄 수 있는 담론이 나타난다면, 그 역시 높은 확률로 이용당하고, 왜곡되고, 타락하겠지요. 그러나 그것을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저는, 저자의 이러한 지향성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장애인 정책을 논하는 행사에서 “우리 장애우”라는 표현을 썼다. 반복해서 지적을 받았고 언론의 비판도 이어졌지만, 그는 배울 마음도 없고 고칠 의지도 없어 보인다. 왜 어떤 사람들은 차별적인 언어를 쓰지 않기 위해 늘 공부하며 의견을 묻는데,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호소해도 신경을 쓰지 않을까? 평생을 “선택적 무지”의 상태로 살아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무지와 무감이 타인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기득권의 덫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을까?” 무지의 유형 중 ‘선택적 무지’에 대한 예시로 언급된 내용입니다. ‘무지’한 ‘무심함’이 어떤 방향성을 전제한 동조로 기능할 때가 훨씬 많은 만큼, 무지는 사회적 폭력의 고착화‧재생산에 일조할 수 있다는 점을 더욱 유념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때의 무지는 ‘무의지’와 동일어로 보아도 무방할 텐데, 그 근원이 ‘무시’로부터 비롯되어 이중적인 비하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선택적 무지의 사례들을 일상에서도 빈번히 마주치곤 합니다. 모두가 고민하는 중요한 사안에 대해, 굳이 알아야 할 필요가 없으며 과거 한 번 형성된(실상 본인의 주체적인 탐색 결과라기보다는 상위 권력자에 의해 주입된 경우가 대부분인) 입장을 결코 갱신하지 않겠다는 무의지적 태도로 일관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이들이 이토록 당당하게 무지를 내세울 수 있는 근거가 권력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점에서 폭력이 강제되고 있다는 인상마저 받곤 합니다. 적어도 우리는 이렇게 무책임한 시민으로 살아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어봅니다. 사용하는 단어 하나하나에 책임감을 갖고, 선택적 존중이 아닌 존재론적 존중을 실천해나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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