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감사합니다. 제가 한 해의 마무리로 그 해에 썼던 필사 중 베스트 문장을 뽑아본 경험이 있어서 (혼자 하는데도 다소 치열하답니다^^) 더 책 속 문장을 기억하는 것 같아요.
[그믐연뮤클럽의 서막 & 도박사 번외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반과 스메르자코프"
D-29
수은등
김새섬
오! 수은등 님이 뽑으신 베스트 문장 궁금해요. 23년도 문장 알려주세요. ^^
전 이번에 연극 보고 나서 기억에 남은 대사가 "신은 있는 거야? 불멸은 있는 거야?" 였습니다.
수은등
쑥쓰럽네요^^ 파트별로 있지만..., 그럼 하나만 올려봅니다.
'아버지의 경건함, 스승들의 훈계, 자신의 지식, 자신의 구도 행위가 그를 지켜줄 수 있었던가요? 어느 아버지, 어느 스승이 지켜서서 그를 말릴 수가 있었겠어요? 스스로의 삶을 영위하는 일, 그러한 삶으로 스스로를 더럽히는 일, 스스로 자신에게 죄업을 짊어지게 하는 일, 스스로 쓰디 쓴 술을 마시는 일,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내고자 하는 일, 그런 일을 못 하게 누가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친애하는 친구여, 이러한 길이 어느 누구한테는 혹시 면제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당신이 설마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당신이 어린 아들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그 아이에게는 제발 번뇌와 고통과 환멸이 면제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기 때문에, 당신 아들에게는 그 길이 혹시 면제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믿고 있는 겁니까? 그렇지만 설령 당신이 아들 대신 열 번을 죽어준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그 아이의 운명을 눈곱 만큼이라도 덜어줄 수는 없을 겁니다.'
헤르만헤세 『싯다르타』
김새섬
오, 좋은 문장이네요. "번뇌와 고통과 환멸이 면제"된 삶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도 더럽혀 지지 않는 무적의 흰 와이셔츠를 입고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어떤 고통이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을 규정할 것 같아요. 문장 공유해 주셔서 감사해요. ^^
은은
세상에 얼마나 즐거운 자리였는지 짐작이 가는 정성스러운 후기들 덕분에 함께 하지 못한 사람은 아쉽기만 합니다. 연극은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다는 하나만 위안 삼아 후기들 다시 정독하겠습니다!
수북강녕
다른 날, 다른 분위기에서 보신 감상을 나눠 주시면 더욱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저도 내일 2회차 관람하면 또 다른 부분들이 눈에 들어올 것 같아 기대가 크네요 ^^
김새섬
오늘 재관람하시는 날이네요. 배우들의 연기는 날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즐거운 관람되시길요~
수은등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믐 대표님과 수북강녕님께 깊이 감사드려요. 모두 얘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함께 자리해주신 분들도 반가웠습니다.
저는 이 극에서 배우들의 열연과 무대 장치, 표현 도구들도 강렬했지만, ‘연극이 끝나고 난 후’가 인상 깊어요. 배우들은 자기가 맡은 역에서 벗어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들은 적은 있는데요, 그런 모습을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네요. 극이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 때 맨발에 고뇌에 찬 힘겨운 스메르쟈꼬프의 모습을 보고는 아직 배역이 끝나지 않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책을 보면서 상상하고 생각했던 세계가 배우와 무대 장치를 통해 재현 되는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수북강녕
와아 (입틀막)
올려주신 후기들이 너무 구체적이고 섬세해서 읽고 또 읽었습니다 ♥
인상적인 관극이었음이 분명했죠?! 저는 내일 2회차 관람 갑니다 로비에서 Il Mondo 님과 "그믐...이세요?"를 또 외칠 예정인데, 오시는 분이 더 계시면 아는 척 부탁드립니다 ^^
이번 주에도 관극과 이야기 나눔은 계속됩니다 저도 곱씹으며 또 쓰겠습니다~~~
불량자전거
“ 그나저나, 얘야, 18세기에 어느 늙은 죄인이 있었는데, 신이 없다면 그것을 발명해 내야 한단는 말, 그러니까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발명해 내야 한다.라는 말을 했다지. 그래서 인간은 정말로 신을 발명해 냈지. 그러니까 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는 건 이상할 것도, 놀라울 것도 없는 얘기이고, 오히려 정말 놀라운 것은 그런 생각이-그러니까 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인간과 같이 야만스럽고 사악한 동물의 머릿속에 떠오를 수 있었다는 사실인데, 이 생각은 그 정도로 성스럽고 그 정도로 감동적이고 그 정도로 현명하고 그 정도로 인간의 위신을 살려 준다는 거야.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인간이 신을 창조했느냐, 아니면 신이 인간을 창조했느냐와 같은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생각 하지 않기로 했어. ”
『[그믐연뮤클럽의 서막 & 도박사 번외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반과 스메르자코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권 / 민음사 / p.519 / 이반이 알료샤에게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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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자 전거
“ 내 친구 같은 알료샤, 특히 신에 관해서는 더 그래. 신은 존재하는가, 하지 않는가? 이 모든 것은 그저 3차원에 관한 개념만을 갖도록 창조된 머리에는 전혀 맞지 않는 질문들이야. 그래서 나는 신을 기꺼이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덧붙여 우리로서는 도저히 알 길 없는 신의 현명함과 신의 목적도 받아들이고, 우리 모두를 하나로 결합시켜 줄 영원한 조화를 믿고, 또한 우주의 지향점이자 그 자체로 ‘하느님과 함께 계시고’ 그 자체로 곧 하느님이신 말씀을 믿고, 뭐 등등, 겸사겸사 무한성도 믿는다. (중략) 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이 점을 잘 알아 둬, 그가 창조한 세계를, 신의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 받아들이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는 거야. 여기서 토를 좀 달아 둘 것이 있어. 즉, 고통이란 것도 결국엔 아물어 사라지게 마련임을, 인간들의 모순들이 빚어 내는 모욕적인 희극도 전부 애처로운 신기루처럼, 또 원자와 같이 부실하고 미미한 인간의 유클리드적 머리가 만들어 내는 추악한 허상처럼 사라져 버릴 것임을, 끝으로, 이 세계의 피날레에 이르러 영원한 조화의 순간에 뭔가 너무도 귀중한 것이 문득 출현하여 모든 마음들이 그것으로 충만하고 모든 분노가 사그라지고 사람들의 모든 악행들과 그들이 흘린 모든 피가 그로써 충분히 보상될 것임을, 사람들이 겪었던 모든 일을 용서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것조차도 충분히 가능해질 것임을 나는 갓난애처럼 확신하고 있어-하지만, 정말로 모든 것이 이렇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래도 나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심지어 평행선들이 서로 만나고 내 눈으로 그것을 보게 될지라도 말이야. 내 눈으로 그걸 보면서, 만났다고 말을 하게 될지언정 그래도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자, 바로 이게 나의 본질이야, 알료샤, 바로 이게 나의 테제란 말이다. ”
『[그믐연뮤클럽의 서막 & 도박사 번외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반과 스메르자코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권 / 민음사 / p.521-522 / 이반이 알료샤에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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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자전 거
“ 이 세계를 통틀어 용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는 존재가 있기는 한 건가? 조화 따위는 원치 않아. 인류에 대하 사랑 때문에 원치 않는 거야. 나는 차라리 복수의 순간을 맛보지 못한 고통들과 함께 머물고 싶어. 비록 내가 틀렸다고 해도 차라리 나는 복수의 순간을 맛보지 못한 나의 고통을, 도저히 풀릴 길 없는 나의 분노를 간직할 거야. 그래. 조화의 값을 너무 높게 매겨 놓아서 우리의 주머니 사정으론 도대체 그 비싼 입장료를 감당할 수 없거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서둘러서 입장권을 반납하려는 거야. 더욱이 내가 정말로 정직한 사람이라면, 가능한 한 빨리 그것을 반납할 의무가 있는 거지. 그래서 정말로 실행에 옮기는 거야. 나는 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알료샤, 난 그저 신에게 그 입장권을 극히 정중하게 반납하는 거야. ”
『[그믐연뮤클럽의 서막 & 도박사 번외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반과 스메르자코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권 / 민음사 / p.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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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자전거
“ "거짓말이야! 네가 출현한 목적은 네가 존재한다는 것을 나에게 확신시키는 것이야."
"그거 야 당연하지. 하지만 동요, 하지만 불안, 하지만 믿음과 불신 간의 투쟁-이런 것은 자네처럼 양심이 있는 사람에겐 이따금씩 너무도 큰 고통인지라 차라리 목을 매는 것이 낫지. 나는 그러니까 말일세. 자네가 나의 존재를 아주 조금이나마 믿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일화를 얘기해 줌으로써 자네에게 철저하게 불신을 불어넣은 거라네. 나는 자네가 믿음과 불신 사이를 번갈아 왔다갔다 하도록 이끄는 거라네." ”
『[그믐연뮤클럽의 서막 & 도박사 번외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반과 스메르자코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3권 / 민음사 / p.30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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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lmoon
늦은 연극 후기입니다;;
3시간짜리 연극임에도 끝난 후에 내용이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나진환 연출님의 독특한 연출이 인상적이었고, 정동환 배우님은 정말 책을 삼키셨나봐요. 진짜 대단하십니다.
1인4역을 하셨는데, 이반 마음속에서는 대심문관과 식객 역시 아버지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의미일까요?
그렇게도 싫어하는 아버지이지만 스메르자코프의 말처럼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고, 아버지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거겠죠. 역시 세상 금쪽이들은 부모의 문제가 큽니다....
스메르자코프의 무표정한 얼굴, 천진한 듯한 목소리, 이반을 번쩍번쩍 드는 힘?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셨고 잘생기셨고.. 아무리 스메르자코프지만 끝나면 신발 좀 주세요~^^
연극 끝나고 그믐 모임도 정말 즐거웠어요. 처음이라 수줍었는데ㅎ 다들 반갑게 맞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집이 가까우면 더 있고 싶었는데, 경기도민이라ㅠ 그 날의 공기, 습도, 온도 모두 완벽했습니다.
함께한 분들 모두 만나서 반가웠고, 다들 박학다식하셔서 전 약간 쭈글했어요ㅎㅎ
다음에 더 많이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수북강녕님께서 주신 "악령"도 이제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
Katze
가감 없는 솔직한 후기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ㅋㅋㅌㅋ 저는 다른 날 관람해서 모임은 참가 못했지만 재미있었을 거 같아요!!
수북강녕
재관람 가기 전, 캐릭터에 대해 다시 생각하며 예전에 기록해 두었던 인물별 특징을 복기해 봅니다
알료샤에 대한 묘사는 지난 번에 먼저 올렸었는데요, 스메르자코프에 대해서는 사진 한 장으로 갈음하겠습니다 ^^
[ 제1권 어느 집안의 내력 / 제2장 달갑지 않은 회합 / 제3권 색마들 ] 中 인물편 정리
(열린책들 버전 / 표도르, 드미뜨리, 까쩨리나, 그루셴까 순서)
표도르 까라마조프 : 그의 용모는 그때까지 그가 살아온 모든 삶의 특성과 본질을 생생하게 입증해 주고 있었다. 항상 오만함이 서려 있고 의심기가 역력한 데다 냉소적인 그의 가느다란 두 눈 아래에는 길쪽한 살집이 잡혀 있었다. 기름기가 번지르르 흐르는 조그만 얼굴에는 많은 주름살이 새겨져 있었으며, 혐오스러울 만큼 음탕한 모습을 더해 주는 커다랗고 길쭉한 비계덩이 혹이 뾰족한 턱에 마치 지갑처럼 매달려 있었다. 게다가 입은 길게 찢어지고 탐욕스러웠으며, 두툼한 입술 사이로는 썩어 버린 시커먼 이빨 조각들이 눈에 띄었다. 또 말을 할 때면 언제나 침을 튀기곤 했다. 그러나 어쩌면 자신은 만족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얼굴에 대해 즐거이 익살을 떨었다.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매우 뾰족한 데다가 심하게 휘어진 매부리코를 특히 화제로 삼았다. <영락없는 로마 인의 코야. 이 혹과 어울려 쇠퇴기 고대 로마 귀족들의 진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잖아.> 그는 그것을 자랑스러워 했던 것 같다. p.46-47
드미뜨리 까라마조프 : 28세의 젊은 사내이며, 보통 키에 수려한 용모를 갖추고 있었으나 나이에 비해 상당히 늙어 보였다. 근육질의 사내로서 비록 그의 얼굴에는 뭔가 병적인 것이 엿보였지만 뛰어난 체력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은 여위었고 두 뺨은 움푹 꺼졌으며 안색에는 환자의 황달기 같은 것이 어려 있었다. 상당히 크고 검은 두 눈은 퉁방울처럼 튀어나와 있었고 대단한 고집을 가진 듯하지만 어딘지 초점이 흐려 있었다. 흥분하여 씩씩거리면서 말할 때조차 그의 시선은 자신의 심리 상태를 거역하고 있는 듯 무언가 당시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 엉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생각에 골몰하고 있는 듯한 우울한 눈빛을 하고 있다가도, 재미있고 장난기 어린 생각에 빠져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갑자기 호탕하게 터뜨리는 그의 웃음소리에 사람들이 놀라는 일도 적지 않았다. p.121-122
까쩨리나 이바노브나 : 그녀의 불타오르는 크고 검은 두 눈은 매우 아름다우며, 그 창백한 두 눈은 약간 누르스름한 기색이 비치는 갸름한 얼굴에 특히 잘 어울렸다. 그 두 눈과 매혹적인 입술의 윤곽에는 드미뜨리가 한때 무서운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지만 그 사랑이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을 것 같은 무언가가 깃들어 있었다. (중략) 지금 그녀의 얼굴에는 가식이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는 순박한 선의와 솔직하면서도 열정적인 진실이 빛나고 있었다. 지난날의 그 <당당함과 오만함>은 지금은 단지 대범하고 귀족적인 에너지와 자신에 대한 어떤 뚜렷하고 강력한 확신으로 비쳤다. p.257
그루셴까 :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하게 보이는 착하고 사랑스러운 여자가 아닌가. 아름답기는 하지만 다른 아름다운 여자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평범한> 여자가 아닌가! 사실 그녀는 매우, 매우 아름다운 여자였으며 많은 사내들의 정열을 자극할 수 있는 사랑스러운 러시아적 미인이었다. 그녀는 상당히 큰 키였으며 몸매는 풍만한 데다가 몸 동작도 거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부드러웠고, 목소리도 어떤 달착지근한 향기를 뿜어내듯 여성스러웠다. 그녀는 화사한 검은 비단 옷을 사각거리며 안락의자에 사뿐히 걸터앉아 거품처럼 하얗고 토실토실한 목과 넓은 어깨를 검은 모직 숄로 얌전히 감쌌다. 그녀의 나이는 스물두 살이었으며 얼굴은 자신의 나이를 그대로 보여 주었다. 그 얼굴은 매우 흰 편이었고 뺨에는 연분홍빛 홍조가 돌고 있었다. 얼굴형이 너무 넓은 게 아닌가 싶고 아래턱은 살짝 앞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윗입술은 얇았으나 약간 튀어나온 아랫입술은 두 배 가량 두꺼워 마치 부어오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놀라우리만치 매혹적인 검은 머리칼, 짙은 검은색 눈썹, 속눈썹이 긴 아름답고 푸른 눈 등은 혼잡한 군중 속을 거니는 아무리 무심하고 부주의한 남자라 할지라도 일단 마주치기만 하면, 갑자기 그 앞에 걸음을 멈추어 서서 오랫동안 그 얼굴을 못 잊을 것이다. 그녀는 천진난만한 눈으로 바라보며 무엇이 그리 좋은지 즐거운 표정이었고,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리라는 확신에 가득 차서 조바심내는 어린애처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벙글거렸다. 그저 천성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고양이처럼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유연하고 부드러운 몸 동작과 달리, 그녀의 몸매는 풍만하고 힘이 넘쳐흘렀다. 숄 밑으로는 넓고 풍만한 양 어깨의 아름다움의 절정에 다다른 젊은 처녀다운 볼록한 젖가슴이 드러나 있었다. 그녀의 몸은 분명히 비율이 약간 과장되긴 했지만 밀로의 비너스 상의 형태를 그려나가는 듯했다. 러시아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루셴까를 보면서 그 싱싱하고 젊음이 넘치는 아름다움도 서른 살이 되면 조화를 잃어 뚱뚱해지고 얼굴은 살이 쪄 축 늘어지며 눈가와 이마에는 얼마 안 되어 주름살이 가득하고 얼굴빛은 윤기가 사라져 어쩌면 불그죽죽해질지도 모르는, 한마디로 말해서 러시아 여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찰나적인 아름다운, 무상한 아름다움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드시 예언할 것이다. 그녀는 말꼬리를 늘이며 음절 하나하나의 발음에서 억지로 달착지근한 뉘앙스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물론 그것은 낮은 교육 수준과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저속한 예의 관념을 입증하는 나쁜 언어 습관에 지나지 않았다. p.262-264
Dalmoon
스크롤 내리다가 마지막 사진에 놀랐습니다ㅎㅎ 이기돈님 화이팅!
김새섬
원작을 읽어서 내용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이를 어떻게 극으로 구현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3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어떻게 지루하지 않게 이끌어갈지도 관람 포인트였고요. 독서는 독자가 자신의 마음대로 속도를 조절하지만 연극은 모두가 물리적으로 같은 시간을 공유하니 그 안에서 이끌이의 호흡과 리듬감이 엄청 중요하니까요.
무대는 무채색을 기본으로 하되 붉은색이 때때로 강렬하게 들어가 단조로운 가운데 임팩트있는 효과를 주셨던 것 같아요. 1부 재미있고 보았고 본격적으로 이반과 스메르자코프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2부 는 제가 해석한 내용과는 달랐지만 고전에는 정답이 없으니 연출자는 이런 측면에 초점을 맞춰 각색을 하셨구나 하면서 보았습니다.
책 읽을 때는 너무나 혐오스러웠던 아버지 카라마조프가 배우님의 열연으로 갑자기 측은하고 딱해 보이면서 이해와 납득이 되는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니 정말 살아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네요. 반면 원작에서는 아이들과의 에피소드, 수도원에서의 생활 등등으로 자신의 매력을 마음껏 뽐냈던 알료샤가 연극에서는 그냥 착한 아들로 납작해진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극의 비중이 이반과 스메르자코프 위주이니 이 부분은 어쩔 수 없긴 해요. 워낙에 원작이 방대하니 모든 이야기를 다 풀어낼 수가 없지요. 드미트리도 마찬가지였구요.
불량자전거
알료샤와 조시마 장로, 매력덩어리 드미트리, 콜랴와 친구들의 모습을 담은 연극도 궁금하긴 합니다. ^^ 처음에 책을 읽을때 저의 최애는 드미트리였는데...ㅎㅎ 이반...그리고 알료샤로 넘어가고 있거든요. ^^
은은
책을 1권의 2부 4편 파열까지 읽은 채 연극을 보고 왔습니다! 그리하여 1막은 좀 수월하게 본 듯 하고 2막은 이반과 스메르자코프 대립과 에너지가 강렬해서 잘 따라갈 수 있었어요. 정동환 배우님의 표도르가 너무 천연덕스러워서, 그 술취한, 어릿광대 같은, 분노와 치기와 후회 등을 마구 왔다갔다하는, 그 모든 장면이 다 자연스럽고 납득이 되더라구요. 스메르자코프 배우님의 광기같은 집중력에도 감탄했습니다. 다만 책을 끝까지 읽고 갔으면 2막의 어떤 부분이 각색이고 해석인지 명확했을텐데 싶어 많이 안타깝습니다. 이번 기회에 꼭 완독하고 다시 한 번 연극무대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그믐이세요... 소리 내 말걸지는 못하더라도 보이면 혼자 반가워할랬는데 못 뵈어서 것도 아쉬웠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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