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발견하는 독서기록법, <하루의 책상> 같이 읽어요.

D-29
버림받지 않으려면 사랑받아야 한다고, 혹은 사랑받지 않으면 버림받는다고 생각할 때마다 발밑이 까슬까슬하게 느껴졌던 순간들. 그리고 누군가에게 버려지기 전에 먼저 그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날카로운 마음들까지. 책상의 뒷면에 그림 그리듯 휘갈겨 쓸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하루의 책상 p. 27, 하루 지음
20대까지 이런 생각을 가졌던 적이 있었어서 이 문장을 읽고 깜짝 놀랐었어요.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어쩐지 과거의 내가 위로받은 느낌이랄까요?
저도 이 문장 아프게 와닿았어요. 아직도 가끔은 발밑의 까슬함을 느껴서 불안할 때도 있는데요. 이 문장이 과거의 나를 위로하면서 현재의 나를 다독이기도 한다고 느꼈네요.
돌아보니 어느새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3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가장 크게 변한 점을 꼽자면 때때로 찾아오는 부정적인 감정에 조금 더 너그러워진 것. 예전의 나는 부족한 점이 드러날 때마다 크게 속상했다. 누구보다도 냉정하게 반응하고 자신을 질책하며 그 감정을 키워나갔다. 나보다 나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말을 되뇌며 집요하게 스스로를 싫어했는데, 이제는 그것이 나의 전부가 아님을 이해하고 거리를 둘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쓴 덕분이었다. 종이 위에 옮긴 이야기 속 나에게서 조금씩 떨어져 나올 수 있었다.
하루의 책상 p.13, 하루 지음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오늘은 이런 날이었고 무엇을 했습니다, 같은 일기가 아니라 나를 괴롭히는 마음, 내가 가장 오래 생각하는 것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정해진 요일마다 학교에 일기장을 제출하던 시절이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힘이 되었다. 누군가 이 글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조금씩 기대를 하게 되었다. 내 마음이 전달될 것이다, 조금이라도 이해받을 수 있을 것이다, 같은 기대.
하루의 책상 p.27, 하루 지음
책상의 뒷면을 들키는 악몽이 누군가 그곳을 들여다 봐주길 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한 마음을 보여주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도. 누군가와 함께 좁은 책상 아래에 기어들어가 마구 휘갈겨 쓴 낙서들을 보며 나는 사실 이런 사람이라고 키득거리고 싶었다.
하루의 책상 p.29, 하루 지음
다만 정해진 답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모두가 인정하는 답이 있고 나만 그것을 모른다는 두려움. 아무리 노력해도 틀릴지 모른다는 불안감. 시 읽기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아가려는 나의 발목을 묶는 감정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연습이기도 했다.
하루의 책상 p.38, 하루 지음
질병과 고통을 독창적인 시선으로 성찰한 앤 보이어의 『언다잉』에는 통곡을 위한 공공장소를 만들고 싶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누구든 필요하기만 하면 적절한 장비를 갖춘 곳에 한데 모여 괜찮은 동지와 울 수 있는'. 이 문장을 읽으며 일본 테시마 섬에서 찾아갔던 아카이브를 떠올렸다. 마을버스 한 대가 유일한 교통수단인 작은 섬의 끝자락에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심장 소리 아카이브를 체험할 수 있는 건물이 있다. 건물이라고 썼지만 방 두 칸 정도 크기의 검은 나무 오두막. '하트룸'이라는 곳에 들어서면 깜깜하고 고요한 방에 사람들의 심장 소리가 가득 울린다. 그리고 그 소리에 맞춰 작은 전구 하나가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한다. 검은 방에 혼자 서서 사방을 채운 심장 소리를 듣고 있으면 심장이 함께 뛰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울컥했다. 누구든 필요하기만 하면 하나씩 다가와 울 수 있는 공간을 떠올리면 심장 소리가 가득한 어두운 방이 떠오른다.
하루의 책상 p.46, 하루 지음
언다잉 - 고통, 취약성, 필멸성, 의학, 예술, 시간, 꿈, 데이터, 소진, 암, 돌봄시인 앤 보이어는 2014년 마흔하나의 나이에 대단히 공격적인 ‘삼중 음성 유방암’을 진단받는다. 『언다잉』은 이 암이 유발하는 고통을 견딘 과정을 기록한 투병기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자기 자신의 몸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렇게 책을 읽으며 그동안 완전히 균형을 잃고 읽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부분이 어렵다고 느껴지는 건 내가 그를 모르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곳을 모른다. 나는 그곳이 궁금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찾아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정도만 알고 있다. 그건 그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 의해 전달된 것이었다.
하루의 책상 p.52, 하루 지음
내가 읽은 책들을 머릿속에서 모두 꺼내 같은 나라의 작품끼리 모아 지구본 위에 붙이면 미국과 영국이 지구의 절반 이상을 덮을 것이다. 영어로 출판된 작품이 있는 다른 지역은 그나마 존재가 인식될 정도의 크기로, 나머지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희미할 것이다.
하루의 책상 p.53, 하루 지음
저도 작가와 같은데요. 한국, 영미권, 일본 조금... 말고 다른 나라의 책은 읽은 게 없어요. 내 세계가 정말 편향되어 있겠구나 경각심이 들었네요. 동아시아 작가의 책도 찾아봐야겠다 생각도 했어요.
감정은 돌아서도 잊히지 않는 것, 자꾸만 들여다보게 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러니까, 같은 단어와 어울렸다.
하루의 책상 p.53, 하루 지음
어떤 소설은 책을 펼치자마자 나오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냥 이름일 뿐인데, 어떤 이야기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이름을 듣자마자 어렵다고 느꼈다. 실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낯선 것임에도. 낯섦은 관계를 묘사하는 말이지만 어려움은 난이도를 포함한 말이 된다.
하루의 책상 p. 54-55, 하루 지음
수십 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작품, 완전히 다른 전통과 문화를 지닌 작품일지라도 인물의 감정에는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있었다. 그것을 찾으면 소중한 씨앗을 찾은 것처럼 반가웠다. 낯선 이름 때문에 몇 번이나 책을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도, 권위에 복종하며 상처를 숨겨야 했던, 너무 가까운 곳에서 반복되는 폭력을 모르는 척해야만 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 유난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려줬다.
하루의 책상 p.57, 하루 지음
그건 어떤 의미에서 손을 잡는 것과 같았다.
하루의 책상 p.57, 하루 지음
어떤 고민을 하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노력하는지,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 알아차린 구체적인 문장들. 그건 내가 살아낸 시간을 아는 이가 있다는 말이었다. 내가 전하고 싶었던 것을 정확하게 간파하는 문장들을 읽을 때 거대한 장벽이나 얼음 같은 서늘함, 차갑고 외로운 시간 같은 것들을 잊을 수 있었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잊지 않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을 수 있었다.
하루의 책상 p.66-67, 하루 지음
화제로 지정된 대화
◆ '2부 아주 느리게 주고받는 대화'에서는 독서기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임 여러분은 독서기록을 하시나요? 어떻게 기록을 하는지, 안 하고 있다면 하고 싶지는 않으신지, 편하게 이야기 나눠주세요! 참고로 저는 그믐 모임을 직접 열기도 하고, 다른 모임에 참여하기도 하면서 독서기록을 남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흐흐.
@구름그림 님! 좋았던 문장 여기에도 남겨주세요~ 1부에 관련된 문장도 괜찮답니다. 그 전 질문에서 답글로 남겨주셔도 너무 좋구요. 꼭 이번 질문에 맞춰서 이야기하지 않아도 돼요. 저는 그냥 하루의 책상 책으로 이런 저런 대화를 많이 남기고 싶네요. 지금 구름그림님이 서재에 문장 공유를 열심히 하고 계시는 걸로 보여서 말이죠. 모임에서 같이 보고 싶은 저의 욕심을 드러내봅니다 허허.
저에게 있어서 독서기록은 다시 보려고, 기억해두려고 남긴 것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게다가 블로그에 남긴 책들은 대부분 자기계발서였고요. 문득 정신 차리고 보니 책의 내용을 요약해서 그대로 옮기고 있더라고요. 책을 읽고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가졌었는지보다는 기계적으로 문장들을 옮겨적고 있는 제 모습이 싫어져서 블로그 글쓰는 걸 그만뒀죠. 그 후로는 노트에 좋았던 문장을 필사하는 중이에요. <하루의 책상>을 읽으면서 책을 읽고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관찰해보기로 했어요. 문장이 왜 좋았는지 생각할 시간도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지 뭐예요. 기록 후에 시간이 흐르고 나서 다시 훑어보며 나를 들여다볼 필요도 있겠다 싶고요. 누군가가 꾸준히 해서 이뤄놓은 체계를 단번에 따라잡고 싶어서 조급해져요. 하지만 최대한 조금씩 할 수 있는 만큼만 시도하고 길게 가져가려고 노력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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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누워서 쓰는 서평
무라카미 하루키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앨리슨 벡델 - 펀 홈시무라 타카코 - 방랑소년 1저메이카 킨케이드 - 루시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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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과 독서를 함께 해요.
[NETFLIX와 백년의 고독 읽기] One Hundred Years of Solitude[IMF외환위기 다시 보기1]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보고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어요.영화 <로기완>을 기다리며 <로기완을 만났다> 함께 읽기"사랑의 이해" / 책 vs 드라마 / 다 좋습니다, 함께 이야기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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