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다 몽상가가 아닐까요? 현실의 삶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으니 소설 속에서 다른 삶을 살아보는 일에 끌린다고 생각해요. 저는 매우 그랬어서요.
<소설가의 인생책> 한은형 소설가와 [위대한 개츠비] 함께 읽기
D-29
한은형
흥하리라
자신이 상정한 그 모습대로 “끝까지 충실하게” 살아가는 친구가 있다면 조금 무서울 것 같습니다. 어쩌면 박수 받아 마땅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강하게 밀어부치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의 모습이어서겠지요.
그래서인지 개츠비가 위대해질 수도 있지만 일반인들하고는 삶의 방식이 달라 진정으로 어울리기 어려운 사람이 아닐까 싶네요.
한은형
어느 정도의 시간을 자기가 설정한 모습대로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요. 그렇게나 커다란 의지로서, 또 그렇게나 오래 나 자신의 삶을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서 더 개츠비란 인물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메롱이
김영삼 대통령이 중학교 시절 하숙방에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는 글을 종이에 써서 붙여놓았다더라는 에피소드가 떠오르네요. 생각이나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닌 게 인생의 속성 같은데 이걸 정면 돌파하려는 사람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코메디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김영삼이라 그런 거 같기도 하네요. 오타니 쇼헤이도 비슷한 에피소드의 주인공인데 이 분은 또 아닌 거 같고요.
한은형
김영삼 전 대통령과 오타니 쇼헤이 이야기를 해주시니 몰입이 확 되네요. 두 분 다 삶의 목표를 인생의 초기에 설정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는 게 확실히 범인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특히 오타니 쇼헤이에게 감탄한 적이 있는데요. 상세 항목들 중에 '사랑받는 사람' 같은 게 있었던 것 같고, '운'을 쌓기 위해 했던 세부 항목들에 쓰레기 줍기와 인사하기 같은 것들이 있어서 여러 생각들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흔히 성공하는 사람들이 목표로 설정하는 덕목들이 아닌 부분까지 어린 그가 챙기는 걸 보면서 저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미키타임
장동석 님이 쓴 <살아있는 도서관>을 읽다 법학자 김두식 교수님이 좋아하는 책을 만났습니다.
'김두식 교수는 10대를 보내면서 그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하퍼 리가 쓴 『아이들이 심판한 나라』였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만 1960년대 미국 인권운동의 정신을 담은 이 책에서 김 교수는 “남의 입장이 되기 전에는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다. 현재 이 책은 『앵무새 죽이기』° To Kill a Mockingbird라는 원제 그대로 출간되었는데, 김 교수는 “『아이들이 심판한 나라』가 이 책에 가장 적절한 제목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또한 이 책은 김두식 교수가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라는 부제로 선보인 『불편해도 괜찮아』의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개츠비 첫 머리에 나오는 닉 아버지의 이야기와 비슷해 반가운 마음에 공유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한은형
열일곱 번째 날입니다.
개츠비가 주최한 파티에 다녀온 톰은 개츠비가 누구냐며, 밀주업자기도 한 거냐고 묻습니다. “도대체 이 개츠비란 자는 누구지?” 여러분께서 생각하는 개츠비는 어떤 사람인가요?
미키타임
개츠비는 어떤 사람인가요? 라는 소설가님의 답을 고민하다, 책에서 읽은 대목이 떠올랐어요.
인기 연예인들까지 찾아온 개츠비의 파티에 나타난 데이지.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심드렁했봐요. 개츠비가 보기엔... 이렇게 말하지요.
'“데이지는 좋아하지 않더군요.” 그가 불쑥 말했다.
“물론 좋아했어요.”
“아닙니다, 좋아하지 않았어요.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고요.” 그가 끈질기게 말했다.
그는 잠시 침묵을 지켰고, 나는 그가 말할 수 없이 의기소침해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가 보기에 개츠비는 가련한 사람입니다. 누군가를 열렬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약자가 되지요. 끊임없이 상대의 눈치를 살피고, 평가에 목을 매는... 잔인한 사람을 만나면 위대한 사람도 초라해질 수 밖에 없어요. 무심한 상대의 반응에 상처입는 개츠비. 아, 사랑은 왜 이리 잔인할까요?
메롱이
'포에버 도그'라는 책을 읽는데 개의 역사를 다루면서 인간이 개를 좋아해서 키우게 된 게 아니라 개가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서 키워달라고 인간을 설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개와 주인 사이에는 감정 전염이라는 게 발생하는데 이게 사람에서 개로 전이되는 것이지 개에서 사람으로 전이되는 게 아니라고. 덕분에 주인의 스트레스로 발생하는 호르몬에 개는 무방비에 노출되어 고통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사람 사이든 자연계이든 더 좋아하는 쪽이 약자가 되는 거 같아요.
한은형
'포에버 도그'!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저는 개와 개와 같이 사는 사람이 산책하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하는데요, 제가 가장 얼굴 근육이 활발해지는 시간인 것 같아요. 개라는 생명체는 우주의 신비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렇게 타고 났는지요. 자신보다 상대를 좋아하게요. 사람을 많이 좋아하는 개일수록, 그 바보 같은 개의 순정에 마음이 시큰해지곤 합니다.
한은형
미키타임 님은 특히 개츠비에게 많이 이입하시는 것 같아요. 감히 짐작해보자면, 그래서, 그러니까 미키타임 님은 낭만주의자에 가까운 성향이지 않을까 짐작해봅니다. 낭만 있는 하루 보내고 계시길 바랍니다.
미키타임
앗, 딱 걸린 느낌인데요? ^^
화제로 지정된 대화
한은형
이 날은 열여덟 번째 날이었습니다! 이렇게라도 정정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한은형
열아홉 번째 날입니다. 오늘까지 6장을 읽습니다.
저는 6장까지 다 읽고 개츠비와 데이지의 낭만성과 사랑의 덧없음, 아름다움에 취해 있는데요. 그들을 보고 있는 닉도 그런 듯합니다. 닉은 이렇게 말하는데요. "그의 놀라운 감상을 들으면서 나는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포착할 수 없는 리듬이랄까, 오래전에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 잃어버린 말의 파편이랄까." 이렇게 느끼는 닉은 어떤 사람으로 보이시나요?
미키타임
닉과 베이커의 관계를 보고 있노라면 물에 풍덩 빠지기보다는 물가에 서서 발만 살짝 담그며 간을 보는 것 같아요. 개츠비는 그냥 첨벙 빠져드는 사람이지요. 닉은 그냥 관찰자같아요. 톰의 불륜을 말리지도, 데이지의 이혼을 부추기지도 않는 것 같아요. 소설의 화자라서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걸까요?
한은형
아마도 닉이 그런 사람이기에 - 관찰자로서 최적화된 사람 - 작가가 닉에게 화자라는 위치를 부여했을 것 같아요. 닉이 다른 이들의 연애사에 개입하거나, 또 본인의 사랑에 풍덩 빠진다거나 했다면 이 이야기는 매우 다른 이야기가 되었을 듯합니다. 어떤 소설에서는 화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이 소설에서의 닉은 그런 캐릭터가 아닌 것이지요. 저의 닉이라는 사람의 그런 성격 - 저는 매우 매력적으로 느낍니다 - 이 이 소설에 특이한 온도와 색채를 주는 것 같아요.
미키타임
편성준 작가님의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를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신혼여행지에 가져간 책 중에 <위대한 개츠비>가 있네요.
'책을 반쯤 읽다가 부록으로 붙어 있는 피츠제럴 드 연보를 슬쩍 들춰보니 그도 참 개츠비만큼이나 휘황찬란하게 살다 가신 분이었다. 파티광에 알코올 중독자로 살았고 거의 평생을 빚에 시달리느라 걸핏하면 레이먼드 챈들러처럼 할리우드로 끌려가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해야 했다(그 유명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도 잠깐 손을 댔다). 그러다 결국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예술가들은 자기 인생을 캔버스 삼아 자신의 작품과 비슷한 그림을 거기에 한 번 더 그릴 때 비로소 멋스러움의 정점을 찍는 것 같았다.'
라는 글이 반가워 옮겨봅니다.
메롱이
오랜만에 번역되어 나온 존 그리샴의 <카미노 아일랜드 : 희귀 원고 도난 사건>을 읽고 있는데 마침 스콧 피츠제럴드의 자필 원고 도난 사건이 소재네요. 자필 원고의 경우 저가 용지에 쓰는 바람에 보관이 어려웠다는 이야기가 있네요.
미키타임
오,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저는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책 이야기가 좋아요~^^
한은형
미키타임 님이 큰 지분을 차지하고 계십니다. 책을 좋아하는 분들과 이야기하니 뭔가 좀 흥분되고, 좋습니다. 모두들 좋은 하루를 지나고 계시기를요.
작성
게시판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