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인생책> 한은형 소설가와 [위대한 개츠비] 함께 읽기

D-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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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째 날입니다. 3장에서 부정직하다고 생각하면서 베이커에게 사랑을 느끼는 닉은 말합니다. 주변에서 자기가 가장 정직한 사람 같다고요. 정직이란 무엇일까요?
매일 던져주시는 사랑, 정직 등 화두가 보편적인 키워드이긴 한데 뭐라고 선뜻 대답하기에 난이도가 있네요. 반려견과 반려묘를 키우면서 느끼는 거지만 인간과 다른 종을 구분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거짓말 활용 능력의 유무 같습니다. 거짓말은 인간에게 주어진 주요 재능 가운데 하나이고 거짓말을 하다보면 정직의 어떤 선을 넘어서 부정직이 되어버리는 거 같아요. 어디까지가 정직이고 어디까지가 부정직인지 그 경계선의 너비가 개인마다 다 다를 거 같고 그런 차이가 인물들 간에 변별점을 부여한다고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이번에 다시 읽다보니 닉에 대해 다르게 보이는 부분이 있더군요. 2장 말미의 매키 씨 에피소드 그리고 개츠비를 향한 닉의 묘사를 보면 닉이 이성애자라기 보다는 양성애적인 인물이 아닐까 싶은 느낌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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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번째 날입니다. 이제 드디어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 다섯 명이 모두 등장했습니다. 화자인 닉, 개츠비와 데이지, 베이커와 톰이요. 가장 호감이 가는 인물은 누구신가요?
호감가는 인물이라… 예전엔 닉에게는 별다른 감정 없는 담담함을 느꼈던 것 같고 다른 인물들에서도 호감을 갖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다시 읽어가면서는 닉이란 인물은 좀 소시민적인 비겁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론 정직하고 바르기 살려는 마음가짐인 것 같지만 누군가 구렁텅이에 끌어들이면 은근슬쩍 따라가게되는… 호감과는 별개로 게츠비에 대해선 인간적인 우호의 감정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아무튼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이는 그 끈적함 속으로 들어갈 일이 남았네요. ^^
"끈적함 속으로 들어갈 일"이라는 말 참 좋은 것 같아요. 이 소설은 끈적한 소설이 아니지만, 사람의 감정이라는 게 끈적하지 않은 게 어디 있겠느냐고 생각하며 말이지요. 좋은 밤 속에 계시고 있기를 바랍니다.
캐릭터 호감에 관한 부분은 작가가 창작 과정에서 설정한 의도에 따라 독자가 따라가기 마련이란 생각을 하게 되네요. 수능 문제 답안으로 보편적인 정답을 고르라면 개츠비일 거 같긴 합니다. 호감과는 별개로 다른 캐릭터들도 충분히 설득이 되는 인물들인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래서 이 작품이 클래식인 거겠죠.
아울러 이 작품의 주요 캐릭터들은 캐릭터아크에 있어서도 특이하네요. 작중 화자인 닉을 제외하고 나머지 캐릭터들은 고정 불변의 내정 정체성을 지니는 플랫아크의 형태를 보입니다. 불과 30대 초반의 나이에 단단하게 굳은 아집 덕분에 파멸해버리는 개츠비는 낯설기도 하지만 시대 상황을 생각하면 그 시절의 30대가 오늘날의 50대 정도의 연령대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1900년대 초반 세계의 평균 수명은 31세였고 미국의 경우도 47세였네요. 위대한 개츠비는 배경이 1922년임을 가만하면 차이는 크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평균 수명이 31세라니... 2022년의 현대인와 비교하면 1/3을 사는 군요. 인간의 하루가 고양이의 사나흘에 준한다던데 흥미롭네요. 어디서 들은 얘기로는 38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와 현대인은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거의 다를 바 없다고 하더군요. 한 세기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이런 소설을 보면서 공감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요. 시대는 바뀌어도 사람은 그대로라는 말을 통감합니다.
거의 백 년 전 작가의 글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그만큼 인간이 백 년 동안 그다지 진화한 건 아니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백 년 전 한국 소설이 김동인, 염상섭 등이니까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간다고 하더라도 대충 1920년대까진 이질감 없이 적응할 수 있을 거 같아요. 100년 너머의 과거로 간다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서 스트레스 받을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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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번째 날입니다. 4장에서 개츠비는 닉을 찾아와 자동차를 자랑합니다. "그는 잠시도 가만 있질 못했다. 항상 어딘가에 발을 구르거나 참을성 없이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닉이 보는 개츠비의 모습입니다. 개츠비는 닉에게 묻습니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요. 개츠비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런 마음을 개츠비처럼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직접 대놓고 물어보진 않죠. 그런 면에서 개츠비는 자신이 바라보는 자신보다 타인의 눈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고, 자신의 그런 면을 감출 줄 모르고 투명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좀 나이브한 인물인 것 같아요.
말씀하신 '나이브함'때문에 저는 개츠비가 나오는 대목을 볼 때마다 배를 잡고 웃었었는데요. 이번에는 다른 분들과 같이 읽으니 - 개츠비에게 공감해주시는 이야기를 들으며 - 제게는 닉의 아버지가 닉에게 해줬던 그 말, 그 말이 스며들지 못했나 보다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개츠비는 자꾸 닉을 형씨라고 부릅니다. 파티장에 온 모든 사람은 집주인인 개츠비를 알지만 개츠비는 모든 사람의 이름을 외울 수 없겠지요 초대장을 보낸 이웃이라해도 그러니 편하게 형씨라고 퉁치고 넘어가는 것 같은데요. 닉은 반면 파티 참석자들의 이름을 메모해두고 하나 하나 기억해냅니다.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 면에서 닉이 더 돋보인다고 생각합니다. 문득 영어 원서에서는 형씨가 뭐라고 표현되는지 궁금하네요.
형씨는 Old sport 입니다. 번역할 우리 말이 마땅치 않았던 건 이해하지만, '형씨'는 오역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닐 듯 하네요.
아, 그렇군요. Old sport... 개츠비의 말습관인가 봐요. 경적을 울리며 따라오는 경찰에게도 쓰는 걸 보면... 저는 형씨라는 말이 너무 가볍게 느껴졌거든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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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날입니다. 오늘까지 4장을 다 읽고, 내일부터 3일 동안 5장을 읽겠습니다. 4장에서 베이커는 닉에게 데이지와 결혼한 이후 톰의 애정 편력(?)에 대해 말하며 이렇게 덧붙입니다. “데이지의 삶에도 뭔가 있어야 해요.”라고. 마치 데이지도 연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베이커의 생각에 동의하시나요?
닉이 조던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는 쫓기는 자와 쫓는 자, 바쁘게 뛰는 자와 지쳐 버린 자가 있을 따름이로다." 그때 조던이 한 말이죠. "그리고 데이지한테도 자기 삶이 있어야 해요." 톰은 신촌초부터 부인을 두고 다른 여자들을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없네요. 데이지의 삶이 공허하다면 그 허무함을 채울 무언가가 필요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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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번째 날입니다. 5장에서 개츠비는 데이지와 꿈에 그리던 재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데이지가 너무 늦는다며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아직 약속 시간이 되기 전인데요. 개츠비의 마음이 어땠는지 그려지시나요?
불쌍한 개츠비! 비는 쏟아지고, 초라한 닉의 집은 성에 안 차고... 어쩌면 좋을까요. 네, 공감할 수 있어요. '아예 시도도 하지 않는다면, 실패할 일도 없고 마음을 다칠 일도 없다.' 5년간 쌓아온 거탑이 한방에 무너지면 어떡하나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 이해가 갑니다. 가련해서 어떡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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