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인생책> 한은형 소설가와 [위대한 개츠비] 함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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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타임 님과 다르게 제게는 책이 꼭 욕망의 절제만을 권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저는 어린시절 책을 보면서 저와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그들이 누리고 있는 것들을 원했었고요. 사치라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주 긴 이야기가 필요하겠지만요, 저는 책이 가장 사치스러운 매체인 듯합니다. 소설의 경우 거의 이만원이 안 되는 돈만 주면 살 수 있는데, 어떤 책은 엄청나게 사치스러운 시선을 주고, 그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하기도 하는 것 같아서요. 지금도 그런 책 한 권을 읽고 있는데 너무 좋고, 너무 사치스러운 기분이 들고, 막 저는 그렇습니다.
"이상할 정도로 낭만성에 부풀어서 자기 인생을 창작하듯이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개츠비"라서 '위대한 개츠비'라고 불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개츠비는 일반적인, 또 상식적인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이상하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한데, 또 한편으로 자기가 원하는 삶을 위해 그토록이나 헌신했던 그를 내가 비웃을 자격이 있나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요. "기형종"이라는 말이 확 와닿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열일곱 번째 날입니다. 오늘부터 사흘 동안 6장을 읽겠습니다. 이번 장에서 어느 정도 개츠비의 과거가 드러납니다. 개츠비로부터 그의 과거에 대해 들은 닉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열일곱 살의 청년이 그릴 법한 제이 개츠비라는 인물을 만들어낸 다음, 그 모습에 끝까지 충실했던 것이다.”라고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어떤 감정이 들 것 같으신가요?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싶을 때, 그러지 않을까요? 실은 저도 사춘기 시절에는 개츠비처럼 몽상가였거든요. 물론 저는 댄 코디 같은 멘토를 만나지도 못했고, 유산이나 가르침을 물려받지도 못했지만요. 현실이 괴로웠던 어린 시절, 저는 소설로 달아나 머릿속에서 책 속의 주인공이 되어보는 걸로 현실 도피를 즐겼는데요. 그게 평생 이어진 습관이 되었어요. 책을 덮는 순간, 마법이 풀리듯 저는 현실로 돌아왔는데요. 개츠비는 자신이 상상한 모습을 현실에서 끝까지 구현했다니 문득 그 비결이 궁금해집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다 몽상가가 아닐까요? 현실의 삶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으니 소설 속에서 다른 삶을 살아보는 일에 끌린다고 생각해요. 저는 매우 그랬어서요.
자신이 상정한 그 모습대로 “끝까지 충실하게” 살아가는 친구가 있다면 조금 무서울 것 같습니다. 어쩌면 박수 받아 마땅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강하게 밀어부치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의 모습이어서겠지요. 그래서인지 개츠비가 위대해질 수도 있지만 일반인들하고는 삶의 방식이 달라 진정으로 어울리기 어려운 사람이 아닐까 싶네요.
어느 정도의 시간을 자기가 설정한 모습대로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요. 그렇게나 커다란 의지로서, 또 그렇게나 오래 나 자신의 삶을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서 더 개츠비란 인물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중학교 시절 하숙방에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는 글을 종이에 써서 붙여놓았다더라는 에피소드가 떠오르네요. 생각이나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닌 게 인생의 속성 같은데 이걸 정면 돌파하려는 사람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코메디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김영삼이라 그런 거 같기도 하네요. 오타니 쇼헤이도 비슷한 에피소드의 주인공인데 이 분은 또 아닌 거 같고요.
김영삼 전 대통령과 오타니 쇼헤이 이야기를 해주시니 몰입이 확 되네요. 두 분 다 삶의 목표를 인생의 초기에 설정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는 게 확실히 범인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특히 오타니 쇼헤이에게 감탄한 적이 있는데요. 상세 항목들 중에 '사랑받는 사람' 같은 게 있었던 것 같고, '운'을 쌓기 위해 했던 세부 항목들에 쓰레기 줍기와 인사하기 같은 것들이 있어서 여러 생각들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흔히 성공하는 사람들이 목표로 설정하는 덕목들이 아닌 부분까지 어린 그가 챙기는 걸 보면서 저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장동석 님이 쓴 <살아있는 도서관>을 읽다 법학자 김두식 교수님이 좋아하는 책을 만났습니다. '김두식 교수는 10대를 보내면서 그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하퍼 리가 쓴 『아이들이 심판한 나라』였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만 1960년대 미국 인권운동의 정신을 담은 이 책에서 김 교수는 “남의 입장이 되기 전에는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다. 현재 이 책은 『앵무새 죽이기』° To Kill a Mockingbird라는 원제 그대로 출간되었는데, 김 교수는 “『아이들이 심판한 나라』가 이 책에 가장 적절한 제목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또한 이 책은 김두식 교수가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라는 부제로 선보인 『불편해도 괜찮아』의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개츠비 첫 머리에 나오는 닉 아버지의 이야기와 비슷해 반가운 마음에 공유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열일곱 번째 날입니다. 개츠비가 주최한 파티에 다녀온 톰은 개츠비가 누구냐며, 밀주업자기도 한 거냐고 묻습니다. “도대체 이 개츠비란 자는 누구지?” 여러분께서 생각하는 개츠비는 어떤 사람인가요?
개츠비는 어떤 사람인가요? 라는 소설가님의 답을 고민하다, 책에서 읽은 대목이 떠올랐어요. 인기 연예인들까지 찾아온 개츠비의 파티에 나타난 데이지.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심드렁했봐요. 개츠비가 보기엔... 이렇게 말하지요. '“데이지는 좋아하지 않더군요.” 그가 불쑥 말했다. “물론 좋아했어요.” “아닙니다, 좋아하지 않았어요.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고요.” 그가 끈질기게 말했다. 그는 잠시 침묵을 지켰고, 나는 그가 말할 수 없이 의기소침해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가 보기에 개츠비는 가련한 사람입니다. 누군가를 열렬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약자가 되지요. 끊임없이 상대의 눈치를 살피고, 평가에 목을 매는... 잔인한 사람을 만나면 위대한 사람도 초라해질 수 밖에 없어요. 무심한 상대의 반응에 상처입는 개츠비. 아, 사랑은 왜 이리 잔인할까요?
'포에버 도그'라는 책을 읽는데 개의 역사를 다루면서 인간이 개를 좋아해서 키우게 된 게 아니라 개가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서 키워달라고 인간을 설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개와 주인 사이에는 감정 전염이라는 게 발생하는데 이게 사람에서 개로 전이되는 것이지 개에서 사람으로 전이되는 게 아니라고. 덕분에 주인의 스트레스로 발생하는 호르몬에 개는 무방비에 노출되어 고통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사람 사이든 자연계이든 더 좋아하는 쪽이 약자가 되는 거 같아요.
'포에버 도그'!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저는 개와 개와 같이 사는 사람이 산책하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하는데요, 제가 가장 얼굴 근육이 활발해지는 시간인 것 같아요. 개라는 생명체는 우주의 신비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렇게 타고 났는지요. 자신보다 상대를 좋아하게요. 사람을 많이 좋아하는 개일수록, 그 바보 같은 개의 순정에 마음이 시큰해지곤 합니다.
미키타임 님은 특히 개츠비에게 많이 이입하시는 것 같아요. 감히 짐작해보자면, 그래서, 그러니까 미키타임 님은 낭만주의자에 가까운 성향이지 않을까 짐작해봅니다. 낭만 있는 하루 보내고 계시길 바랍니다.
앗, 딱 걸린 느낌인데요? ^^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이 날은 열여덟 번째 날이었습니다! 이렇게라도 정정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열아홉 번째 날입니다. 오늘까지 6장을 읽습니다. 저는 6장까지 다 읽고 개츠비와 데이지의 낭만성과 사랑의 덧없음, 아름다움에 취해 있는데요. 그들을 보고 있는 닉도 그런 듯합니다. 닉은 이렇게 말하는데요. "그의 놀라운 감상을 들으면서 나는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포착할 수 없는 리듬이랄까, 오래전에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 잃어버린 말의 파편이랄까." 이렇게 느끼는 닉은 어떤 사람으로 보이시나요?
닉과 베이커의 관계를 보고 있노라면 물에 풍덩 빠지기보다는 물가에 서서 발만 살짝 담그며 간을 보는 것 같아요. 개츠비는 그냥 첨벙 빠져드는 사람이지요. 닉은 그냥 관찰자같아요. 톰의 불륜을 말리지도, 데이지의 이혼을 부추기지도 않는 것 같아요. 소설의 화자라서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걸까요?
아마도 닉이 그런 사람이기에 - 관찰자로서 최적화된 사람 - 작가가 닉에게 화자라는 위치를 부여했을 것 같아요. 닉이 다른 이들의 연애사에 개입하거나, 또 본인의 사랑에 풍덩 빠진다거나 했다면 이 이야기는 매우 다른 이야기가 되었을 듯합니다. 어떤 소설에서는 화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이 소설에서의 닉은 그런 캐릭터가 아닌 것이지요. 저의 닉이라는 사람의 그런 성격 - 저는 매우 매력적으로 느낍니다 - 이 이 소설에 특이한 온도와 색채를 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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