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인생책> 한은형 소설가와 [위대한 개츠비] 함께 읽기

D-29
닉과 데이지가 친척이긴 하지만 너무 먼 친척이라 가족적인 구분 안에 묶이는 관계라기 보단 그냥 아는 지인 정도의 느낌이었습니다. 닉의 입장에선 같이 학교를 다니기도 했던 톰과 보낸 시간이 데이지보다는 더 길 수도 있을 거 같고요.
다른 책도 함께 읽고 있지만 진도가 빡빡하지 않아 적절히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던지시는 질문과 답변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네요. 반복하여 읽을수록 닉에 더 다가가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음주엔 더 깊이 생각해보고 던지신 질문도 더 곰곰히 생각하고 참여해 보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시길…
2장 말미에 톰이 윌슨 부인의 코를 후려치는 장면에서 자족감을 비롯한 톰의 어떤 프레임이 젠가 게임처럼 무너지는 듯 하더군요.
젠가처럼 무너진다는 말씀에 무릎 탁 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여덟 번째 날입니다. 오늘부터 사흘 동안 3장을 읽습니다. 3장에 드디어 개츠비가 등장합니다. “그는 사려 깊은 미소를 지었다. 아니, 사려 이상을 담은 미소를 지었다. 영원히 변치 않을 듯한 확신을 내비치는, 평생 가도 네댓 번밖에는 만날 수 없는 미소였다. (…) 그런데 격식을 차린 그의 말투는 가까스로 어리석다는 느낌을 벗어나는 수준이었다.” 닉은 개츠비의 미소를 보고 호감을 느끼다가 바로 그의 말투에서 다른 감정을 느낍니다. 사람을 판단할 때 어떤 것들로 판단하게 되시나요?
사람을 판단할 때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오는 부분은 그 사람이 가지고 태어난 외모이겠지요. 그러나 외모가 주는 인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람의 외모에 익숙해지고 대신 다른 점에 주목하게 되죠. 저는 사람을 판단할 때 특히 말투와 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저는 특히 분명한 발음과 좋은 목소리, 듣기 편한 억양을 가진 나긋나긋한 말투(예를 들면 장강명 작가님 같은)를 가진 사람과 좋은 냄새가 나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어떤 분야이건 간에 그 사람만의 확고한 가치관이나 취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의 집에 가서 서가를 볼 기회가 있다면 저도 어떤 책이 꽂혀 있는지에 따라 그 사람을 판단할 것 같은데 요즘은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서평, 책리뷰가 비슷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떤 사람의 서가를 들여다보는 건 그 사람의 뇌를 들여다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미키타임님의 ‘요즘은 그것 또한 타인의 내밀한 이야기라 여겨 삼가고 있습니다.’라는 구절을 보니 저도 그 말씀에 공감하게 되네요.
나긋나긋한 장강명 작가님의 말투, 라는 대목에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고 있어요. ^^ 저도 공감합니다. 남의 집 책장 구경은 쉽지 않지만, 인스타에 올린 리뷰로 취향을 알 수 있다는 말씀도 확 와닿고요. 요즘 저는 사람을 볼 때, 눈빛을 봅니다. 눈이 반짝이는지, 아니면 시선이 흔들리는지...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얘기가 와닿는데요. 가끔 눈을 맞춰주지 않는 사람을 보면, 제게 마음의 창을 닫은 것처럼 느껴져요.
맞습니다! 그래서 눈을 보는 게 그래서 무서운 일인 것 같습니다. 어릴 때 저는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는 말을 듣고서 꽤 무서웠어요. 나의 마음의 흔적이 얼굴에 고정된다는 것이 으스스해서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요, 얼굴이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맑은 분들이 계신데 그분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꼭 얼굴의 맑음과 그분의 성정이 일치하지만은 않더군요. 저는 요즘 이 부조화의 사례(?)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기행 님의 의견에 무척 공감합니다. 목소리와 말투, 말에 강세를 주는 방식, 부사나 형용사를 쓰는 패턴 같은 걸로 그 사람이 다르게 보이는 것 같아요. 저는 쉬운 말을 쓸 수 있는데 구태여 어려운 한자어나 관념어 같은 걸 쓰는 분들에게 편견이 좀 있는 것 같아요. 책이나 영화 같은 그 사람이 좋다고 하는 작품이 무엇인지에따라 더 괜찮은 사람으로도, 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도 보이는 것 같고요. 옷 입기의 방식처럼 책 읽는 것도 그 사람이 추구하는 게 무엇인지를, 또 어디에 약한지를 알 수 있어 보는 재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을 판단할 때, 주로 시각과 청각 정보에 의지합니다. 그 사람의 인상과 말투를 참고하지요. 제가 동물이었다면, 후각이나 촉각의 정보가 중요했겠지만요... ^^ 3장을 읽다 문득 저의 오래전 습관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어려서 저는 남의 집에 놀러가면 그 집 책꽂이를 유심히 살폈습니다. 어떤 책을 읽는가 하는 정보가 그 사람을 판단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요즘은 그것 또한 타인의 내밀한 이야기라 여겨 삼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궁금한 건 여전하지요. ^^ 3부에서 닉은 개츠비의 파티 초대장을 받고 저택으로 향합니다. 사람들로 붐비는 연회장에서 개츠비를 찾지만 아무도 그의 소재를 몰라요. 대신 서재에서 개츠비의 장서를 들여다보는 한 남자를 만납니다. "저것들은 다 진짜요.” “저 책들 말입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중에서도 진짜요……. 페이지도 빠진 게 없고 모든 게 다 있어요. 난 저것들이 그저 마분지로 만든 장식용 책일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완전히 진짜인 거요. 이렇게 페이지도 있고……. 자, 여기 좀 보시오! 내가 직접 보여 드리리다.” 우리가 당연히 의심하리라 생각한 그는 서가로 달려가 『스토더드 강연집』23) 1권을 들고 돌아왔다. “자. 보시오!” 그가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이건 진짜로 인쇄한 책이란 말이오. 처음에는 나도 속았지요. 이 집 주인은 데이비드 벨라스코24) 같은 존재요. 이건 실로 대단한 위업이오. 얼마나 철두철미하냔 말이오! 놀라운 리얼리즘이라고요! 정도를 넘어서지도 않고……. 페이지를 칼로 자르지 않았소. 피츠제럴드는 여기서도 개츠비의 장서를 통해 그의 성격을 묘사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벨라스코는 브로드웨이의 연극 감독인데요. 사실주의 전통에 따라 현실과 매우 흡사하게 만든 무대 장치로 유명합니다. 즉 남자는 이 놀라운 장서목록이 정교한 가짜 소품이라는 걸 뚫어본 걸까요? 점점 흥미로워집니다. 개츠비와 함께 이번 한 주도 즐겁게 시작하시어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아홉 번째 날입니다. 3장에서 닉은 조던 베이커에게 사랑 비슷한 감정을 느낍니다. “조던 베이커는 영리하고 약삭빠른 사람을 본능적으로 피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녀는 규범에 어긋한 행동이 용납되지 않는 곳에서만 마음을 놓았던 것이다. 그녀는 구제할 수 없을 만큼 부정직했다.”라면서요. 베이커가 부정직한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닉입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집 ‘일인칭 단수’ 중 <돌베개에>라는 작품에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보험 적용이 안되는 정신질환이랑 비슷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베이커가 부정직한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도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닉처럼 (여러 종류의 사랑이 있겠지만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사랑이란 감정은 자신의 의지대로 제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제게는 아주 공감 가는 구절이었어요.
네, 매우 그렇죠. 우리는 누군가의 장점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하게 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커질수록 사랑의 고통도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만.. 이 또한 진한 감정 속에서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참다운 삶 아닐까도 싶고요. 인용해주신 하루키님 소설 봐야겠어요.(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 이렇게나 적절한 인용, 감사드려요.
사실 저는 읽으면서 개츠비의 미소에 관한 묘사에 정신이 팔려서 말투에서 나오는 이질감의 부분에 대한 부분은 기억 못하고 있었습니다. 코멘트 주셔서 뒤늦게 다시 읽고 확인했습니다. 개츠비의 미소로 대표되는 선천적인 기질과 말투로 대표되는 후천적인 기질의 불협화음 같은 느낌이네요. 누군가에 대한 판단의 기준은 개인의 하루하루가 누적되어 드러나는 부분을 살펴봅니다. 이야기할 때 선별하는 단어, 발음, 걸음걸이, 얼굴의 주름, 몸 골격의 기울기 등을 보기도 해요. 그런데 요즘 들어 들기 시작한 생각은 닉의 아버지 말씀에 가까운 거 같네요. “누구든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하여라.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한 삼사년 만에 다시 읽고 있는데 감탄하면서 아껴 읽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이렇게 그믐을 통해서 다같이 천천히 여유롭게 읽는 것도 참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예전에 읽을 때는 개츠비를 중심으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제는 주변 인물들이 더 눈에 들어오네요. 1,2장에서도 느낀 점인데 베이커 양이 소설에서 의외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소설의 주인공은 명실상부 개츠비지만 그를 바라보고 판단하고 묘사하는 사람은 닉 캐러웨이라는 사람일 수밖에 없는데, 그런 닉에게 이성인 베이커 양이 끊임없이 감정적인 압력을 주는 구도가 정말 흥미롭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열 번째 날입니다. 3장에서 부정직하다고 생각하면서 베이커에게 사랑을 느끼는 닉은 말합니다. 주변에서 자기가 가장 정직한 사람 같다고요. 정직이란 무엇일까요?
매일 던져주시는 사랑, 정직 등 화두가 보편적인 키워드이긴 한데 뭐라고 선뜻 대답하기에 난이도가 있네요. 반려견과 반려묘를 키우면서 느끼는 거지만 인간과 다른 종을 구분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거짓말 활용 능력의 유무 같습니다. 거짓말은 인간에게 주어진 주요 재능 가운데 하나이고 거짓말을 하다보면 정직의 어떤 선을 넘어서 부정직이 되어버리는 거 같아요. 어디까지가 정직이고 어디까지가 부정직인지 그 경계선의 너비가 개인마다 다 다를 거 같고 그런 차이가 인물들 간에 변별점을 부여한다고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이번에 다시 읽다보니 닉에 대해 다르게 보이는 부분이 있더군요. 2장 말미의 매키 씨 에피소드 그리고 개츠비를 향한 닉의 묘사를 보면 닉이 이성애자라기 보다는 양성애적인 인물이 아닐까 싶은 느낌도 받았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열한 번째 날입니다. 이제 드디어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 다섯 명이 모두 등장했습니다. 화자인 닉, 개츠비와 데이지, 베이커와 톰이요. 가장 호감이 가는 인물은 누구신가요?
호감가는 인물이라… 예전엔 닉에게는 별다른 감정 없는 담담함을 느꼈던 것 같고 다른 인물들에서도 호감을 갖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다시 읽어가면서는 닉이란 인물은 좀 소시민적인 비겁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론 정직하고 바르기 살려는 마음가짐인 것 같지만 누군가 구렁텅이에 끌어들이면 은근슬쩍 따라가게되는… 호감과는 별개로 게츠비에 대해선 인간적인 우호의 감정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아무튼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이는 그 끈적함 속으로 들어갈 일이 남았네요. ^^
"끈적함 속으로 들어갈 일"이라는 말 참 좋은 것 같아요. 이 소설은 끈적한 소설이 아니지만, 사람의 감정이라는 게 끈적하지 않은 게 어디 있겠느냐고 생각하며 말이지요. 좋은 밤 속에 계시고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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