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인생책> 한은형 소설가와 [위대한 개츠비] 함께 읽기

D-29
저는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여러 번역본을 같이 보고 있는데 김영하 님의 번역을 제외하고는 데이지가 존댓말을 쓰고 있더군요. 젠더 이슈를 떠나서 데이지라는 캐릭터의 성격을 고려할 때 이런 말투가 어딘지 어색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대사 파트 부분만큼은 김영하 작가의 번역이 괜찮았는데 참조해보시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반면 지문의 경우는 다른 번역가님들의 번역이 이해가 잘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마틀 윌슨은 2장에서 물방울 무늬 짙푸른 실크 드레스, 갈색 모슬린 드레스, 애프터눈 드레스 등 이렇게 장소가 바뀔 때마다 각각 세 번 옷을 갈아입는데, 다양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장치 같아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들은 말씀주신대로 개인의 취향이 녹아있는 옷이 대표적일 거 같고요. 의복 가운데서도 후천적인 취향뿐 아니라 타고난 신체적인 규격까지 고려해야하는 구두, 러닝화 등의 신발류의 선택이 한 개인의 취향에 좀더 노골적인 소품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일곱 번째 날입니다. 오늘의 진도는 2장 끝까지입니다. 톰은 어떤 사람으로 보이나요? 자족감이 여전히 넘쳐 보이나요?
톰은 어쩌자고 아내의 먼친척인 닉에게 자신의 애인을 소개하는 걸까요? 닉을 깔보는 걸까요? 제가 닉이라면 화를 내고 나왔을 것 같은데... 닉이 참 무던한 성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족감이 너무 지나치면 남을 배려하지 않는 민폐가 되는 건지, 자족감이 너무 없어서 타인의 인정을 바라고 저러는 건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저도 톰이 닉을 정부의 아파트에 데려간게 정말 이해가 안되었다는… 나만 좋으면 된다는 식으로 너도 좋지 않았어? 재밌었잖아? 제멋대로 민폐 코드에 가깝다고 생각했어요. 그것도 자족감이라고 부를수 있는 것인지 참…
닉과 데이지가 친척이긴 하지만 너무 먼 친척이라 가족적인 구분 안에 묶이는 관계라기 보단 그냥 아는 지인 정도의 느낌이었습니다. 닉의 입장에선 같이 학교를 다니기도 했던 톰과 보낸 시간이 데이지보다는 더 길 수도 있을 거 같고요.
다른 책도 함께 읽고 있지만 진도가 빡빡하지 않아 적절히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던지시는 질문과 답변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네요. 반복하여 읽을수록 닉에 더 다가가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음주엔 더 깊이 생각해보고 던지신 질문도 더 곰곰히 생각하고 참여해 보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시길…
2장 말미에 톰이 윌슨 부인의 코를 후려치는 장면에서 자족감을 비롯한 톰의 어떤 프레임이 젠가 게임처럼 무너지는 듯 하더군요.
젠가처럼 무너진다는 말씀에 무릎 탁 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여덟 번째 날입니다. 오늘부터 사흘 동안 3장을 읽습니다. 3장에 드디어 개츠비가 등장합니다. “그는 사려 깊은 미소를 지었다. 아니, 사려 이상을 담은 미소를 지었다. 영원히 변치 않을 듯한 확신을 내비치는, 평생 가도 네댓 번밖에는 만날 수 없는 미소였다. (…) 그런데 격식을 차린 그의 말투는 가까스로 어리석다는 느낌을 벗어나는 수준이었다.” 닉은 개츠비의 미소를 보고 호감을 느끼다가 바로 그의 말투에서 다른 감정을 느낍니다. 사람을 판단할 때 어떤 것들로 판단하게 되시나요?
사람을 판단할 때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오는 부분은 그 사람이 가지고 태어난 외모이겠지요. 그러나 외모가 주는 인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람의 외모에 익숙해지고 대신 다른 점에 주목하게 되죠. 저는 사람을 판단할 때 특히 말투와 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저는 특히 분명한 발음과 좋은 목소리, 듣기 편한 억양을 가진 나긋나긋한 말투(예를 들면 장강명 작가님 같은)를 가진 사람과 좋은 냄새가 나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어떤 분야이건 간에 그 사람만의 확고한 가치관이나 취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의 집에 가서 서가를 볼 기회가 있다면 저도 어떤 책이 꽂혀 있는지에 따라 그 사람을 판단할 것 같은데 요즘은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서평, 책리뷰가 비슷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떤 사람의 서가를 들여다보는 건 그 사람의 뇌를 들여다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미키타임님의 ‘요즘은 그것 또한 타인의 내밀한 이야기라 여겨 삼가고 있습니다.’라는 구절을 보니 저도 그 말씀에 공감하게 되네요.
나긋나긋한 장강명 작가님의 말투, 라는 대목에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고 있어요. ^^ 저도 공감합니다. 남의 집 책장 구경은 쉽지 않지만, 인스타에 올린 리뷰로 취향을 알 수 있다는 말씀도 확 와닿고요. 요즘 저는 사람을 볼 때, 눈빛을 봅니다. 눈이 반짝이는지, 아니면 시선이 흔들리는지...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얘기가 와닿는데요. 가끔 눈을 맞춰주지 않는 사람을 보면, 제게 마음의 창을 닫은 것처럼 느껴져요.
맞습니다! 그래서 눈을 보는 게 그래서 무서운 일인 것 같습니다. 어릴 때 저는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는 말을 듣고서 꽤 무서웠어요. 나의 마음의 흔적이 얼굴에 고정된다는 것이 으스스해서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요, 얼굴이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맑은 분들이 계신데 그분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꼭 얼굴의 맑음과 그분의 성정이 일치하지만은 않더군요. 저는 요즘 이 부조화의 사례(?)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기행 님의 의견에 무척 공감합니다. 목소리와 말투, 말에 강세를 주는 방식, 부사나 형용사를 쓰는 패턴 같은 걸로 그 사람이 다르게 보이는 것 같아요. 저는 쉬운 말을 쓸 수 있는데 구태여 어려운 한자어나 관념어 같은 걸 쓰는 분들에게 편견이 좀 있는 것 같아요. 책이나 영화 같은 그 사람이 좋다고 하는 작품이 무엇인지에따라 더 괜찮은 사람으로도, 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도 보이는 것 같고요. 옷 입기의 방식처럼 책 읽는 것도 그 사람이 추구하는 게 무엇인지를, 또 어디에 약한지를 알 수 있어 보는 재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을 판단할 때, 주로 시각과 청각 정보에 의지합니다. 그 사람의 인상과 말투를 참고하지요. 제가 동물이었다면, 후각이나 촉각의 정보가 중요했겠지만요... ^^ 3장을 읽다 문득 저의 오래전 습관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어려서 저는 남의 집에 놀러가면 그 집 책꽂이를 유심히 살폈습니다. 어떤 책을 읽는가 하는 정보가 그 사람을 판단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요즘은 그것 또한 타인의 내밀한 이야기라 여겨 삼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궁금한 건 여전하지요. ^^ 3부에서 닉은 개츠비의 파티 초대장을 받고 저택으로 향합니다. 사람들로 붐비는 연회장에서 개츠비를 찾지만 아무도 그의 소재를 몰라요. 대신 서재에서 개츠비의 장서를 들여다보는 한 남자를 만납니다. "저것들은 다 진짜요.” “저 책들 말입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중에서도 진짜요……. 페이지도 빠진 게 없고 모든 게 다 있어요. 난 저것들이 그저 마분지로 만든 장식용 책일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완전히 진짜인 거요. 이렇게 페이지도 있고……. 자, 여기 좀 보시오! 내가 직접 보여 드리리다.” 우리가 당연히 의심하리라 생각한 그는 서가로 달려가 『스토더드 강연집』23) 1권을 들고 돌아왔다. “자. 보시오!” 그가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이건 진짜로 인쇄한 책이란 말이오. 처음에는 나도 속았지요. 이 집 주인은 데이비드 벨라스코24) 같은 존재요. 이건 실로 대단한 위업이오. 얼마나 철두철미하냔 말이오! 놀라운 리얼리즘이라고요! 정도를 넘어서지도 않고……. 페이지를 칼로 자르지 않았소. 피츠제럴드는 여기서도 개츠비의 장서를 통해 그의 성격을 묘사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벨라스코는 브로드웨이의 연극 감독인데요. 사실주의 전통에 따라 현실과 매우 흡사하게 만든 무대 장치로 유명합니다. 즉 남자는 이 놀라운 장서목록이 정교한 가짜 소품이라는 걸 뚫어본 걸까요? 점점 흥미로워집니다. 개츠비와 함께 이번 한 주도 즐겁게 시작하시어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아홉 번째 날입니다. 3장에서 닉은 조던 베이커에게 사랑 비슷한 감정을 느낍니다. “조던 베이커는 영리하고 약삭빠른 사람을 본능적으로 피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녀는 규범에 어긋한 행동이 용납되지 않는 곳에서만 마음을 놓았던 것이다. 그녀는 구제할 수 없을 만큼 부정직했다.”라면서요. 베이커가 부정직한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닉입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집 ‘일인칭 단수’ 중 <돌베개에>라는 작품에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보험 적용이 안되는 정신질환이랑 비슷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베이커가 부정직한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도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닉처럼 (여러 종류의 사랑이 있겠지만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사랑이란 감정은 자신의 의지대로 제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제게는 아주 공감 가는 구절이었어요.
네, 매우 그렇죠. 우리는 누군가의 장점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하게 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커질수록 사랑의 고통도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만.. 이 또한 진한 감정 속에서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참다운 삶 아닐까도 싶고요. 인용해주신 하루키님 소설 봐야겠어요.(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 이렇게나 적절한 인용, 감사드려요.
사실 저는 읽으면서 개츠비의 미소에 관한 묘사에 정신이 팔려서 말투에서 나오는 이질감의 부분에 대한 부분은 기억 못하고 있었습니다. 코멘트 주셔서 뒤늦게 다시 읽고 확인했습니다. 개츠비의 미소로 대표되는 선천적인 기질과 말투로 대표되는 후천적인 기질의 불협화음 같은 느낌이네요. 누군가에 대한 판단의 기준은 개인의 하루하루가 누적되어 드러나는 부분을 살펴봅니다. 이야기할 때 선별하는 단어, 발음, 걸음걸이, 얼굴의 주름, 몸 골격의 기울기 등을 보기도 해요. 그런데 요즘 들어 들기 시작한 생각은 닉의 아버지 말씀에 가까운 거 같네요. “누구든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하여라.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한 삼사년 만에 다시 읽고 있는데 감탄하면서 아껴 읽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이렇게 그믐을 통해서 다같이 천천히 여유롭게 읽는 것도 참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예전에 읽을 때는 개츠비를 중심으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제는 주변 인물들이 더 눈에 들어오네요. 1,2장에서도 느낀 점인데 베이커 양이 소설에서 의외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소설의 주인공은 명실상부 개츠비지만 그를 바라보고 판단하고 묘사하는 사람은 닉 캐러웨이라는 사람일 수밖에 없는데, 그런 닉에게 이성인 베이커 양이 끊임없이 감정적인 압력을 주는 구도가 정말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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