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인생책> 한은형 소설가와 [위대한 개츠비] 함께 읽기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다섯 번째 날입니다. 1장에서 톰에게 애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닉은 데이지가 해야 할 일은 당장 톰과 사는 집을 나가는 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2장에서 톰과 함께 톰의 애인인 윌슨 부인을 만나러 가게 됩니다. 닉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닉 자체가 어쩌면 모순으로 가득한 사람인 것 같아요. 나쁜 의미로 하는 말은 아니고 그점에서 지극히 인간적인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누구나 견디기 힘들거나 불편한 모임자리를 지키고 있어 본 경험은 있을 것 같네요. 저 역시 싫으면서도 '어떤 끝'을 관음하고 싶은 삐딱함 때문에 계속 남아있을 때도 있었고요. 그래서 "나 역시 위쪽을 올려다보며 궁금하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변화무쌍한 삶에 매혹당하기도 하고 혐오감을 느끼기도 하면서 나는 집 안에 있으면서 집 밖에도 있는 기분이었다"(56쪽) 같은 대목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저도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은데요. 2장까지 다시 소설을 읽으면서 전엔 안 보였던 한가지 특징(?)을 발견했는데요. 여성 인물의 말투만 공대하는 투로 서술된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제가 주워 듣기로는 과거의 번역에서 안 좋은 사례로 남녀 사이의 위계가 반영된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여성 인물의 말투를 평어로 다시 고쳐서 읽으면 어떨까 싶었는데, 눈에 익은 투여서 그런지 아무래도 어색하게 느껴지더군요. 제 편견일 수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소설을 쓰는 입장이시기도 하니 이점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쭙니다. 부러 논란을 만드려는 것은 아니고 바람직한 논의가 됐으면 합니다.
저도 비슷한 불편함을 느껴서, 열린책들의 김영하 작가님 번역본으로 읽었어요. 데이지의 대사는 대부분 그쪽이 훨씬 생동감있개 전달되더군요
아이구 열린책들 아니고 문학동네 ㅠㅠ 수정도 안되네요 ㅠㅠ
2장에서 닉은 일요일 오후에(내일 출근해야할 지도 모르는데!) 톰 일행과 더불어 유난히 과음을 하는데, 이런 행동에 그의 기분이 반영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 아래 단락에 해주신 말씀 저도 무척이나 공감합니다. 번역된 책을 보면 말씀해주신 것처럼, 남자는 여자에게 반말을 하고, 여자는 남자에게 존대를 하는 그런 상황이 무척이나 많은 것 같아요. 예전에 나왔던 책일수록 그런 일이 많은 것 같고요. 저는 알아서 변환해서 읽는 편입니다. 요즘 새로 나오는 번역들, 특히 이런 부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번역가들이 많아지면서 젠더라든가 단어에 대한 감각 같은 것들이 변하고 있더라고요. 언어는 당연히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나왔던 책들은 읽으면서 당시의 상황과 의식구조를 느낄 수 있는 것 같고요. 요즘 나오는 책들은 이러한 부분들이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저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여섯 번째 날입니다. 오늘은 비가 부슬부슬 오네요. 2장에서 닉은 톰의 애인인 윌슨 부인이 옷을 갈아입은 걸 보고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고 느낍니다. “옷이 날개라더니 그 덕분에 인품마저 달라 보였다.”라면서요. 옷도 정체성의 일부인 듯합니다. 특히, 제복이 그러하고요.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옷도 정체성의 일부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저의 정체성을 이루는 것 중에, 내가 만나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나의 교집합이 나의 정체성이 아닐까요? 나와 닮은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지닌 사람을 만나기도 하니까요.
옷과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나의 정체성의 일부를 이룬다는 미키타임 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둘 다의 공통점은, 미키타임 님의 말씀처럼 '되고 싶은 나'가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한다는 것 같아요. 오늘 제가 입었던 옷을 되돌아보며, 내일 만나기로 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내가 되고 싶은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떠올리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도 크게 강조된 부분인데, 그 사람의 거주지가 정체성에 크게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망원동에 사는 사람, 목동에 사는 사람, 신림동에 사는 사람, 일산에 사는 사람, 포항에 사는 사람… 지리적 선택이야말로 별다른 설명 필요 없이 그에 대한 많은 정보 혹은 이미지를 제공하죠.
맞아요. 거주지도 정체성에 기여하는 바가 크지요. 저는 경상도에서 자라고 스무살에 처음 서울에 왔어요. 고향에서 살 때는 몰랐는데, 서울에 와 보니 나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촌사람이더라고요. 한편으로는 억울했어요. 나의 출생환경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데, 나의 고향으로 나의 정체성을 파악한다는 것이... '경상도 남자'라는 일반적 통념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어쩌면 지금 저의 정체성은 지리적 한계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에서 빚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여러 번역본을 같이 보고 있는데 김영하 님의 번역을 제외하고는 데이지가 존댓말을 쓰고 있더군요. 젠더 이슈를 떠나서 데이지라는 캐릭터의 성격을 고려할 때 이런 말투가 어딘지 어색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대사 파트 부분만큼은 김영하 작가의 번역이 괜찮았는데 참조해보시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반면 지문의 경우는 다른 번역가님들의 번역이 이해가 잘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마틀 윌슨은 2장에서 물방울 무늬 짙푸른 실크 드레스, 갈색 모슬린 드레스, 애프터눈 드레스 등 이렇게 장소가 바뀔 때마다 각각 세 번 옷을 갈아입는데, 다양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장치 같아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들은 말씀주신대로 개인의 취향이 녹아있는 옷이 대표적일 거 같고요. 의복 가운데서도 후천적인 취향뿐 아니라 타고난 신체적인 규격까지 고려해야하는 구두, 러닝화 등의 신발류의 선택이 한 개인의 취향에 좀더 노골적인 소품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일곱 번째 날입니다. 오늘의 진도는 2장 끝까지입니다. 톰은 어떤 사람으로 보이나요? 자족감이 여전히 넘쳐 보이나요?
톰은 어쩌자고 아내의 먼친척인 닉에게 자신의 애인을 소개하는 걸까요? 닉을 깔보는 걸까요? 제가 닉이라면 화를 내고 나왔을 것 같은데... 닉이 참 무던한 성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족감이 너무 지나치면 남을 배려하지 않는 민폐가 되는 건지, 자족감이 너무 없어서 타인의 인정을 바라고 저러는 건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저도 톰이 닉을 정부의 아파트에 데려간게 정말 이해가 안되었다는… 나만 좋으면 된다는 식으로 너도 좋지 않았어? 재밌었잖아? 제멋대로 민폐 코드에 가깝다고 생각했어요. 그것도 자족감이라고 부를수 있는 것인지 참…
닉과 데이지가 친척이긴 하지만 너무 먼 친척이라 가족적인 구분 안에 묶이는 관계라기 보단 그냥 아는 지인 정도의 느낌이었습니다. 닉의 입장에선 같이 학교를 다니기도 했던 톰과 보낸 시간이 데이지보다는 더 길 수도 있을 거 같고요.
다른 책도 함께 읽고 있지만 진도가 빡빡하지 않아 적절히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던지시는 질문과 답변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네요. 반복하여 읽을수록 닉에 더 다가가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음주엔 더 깊이 생각해보고 던지신 질문도 더 곰곰히 생각하고 참여해 보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시길…
2장 말미에 톰이 윌슨 부인의 코를 후려치는 장면에서 자족감을 비롯한 톰의 어떤 프레임이 젠가 게임처럼 무너지는 듯 하더군요.
젠가처럼 무너진다는 말씀에 무릎 탁 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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