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 『가족각본』

D-29
이 책의 저자 김지혜 씨는 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에서 소수자, 인권, 차별 문제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무지개는 더 많은 빛깔을 원한다』(공저), 『시설사회』(공저) 등을 썼고, 『헌법의 약속』과 『사회보장론 입문』을 번역했습니다. 당연하고 평범해 보이는 조직과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차별 문제를 저자와 함께 곰곰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왜 '당연히' 결혼과 출산을 하나로 여기며 결혼 밖에서 태어난 사람을 '어쩔 수 없이' 차별하는가. 우리의 인생은 왜 '당연히'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정되며, 양육자가 부와 모가 아닌 가족은 왜 '어쩔 수 없이' 불행한가. (p.11, 12)
존 스튜어트 밀은 1869년에 발간된 『여성의 종속』에서 실질적으로 결혼제도야말로 우리 법체계 안에서 발견되는 유일한 노예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직설한다. 그런데 여성에게 강요된 "족쇄는 그 성질이 다르다"라고 말한다. 여성이 "강요에 의한 노예"가 아니라 스스로 "자발적인 노예가 되어주기를" 바라며 "혼을 지배"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말한다. 온순하고 고분고분한 것을 미덕이라고 여기게 만듦으로써 스스로 타인의 삶에 종속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p.33
결혼을 당사자의 결합이라고 보는 나라에서는 며느리나 사위의 위치가 다를 리 없고 며느리와 시부모 사이에 특별히 기대되는 역할도 없다. 양육자가 자식의 결혼을 받아들이지 못해 생기는 갈등과 소원함이 있을 수 있지만, 남성에게 며느리의 역할을 요구해도 되는지, 여성을 백년손님이라고 대접해도 될지 고민할 일은 없다. (p.40)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이름이 결혼 밖에서 태어난 사람, 소위 '혼외출생자'의 것이다. 공문서 작성 예시에 자주 등장하는 그 이름, '홍길동'이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 『홍길동전』을 떠올려보자. 주인공인 홍길동은 세종 때 이조판서에게서 태어난 명문가의 아들이다. 하지만 어머니 춘섬은 시비, 즉 양반의 곁에서 시종드는 여종이었다. 그리하여 홍길동의 신분은 서자가 되었다. (p.48)
임신·출산이 국가적 '수단'이 아니라 국가가 보장해야 할 개인의 '권리'임을 확인하는 일이 중요하다. 개인은 임신·출산에 관해 자유롭고 책임 있게 결정할 권리를 지니며, 국가는 모든 사람이 이 권리를 향유하고 건강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할 의무가 있다. 이를 '재생산 권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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