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함께 읽으실래요?

D-29
예전엔 감사 일기 같은 게 과연 효과가 있을까 했는데, 언젠가부턴 저도 범사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이 감사의 마음이 실제 심리적 효과가 있는 거네요. 불안과 우울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역시 나에게서 벗어나 밖으로 시선을 돌리는 일 같습니다. 나 아닌 다른 것에 눈을 돌리고, 그 안에서 감사할 것을 찾고, 그러다보면 다시 시작할 힘을 얻고요. <미들마치>는 한번 읽어봐야지, 했던 소설인데 이번 참에 정말 읽어봐야겠어요.
와이프가 조지 엘리엇도 모르냐고 핀잔을 주더라구요 ㅋㅋㅋ(옆에서 한 챕터씩 읽기 같이하고 있거든요) 짐 진 자들을 불쌍히 여겨라. 이 종잡을 수 없는 비애가 당신과 나에게도 찾아올 수 있으니. 이 문장 좋네요. 뭔가 동질감이 느껴지는 문장 같아요. ‘당신과 나’
실패의 치유제가 '감사'였군요. 감사의 회복 효과가 발견된 지 10년이라고 하는데, 저는 좀 의아했거든요. 말씀하신대로 감사일기를 써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을 아주 어릴 때부터 들었던 것 같은데... 엄마가 신실한 기독교인이셔서 그랬을 수도 있겠어요. 저는 아주 어릴 적부터 그런 말을 많이 들었고, 커가면서는 반발심도 생겼어요. 이 챕터를 읽고 알았어요. 반발심의 원인은 그 대상이 '하나님'이라는 점에 있었네요. 하나님이 시련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건강을, 내가 소유한 것들을 주셔서 감사하다. 그건 다른 말로는 하나님께 잘못 보이면 언제 가져가실 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라 하나님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는데, 나는 이런 죄를 지었는데... 혹시 내가 가진 것들을 도로 가져가시면 어떡하지?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감사는 순종과 두려움을 동반한다는 말을 전적으로 공감했어요. 그렇기에 감사의 이점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 것 같고요. 감사를 통한 충만함을 온전히 느끼려면 시선을 우리와 같은 '인간'에게로 돌려야 하네요. 당신과 나, 라는 말이 참 좋네요. 우리 자신에게 벗어나 외부로 시선을 돌리면 감사할 수 있는 대상들이 참 많죠. 그들에게 감사하다고 생각하게 되면 두려운 마음은 전혀 안 드는 것 같아요. 대신 마음이 따땃해져요.ㅋ 문득 이 책을 함께 읽어주시는 황보름 작가님과 몬테크리스토님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네요! 불과 며칠 전까지 서로를 알지 못하는 사이였지만, '당신과 나'가 연결되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참 감사한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덕분에 책도 깊이 읽을 수 있으니까요. 감사 일기! 저도 써보았는데요, 오래 가진 못했어요. 생각해보면 사람에 대한 감사는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하루를 무사히 마무리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같은 내용 반복 ㅋㅋㅋ 새로 감사 일기를 쓰게 된다면 내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내용으로 써보고 싶어요. 하루에 세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 갖기. 진짜 금방 찾을 것 같아요. ㅋㅋㅋ 일단 오늘은 두 분,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인 앵거스 플래처 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고 하루를 시작해야겠네요. :)
저도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한 마음을 혼자 되뇔 땐 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를 감사하게 되는 것같아요. 콕 찍어 특정 사람에게 감사하게 되기보다요 ㅋ
우리는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땐 우선 믿고 본다. 다 믿은 후 후속 작업으로 참과 거짓을 나눈다. 그런데 이 작업은 노력이 필요하기에 우린 잘 속는다 ㅠㅜ 특히 정치인이나 기업인 등에게. 그런데 문학 작품을 읽다보면 의심하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는 거네요. 이중 삼중으로 겹겹이 쌓인 정보들이 한 겹씩 벗겨질 때마다 이것도 거짓이었다는 걸 알게 되면, 우린 조금 더 비판적인 사람에 될 수 있는 것같습니다.
뇌가 걸러서 저장하는게 아니라. 일단 저장하고 그 중에서 소급적으로 ‘거짓’ 꼬리표를 붙이다 보니, 첫인상에 편향되기도 하고, 쉽게 속기도 하는군요. 문학이 그것을 씻어내 준다하니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한거구요 ㅎㅎㅎㅎ
우리의 잘 속는 성향때문에 반전이 있는 이야기를 좋아하나봐요. 나중에 보면 분명히 그것이 속임수임을 알 수 있는 장치들이 있었는데도 일단 의심은 접어두고 다 수용하곤 하니까요. 나중에 그것이 거짓이었다고 드러났을 때 그런 장치들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고요. 문학은 '다시 살펴보기'와 '소외'의 경험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우리 생각을 검토할 기회를 갖게 되는 군요. 검토, 재검토, 재재검토 하는 과정에서 저항 없이 들어온 믿음을 판단하게 되고요. 사실 처음에 망원경처럼 눈에 대고 사람들을 쳐다봤다고 했을 때, 뒷이야기를 읽기도 전에 "이거 앵거스 플래처가 각색한 내용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새 왕이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니 왠지 좀 오글거리기도 하고, 보통 작가들은 그런 내용을 과정해서 각색하기도 하니까요. 그 뒤에 그렇다. 당신은 다 믿었다. 라는 말에서 "응? 난 안 믿었는데?" 했어요. ㅋㅋㅋㅋ 문학을 좋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길러진 감각인가, 아니면 제가 비정상적으로 의심이 많은 사람인가 생각해보게 되네요. ㅎㅎ
프루스트의 소설에서처럼 의식의 흐름을 통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이야기는 '몰입'을 유도하고,(대신 자유를 제한하고,) 조이스의 소설은 각각이 끊어진 별개의 덩어리처럼 이어지지 않아 읽기가 고통(?)스럽지만 '정신적 자유'를 제공한다. 울프는 이 두 가지를 결합하여 <댈러웨이 부인>을 썼다. 이는 감정적 지각과 인지적 분리를 동시에 느끼게 함으로써 더 깊은 정신적 평화를 제공한다. 신경 쇠약의 치유를 위해 책을 멀리하라니요!!!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ㅠㅠ 더구나 울프같은 탁월한 작가에게 책을 멀리하라고 했다니. 정신적 질환이 단순히 약한 성(여성)이 가진 나약함의 상징이었던 시대에서 울프는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을까요. 그리고 그러한 시선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부분도 있는 듯해요. 다 시간이 많아서 우울한거다, 먹고 살기 바쁘면 우울할 겨를도 없다, 이런 말들이 아직도 남아 있잖아요. 저도 기질적인 부분+트라우마가 된 상처로 인해 우울감을 자주 느끼곤 했고, 여전히 그렇기도 해요. 책에서 표현한 '인지적 반응성'의 사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 치유를 받았거든요. 그것이 왜 나에게 안정을 주었는지 이번 챕터를 통해 조금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의식의 흐름을 따라 등장 인물에 몰입하게 되고, 그 감정을 온전히 겪어 내면서도 소설은 허구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고요. 조이스처럼 등장인물의 정신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며 느낄 수 있다면 인물들을 바라보는 거리는 더욱 멀어질테고, 그러면 마음의 평화는 유지한 상태로 등장인물들을 바라볼 수 있겠죠. 아직 결말(죽음)을 모르는 삶은 매 순간이 과정이고, 그러다 보니 거리를 두어야겠다고 의식하지 않으면 그 속에 함몰되기 십상인데, 문학은 삶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그것이 '인지적 반응성' 환자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고요. 강둑에서 내려다보면서도 강의 가장 깊은 물살을 알 수 있다니...! 여러모로 문학은 꼭 필요한 것이 맞네요. ㅎㅎ
심리치료에 대한 개념이 없다보니 이를 뽑고 ㅠㅜ 쉬기만 하라니 ㅠ 참 무지몽매한 시절이었네요. 마음의 평화를 찾기위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시 도전해 보고싶네요 ㅎㅎ 마들렌 하나로 의식의 흐름을 줄줄줄 쏟아내는 수준이라니. 처음에는 읽다가 이게 뭐지 했거든요. 그리고 덮어버렸죠 ㅋㅋ 전집 샀는데. 언젠간 꼭 읽어야겠어요 ㅎㅎㅎ
그런데 전 의식의 흐름으로만 점철된 소설은 읽기 어렵더라고요. 댈러웨이 부인도 조금 힘겹게 읽었습니다. ㅋ 다시 읽으면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될까요? 누군가의 의식이 강물처럼 유유히 흐르는 글을 읽으면 평화를 얻게 된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또 다행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이를 통째로 뽑는 것보단 덜 아픈 방법이잖아요. ;; 보통 글을 쓸 때 독자에게 정보를 주어야 한다고 하는데요. 그게 바로 율리시스처럼 쓰지 말라는 것 같아요. 스스로 정보를 캐치하느라 읽는 흐름이 뚝뚝 끊기게되면 아무래도 힘이 드니까요. 그런데 율리시스의 글을 보자마자 이해하게 되는 박식한 사람들에게 그의 글은 매우 재미있을 것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율리시스의 글을 읽고 문장 문장 바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배경지식이 얼마나 많은 걸까요? ㅎㅎㅎ
‘싫어’와 ‘하지만’이 뇌의 타고난 성향이라니 ㅠ 애초부터 창의적인 사람이 되는건 쉬운 일이 아니었나봅니다. 그런 경향은 어른이 될 수록 좀 더 심해지는 것 같구요. 동심으로 가득찬 애들은 생각이 더 자유롭잖아요. 엘리스를 읽으면서 ‘좋아, 그래서’의 기분을 느껴봐야겠습니다 ㅎㅎ
좋아, 그래서. 쉽지 않아요. 저도 나이를 먹을 수록 "아닌 것 같은데?"하려는 성향이 더 강해지는 것 같아요. ㅠㅠ
창의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즉흥과 논리가 모두 필요하네요. 즉흥 연주를 할 때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활성화되는 동시에 규칙준수 네트워크가 활성화된다는 사실이 흥미로워요. 제약이 있어야 창의성이 극대화 되는 군요...! 앨리스와 곰돌이푸의 창의성을 이끌어 내는 방식의 대비도 흥미로워요. 앨리스는 논리적인 캐릭터가 즉흥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고, 반대로 곰돌이 푸는 즉흥적인 캐릭터가 논리적인 세계로 모험을 떠나고. 둘 다 재밌겠어요. 논리적인 사람이 논리적인 세계를 탐험할 때는 왠지 지루할 것 같고, 즉흥적인 사람이 즉흥적인 세계를 탐험할 때는 왠지 불안할 것 같아요. 그런데 두 개가 어우러지면, 어딘가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으면(캐릭터든, 세계든) 마음 편한 상태로 마냥 재밌게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캐릭터가 어떤 행동을 할 지, 세계가 어떻게 변할 지 궁금해하면서요. ㅎㅎ
같은 상황에서도 유독 불안하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있는데 그게 안정적인 캐릭터 때문이었네요. 그런데 역시 덜 불안한 독서를 위해선 정신없는 캐릭터가 논리적인 세계 안에서 난장(?)을 부려야하는 거였고요. 어른들은 아이들이 고운 것만 보고 크길 바라지만 아이들은 이미 살인부터 폭력까지 세상의 다양한 부정적인 면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같아요. 요즘 8살 조카가 자주 하는 말이, 뭐만 했다 하면 "사망!" 이더라고요...
오 맞아요! 정말 그래요. 오히려 약간의 부정적인 요소가 있어야 더 잘 받아들이더라고요. 동화책이나 아동소설에도 그런 부정적 요소들이 아이들에게 쾌감을 준다고 하더라고요. 원작 슈렉에서는 실제로 다소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요소들이 나오는데 아이들이 엄청 재밌어한다더라고요. ㅎㅎ 아이들 뿐만 아니라 인간은 누구나 난장을 부리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ㅋㅋㅋ 확실히 그게 재밌으니까. 더불어 창의력도 키워주니까요! 안전장치가 확실히 있다는 전제만 있다면요. ㅎㅎ
유일하게 읽은 소설이 나왔어요. ㅎㅎ <앵무새 죽이기>인데요. 제가 그때 썼던 독후감을 찾아보니 딱 한 문장 적어놓았더라고요. "누군가를 정말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거야. " 독백(들리지 않는 내면의 소리)이 그 사람의 눈이 되어보게 하는 아주 중요한 장치였네요. 자기 인식을 위해서는 스스로 선택하거나 현출성 네트워크를 자극시켜야 하는데, 내부의 갈등이 이 장치를 움직이도록 만드네요. 캐릭터 간의 갈등은 캐릭터들에게 가여운 마음이 들게 하지만, 캐릭터 내의 갈등은 그들에게 나도 모르게 동일시 하도록 하는군요. 연극보다는 물리적 제약이 없는 소설이 더더욱. 전에 자유간접화법에서도 그런 이야기 나왔던 것 같은데.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면 그 캐릭터를 이해하게 된다고. 그래서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행동하더라도 사랑하게 된다고. 그런데 여기서는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면, 우리 자신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경지까지 나아간다고 하네요. 타인 이해가 자기 이해를 돕는 거군요. 반대로 타인을 이해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도 받아들이기 힘들겠어요. 관대한 행동(타인의 약점도 감싸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보면 될까요?)보다 행복감을 주는 것은 없다는 말이 인상적이에요. 남을 위한 행동은 오래가지 못하지만, 그것이 나를 위한 일이라면 동기부여가 조금 더 잘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인간성 연결기, 초월적 직감을 키워야 하는 이유는 결국 우리가 행복하기 위함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감탄하게 되네요. 작가의 통찰에 감탄하고요. 얼마나 오랫동안 자료조사와 연구를 했을까 싶기도 하고요. 끝까지 다 읽고 한 번 더 읽어보고 싶네요! 좋은 책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읽으셨군요!!! 이십년 전에 샀다가 안읽고 최근에 분리수거함으로 보낸 ㅠ ㅜ 읽을걸 그랬어요 ㅎㅎ 이런 놀라운 책이었을 줄은 몰랐거든요.
저도 읽으면 읽을수록 이 책에 더 빠져들게 됩니다. 함께 읽어주셔서 저 역시 감사드려요. 이제 딱 일주일 남았네요. :) 오늘은 이 문장이 참 좋았습니다. "스콧이 애티커스와 레들리에게 동일시될 때 우리 뇌는 스콧에게 동일시된다. 다시 말해, 우리 뇌는 지금 하나의 정신에서 세 가지 정신을 경험하고 있다." 정말 굉장한 일 같습니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세 가지 정신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요. 적어도 책을 읽을 때만이라도 세 명의 입장에 서 보는 경험을 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것도 절로 그렇게 된다는 것이 독서의 위대함 같아요.
작가님 덕분에 혼자라면 안읽고 지나쳤을 좋은 책 읽게 되네요 ㅎㅎ 사회심리학도 그렇고 이책도 그렇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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