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온지기와 함께 읽기] 욘 포세 <아침 그리고 저녁> , <샤이닝>

D-29
인생의 여정이 마치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우리의 인생은 늘 옳고 그름의 이분법적인 것이 아닌, 그저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고 그 선택을 되돌릴 수 있는 때가 있으며, 여러번의 선택이 모여 되돌릴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기도 합니다. 주인공이 왼쪽과 오른쪽(옳고 그름과 무관한 선택)을 선택하다보니 진탕에 빠져 되돌아갈 수 없는 상황처럼요. 산길에 들어서기 전에 돌아갈 수 있는 순간들이 있었죠. 마을이 있었다면 이 선택이 맞는지 물어볼 수도 있었구요. 하지만 묻는다한들, 결국 선택의 결과는 자신의 몫 아니겠나요. 그때 차를 돌렸다면, 그때 마을에 들렸다면 같은 가정은 결국 선택의 끝에서 마주한 결과 때문에 하는 후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지금의 나는 그동안 내가 했던 수 많은 선택들의 결과이니까요. 71페이지의 "세상일은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다." 라는 표현이 인상 깊었습니다. <아침 그리고 저녁>에서도 그러했듯이, 죽음이 다가오면 결국은 자신이 선택했던 수 많은 일들을 돌아봐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ps. 혹시, 샤이닝이 주인공은 자살을 한 건가요?
저는 그냥 삶이 끝났다고만 생각했어요. 어떤 죽음인지보다, 죽음에 도달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거든요. 자살이든 병사든 자연사든 그가 차를 끌고 가던 순간까지는 삶이었고, 진탕에 빠진 순간이 죽음을 맞이한 순간이 아니었을까요. 길이 좁아지고 되돌릴 수 없었다는 건 인생에서 삶의 선택지가 줄어든다는 것도 있지만, 죽음에 가까워지면서 애초에 선택 자체를 할 수 없는 삶의 순간들을 이어가고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해석하기 나름인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저도 자살이란 생각을 못하고 있었는데, 노벨상 수상 기념 연설문 후반에 "나의 시에는 자살을 다룬 내용이 많습니다. 내가 의도했던 것보다 많습니다."라는 말이 있어서, 혹시 제가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 있나 했습니다. 그런데, 자살이란 생각을 가지고 도입부분을 다시 보니 '지루함', '삶의 기쁨이 없음' 등 자살을 암시 하는 것도 같다는 생각을 했네요.
어떻게보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인생의 무료함을 느껴 자살을 한다... 저는 그저 단순히 인생이란 게 늘 재밌을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사가 뭐 그런거 아닌가 하고 읽었었어요ㅎㅎ
어떤 면에서는 그 당시 두려움이 내게서 언어를 빼앗아 간 것 같았기에, 나는 빼앗긴 언어를 다시 되찾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롯이 내 힘으로 해야 했습니다. 나는 나만의 텍스트, 짤막한 시, 짧은 이야기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내게 안정감은 물론 두려움과 반대되는 그 무언가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그렇게 함으로써 내 안에 존재하는 나만의 공간을 찾을 수 있었고, 그 속에서 나만의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오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여전히 내 안의 비밀스러운 곳, 솔직히 그러한 곳이 내 안에 존재한다는 것 외에는 더 많은 것을 알 수 없는 바로 그곳에 앉아, 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샤이닝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연설문 / p87, 욘 포세 지음, 손화수 옮김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많이들 얘기하잖아요. 우리의 인생에서 어느 지점의 선택까지는 되돌릴 수 있다고 보시나요?
예전에는 중년이 되면 어느정도 사회에서 정착하고 안정된 삶을 꾸려가야 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중년이 되면 은퇴를 하고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 하는 분위기가 강하잖아요. 저는 아직 30대이다 보니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주변의 삶과 예측밖에 할 수가 없는데요. 그래도 내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수 있다, 잘못된 선택을 한 지점으로 돌아가서 다른 선택지를 고를 수 있다, 라고 할 수 있는 마지노선은 40대초까지 인 것 같습니다.
물론 세상엔 다양한 인생이 있고, 오롯이 내 의지만으로 선택할 수 없는 삶의 방향도 있겠지요. 가정이 있다거나 부양해야할 어른이 있다거나, 이미 큰 잘못으로 인해 선택지 자체를 마주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거나요. 그럼에도 오롯이 내가 내 삶의 방향만 걱정하고 선택하고 되돌릴 수 있다면 40대 초까지는 나의 의지만으로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갈 수 있지 않는 한, 삶은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만회하기 위한 새로운 선택들을 해야되겠지요. 인생은 어떤 시기든 정해진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나이가 들수록 선택의 폭이 좁아지긴 하겠지만, 시기에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해나갈 수 있다고 믿고 싶네요.
확실히 되돌아가서 다시 선택하는 것이 아닌, 그 때의 선택을 지금 다시 할 수 있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겠군요. 새로운 관점을 저도 배우게 되네요 ㅎㅎ 이제 무언가를 하기에 체력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힘들어진 나이가 오신 분들이, 그 나이때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라고 많이 말씀하시잖아요. 이제 그런 나이와 할 수 있는 것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는 시대가 오고 있는걸까요.
덕분에 욘 포세의 작품을 두 권이나 읽을 수 있었습니다. 주신 질문과 나눈 이야기들로 작품을 더 깊이 있게 읽을 수 있었네요. 제가 좋아하는 톰 히들스턴이란 배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두 번 삽니다. 한번은 태어나면서 살고, 두번째는 인생이 한번 뿐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시작됩니다. 아직 멀게만 느껴지던 죽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생이 한 번 뿐이기 때문에 책을 통해 다양한 타인의 삶을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늙어본 적도 없고, 자살을 생각해본 적도 없고, 죽음이 가까이 있다고도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이런 작품을 읽음으로써 경험해보지 못한, 그리고 경험할 수도 없는 삶을 얻는 것 아니겠나요.
STARMAN 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가 또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제 이야기에 공감해주시고 질문에 대한 다른 시각의 대답들을 들어보면서 책을 한 층 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안온님과 나눈 이야기들 참 좋았습니다. ^^ 또 좋은책 함께 읽는 자리가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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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누워서 쓰는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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