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네 번째 계절 #2

D-29
<프라이스킹!!!>을 읽고 든 확신 하나는 이제 저는 이름을 보지 않고 소설만 읽고도 김홍의 작품을 구분해낼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처음 <스모킹 오레오>로 김홍 작가의 소설을 만났을 때는 좀 당혹스럽기도 했는데요, 이제는 그의 소설이 저에게 제법 큰 즐거움을 주는 것 같아요. 확실히 자기만의 유머가 있고 그것을 감추지 않고 소설에 잘 담아내려고 노력하는 작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심사평에서도 언급되었듯 이 소설은 결국 구천구의 '자아 찾기'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요, 작가가 만들어낸 스케일에 비해서는 고전적이고 소박한 주제일 수도 있으나 나름대로 김홍의 방식대로 그것을 잘 풀어내지 않았나 싶어요. 마지막에 코끼리 아저씨의 '도반'인 코끼리가 되기로 결심하고 동네를 떠나는 부분이 천구에게는 필연적인 수행의 따름일 것 같아요. 코끼리는 붓다의 태몽에도 나온, 불교와 연관이 깊은 동물이기도 하고요. 처음 책을 펼칠 때는 가볍게 접근할 수 있을지 몰라도,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는 심오함에 젖어들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었습니다. 게다가 진지하게 재미있는 또 한명의 사람... 강보원 평론가와의 인터뷰까지 붙어 있어서 더욱 즐겁게 이 책을 마무리할 수 있었네요ㅋㅋ
^^ 다들 <격정세계> 재밌게 읽으셨나요? 저는 방금 다 읽었는데, 감상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충격과 공포'네요... 그리고 혼란... 왜... 왜 이렇게 썼을까?? 약간 실험적인 아침드라마라고 해야할까... 학창시절에 읽었던 이광수의 <무정>도 생각이 많이 났고요(배워야지요! 하는 그 연설과...) 정말 여러 생각이 들기는 했는데, 우선은 그것들 중 대부분은 꼭 이 소설이 아니라 아침드라마를 보면서도 들 만한 생각이기도 했고, 또 몇몇 것들은 차라리 생각이 들지 않았으면 더 좋았으리라는 생각도 들고 ㅎㅎ... 초반부의 도입이 정말 좋았고 이후로도 괜찮긴 했는데, 제 생각엔... 그래도 한 300페이지, 정말 정말 길어도 400페이지면 다 할 수 있는 이야기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그렇게 하면 지금의 <격정세계>와는 다른 소설이 되겠지만, 꼭 지금의 <격정세계>가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도 있고요...(!)
다른 분들이 어떻게 읽으셨는지 정말 너무 궁금했던 소설이기도 하네요 ㅎㅎ 분명히 이 소설이 생각하게 하는 지점들, 이야기 나누면 좋을 법한 주제들, 뭐... 그리고 너무 '동시대적'인 생각들에만 둘러싸여 있다보니 내가 이런 부분을 놓치고 있었구나, 뭐 이런 생각이 드는 지점들이 있기는 했어요.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이런 식으로 통속적 계몽소설의 형식을 그대로 재연한다는 선택에 대해 공감을 할 만한 여지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뭔가 작품 내에서 작가가 왜 이런 걸 하고 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상식적으로... 그리고 또 어쨌든 문학을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 <격정세계>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현실과는 굉장히 동떨어져 있잖아요. 아무래도 어느 정도는 아이러니라고 할 수밖에 없는 대사나 상황들이 계속 나오는데, 그것을 아이러니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구조가 부재하고, 혹은 어떤 식의 아이러니로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 설정을 해주는 표지도 없다고 느꼈어요. 그러니까 정말로 그냥... 그냥 쓴 것 같다는 느낌...? <격정세계>가 찬쉐의 작품 중에서는 조금 독특하다는 것 정도만 알고 읽었는데... 사실상 찬쉐의 다른 작품을 읽지 않고서는 뭐라고 판단을 하기가 좀 어렵긴 하다는 느낌이네요 ㅎㅎ
그런 것 치고는 잘 읽혔다고 해야 할지... 분명 뭔가 잘쓴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기는 했어요... 사실 이 작품에는 갈등이라고 할 만한 것도 존재하지가 않고, 그러니까 모든 일들이 결국은 다 잘 풀리잖아요. 예정된 조화의 지연, 혹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상태 정도만이 있는 것 같고요. 그래서 소설이 어떻게 보면 굉장히 평탄하고 반복적인데, 이 평탄함을 가지고 거의 700쪽을 썼다는 사실이 약간 놀랍기는 하고요... 아침드라마 얘기를 했는데, 아침드라마라는 게 상대의 대사를 자꾸 반복해주고, 똑같은 사건도 재차 언급하는데, 그건 아침드라마 시청층이 주로 집안일을 하며 TV를 틀어놓고 보는 편이기 때문에 사건의 전개를 놓치지 않게 해주는 의도적 결과물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요. <격정세계>를 읽으면서도 같은 말이 어찌나 많이 나오는지... 가령 등장인물을 묘사할 때는 어떤 코드처럼 정해진 수식이 붙고... 가령 샤오웨는 '새로운 세력'이고 한마는 '문학' 그 자체이고, 등등... 그런 것은 흥미로운데 그걸 '그런 점 때문에 이 책이 흥미로웠다'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 그런...느낌인 거죠...ㅎㅎ....
안녕하세요! 저도 <격정세계> 열-심히 읽고 있는데 진도 진짜 안 나가네요.ㅎㅎ 제가 사실 읽는 속도가 엄청 느린 편이긴 한데 이 소설은 좀 대박인 것 같긴 합니다... 반 겨우 넘게 읽었는데요. 다 안 읽고 감상을 나눠도 되나 싶긴 하지만. 저도 다른 선생님들의 의견이 너무너무 궁금한 소설이긴 해요. 강보원 선생님이 <무정>을 떠올리셨다고 해서 좀 웃었는데, 물론 저도 중간중간 좀 아득해진달까... 말씀하신대로 이미 너무나 '전통적'이고 '격정적'인, 그래서 문학에 관해서라면 조금 상투적일 수도 있는 옹호를 시종일관 보여주는 소설인 것 같은데요. 그런 점이 어딘가 비현실적이고(김홍 소설보다 훨씬 비현실적이라고 느꼈습니다...) 독서 중인 내가 지금 정확히 어느 시기 어느 공간에 있는 건지 자꾸 헷갈리게 만드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속도를 늦추는 주된 이유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저는.... 그럼에도 이 소설이 좋은데요...ㅎㅎㅎ '문학'을 향한 예찬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통속적 계몽소설 류와 계를 같이 한다는 말씀에 완전히 공감하면서도, 뭐랄까요. 저는 최근에 문학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면, '쓰는 사람'을 향한 환상, '쓰는 일'에 대한 (그것을 세속적 차원으로 끌어내리든, 더 추상화되고 순수한 영역으로 고양하든) 과한 의미 부여가 주된 흐름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에세이 장르를 향한 관심 같은 것도 연결해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뭐 물론 쓰는 사람으로서 그 '과한 의미부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도 웃기지만요.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어째 '쓰기'보다 '읽기'에 대한 강조가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물들은 말 그대로 북클럽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소설 읽기의 최고 수준"과 특정한 "경지"를 만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이들이잖아요. 이 '경지'를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건, 어쨌거나 저도, 그것이 조금은 유치하거나 과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외면할 수 없는 욕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저에게도 분명히 존재하는 욕망이기 때문에...
그런데 이 소설 읽기의 '경지'가, 혹은 어떤 '이질적인 경계'로 계속해서 진입하는 일이 '사랑'이라는 감정(솔직히 이 소설에서 인물들이 갖고 있는 사랑은 정서 수준이 아니라 거의... 광기에 가까운 것 같긴 한데,) 혹은 행위와 직접적으로 일치한다는 것이 가장 흥미로운 지점인 것 같습니다. 문학의 에로틱한 측면이 지금껏 '쓰기'에 집중되어 이야기되어 왔다면... 이 소설은 그것을 '읽기'에 적용시키는 것 같아요. 상대의 '글벗'을 넘어 '문학의 동반자', 그것을 넘어 '유일한 대화 상대'가 되기 위해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읽는 인물들, 독해를 넘어 소설 자체를 거의 체화하려고 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상당히 (고자극...) 육감적이고 매혹적이랄까요. 이 역시 전통적인 소설들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전 그래서 오히려 원초적이고 신선한 느낌도 들어요. 소설의 인물들은 삶의 관계에서의 변화를 통해 문장의 변화를 감지하고, 문장의 변화를 통해 동일한 관계에서 다시 변화를 감지하는데요. 이것을 샤오쌍과 인물들은 자꾸 "이해", "성장", "발전"이라는 단어에 가둬두는데 그게 좀 아쉬운 것(?) 같아요. 그런 항상적인 변화는 정말로 삶과 문학이 뒤엉키는 어떤 '경지'를 보여주는 것 같거든요. 소설 속에서 인물들이 여행을 가거나, 산책 등 이동을 할 때 배경이 갑자기 환상적으로 변하는 부분도 재미있었어요. 이런 설정에 대해서도 소설 구성 전체와의 연결 속에서 뭔가 특별함을 느끼고는 있는데, 아직 말로 설명하긴 어렵네요.
저도 동의합니다. 찬쉐가 '쓰기'가 아닌 '읽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전통적으로 쓰기와만 연관되던 에로틱한 측면을 읽기에 적용시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최가은 선생님의 지적은 탁월합니다...('비둘기 독서모임' 회원처럼 말해봤어요..) 저도 그 부분이 굉장히 흥미롭고 또 한편으로는 어떤 반성도 하고... 그랬던 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사실 비둘기 독서모임은 독특한 것이, 특히 초반부에는 거의가 일종의 아마추어 집단, 말 그대로 독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독서모임인데 끊임없이 뭔가를 탐구하고 알아가려는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 같았어요. 그런 맥락에서 소위 말하는 '어려운 책'에 대한 접근도 인상적이었는데요, 그러니까... 보통 어떤 문학이 대중적이지 않고 어렵다고 하면 '사실 그것은 어렵지 않다, 있는 그대로 읽으면 된다'라거나(삶과 문학은 같은 것이므로 이해/혹은 감상할 능력이 잠재되어 있음), 혹은 문학이라는 것도 하나의 장르이기 때문에 당연히 무매개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삶과 문학은 원래 같은 것이 아니고 거리가 있으므로 그런 것), 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저는 둘 모두 일정 정도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사실 후자쪽으로 많이 생각을 했었는데요. 찬쉐는 약간 다른 각도에서 접근을 하는 게, 문학=삶이므로 우리 삶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 어떻게 빠져나가야하면 좋을지 모를 미로를 만나는 것이 자연스럽듯 문학에도 그런 난관이 있고, 그 난관을 해쳐나가는 것을 삶에 대한 의지와 결합시키는 부분이었어요. 그러니까... 둘 모두와 관련이 있으면서도 조금 다르고, 이것이 그 자체로 정론이 될 수 있냐고 하면 저는 역시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삶과 문학의 거리를 벌리지 않으면서도 문학에서 만나는 어려움을 삶 속에 통합하려는 시도가 인상적이었어요. 하지만 예컨대... 연애를 열심히 하다보면 소설을 이해할 수 있게 되나? 그런 측면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것은 찬쉐가 말한 것보다는 훨씬 더 협소한 영역에서만 그런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ㅎㅎ
어쨌든 저는 중반 이후로는 사실 <격정세계>의 기획 자체가 조금 달라졌다고 느꼈어요. 여러 측면에서 그런데, 사실 그 중에서는 최가은 선생님이 말씀하신 '읽기'에의 강조가 어느 정도 '쓰기'로 넘어가게 된다는 점도 있는 것 같고요. '비둘기 독서모임'의 성격도 조금 변하는 것 같고... 그래서 저는 후반부에 들어서는 <격정세계>만의 매력이 조금 감소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또 결말은 좋았어요. 이건 스포일러이니 얘기할 수는 없지만 ㅎㅎ 아무튼 이렇게 읽는 중간에도 그 시점의 감상을 들을 수 있으니 더 좋네요. 중반부면 '아니 그냥 둘 중 하나가 빨리 고백좀 해라!!'라고 생각하다가 지쳐서 '그냥 될대로 돼라...'라고 생각했던 즈음이었을 것 같네요. 하지만 후반부엔 더 엄청난 일들이...
<격정세계> 중간까지 읽고 있어요. 처음에는 지나치게 정답 같은 말만 주고받는 걸 보면서 지금 북클럽 조롱하는 건가? 고도의 풍자인가? 라는 장난 섞인 의심도 들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해 보지 않고서는 독서에 대한 판타지가 이토록 진지한 분량, 권위 있는 명성이랑 매치가 안 되더라고요. 그런 한편으로는 되게 사실적이란 생각도 들었어요. 제가 근래 4개월 동안 '호루라기 북클럽'이란 모임을 진행했거든요? 저희 독자들이랑 같이요. 어떻게 보면 작중 '비둘기 북클럽'과도 같은. 근데 이 북클럽 때 주고받는 얘기들을 생각해 보면, 이렇게 누군가를 극단적으로 추종하진 않지만 (사실 그런 경우도 많아요.) 서로에게 상당한 예의와 범절을 갖추면서 작품과 읽기와 그보단 삶 자체에 이런 식의 얘기를 주고받아요. 바람직하고 성찰적이고 독서에 대한 예찬이 전제된. 일종의 북클럽 자아가 있는 건데, 작위적인 것 같은 그 자아들도 한번쯤 들여다보고 싶단 생각이 들던 터에 이 소설을 읽어서 그런지, 뭐야! 뭐지? 설마 계속 이럴 건가? 하면서도, 이런 말하기가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의 삶에서 '스킵'되다가 아예 실종돼 버린 건 아닌가, 그래서 이젠 말할 줄 모르게 된 건 아닌가, 어쩌면 북클럽이란 그런 말하기 혹은 쓰기를 되찾기 위한 곳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지금까지 읽은 바로는 독서 체험에 대한 심리적 심미적 신체적 보고서를 투박한 소설로 표현한 것 같다, 현실은 책처럼 읽고 책은 현실처럼 읽는다,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일단 계속 더 읽어 볼게요. 뒤에 더 놀랄 일이 있다는 거죠?
저도 중간까지 읽고 있어요. 책을 다 읽지 않고 감상을 남기는 것이 조심스럽긴 하지만, 이 책은 유독 진도를 빨리 나가기가 어렵네요.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두께의 압박도 있겠지만, 저로서는 샤오쌍을 비롯한 인물들의 감정선을 이해하는 게 좀 어려운 것 같아요. 비둘기 북클럽이 고정된 장소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닌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은 느낌처럼 인물들의 감정 또한 그런 것 같아요. 세밀한 묘사보다는 속도감 있게 서술되고 있는데, 그것이 조금 불친절하게 느껴질만큼 건너뛰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서요. 제가 이해가 부족한 탓도 있겠지요^ㅁ^;;... 그래도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가능한 만큼, 자신의 이해만큼 상대방을 '읽어보고자' 하는 행위인데요. 샤오쌍을 비롯한 중심인물들이 그것을 충실히 잘 수행해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아직 잘 모르겠어요. 끝까지 읽어봐야 알 것 같아요. 보원 평론가 말씀대로 중반부 이후에 '읽기'에서 '쓰기'로의 전환이 있다면, 지금까지 알쏭달쏭했던 것들도 어느정도 풀리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며 마저 책을 읽어 봅니다!
저도 드디어 다 읽었습니다. 격정세계를… ‘드디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정말 근 몇 년간 한 독서 중에 가장 버거운 독서였기 때문인데요.. (소설 속 비둘기북클럽이 XXXX를 읽는 심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하며...)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하고 다 읽을 때까지 2주가 넘게 걸린 것 같아요. 읽다 그만두고 읽다 그만두기를 정말 10번 넘게 반복한 것 같네요. 혹시라도 중간에 감상을 나누면 제 판단이 섣부른 게 될까봐, 마지막까지 읽고 나서 말을 보태려다보니 결국 이렇게 늦어지고 말았는데요, 결국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도 끝내 이 소설에 이입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중간 지점까지는 그럭저럭 기대감을 갖고 읽었는데, 마지막 챕터까지 다 읽고 나니 맥이 빠지더라고요.
그렇다보니 어쩔 수 없이 책에 대한 감상이 ‘나는 왜 이 소설에 이입하지 못했는가’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우선, ‘통속적 계몽소설’이라는 강보원 선생님의 말씀에 공감해요. 저도 읽으면서 내내 심훈의 <상록수>가 생각나더라고요. 동지적 관계의 남성과 여성이 등장하고, 문학을 매개로 한 배움과 깨우침에 대한 신화화가 반복적으로 이뤄지는데, 여러모로 매우 ‘근대적’인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소설에 시대적 배경을 추측할 수 있게 하는 요소가 거의 없긴 한데, 그럼에도 2022년에 쓰인 소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옛날’ 소설 느낌이 들었던 거 같아요. 사실 소설이 내내 견지하고 있는 ‘문학을 향한 예찬’이라고 하면, 지금 여기 그믐에 모여서 소설 얘기를 나누고 있는 저희로서는 공감할 수밖에 없는 주제일테고, 저를 비롯해 선생님들 모두 그렇게 문학의 빛을 보고 문학에 꾀여서(?) 이 업을 선택한 것일텐데도, 저는 문학에 대한 신화화가 너무 과해서 오히려 이 소설에 이입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 왜일까 생각하면, 주제 자체보다 그 설득이 매우 교조적으로 이뤄져서 그런 것 같아요. 특히 세 번째 챕터에 이르러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앞의 두 챕터가 비둘기북클럽 멤버들을 중심으로 문학에 매우 해박하고 그 빛을 본 사람들끼리 서로를 알아보고, 공감하는 내용으로 이뤄진다면 세 번째 챕터는 ‘차오쯔’라는, 20대 초반의 물신주의적이고 소비 지향적인 여성 인물을 본격적으로 등장시켜 ‘이쪽 세계’(비둘기북클럽)과 ‘바깥 세계’ 사이의 골을 만들고, 끝내는 차오쯔가 문학의 세계에 감동하고 ‘계몽’돼서 ‘우리편’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어쩐지 불편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내면의 세계에 집중하는 ‘우리’와 그런 가치를 모르는 ‘저들’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매우 원시적인 방식의 문학 숭배 같아서요.
그렇다고 해서 ‘가벼운 청춘 연애소설의 외피’라도 즐겨보려고 하면, 그건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1부에서 밀당 삽질만 250페이지 가까이 하고 있는 샤오쌍과 리하이 보면서 속이 터졌는데, 2부에서 한마와 샤오웨가 또 그러고 있는 걸 보면서 지치는 기분이 들었고, 3부에 들어 또 반복… 어쩌면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연애에 서툴다(?)는 비유를 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싶은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큰 사건이 없고, 그나마의 사건이라고 하면 인물들간의 감정과 연애 전선 사이에서 일어나는 고민일텐데 그마저도 매우 답답하게 풀려나가고, 그래서 성애신도 관능적이기보다는 오히려 더 어색하게 느껴졌어요. 등장인물들이 어느 순간부터 성애 행위에 매우 몰두하는데, 이마저도 진정한 육체적 환희는 정신적 교감이 바탕이 될 때 가능하다는 걸 설득하기 위해 기능적으로 쓰였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려워서 그랬던 것 같아요.
저도 ‘아침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렇게 느끼게 하는 데는 강보원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상대의 대사를 자꾸 반복해주고, 똑같은 사건을 재차 언급하는 이야기 전개 방식도 있겠지만 저는 매우 고전적인 말투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구어적인 느낌을 일부러 배제한 것 같은 매우 문어적인 대화에 계속 겉돌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표어문자로 쓰인 소설임을 감안하면 한국어로 번역되기 전의 원문이 훨씬 많은 함의를 보여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저도 이 소설로 찬쉐의 세계를 한번 가볍게 진입해보려 했는데, 오히려 <격정세계>가 찬쉐의 다른 소설들과는 이질적이라고 하니 첫 선택이 잘못됐던 게 아닌가 싶고… 그나저나 문학인의 이상이란 무엇일까….성인종합독서율 43%, 10명 중 6명이 1년에 책 한 권도 안 읽는다는 2024년 대한민국에서 이 소설은 여러모로 ‘시대착오적’으로 받아들여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씁쓸하기도 했네요. 이 소설에 따르면 저는 문학인의 이상과는 먼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아이고, 아이고... 드디어 다 읽었습니다. 끝까지 읽고 나니 정말이지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생각이 드는 소설인 것 같은데요. 저도 강보원 선생님 말씀처럼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건 문학/삶이라는 경계, 혹은 분리를 문학-삶으로 엮어보려는 (어쩌면 모든 문학인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이기도 한) 작가의 방법론이 아닐까 싶었어요. 거기서 '읽기'에 초점을 둔 것이 꽤나 특징적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결론적으로 찬쉐가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솔직한 심정이긴 한데요. 그러니까 작가가 문학의 이상을, 문학-삶의 원리를 '이렇게' 파악하고 있다, 고 단언하기가 어렵고 그래서 동의를 한다 못한다 결정 내리기도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삶과 문학이 (단순히) 같다, 라거나 혹은 반대로 문학은 삶과 다른 원리를 가진 하나의 독립적인 산물이다, 라는 명제를 반복 선언하는 소설은 아닌 것 같아요. 그보다 더욱 괴상한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는 생각인데요. 꼭 작가의 입장이라고만 볼 수 없는 어떤 입장을 보여주는데, 거기에 자꾸 애매하게 관계를 맺는 것 같은? 그래서 괴상한 방식을 괴상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어떤 거리감이, 그러니까 거리감을 생산하는 구조가 저는 소설에 내재해 있다는 생각이에요.
박혜진 선생님이 현실 북클럽 회원들의 이상한... 언어 교환 방식, 예의 범절, 특수한 분위기를 말씀해주셔서, 또 찬쉐가 혹시 북클럽 조롱하고 있는 건가? 라는 의심을 느끼셨다고 말씀해주신 부분을 보면서 후반부에 대한 감상이 조금 다른 방식으로 튕겨나갈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가령,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찬쉐는 정말로 대문자 '문학'을 찬양하고 있나?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것을 신비화, 이상화함으로써만 가능해지는 어떤 관계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결국 지독하게 나르시시즘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 환상은 문학에 관한 모든 행위의 결과가 '자기 자신'만을 향하도록 설계되어 있고, 그 때문에 상대와 나를 '문학'으로 설정하는 관계는 두 가지 층위에서 모두 결핍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한마는 샤오웨가 자신을 ‘문학’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두려움과 거부감을(인간-여자로서 사랑 받는 게 아니다), 샤오마는 아저씨가 자신을 ’문학‘으로 사랑해주기를 바라는데(나의 작위적인/잠재적인 자아로 사랑 받고 싶다) 둘다 결국 어느 한쪽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죠.
저는 그래서 사실 두 사람 들의 관계가 밀당...이라기보다는(저렇게 밀당을 험하게 하다간 ...)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한 과정이고, 어려운 책을 잔여 없이 읽어내려는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 뭐 이런 거랑 겹치는 것 같은데요. 문제는 그래서 둘 사이에 합일이 일어나면.. 둘의 얘기가 별로 중요해지지 않는다는 데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샤오쌍과 헤이스가 키스하고 나서부터는 진짜 재미없어졌는데, 둘은 결국 결혼하고 애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로 정리되더니 갑자기 한마-페이의 불안정한 관계와 샤오웨의 짝사랑으로 넘어가고, 그러다 둘이 연결되면 또 대충 잘 살았다로 치우고, 차오쯔랑 리하이의 관계로 넘어가는 것. 그러니까 두 사람의 '합일'에는 (작가가, 인물들이, 나아가 독자인 우리 역시)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냐면 가만 보면 여기서 찬양하는 문학이란 게 내용이 없어요. 솔직히 한마가 무슨 글을 쓰는 지도 잘 모르겠고, 이 사람들이 죽도록 읽어제끼는 글의 제목들도 XXXX 이런 식이고.. 전 처음엔 책 제목이 진짜 XXXX인 줄 알았는데요.
헤이스와 아저씨가 '논문'이란 걸 쓰면서 특정 문학 작품에 대해 짚는 부분을 볼게요. "두 소설은 기법이 달랐지만 같은 경향성을 띠었고, 그 경향성이란 바로 새로운 영역의 개척으로서 전혀 다른 재구성을 통해 전에 볼 수 없었던 낯선 것을 보여주었다. 진지하게 읽을수록 작가의 이상이 얼마나 큰지, 시야가 얼마나 넓은지 느껴졌다." 전 이거 보고 좀 웃기도 웃었는데... 이게 대체 뭔 소리일까요...? 여기서 ‘경향성‘과 ’새로운 영역’, ‘전혀 다른 재구성’ 등은 사실 아무 내용이 없는 말인데요. 이게 비평이라면 꽤 나쁜 비평..인데, 그럼 인물들이 이런 걸 하면서 생산되는 결과가 대체 뭘까. 작가는 뭘 보여주는 걸까. 그건 우리가 이런 걸 하는 사람이다, 라는 자의식으로부터 형성되고 유지되는 어떤 관계 같아요. 그러니까 '이런 대단한 걸' 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혜진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게 될 줄 모르게 된 말하기, 작위적인 자아들 그런 것들이 가능하다고 합의된 공간으로서의 관계성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들에겐 문학보단 그것이 목표이고, 그렇다면 그게 삶이 아니고 뭔가? 그러니까 이들의 결과, 찬쉐의 방법론이 맞다고 주장하고 싶다기보다는... (찬쉐 역시 그런 방식에 동조하고 있는지도 의문이고요. 진지하게 동조한다면 문학에 대한 예찬의 내용을 저따위로 내버려두었을까..?) 그런 식으로 읽을 수도 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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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나눔][박소해의 장르살롱] 20. <고딕X호러X제주>로 혼저 옵서예[버터북스/책증정] <오늘의 역사 역사의 오늘> 담당 편집자와 읽으며 2025년을 맞아요[책증정] 연소민 장편소설 <고양이를 산책시키던 날> 함께 읽기[📕수북탐독] 7. 이 별이 마음에 들⭐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도서 증정] 저자이자 도슨트인 유승연과 함께 읽는 <내셔널 갤러리에서 보낸 500일>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중간 참여할 수 있어요!
11월 29일(금) 이번 그믐밤엔 소리산책 떠나요~
[그믐밤] 29. 소리 산책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이번에는 극단 피악과 함께 합니다.
[그믐연뮤클럽] 4. 다시 찾아온 도박사의 세계 x 진실한 사랑과 구원의 "백치"[그믐연뮤클럽] 3. "리어왕" 읽고 "더 드레서" 같이 관람해요[그믐연뮤클럽] 2. 흡혈의 원조 x 고딕 호러의 고전 "카르밀라"
우리 옆 동물 이야기 🐋🐕🦍
[현암사/책증정] <코끼리는 암에 걸리지 않는다>를 편집자, 마케터와 함께 읽어요![그믐북클럽] 14. <해파리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읽고 실천해요[진공상태]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이들 모여주세요![성북구 한 책 플랜 비-문학] ③ 『동물권력』 함께 읽기 [그믐북클럽Xsam]19. <아마존 분홍돌고래를 만나다> 읽고 답해요 [그믐북클럽] 4. <유인원과의 산책> 읽고 생각해요
읽는 사람은 쓰는 사람이 됩니다_글쓰기를 돕는 책 3
피터 엘보의 <글쓰기를 배우지 않기>를 읽고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요글쓰기 책의 고전, 함께 읽어요-이태준, 문장 강화[책증정] 스티븐 핑커 신간, 『글쓰기의 감각』 읽어 봐요!
국내외 불문, 그믐에서 재미있게 읽은 SF 를 소개합니다!
(책 나눔) [핏북] 조 메노스키 작가의 공상과학판타지 소설 <해태>! 함께 읽기.[SF 함께 읽기] 당신 인생의 이야기(테드 창) 읽고 이야기해요![책증정] SF미스터리 스릴러 대작! 『아카식』 해원 작가가 말아주는 SF의 꽃, 시간여행[박소해의 장르살롱] 5. 고통에 관하여
버지니아 울프의 세 가지 빛깔
[그믐밤] 28. 달밤에 낭독, <우리는 언제나 희망하고 있지 않나요>[서울외계인] 버지니아 울프,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읽기<평론가의 인생책 > 전승민 평론가와 [댈러웨이 부인] 함께 읽기
2025년을 위해 그믐이 고른 고전 12권!
[그믐클래식 2025] 한해 동안 12권 고전 읽기에 도전해요!
🏆 한강 작가의 책 읽기는 계속됩니다!
[한강 작가님 책 읽기] '작별하지 않는다'를 함께 읽으실 분을 구합니다![라비북클럽](한강작가 노벨문학상 수상기념 2탄)흰 같이 읽어요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작가 작품 읽기 [한강 작가님 책 읽기] '소년이 온다'를 함께 읽으실 분을 구합니다.
현대 한국 사회를 조명하는 작품을 작가, 평론가와 함께 읽습니다.
[📕수북탐독] 4. 콜센터⭐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수북탐독] 3. 로메리고 주식회사⭐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수북탐독] 2.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수북탐독] 1. 속도의 안내자⭐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
빅토리아 시대 덕후, 박산호 번역가가 고른 찰스 디킨스의 대표작 3!
[박산호의 빅토리아 시대 읽기] 찰스 디킨스 ① <위대한 유산>[박산호의 빅토리아 시대 읽기] 찰스 디킨스 ② <올리버 트위스트>[박산호의 빅토리아 시대 읽기] 찰스 디킨스 ③ <두 도시 이야기>
미사의 누워서 쓰는 서평
무라카미 하루키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앨리슨 벡델 - 펀 홈시무라 타카코 - 방랑소년 1저메이카 킨케이드 - 루시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지금 읽기 좋은 뇌과학 책 by 신아
[뇌과학책 함께 읽어요] 3. 도둑맞은 뇌[뇌과학책 함께 읽어요] 2. 뇌 과학이 인생에 필요한 순간[뇌과학책 함께 읽어요] 1.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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