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네 번째 계절 #2

D-29
[이 계절의 소설] 네 번째 계절, 두 번째 달을 시작합니다. 지난달, 우리는 최근 출간된 여러 소설을 둘러보며 조금 더 깊이 이야기 나눌 2권의 책을 함께 선정하였습니다. 첫 번째 책은 매해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찬쉐의 『격정세계』입니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전작들과는 달리 조금 더 '독차친화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격정세계』를 통해 찬쉐의 통통 튀는 환상적인 세계에 몰입하는 경험을 함께 나눕니다. 두 번째 책은 김홍의 『프라이스 킹』입니다. 제 29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으로 기발하면서도 날카로운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다져온 김홍의 신작을 같이 읽으며 작가의 예측 불가능한 상상력에 흠뻑 빠져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앞으로 29일간 다양한 이야기가 다시 펼쳐지길 기대합니다. ** 6명의 평론가/편집자/기자/작가 등 다양하게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3개월마다 두 차례씩, 여기 그믐에서 독서모임을 열고 29일간 좌담을 벌입니다. 그 과정에서 좋은 작품에 대한 발견과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길 희망합니다. 첫 번째 모임은 지난 3개월간 출간된 장편소설 중 다루고자하는 십여권의 소설을 정하고, 짧은 인상평과 전반적인 기대, 요즘의 트렌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두 번째 모임에서 깊게 읽고 토론하고 싶은 2-3권의 책을 고릅니다. 두 번째 모임은 선정된 2-3권의 책을 같이 읽고, 그 소설에 대하여 6명의 평론가들이 깊은 비평과 논의를 진행합니다. 세 번째 모임은 앞선 두번의 모임에서 논의된 내용들을 독자들과 소통하는 오프라인 대담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 소전문화재단은 2016년 12월 설립 이래 다양한 독서 장려 활동과 작가 지원 사업을 벌여 왔습니다. 특히 시대를 넘어서는 장편소설을 바라는 마음으로 장편을 쓰려는 작가들에게 창작지원금과 취재비, 특별 고료를 후원하는 〈문학과 친구들〉, 집필 공간을 제공하는 상주작가 프로그램 등을 운영해 왔으며, 문학 레지던시도 설립 준비 중입니다.
안녕하세요, 박혜진입니다. 일주일이 금방 지나갔네요. 다들 두 권의 책 어떻게 읽었는지, 또 읽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아직 <격정세계>는 완독을 못했고 <프라이스 킹!!!>은 다 읽었어요. 그래서 김홍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했던 생각부터 말해 보자면, 꿈꿀 때 보는 일들을 글로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꿈이라는 상황을 기준으로 보자면 상당히 '사실적'이라고 할 정도로요. 현실과의 관계가 없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있다고 말하기도 충분치 않은. 의미로 '발전'한다기보다는 상황의 '변화'에 중심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점에서 더 꿈의 활자화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내내 품었던 질문은, 해석되지 않는 꿈이라면 어디에서 흥미를 찾아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었어요. 제가 해석에 대해 너무 편협한 정의를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요. 감상이 좀 산만한가요? 여러분은 어떻게 읽었는지 너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도 김홍 작가의 <프라이스킹!!!>만 현재 완독한 상태입니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는데, 몇몇 문장에서는 빵 터지기도 했어요. 라임을 타는 드립이랄지... 개인적으로 천구의 혼잣말이 제 스타일의 웃김 코드라 많이 웃을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생각보다 무당 코드가 전면화되지는 않은 소설인 것 같다는 인상도 있었고요. ‘해석되지 않는 꿈’에 대한 말씀 해주셨는데, 이처럼 황당한 구성과 전개를 밀어붙이는 김홍 작가의 상상력과 고집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김홍의 소설은 어떤 ... 현실성이랄까, 어딘가 리얼하다는 감각을 버리기도 어렵다는 특징이 있는 것 같은데요. 작가의 전작인 <엉엉>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 이 극도로 시장화된 사회에서, 그러니까 복수도 망각도 행복도 사고 팔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 세계에서 우리가 처한 비참하고 슬프고 웃기고 어처구니 없는 위치를 작가가 특정한 방식으로 인지하고 있고, 그걸 구체적인 이미지로 그려내려고 하는데, 거기서 오는 현실성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지금 우리의 위치란 상당히 비현실적인 감각을 바탕으로 하는데(극단적인 피로감에서 비롯되는 통제 불가능한 사회, 정치, 시장, 신체, 신념, 합리성... 그리고 다시 극단적인 피로감.. 너무 피곤해서 이게 꿈이든 현실이든 상관할 수 없는..그게 뭐든 ...), 그런 비현실적인 감각을 끝까지 밀어붙임으로써 감각되는 현실의 세계를 자신의 방식으로 그려내보인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볼 때 백종원/오은영/강형욱 등이 정치와 종교와 신화를 대신하고, 78프로의 대통령이 된다는 그림이 그렇게까지 허구적인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들고요. 우리는 이미 그런 세계에 살고 있지 않은가 ...
"황당한 구성과 전개를 밀어붙이는 김홍 작가의 상상력과 고집이 대단"하다고 느끼면서도 "현실성이랄까, 어딘가 리얼하다는 감각을 버리기도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는 최가은 선생님 말씀에 공감이 많이 되네요. 저도 황당무계함과 현실성의 기묘한 조합이 김홍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해요. 김홍 특유의 유머가 발생하는 것도 그런 지점이라고 느끼고요. 그리고 사실 그것이 한소범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부분, '이야기꾼'이라고 말해지는 남성 작가들과 관련하여 "김홍 작가의 개성이 자신만의 것이면서도, 동시에 매우 근대적인 소설의 한 계보를 잇고 있다"는 점과 이어지는 것 같아요. 지금으로서는 이 두 관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아주 말끔하게 설명할 자신은 없지만요...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도 <격정세계>는 1/3 정도, <프라이스 킹!!!>은 완독했어요. 실은 먼저 읽기 시작한 건 격정세계이긴 한데요, 아무래도 읽는 데 속도가 잘 안 붙어서 <프라이스 킹>으로 넘어갔고, 앉은 자리에서 금세 다 읽었네요. <프라이스 킹>의 “선관위가 발표한 정오 기준 전국 투표율은 24퍼센트였다”(199p)라는 문장을 읽다 눈을 들어 TV를 보니 마침 뉴스에서 “사전투표율이 역대 최고치인 31.28%를 기록했다”는 리포트가 나오고 있네요. 현실과 정치의 넘나듦이 웃겨서 혼자 작게 킥킥댔어요. <프라이스 킹!!!>이 적극 차용하고 있는 소설의 ‘정치성’에 대해 먼저 얘기를 좀 해보고 싶은데요. 사실 ‘풍자’라는 문학 기법의 두 축이 ‘사회비판’과 ‘유머’일텐데, 그런 점에서 <프라이스 킹!!!>은 근래 본 작품 중에 이 풍자를 가장 적극적으로 구현한 작품이었던 거 같아요. 소설에서 비판하고자 하는 명백한 사회 현실(자본주의와 삐뚤어진 정치 생태계)가 있고, 이걸 ‘유우머’와 상상력으로 버무려서 한바탕 노는데, 결국 이 풍자의 성공은 유머가 얼마나 잘 먹혀드는지에 달린 것 같아요. 물론 분명히 과잉 됐다고 여겨지는 지점도 있었지만, 그조차도 계속 밀어붙이다보니 과잉조차도 가의 개성으로 받아들이게 됐어요. 독자를 자신의 변칙적인 호흡 안으로 데려올 수 있는지 여부가 작가의 역량일텐데, 그점에서 <프라이스킹>은 김홍 작가의 개성, 역량이 무르익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인적으로 저는 몇번이나 육성으로 웃은 대목이 있었는데요. 예를 들어 전국의 ‘ㄱ’들이 모두 사라지고 이를 서태지 팬덤이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는 19p는 킥킥도 아니고 끅끅대며 웃었어요. 작가님이랑 유머코드가 잘 맞나봐요…)
초반의 유머와 농담은 갈수록 적어지는 대신 보다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질문들을 본격적으로 꺼내놓는 뒷부분 대목에서는 여러가지 생각도 하게 되더라고요. 아마 소설을 통틀어 가장 핵심적인 한 줄을 꼽자면 아마 “근데 세상에 이상한 일이 얼마나 많아요. 뉴스만 봐도 하루가 멀다 하고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게 세상이에요.”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최가은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이미 믿기지 않는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는 허구 같은 세계에 살고 있는 저희로서는, 소설 속에서 아무리 이상한 일이 벌어져도 그게 과연 현실의 ‘이상함’과 얼마나 다른가, 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아요. 나아가서는 아무래도 거짓말 같은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는 한국 정치 상황을 목격해온지라 소설을 더 실감나게(?) 즐길 수도 있는 것 같고요…ㅎ
한편 또 흥미로웠던 건 해설의 분석이었는데요. “남성 이야기꾼의 자족적 자아 찾기의 전통을 상기시키는 면이 있다”(김건형 문학평론가)라는 분석이나 “이를테면 지난 시절 독자를 들었다 놓았다 하던 국내외 작가들이 떠오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한편 우리는 모두 무언가의, 누군가의 상속자 아닌가”(김미정 문학평론가)라고 하셨는데, 저도 읽으면서 ‘이야기꾼’이라 불렸던 일군의 남성 작가들, 예를 들어 성석제 천명관 박민규 같은 이름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동시에, 왜 이런 ‘이야기꾼’이라는 호칭은 남성 작가들에게 주로 할당되는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이에 대해서 일전에 오혜진 문학평론가는 이야기꾼이라는 별칭이 특정 스타일을 구사하는 남성작가들을 지시해온 것 자체가 한국문학의 전통을 ‘남성’으로 성별화하려는 시도였다고(「'장편의 시대'와 '이야기꾼'의 우울」) 지적하기도 했죠. 그렇기 때문에 김홍 작가의 개성이 자신만의 것이면서도, 동시에 매우 근대적인 소설의 한 계보를 잇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앞서 단평을 남겨주신 선생님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프라이스 킹!!!』을 먼저 완독했습니다. 굉장히 속도감 있는 독서 경험이었고, 저자의 아무말력에 감탄하면서 잦은 실소와 함께 책을 읽었어요. 소설에서처럼 대선은 아니지만 선거 시즌에 이 작품을 읽게 된 게 공교롭다는 생각을 저도 했었고, 소범 님께서 말씀해주신 대목은 발상이 너무나 해괴해서 해당 쪽 전체를 찍어 개인 소셜미디어 스토리에 공유하기도 했었어요. ‘미친 소리 창작ㄹㅈㄷ’(레전드라는 뜻)라는 짧은 글귀와 함께...(물론 모두 긍정적인 의미입니다!) 황당무계한 전개와 실없는 소리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세상에 대한 통찰을 스리슬쩍 들춰 보인다는 점에서 이기호 작가의 일부 작품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한편 이 작품이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작품으로서 이미 많이 소개되고 있는 것 같은데, 저는 유머의 외피에 속아서인지 책을 읽으면서는 이런 주제의식을 곧장 떠올리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소설의 유머러스한 부분들에서 다들 비슷한 재미를 느꼈던 것 같네요. 저도 마트 사장과의 대화라든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복수" (타인의 고통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도취도 버릴 수 있어야 하는) 를 사러 온 고객에 대한 장면들을 읽으면서 단순한 재미 이상의 깊이를 감지(?)했었어요. 복수라는 그 이름을 구하는 것이지 복수라는 행위가 가하는 구체적인 타격의 효능을 바라는 게 아니라는 것이 세속적 복수와 구분되는, 뭐랄까 좀 정신적 복수 같단 생각을 했어요. 그럼에도 여러분들의 글을 읽어 보니 확실히 제가 다른 분들만큼 이 작품을 적극적으로 읽진 못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랬던 주된 이유는, 장사의 신이 정치를 대체하고 무속의 신이 종교를 대체하는 듯한 구조 안에서 '나'라는 주인공이 그 배경과 어떤 관계 속에 있고 '나' 자신의 변화가 어떤 맥락과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모호함에 대한 답을 못 찾았기 때문인데요.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불교적 태도가 드러나는 걸 보고, 변화의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변화 자체가 중요한 의미라는 생각을 하면서 저도 제 나름으로 이 책을 소화할 힌트를 얻은 것 같아요. 일천한 지식이지만 불교의 핵심 이론 중 하나가 형태에 국한되지 않은 변화라고 알고 있거든요. '나'라는 인간이 '구의 3승'으로 형태를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의 상황에서 다른 상황으로 '이동'하는 '전개' 방식 역시 변화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정치와 종교라는 힘의 두 축 세속적으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이야기의 바깥에 두고, 안에서는 세속적 변화와 구분되는 변화를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점에서 저는 굳이 이 소설의 계보를 말한다면 종교소설 쪽에서 구분해서 더 탐독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점에서 아쉬운 건 마지막 부분에서 인과와 업보에 대해 말하는 지점이었어요. 여기 이를 때쯤 이 소설의 '변화'와 '변신'이 연기론에 대한 통상적 해석을 김홍 식으로 해석하는 독창적 부분이 있다고 기대하게 됐는데, 아마도 군말이라 여기셨던 건지 더 설명이 없어서 아쉽더라고요. ^^ 소설 다 읽고 뒷 부분에 수록된 인터뷰에서 불교적 명상을 자주 하시는구나 하는 정보도 얻어 좋았어요. 우리가 하루하루 헤매는 곳은 프라이스킹 마트와 억조창생 여사의 공간에 있지만 우리의 실존은 코끼리를 만날 수 있었던 회전 교차로에 있다... 회전 교차로가 김홍이 말하는 '연기緣起' 의 이미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황당함-현실성의 대립이 있다고 했을 때, 제가 생각하기로 김홍이 황당함을 이끌어내는 방식은 이런 것이거든요. 가령 전개에서 작품의 말미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문제를 극복하고 변화를 겪는다는 게 일반적인 소설의 전개라면, 김홍은 '자신의 문제를 극복하고 변화를 겪는다'라는 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 정말 주인공이 자신을 괴롭히던 형제들을 삼키고 실제 모습 자체가 구로 변하게 만드는 거죠. 혹은 민주주의(정치)가 시장논리에 의해 포섭되었다는 관점이 김홍 소설에서는 백종원이 대통령이 된다는 스토리로 구현이 된다거나요. 말하자면 메타적 진술(혹은 메타적 구조 - 전통적 서사 같은)에 대한 과도한 직접성이 있는데,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김홍을 그 구조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비현실성, 자신만의 개성) 한편으로는 그것에 묶어놓는 것이죠(현실성, 근대문학적 계보의 연상)
한편으로는 박혜진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부분도 인상깊었는데요, 하나는 "장사의 신이 정치를 대체하고 무속의 신이 종교를 대체하는 듯한 구조 안에서 '나'라는 주인공"의 위치에 대한 부분이었어요. 그 위치에서 주인공이 어떤 맥락과 의미를 갖는지 모호하게 느껴졌다고 하셨는데요, 저는 읽으면서 그렇게 명시적으로 느끼지는 못했었는데, 말씀해주신 것을 듣고 보니 그런 면이 있는 것도 같았어요. 그리고 그런 인상을 주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주인공이 장사의 신, 무속의 신과 동시에 관계를 맺기는 하지만, 막상 주인공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동기는 그것과는 또 다른, 혈연이라는 테마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까 가족 관계 내에서의 어떤 양가적 감정들이랄까, 사랑과 학대, 결여와 괴롭힘 같은 문제들이요. 그런데 이 부분은 쓰다보니 더더욱, 개인적으로는 김홍 소설에서 가장 소화되지 않는 부분이라고 느껴지네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 다른 분들이 이런 부분에 대해 어떻게 느끼셨는지도 궁금해지네요. 생각을 해보며 어서 <격정세계>를 마저 다 읽어보겠습니다...
<프라이스킹!!!>을 읽고 든 확신 하나는 이제 저는 이름을 보지 않고 소설만 읽고도 김홍의 작품을 구분해낼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처음 <스모킹 오레오>로 김홍 작가의 소설을 만났을 때는 좀 당혹스럽기도 했는데요, 이제는 그의 소설이 저에게 제법 큰 즐거움을 주는 것 같아요. 확실히 자기만의 유머가 있고 그것을 감추지 않고 소설에 잘 담아내려고 노력하는 작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심사평에서도 언급되었듯 이 소설은 결국 구천구의 '자아 찾기'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요, 작가가 만들어낸 스케일에 비해서는 고전적이고 소박한 주제일 수도 있으나 나름대로 김홍의 방식대로 그것을 잘 풀어내지 않았나 싶어요. 마지막에 코끼리 아저씨의 '도반'인 코끼리가 되기로 결심하고 동네를 떠나는 부분이 천구에게는 필연적인 수행의 따름일 것 같아요. 코끼리는 붓다의 태몽에도 나온, 불교와 연관이 깊은 동물이기도 하고요. 처음 책을 펼칠 때는 가볍게 접근할 수 있을지 몰라도,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는 심오함에 젖어들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었습니다. 게다가 진지하게 재미있는 또 한명의 사람... 강보원 평론가와의 인터뷰까지 붙어 있어서 더욱 즐겁게 이 책을 마무리할 수 있었네요ㅋㅋ
^^ 다들 <격정세계> 재밌게 읽으셨나요? 저는 방금 다 읽었는데, 감상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충격과 공포'네요... 그리고 혼란... 왜... 왜 이렇게 썼을까?? 약간 실험적인 아침드라마라고 해야할까... 학창시절에 읽었던 이광수의 <무정>도 생각이 많이 났고요(배워야지요! 하는 그 연설과...) 정말 여러 생각이 들기는 했는데, 우선은 그것들 중 대부분은 꼭 이 소설이 아니라 아침드라마를 보면서도 들 만한 생각이기도 했고, 또 몇몇 것들은 차라리 생각이 들지 않았으면 더 좋았으리라는 생각도 들고 ㅎㅎ... 초반부의 도입이 정말 좋았고 이후로도 괜찮긴 했는데, 제 생각엔... 그래도 한 300페이지, 정말 정말 길어도 400페이지면 다 할 수 있는 이야기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그렇게 하면 지금의 <격정세계>와는 다른 소설이 되겠지만, 꼭 지금의 <격정세계>가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도 있고요...(!)
다른 분들이 어떻게 읽으셨는지 정말 너무 궁금했던 소설이기도 하네요 ㅎㅎ 분명히 이 소설이 생각하게 하는 지점들, 이야기 나누면 좋을 법한 주제들, 뭐... 그리고 너무 '동시대적'인 생각들에만 둘러싸여 있다보니 내가 이런 부분을 놓치고 있었구나, 뭐 이런 생각이 드는 지점들이 있기는 했어요.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이런 식으로 통속적 계몽소설의 형식을 그대로 재연한다는 선택에 대해 공감을 할 만한 여지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뭔가 작품 내에서 작가가 왜 이런 걸 하고 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상식적으로... 그리고 또 어쨌든 문학을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 <격정세계>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현실과는 굉장히 동떨어져 있잖아요. 아무래도 어느 정도는 아이러니라고 할 수밖에 없는 대사나 상황들이 계속 나오는데, 그것을 아이러니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구조가 부재하고, 혹은 어떤 식의 아이러니로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 설정을 해주는 표지도 없다고 느꼈어요. 그러니까 정말로 그냥... 그냥 쓴 것 같다는 느낌...? <격정세계>가 찬쉐의 작품 중에서는 조금 독특하다는 것 정도만 알고 읽었는데... 사실상 찬쉐의 다른 작품을 읽지 않고서는 뭐라고 판단을 하기가 좀 어렵긴 하다는 느낌이네요 ㅎㅎ
그런 것 치고는 잘 읽혔다고 해야 할지... 분명 뭔가 잘쓴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기는 했어요... 사실 이 작품에는 갈등이라고 할 만한 것도 존재하지가 않고, 그러니까 모든 일들이 결국은 다 잘 풀리잖아요. 예정된 조화의 지연, 혹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상태 정도만이 있는 것 같고요. 그래서 소설이 어떻게 보면 굉장히 평탄하고 반복적인데, 이 평탄함을 가지고 거의 700쪽을 썼다는 사실이 약간 놀랍기는 하고요... 아침드라마 얘기를 했는데, 아침드라마라는 게 상대의 대사를 자꾸 반복해주고, 똑같은 사건도 재차 언급하는데, 그건 아침드라마 시청층이 주로 집안일을 하며 TV를 틀어놓고 보는 편이기 때문에 사건의 전개를 놓치지 않게 해주는 의도적 결과물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요. <격정세계>를 읽으면서도 같은 말이 어찌나 많이 나오는지... 가령 등장인물을 묘사할 때는 어떤 코드처럼 정해진 수식이 붙고... 가령 샤오웨는 '새로운 세력'이고 한마는 '문학' 그 자체이고, 등등... 그런 것은 흥미로운데 그걸 '그런 점 때문에 이 책이 흥미로웠다'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 그런...느낌인 거죠...ㅎㅎ....
안녕하세요! 저도 <격정세계> 열-심히 읽고 있는데 진도 진짜 안 나가네요.ㅎㅎ 제가 사실 읽는 속도가 엄청 느린 편이긴 한데 이 소설은 좀 대박인 것 같긴 합니다... 반 겨우 넘게 읽었는데요. 다 안 읽고 감상을 나눠도 되나 싶긴 하지만. 저도 다른 선생님들의 의견이 너무너무 궁금한 소설이긴 해요. 강보원 선생님이 <무정>을 떠올리셨다고 해서 좀 웃었는데, 물론 저도 중간중간 좀 아득해진달까... 말씀하신대로 이미 너무나 '전통적'이고 '격정적'인, 그래서 문학에 관해서라면 조금 상투적일 수도 있는 옹호를 시종일관 보여주는 소설인 것 같은데요. 그런 점이 어딘가 비현실적이고(김홍 소설보다 훨씬 비현실적이라고 느꼈습니다...) 독서 중인 내가 지금 정확히 어느 시기 어느 공간에 있는 건지 자꾸 헷갈리게 만드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속도를 늦추는 주된 이유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저는.... 그럼에도 이 소설이 좋은데요...ㅎㅎㅎ '문학'을 향한 예찬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통속적 계몽소설 류와 계를 같이 한다는 말씀에 완전히 공감하면서도, 뭐랄까요. 저는 최근에 문학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면, '쓰는 사람'을 향한 환상, '쓰는 일'에 대한 (그것을 세속적 차원으로 끌어내리든, 더 추상화되고 순수한 영역으로 고양하든) 과한 의미 부여가 주된 흐름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에세이 장르를 향한 관심 같은 것도 연결해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뭐 물론 쓰는 사람으로서 그 '과한 의미부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도 웃기지만요.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어째 '쓰기'보다 '읽기'에 대한 강조가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물들은 말 그대로 북클럽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소설 읽기의 최고 수준"과 특정한 "경지"를 만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이들이잖아요. 이 '경지'를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건, 어쨌거나 저도, 그것이 조금은 유치하거나 과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외면할 수 없는 욕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저에게도 분명히 존재하는 욕망이기 때문에...
그런데 이 소설 읽기의 '경지'가, 혹은 어떤 '이질적인 경계'로 계속해서 진입하는 일이 '사랑'이라는 감정(솔직히 이 소설에서 인물들이 갖고 있는 사랑은 정서 수준이 아니라 거의... 광기에 가까운 것 같긴 한데,) 혹은 행위와 직접적으로 일치한다는 것이 가장 흥미로운 지점인 것 같습니다. 문학의 에로틱한 측면이 지금껏 '쓰기'에 집중되어 이야기되어 왔다면... 이 소설은 그것을 '읽기'에 적용시키는 것 같아요. 상대의 '글벗'을 넘어 '문학의 동반자', 그것을 넘어 '유일한 대화 상대'가 되기 위해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읽는 인물들, 독해를 넘어 소설 자체를 거의 체화하려고 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상당히 (고자극...) 육감적이고 매혹적이랄까요. 이 역시 전통적인 소설들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전 그래서 오히려 원초적이고 신선한 느낌도 들어요. 소설의 인물들은 삶의 관계에서의 변화를 통해 문장의 변화를 감지하고, 문장의 변화를 통해 동일한 관계에서 다시 변화를 감지하는데요. 이것을 샤오쌍과 인물들은 자꾸 "이해", "성장", "발전"이라는 단어에 가둬두는데 그게 좀 아쉬운 것(?) 같아요. 그런 항상적인 변화는 정말로 삶과 문학이 뒤엉키는 어떤 '경지'를 보여주는 것 같거든요. 소설 속에서 인물들이 여행을 가거나, 산책 등 이동을 할 때 배경이 갑자기 환상적으로 변하는 부분도 재미있었어요. 이런 설정에 대해서도 소설 구성 전체와의 연결 속에서 뭔가 특별함을 느끼고는 있는데, 아직 말로 설명하긴 어렵네요.
저도 동의합니다. 찬쉐가 '쓰기'가 아닌 '읽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전통적으로 쓰기와만 연관되던 에로틱한 측면을 읽기에 적용시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최가은 선생님의 지적은 탁월합니다...('비둘기 독서모임' 회원처럼 말해봤어요..) 저도 그 부분이 굉장히 흥미롭고 또 한편으로는 어떤 반성도 하고... 그랬던 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사실 비둘기 독서모임은 독특한 것이, 특히 초반부에는 거의가 일종의 아마추어 집단, 말 그대로 독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독서모임인데 끊임없이 뭔가를 탐구하고 알아가려는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 같았어요. 그런 맥락에서 소위 말하는 '어려운 책'에 대한 접근도 인상적이었는데요, 그러니까... 보통 어떤 문학이 대중적이지 않고 어렵다고 하면 '사실 그것은 어렵지 않다, 있는 그대로 읽으면 된다'라거나(삶과 문학은 같은 것이므로 이해/혹은 감상할 능력이 잠재되어 있음), 혹은 문학이라는 것도 하나의 장르이기 때문에 당연히 무매개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삶과 문학은 원래 같은 것이 아니고 거리가 있으므로 그런 것), 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저는 둘 모두 일정 정도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사실 후자쪽으로 많이 생각을 했었는데요. 찬쉐는 약간 다른 각도에서 접근을 하는 게, 문학=삶이므로 우리 삶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 어떻게 빠져나가야하면 좋을지 모를 미로를 만나는 것이 자연스럽듯 문학에도 그런 난관이 있고, 그 난관을 해쳐나가는 것을 삶에 대한 의지와 결합시키는 부분이었어요. 그러니까... 둘 모두와 관련이 있으면서도 조금 다르고, 이것이 그 자체로 정론이 될 수 있냐고 하면 저는 역시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삶과 문학의 거리를 벌리지 않으면서도 문학에서 만나는 어려움을 삶 속에 통합하려는 시도가 인상적이었어요. 하지만 예컨대... 연애를 열심히 하다보면 소설을 이해할 수 있게 되나? 그런 측면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것은 찬쉐가 말한 것보다는 훨씬 더 협소한 영역에서만 그런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ㅎㅎ
어쨌든 저는 중반 이후로는 사실 <격정세계>의 기획 자체가 조금 달라졌다고 느꼈어요. 여러 측면에서 그런데, 사실 그 중에서는 최가은 선생님이 말씀하신 '읽기'에의 강조가 어느 정도 '쓰기'로 넘어가게 된다는 점도 있는 것 같고요. '비둘기 독서모임'의 성격도 조금 변하는 것 같고... 그래서 저는 후반부에 들어서는 <격정세계>만의 매력이 조금 감소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또 결말은 좋았어요. 이건 스포일러이니 얘기할 수는 없지만 ㅎㅎ 아무튼 이렇게 읽는 중간에도 그 시점의 감상을 들을 수 있으니 더 좋네요. 중반부면 '아니 그냥 둘 중 하나가 빨리 고백좀 해라!!'라고 생각하다가 지쳐서 '그냥 될대로 돼라...'라고 생각했던 즈음이었을 것 같네요. 하지만 후반부엔 더 엄청난 일들이...
<격정세계> 중간까지 읽고 있어요. 처음에는 지나치게 정답 같은 말만 주고받는 걸 보면서 지금 북클럽 조롱하는 건가? 고도의 풍자인가? 라는 장난 섞인 의심도 들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해 보지 않고서는 독서에 대한 판타지가 이토록 진지한 분량, 권위 있는 명성이랑 매치가 안 되더라고요. 그런 한편으로는 되게 사실적이란 생각도 들었어요. 제가 근래 4개월 동안 '호루라기 북클럽'이란 모임을 진행했거든요? 저희 독자들이랑 같이요. 어떻게 보면 작중 '비둘기 북클럽'과도 같은. 근데 이 북클럽 때 주고받는 얘기들을 생각해 보면, 이렇게 누군가를 극단적으로 추종하진 않지만 (사실 그런 경우도 많아요.) 서로에게 상당한 예의와 범절을 갖추면서 작품과 읽기와 그보단 삶 자체에 이런 식의 얘기를 주고받아요. 바람직하고 성찰적이고 독서에 대한 예찬이 전제된. 일종의 북클럽 자아가 있는 건데, 작위적인 것 같은 그 자아들도 한번쯤 들여다보고 싶단 생각이 들던 터에 이 소설을 읽어서 그런지, 뭐야! 뭐지? 설마 계속 이럴 건가? 하면서도, 이런 말하기가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의 삶에서 '스킵'되다가 아예 실종돼 버린 건 아닌가, 그래서 이젠 말할 줄 모르게 된 건 아닌가, 어쩌면 북클럽이란 그런 말하기 혹은 쓰기를 되찾기 위한 곳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지금까지 읽은 바로는 독서 체험에 대한 심리적 심미적 신체적 보고서를 투박한 소설로 표현한 것 같다, 현실은 책처럼 읽고 책은 현실처럼 읽는다,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일단 계속 더 읽어 볼게요. 뒤에 더 놀랄 일이 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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