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중고 24 - 온라인 북클럽

D-29
이 문장은 여자, 남자, 아줌마…등등 모두가 갈망하는 바인 것 같아요. 모두 자신의 부정적인 과거에 얽매여서 마음속 깊숙이 넣어놓고 사는 사람들이잖아요.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하는 것은 여자뿐만 아니라 이 책의 등장인물모두가 그런 것 같아요.
과거와 미래를 보지 않고 현재에만 집중하는 것이 유리할 때도 있다는 말이 처음에는 동의가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제 경험상으로도 과거를 잊었을 때 과거를 잊지 못하고 안고 있던 시기보디 더 자유로웠던 것 같아요. 과거는 잊음으로써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미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드네요.
그래요 현재에 충실하며 과거를 잊는것이 삶에 더 유리할때가 있습니다 잊어버린다고 그 기억을 버리는 갓이 아니잖아요 전 그래서 이 문장에 공감한답니다
찌르세요. 남자가 말했다. 찌르시라니까요! 아주머니는 팔을 뻗었다. 처음에는 찌르고 다음에는 그었다. 구경꾼은 없었다. 아주머니는 칼을 서툴게 쥐었고 그래서 양손에 상처가 잔뜩 났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p.145, 장강명 지음
칼을 서툴게 쥔 탓에 손에 상처가 잔뜩 났다는 점이나 전체적인 문장의 구조 등이 맨 처음에 나왔던 남자가 학교폭력 가해자를 찌르는 장면과 많이 비슷하다. 처음 이 부분을 읽을 때 약간의 기시감이 들어 뭘까 했었는데, 다시 읽고 보니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앞에서 나온 장면과 상당히 유사한 장면인데 반해 첫 장면에서 가해자였던 남자는 피해자가 되고, 살해당했던 아이의 어머니는 가해자가 되었다는 점에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작성해주신 대화를 보고 책의 맨 앞 부분을 다시 읽어보니 정말 오묘한 느낌이 드네요. 저는 남자와 아이의 가정이 벗어날 수 없는 가해와 피해의 순환고리에 갇혀버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앞 부분의 장면과 비슷하다고 느꼈는데요 . 특히 '구경꾼은 없었다'라는 문장이 앞부분과 비슷하다고 느끼게 하는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보통은 목격자나 주변인이라고 할 법도 한데 구경꾼이라는 단어를 선택한데에는 작가만의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드네요.
기시감은 들었지만 똑같다는 것은 몰랐어서 새로우면서 신기하네요. 수미상관의 구조일까요. 남자에게 들어있던 우주알이 아주머니에게로 가고 아주머니 또한 자신이 끔찍이 여기던 아들을 죽인 존재와 결국 같아졌죠. 이는 아직도 사건에 거짓말이 남아있다는 작가의 표현일지 아니면 그저 정확한 상황을 알게될거라는 암시일지.. 이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네요.
말해주신 부분을 읽으면서 굉장히 작가의 설계가 돋보이는 듯한 느낌은 받은 것 같아요. 첫 부분에서 남자가 영훔이를 죽이고 영훈이의 어머니인 아주머니가 남자에게 복수하려 하였지만 결국 마지막에 아주머니가 남자를 죽이면서 굉장히 모순된 아주머니의 태도와 피의 순환고리가 잘 드러나도록 표현한 것 같네요.
남은 전승은 이 근처에 검은 돌이 많아서 현석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었다. 이 전승의 문제는, 아무리 골목을 돌아다니며 과거를 살펴도 검은 돌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중략)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서 자신의 피는 아주 검게 보였다. 아주머니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검은 자국들이 하나씩 생겨났다....해가 지고 가로등 불빛이 보이면 그 발자국이 나타났다. 검은 돌들 같았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p.101,145,146, 장강명 지음
처음 현석동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그냥 전처럼 동네의 유래에 대해 여자와 대화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마저도 복선이라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습니다..이 소설은 모든 구절 하나하나가 치밀한 것 같아요.
이따가 같이 맥주 마시지 않을래? 합정에서. 오늘 나 늦어. 밤새울지도 몰라. 여자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휴대전화 자판을 두드렸다. 안 그럴걸. 내가 미래를 보잖아. 너 하는 일 한 시간 안에 다 끝날 거야. 그것도 아주 잘. 깔끔하게. 남자가 답장을 보냈다....그 미래가 그렇게 정확하진 않더라. 여자가 웃었다. 오늘 한시간 만에 일이 끝나진 않았어. 두 시간도 더 넘게 걸렸어. 그랬어? 내가 틀렸네. 남자가 웃었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p.110,124, 장강명 지음
이걸 보고 우주알을 가진 남자가 진짜 틀렸다기보다는 여자의 미래를 알고있었음에도 울고 있는 여자에게 나름의 위로를 하고 싶어서 일부러 한 시간 안에 끝날것이고 아주 잘 끝날 거라는 거짓말을 하면서 맥주를 마시자고 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론적으로 일은 더 늦게 끝났지만 여자가 남자와 함께 맥주를 마신 덕분에 춤도 추고 기분전환을 했으니까요. 여자가 마지막에 "네가 옆에 있어줘서 다행이야. 오늘 같은 날 집에 들어갔으면 정말 미쳐버렸을 거야." 라고 하기도 하고요.
영훈이가 살았으면 키가 너 정도 될까? 라고 하주머니가 물었을 때 남자는 키가 저보다 더 컸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서울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아주머니는 꾸벅꾸벅 졸았다. 아주머니는 하루에 여러번 그렇게 졸았지만 그 사실을 몰랐다. 그래서 자신이 하루에 두 시간밖에 자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주머니는 졸다가 머리를 남자에게 기댔다...그게 영훈이에 대한 예의 아니니? 영훈이를 생각하면......그게 예의 아니니? 아까 카레 있잖아요. 남자가 불쑥 입을 열었다. 영훈이는 카레 싫어했어요....영훈이가...좀 짓궃은 데가 있었어. 아주머니가 말했다. 남자애들끼리는 짓궃은 장난 많이 치지 않니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p.136-138, 장강명 지음
아주머니는 영훈이를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것 같은데 남자보다도 영훈이에 대한 걸 모른다. 본인은 하루에 두시간밖에 안잔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p.44에서도 차를 피해 길을 건너면서 영훈이를 위해서라도 내가 힘을 내야 돼. 아주머니는 생각했다. 여기서 넘어지면 안 돼. 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 이런 게 영훈이랑 진짜로 관련이 있나? 싶다. 남자를 원망하는 건 어느정도 이해되지만 아주머니는 본인의 인생 전부를 매일 남자를 방해하고 따라다니는 데 쓴다. 매일을 영훈이로 채우는 걸 보면 아주머니의 삶의 이유는 영훈이 같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영훈이에 대해서 모르는 부분이 많다..p.54에 뭔가 분풀이를 할 대상이 필요한 거야, 사람이 과거에 사로잡혀 있거나 미래에 홀려 있으면 현재를 제대로 보지 못해요. 라는 말이 나온다. 이건 택시기사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아주머니가 바로 이런 사람인 것 같다. 이걸 보면서 아주머니는 영훈이의 죽음이라는 과거에 사로잡혀 삶의 이유를 영훈이라기 보다는 '영훈이의 복수'로 잡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부분에 교도소에 들어간 아주머니가 문득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진실이 밝혀져서 마음이 편안하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아주머니가 남자를 죽였기 때문에 비로소 자기도 모르게 사로잡혀 있던 복수에 대한 책임감(내 자식을 죽인 남자를 나는 미워해야만 한다. 어떤 사정과 이유가 있었더라도 내 자식이 남자에게 무엇을 했다고 해도)이 없어져 마음이 편안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주머니는 영훈이가 남자를 괴롭혔다는 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영훈이가 일진이고 담배를 폈다는 것도. 그럼에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내 자식은 착하고 아무런 죄가 없는 피해자여만 하고, 남자는 그런 내 자식을 죽인, 절대로 행복한 인생을 살면 안되는 가해자여만 하니까. 내가 진실을 알고 있어도 영훈이의 엄마인 나만은 인정해서는 안된다고...남자도 그걸 이해하고 있기에 마지막에 거짓된 영상을 올려준 게 아닐까? 아주머니라도 해방시켜주기 위해서.
끝까지 명확한 진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인 것 같아요. 마치 책에서 나왔던 뒤죽박죽이 된 원고처럼. 순서가 다 틀어지더라도 그럴 듯하게 보이는 이야기. 어쩌면 정말로 영훈은 일진이었을 수도 있고 혹은 남자의 말처럼 이 사건은 거짓밖에 없었을 수도 있죠. 하지만 결국 이 사건의 끝은 살인자를 죽인 살인자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분을 오묘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러기에 이 책은 결국 모두가 각자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듯 보이면서도 하나씩 틀어진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람보투에게. 남자는 람보투라는 단어를 빨리 발음했고 또 각 음절에 힘을 골고루 실었다. 그래서 그 말은 람보 투,가 아니라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쓸 것 같은 어휘로 들렸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p.148, 장강명 지음
사실 이걸 처음 읽었을 때는 람보투가 뭔 소리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계속 생각해보니 마침내 람보투(two)=람보이=이보람. 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왜 이렇게 알기 어렵게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남자는 영상에서 이보람이라는 여자는 누구야?라는 반응과 함께 여자가 자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피해받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여자는 이런 일과는 상관없이 행복하게 모든 일이 잘 풀리는 삶을 살아갔으면 해서, 그래서 일부터 자기의 메세지는 전달하되 여자의 이름은 암호화하고, 보험금도 여자앞으로 해놓은 게 아닐까 싶다. 남자는 분명 죄를 저질렀지만 본인이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죽는 순간까지 여자와 아주머니를 위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저도 람보투 라고 했을 때 이게 무슨의미인지 계속 곱씹어 봐도 모르겠어서 답답했는데 육개장님 덕분에 이것의 의미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됐어요.
운동장은 그 학교에서 가장 표정이 풍부하고 가장 인간적인 존재였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p.30, 장강명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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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누워서 쓰는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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