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04.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D-29
@모시모시 님께서 적절하게 찾아서 정리해주셨네요. 뒤에 붙은 용어 정리는 어떤 건 유용하고, 어떤 건 너무 소략해서 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는데 역시! 이래서 이런 책은 함께 읽을 때 도움이 됩니다.
장맥주님께서 쓰신 3번째 단락이 리사 배럿의 범주화 정의에 —“뇌가 개념을 사용해 감각 입력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 — 근접한 것 같습니다. (저 재밌게 읽었는데요, 어디를 고치고 싶으신건지..^^) 조금 덧붙이자면, 리처드 니스벳은 이러한 문화권별 사고방식의 차이가 언어 발달에도 영향을 준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면 범주화에 기반을 둔 문화권의 영어는 명사와 형용사가 압도적으로 많이 발달되어 있고 연결과 조화를 강조하는 문화권의 한국어는 부사, 동사의 종류와 수가 넘사벽이죠. 친구에게 차를 더 권하는 상황에서 영어로는 “More tea?”라고 명사를 던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데, 우리는 ”더 마실래?”라고 동사를 쓰죠. 영어는 She has a warm heart. 라고 문장 의미 중심을 형용사+명사에 두는 반면, 우리는 “그 여자는 마음이 따수워”라고 동사에 의미 중심을 둘 수 있고요. 영어는 기본 동사 몇 개로 돌려막기하느라 전체 사용 동사에서 기초 동사 7개 사용 비중이 70퍼센트를 넘는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정확한 퍼센트는 기억이 안나지만요^^;;) 반면에 우리는 명사 (특히 개념어)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타 언어권에서 많이 빌려와서 쓰구요. 어제 @borumis 님이 “다양성을 줄이고 단순화하려는 범주화가 내재되었다”는 말씀이랑 여기서 장맥주님이 말씀하시는 “범주화의 내재”랑 결이 비슷한 거 같은데요. 아, 장맥주님은 언어의 내재화를 말씀하시니 촘스키의 내재주의나 보편문법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저는 개념이든 언어든 감정이든 간에 “내재(innate)되었다”는 의견에는 회의적입니다. 물론 선천적인 부분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인간은 성장하면서 환경과 사회, 문화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개념과 언어와 감정을 발달시키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리사 배럿의 주장을 아무 저항감없이 받아들이고 ..^^*
아 제가 좀 정확하지 않게 쓴 것 같네요..^^;; 제가 말하고픈 건 범주화할 수 있는 능력(?)이나 가능성이 즉 capacity가 내재되었다는 거지 그 범주화의 내용까지 내재되었다는 말은 아니에요. 저는 인간이든 동물이든 어느 정도 베이스가 있다고 보는 유전학을 전공해서 완전히 빈 서판 (blank slate)이 있다고 보진 않지만 그것을 어떻게 채우고 수정하는 지에 환경 또한 영향을 끼친다고 보는 입장이라 (실제로 유전학 분야 중 DNA sequence만이 아닌 유전자에 대한 환경적 요인을 연구하는 epigenetics도 아직 더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는 분야구요) 유전자 레벨이 아닌 더 고층위의 구조에서는 말할 것도 없죠.
저도 이런 이야기 너무 좋아요. 범주화가 아예 없으면 지능이라는 거나 사고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겠죠.. 푸네스처럼 생각하지 않으면 모를까..
위에서 @장맥주 님이 “지성을 가지려면 범주화해야 한다”고 하시고, @YG 님께서도 “범주화하는 능력이 인간이 동물과 다른 능력”이라고 하셔서 화들짝 놀라고 있는 중입니다.
@소피아 님께서 말씀하신 그 연결, 결합도 저는 범주화의 한 사례로 생각하고 있어요. 리처드 니스벳은 저도 좋아하는 심리학계의 구루고 배럿과도 오히려 생각이 통할 듯해요. :) (한번 확인해 볼게요!)
어쩌면 리사 배럿, 저, YG님, 장맥주님 전부 다 다른 의미로 범주화 (categorization)를 이해하고 쓰고 있는지도 ㅎㅎ (왠지 그런 거 같다..) 저는 사전적 의미의 좁은 뜻으로 쓰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리사 배럿과 니스벳은 통하는 데가 있을 거 같습니다. 사실, 범주화란 단어로 통일한 이유도 알 것 같긴해요. 그래도 어딘가 모르게 서운한 맘 ^^;; 리사 배럿 선생님, 다양성이 표준이라면서요.. 왜 범주화라는 단어를 큰 의미로 일반화해버리는 쉬운 길을 가셨나요..
범주화는 인간만이 가지는 특성일 수도 있지만 범주화 안에 들어가야 안심하는 사람도 있고.. 범주화에 편입되지 않으려는 독립적인 사람도 있기 마련이죠.. 음... 하지만 사안에 따라 범주화에 기꺼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독립적인 사안도 있는 다면적인 존재이기도 해요.(아직 진도는 따라가지 못하고 글만 남깁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 화요일(4월 9일)은 어제 말씀드린 대로 5장을 끝까지 읽습니다. ;아이들은 어떻게 분노를 학습하는가?'부터 끝까지 읽으시면 됩니다. 내일 수요일(10일)은 6장 '뇌는 어떻게 감정을 만들어내는가?'를 이어서 읽는 일정입니다. 이번 주에 7장까지 읽으면 저자의 '구성된 감정 이론(Theory of Constructed Emotion, TCE)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는 되는데요. 여러분 중간 소감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철학이나 사회과학의 해석학적 전통의 독서를 많이 하신 분이라면 오히려 익숙한 논의라고 생각할 테고, 저자가 아주 강하게 반발하듯이 과학이나 철학의 본질주의 전통에 익숙하신 분이라면 낯설기도 하셨을 테고. 어느 쪽 반응이든 흥미진진하셨을 것 같으니 서로 의견 나눠요.
해석학적, 구성주의적 입장이 더 익숙하고 편안한 사람으로서 저자의 설명에 잘 설득되고 있습니다~ 또한 재작년에 읽은 Livewired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된다, 생후배선과 많은 맥락을 함께 하는거 같습니다. 이게 뇌과학, 감정과학? 분야에서도 주류가 되어가는 군요
오.. 제작년 데이비드 이글맨 책을 읽으셨네요. 저도 나중에 읽어봐야겠어요.
우선 저자가 논리적으로 이야기하고 글도 잘 쓰셔서 무척 호감이 갑니다. ‘구성된 감정 이론’이 만약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감정은 없다는 데까지 나아간다면 제가 납득하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지만요. 애덤 윌킨스의 『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어요. 인간만큼 얼굴 표정이 다채로운 동물이 없으며, 이는 진화의 결과라는 주장을 펼치는 책입니다. 의사소통, 특히 감정 표현을 위해 얼굴 근육이 매우 섬세하게 발달하고 표정이 대단히 풍부한 동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품은 감정에 따라 표정을 짓는 것, 그리고 표정을 보고 상대의 감정을 파악하는 것이 인간에게는 매우 중요한 능력이고, 그 능력을 발달시켰다고 윌킨스는 주장합니다. 무척 설득력이 높은 책이었고 읽는 재미도 좋았거든요. 그런데 리사 배럿의 주장에 따르면 표정은 그 정도로 정확하고 보편적인 의사소통 도구는 못 되는 거네요. 배럿 박사님이 표정의 역할을 아예 부인한 것은 아니지만요.
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5억 년 전 최초 척추동물의 얼굴부터 오늘날 현대 인류의 얼굴까지, ‘얼굴 진화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다루고, 인간의 얼굴과 인간의 본질 사이에 얽힌 촘촘한 그물망을 밝혀 나가면서 인간의 진화에서 얼굴이 갖는 중요성을 규명하는 책이 출간되었다.
저는 리사 배럿의 책을 읽기 전에도 우리는 모든 매체를 통해 표정에 대해 세뇌당했다..는 주의라.. 어린아이부터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혹은 직업적인.. 미디어에 많이 노출될 수록 선입견을 갖게 되는 부분이 표정에 대한 인식이더라고요. 전 그래서 선입견 없이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고 그게 더 재미있고 흥미롭기도 했습니다. 물론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착오에 빠지게 하는 가장 큰 부분(특히 정치인의 발언)인데 결국은 얼굴이나 말이 아닌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을 이해해야 하는데.. 그러기엔 또 시간이 많이 걸리겠죠.
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돌들이 눈 찡긋하거나 혓바닥 내밀면서 아기 같은 표정 짓는 거 보면서 ‘다 큰 성인이 저게 뭐람’ 하고 남사스러워 했거든요. 그런데 하도 많이 봐서 이제 세뇌가 좀 됐습니다.
그런데 분노 등의 감정을 학습하는 것에서 의문이 생긴 것은.. 그렇다면 이렇게 아이의 감정 표현 등에 감정 언어로 대응시켜주고 반응하는 부모 등 근처의 어른들의 양육 학습 의도와 연관이 있을 텐데.. 만약 이런 어른들의 보육이나 교육이 부족한 환경의 아이들이라면 어떨까요? (생각만 해도 슬퍼지지만..) 그리고 소피아님의 문화 간 차이에 대해 생각해보다 작년 12월에 출판된 이 논문을 발견했는데요. WEIRD (western, educated, industrialized, rich, democratic) 문화에서는 감정을 정신상태의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이런 문화 밖의 비WEIRD 문화권에서는 일상적인 회화의 단어들이 정신보다 육체와 더 밀접한 현상을 반영한다는 면에서 감정의 granularity 형성에 감정 단어들만이 감정을 구성하는 이론에 반문을 제기하는 논문인데.. 아쉽게도 논문 전체를 볼 수 없어서 구체적 내용은 못 보네요.
이 논문의 abstract를 읽고 나니 그러고보니 우리 말에서 감정상태를 반영하는 말 중 정신을 반영하는 말은 학술적이나 문학적으로 많이 쓰이긴 하는데 실제 일상 회화에서 감정을 나타내는 말에 신체와 관련된 표현이 많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제가 생각한 건 간담이 서늘한, 손에 땀을 쥐는, 다리가 후들거리는, 소름이 돋는, 오금이 저린, 간이 콩알만해지는, 몸 둘 바를 모르는, 맥 빠지는, 속이 끓는, 애간장이 타는, 복장 터지는 등의 관용표현이 있는데요.
우리나라 고유의 개념이라는 '홧병'도 어쩌면 alexithymia처럼 자신의 affect를 제대로 말로 표현 못하고 신체적 증상으로 대신 나타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정말 홧병의 정체를 서양인은 뭐라고 생각할까 진지하게 생각해본적 있어요 ^^
그런데 한때 화병이 한국인 특유의 병인 것처럼 알려지고 영어 사전에도 등재되고, DSM-4에도 언급됐지만, DSM-5에서는 빠진 걸로 압니다. 그냥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정서장애의 일종인 것으로... 자세한 것은 @borumis 님께 여쭤보렵니다. ^^
신병도 화병도 DSM -IV에는 부록처럼 문화와 관련된 증상으로 언급되었지만 DSM-V에선 특별히 올리진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거기서도 말했듯이 여기 안 나온다고 무시할 수는 없고 대신 문화마다 어떤 증상을 질병으로 볼지 아니면 다른 현상으로 볼지 논란이 많아 어떤 것들은 빠졌다고 하네요. 예를 들어 화병은 우울증, 신체화증상, 불안장애 등 여러가지가 섞였다고 볼 수도 있고요. 신병은 어떤 이들은 정신병이 아니고 종교적 의미로 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대인공포증은 한국과 일본 둘다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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