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04.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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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님의 가나 장례 문화 얘기 들으니 얼마전 기안84가 나온 예능에서 마다가스카르 장례식도 생각나는데요. 너무 흥겹게 웃고 떠들고 춤춰서 생소했지만 결국 시신들을 파내고 다시 싸면서 슬퍼하고 시신을 껴안는 장면 보고 참 문화의 차이에 대해서도 놀랐지만 같은 이벤트 내에서도 감정 폭이 참 다양하구나..하면서 놀랐어요.
“더 심각한 것은 만약 이 프로젝트가 목표를 달성한다면,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감정에 대한 서양식 고정 관념을 학습하게 될 것 이라는 점이다.” —> 휴대폰에서 사용 중인 무수한 이모티콘 역시 서양식 기본 감정의 획일화를 확산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잠시 했습니다. ‘감정의 맥도날드화’라고나 할까요.
그러니까요.. 그런데 이모티콘이라도 남기지 않으면 텍스트만으로는 오해를 하기도 해서.. 자주 쓰는 것도 싫지만 또 안 쓰면 애매해지는 경우도 있고.. 모든 것을 감정으로 이해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필요하기도 하더라고요.
전 ADHD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어렸을 때부터 문맥과 비언어적 cue를 참고하는 화용언어에 대해 아이도 저도 많이 배웠는데요. 화용언어 뿐만 아니라 감정에 대한 표현도 되도록 구체적이고 다양하게 가르쳐주고 제 자신도 일상에서 어휘를 다양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이게 emotional granularity와 연관된 것 같은데 이렇게 획일화되지 않고 다양하고 자세한 감정 단어 뿐만 아니라 감정 표현법을 배우는 게 ADHD 아이들의 감정조절 문제에도 도움이 된다고 해서요. 그래서 이에 관련된 책이나 논문도 한 때 진짜 많이 읽었는데 영유아들의 감정인식 미숙함에 대한 연구들에 대해 여기서 읽으니 그때가 생각나네요. 아마 실제로 저희 아이 같은 애들이 이런 이론들과 관련된 치료를 많이 받을 거에요.
주석에도 나와있지만 아주 어린 아이들, 그리고 ADHD 아이들은 특히 anger에 관련된 감정에 가장 인식이나 표현이 다양하지 못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아이가 다른 아이들이나 어른들의 감정을 잘 못 해석하거나 자기 자신의 감정 표현을 무조건 화내는 것으로 밖에 표현 못하거나 등의 상황에서 아이가 지금 어떤 증상을 보고(또는 보이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스스로 인식하고 배울 수 있게 꾸준히 목이 쉬도록 대화하면서 가르쳤는데요. 그 당시에는 이게 과연 뭔 짓인가..했지만 고등학생이 된 지금 남편 및 다른 사람들이 다 그만큼 노력한 게 성과가 있었고 이제 확실히 감정 인식, 표현, 조절 등이 나아졌어요. ADHD를 생각하면 보통 산만함이나 학습 장애 등만 생각하는데 이런 점이 있고 이런 과정들을 아이도 부모도 거쳐간다는 걸 잘 모르는 분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ADHD 아이들 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에게 그렇게 감정 표현을 이해하는 걸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해요. 넘겨짚는 게 아니라 이해하는 쪽으로 말이죠. 감정 표현의 원인이 하나는 아니니 말이죠. 요즘 아이들은 나와 다르게 표현하는 것에 대해 일단 분노하고 보더라고요. 다르게 표현하는 구나.. 하는 이해가 아니라 '왜 저래?'라며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더라고요.
앗 맞아요 아는 대안학교 교사님들도 보통 학교 교사님들도 요즘 애들이 의사소통능력이나 EQ 및 사회성에 이전에 비해 현격히 떨어진다고 하더라구요.. ㅠㅠ 저도 요즘 신입 직원들이 고객 불만이 접수기 넘 많아서 고민이에요.. 아 다르고 어 다른데.. 그런 미묘한 차이를 캐치하지 못하더라구요
문학 독서가 그런 감정 공부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소설가라서 그러는 것만은 아니고... ^^) 뚱딴지 같이 플로베르의 "감정 교육"도 책장에 꽂아봅니다.
감정 교육 1플로베르가 19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프랑스 작가로 자리 매김하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작품. 사랑을 이야기하고 근대 도시 파리를 스케치한 풍자적 역사소설이다. 낭만주의적 전통을 뒤엎고, 사실주의적 원칙 또한 무시한 채 동시대인들의 도덕의 역사를 감히 말하고자 한 작품으로, 플로베르 생전에는 냉혹한 비판을 받았으나, 사후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았다.
배럿 님도 똑같은 얘기를 하십니다. :) 덧붙이면, 3월 벽돌 책 주인공 앨버트 허시먼의 최애 소설가가 플로베르였어요!
흑흑... 앨버트 허시먼 함께 읽기 모임 놓친 게 점점 더 억울해지네요. ㅠ.ㅠ
오호~ 제목부터가.. ^^ 플로베르 넘 재미있죠. ㅎㅎㅎ 정말 모순되면서도 복잡한 내면 묘사에 뛰어난 작가같아요. 안그래도 요즘 아이와 함께 책 읽고 토론할 때 그런 걸 많이 얘기하는데요. 최근에는 대안학교 선생님이 아이에게 추천해준 허수경 시인의 '혼자 가는 먼 집'을 읽고서 '이 사람은 왜 킥킥거리면서 울고 있을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왜 금방 울 것 같은 사내가 아름다워 보일까?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부빌 때 어떤 느낌일까? 이 사람은 왜 계속 웃으며 말을 끝까지 하지 못할까?'하면서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비슷한 느낌이지만 또 미묘하게 다른 '농담 한 송이'도 읽어보구요. 시나 소설 등 문학작품들은 정말 복잡하고 아주 subtle하며 여러 상황과 상호작용하는 감정을 우리가 가상 시뮬레이션해보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음.. 저는 감정교육이라기보단 다른 사람의 감정 이해하기로... 그런거 있죠.. 웃어 놓고 왜 딴지를 걸어? 웃는 게 꼭 동의한다는 건 아닌데 우린 그렇게 인정하죠. 또 화를 내놓고 왜 지금 와서 다르게 행동하는데?.. 라든가.. 어떤 사안에 화를 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전체를 다 반대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고보니 사람은 뭐든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감정적으로 표현하는 데서 많이 부딪친다는 생각이 드네요. 감정을 넣지 않고 객관화 된 사실만으로 받아들인다면 싸울 일도 없을 텐데.. 저 자스기... 표정을 보아하니 불만 있네.. 라는 것 처럼요.. 그리고 사회에서도 표정 읽기를 강요하기도 해요. 사무실에서 싸..한 표정을 했다고 해서 나에게 감정이 있는 게 아닌데 '나 때문에 그런가?'(NBTI)라며 막 소심해지는 사람도 있고요.
ㅎㅎㅎ 웃어 놓고 딴지 걸기.. 그러고보니 그런 말도 있죠.. 내가 지금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빨간리본님은 어떤 MBTI일지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저는 실은 아들에게 감정교육(?) 훈련(?) 등을 열심히 하는 이유가 아이의 사회성치료 자체를 위해서도 있지만 제가 약간 죄책감을 느껴서 그런 것 같아요. 제 자신이 남의 감정에 좀 둔하고 관심이 별로 없는, 가끔 자폐성 스펙트럼으로 혼동되기도 하는 INTJ의 전형이여서;; 그래서 아이를 위해서도 제 자신을 위해서도 이런 감정을 읽으려는 공부를 많이 하고 있어요. 결국 아이의 감정교육이 제 자신의 수양?이 되었네요;;
ㅋㅋㅋ 제 MBTI는 먹고보자~ 입니다. 일단 배부르면 다 용서가 되는 단순아메바형이라서요 . 저도 지금은 다른 일을 하지만 예전에 사람을 만나는 일을 했었거든요.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만나 많은 걸 배웠죠. 그러면서 정말 세상은 넓고 살아가는 방법도 천차만별이란 걸 깨달았죠. 다양한 분야의 여러 사람들을 만나니 재미도 있고 호기심도 생기고 ... ㅋㅋ 뉴스나 인터넷 세상이 넓은 것 같지만 오히려 사람의 생각을 고착화하고 가두더라고요. 글이나 영상으로 알게 되는 것도 결국은 자신의 그릇만큼만 받아들이니까요. 그런데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 전체를 보게 되니(그것도 착각이겠지만) 360도 회전하면서 느끼게 된달까..
딸아이에게 제 MBTI를 물어봤더니 MDAB라네요.. 매우단순아메바...ㅋㅋㅋ
ㅋㅋㅋ 아메바라뇨..
허시먼 선생님께서는 “저는 언제나 플로베르를 읽거든요.”라고 말씀하셨답니다. 음하하하 (<앨버트 허시먼>을 완독한 자의 거만한 자랑질 V, 천페이지 넘는 책을 읽었으니 이렇게라도 생색내야 한다..) 소설을 통한 감정 이해를 말씀하시니, 얼마 전에 읽은 앤드류 포터의 신작 단편집 <사라진 것들>을 읽은 경험이 떠오르는데요. 앤드류 포터는 힘을 뺀 채로 무심히 쓴 것 같은데 (독자에겐 그렇게 느껴짐), 읽고 난 후에 스토리보다 내게 남은 느낌이 더 강한 작품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느낌을 뭐라고 해야 좋을 지 모르겠더라구요. 이 느낌의 정체는 뭐지? 아련함? 서글픔? 그리움? 안타까움? 허망함? 이 모두인 것 같기도 하고, 어느 것도 아닌 다른 감정인 것 같기도 하고.. 일부러 하루에 한두편 이상 읽지 않으면서 서로 다른 단편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느낌도 감지해보려고도 했는데, <사라진 것들>을 읽은 후 제게 남은 느낌들을 말/글로 표현할 수가 없네요. 결론은.. 앤드류 포터 씨, 다음 작품 빨리 내주시오!!
사라진 것들소설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으로 한국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은 앤드루 포터의 두번째 소설집. 작가에게도, 한 사람의 삶에서도 결코 짧지 않은 시간, 『사라진 것들』의 가장 주요한 주제는 바로 그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오오 허시먼 플로베르에 이어 앤드류 포터까지 독서 희망 목록이 또 증식 중입니다. 소개 감사합니다.
오! <사라진 것들> 완전 공감하면서 읽었고 소피아님의 느낌에도 동의가 되어요. 40대 언저리의 삶의 구간에서 각각 다르지만 비슷한 것도 같은 단편 속 화자들이 이전에는 있었지만 지금 삶에서 없어진 사람(옛 애인, 옛 친구, 친구의 애인, 이웃), 사물(단골 레스토랑의 메뉴, 남에게 받은 선물), 시간(담배피는 시간, 와인과 심야의 여유)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데 ㅡ 물론 이렇게 단순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진짜 제가 제발 읽어보라고 기회 될때마다 영업중 ㅡ 여운이 진했어요. 첫 단편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이래 십수년만에 나온 이 책을 읽으니 작가가 나이 들어가는만큼 작품도 나이들어간다는(좋은 의미에서) 느낌이 드는데, 십년 후 다음 작품집이 나온다면 그것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풍의 남성 화자 단편집이 나오는 걸까.. 하고 기대중이예요. (논점이탈 급 소설 영업 죄송 ㅎㅎ)
“<사라진 것>들을 읽고 느낀 감정을 30자 이내로 요약하시오.” —> 이런 거 해보면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감정 묘사가 많이 나올 것 같아요. 이것이 바로 구성된 감정이론의 예시. 모시모시님이 <사라진 것>들을 읽으셨다니 내적 하이파이브 날리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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