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04.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D-29
해석학적, 구성주의적 입장이 더 익숙하고 편안한 사람으로서 저자의 설명에 잘 설득되고 있습니다~ 또한 재작년에 읽은 Livewired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된다, 생후배선과 많은 맥락을 함께 하는거 같습니다. 이게 뇌과학, 감정과학? 분야에서도 주류가 되어가는 군요
오.. 제작년 데이비드 이글맨 책을 읽으셨네요. 저도 나중에 읽어봐야겠어요.
우선 저자가 논리적으로 이야기하고 글도 잘 쓰셔서 무척 호감이 갑니다. ‘구성된 감정 이론’이 만약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감정은 없다는 데까지 나아간다면 제가 납득하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지만요. 애덤 윌킨스의 『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어요. 인간만큼 얼굴 표정이 다채로운 동물이 없으며, 이는 진화의 결과라는 주장을 펼치는 책입니다. 의사소통, 특히 감정 표현을 위해 얼굴 근육이 매우 섬세하게 발달하고 표정이 대단히 풍부한 동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품은 감정에 따라 표정을 짓는 것, 그리고 표정을 보고 상대의 감정을 파악하는 것이 인간에게는 매우 중요한 능력이고, 그 능력을 발달시켰다고 윌킨스는 주장합니다. 무척 설득력이 높은 책이었고 읽는 재미도 좋았거든요. 그런데 리사 배럿의 주장에 따르면 표정은 그 정도로 정확하고 보편적인 의사소통 도구는 못 되는 거네요. 배럿 박사님이 표정의 역할을 아예 부인한 것은 아니지만요.
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5억 년 전 최초 척추동물의 얼굴부터 오늘날 현대 인류의 얼굴까지, ‘얼굴 진화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다루고, 인간의 얼굴과 인간의 본질 사이에 얽힌 촘촘한 그물망을 밝혀 나가면서 인간의 진화에서 얼굴이 갖는 중요성을 규명하는 책이 출간되었다.
저는 리사 배럿의 책을 읽기 전에도 우리는 모든 매체를 통해 표정에 대해 세뇌당했다..는 주의라.. 어린아이부터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혹은 직업적인.. 미디어에 많이 노출될 수록 선입견을 갖게 되는 부분이 표정에 대한 인식이더라고요. 전 그래서 선입견 없이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고 그게 더 재미있고 흥미롭기도 했습니다. 물론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착오에 빠지게 하는 가장 큰 부분(특히 정치인의 발언)인데 결국은 얼굴이나 말이 아닌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을 이해해야 하는데.. 그러기엔 또 시간이 많이 걸리겠죠.
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돌들이 눈 찡긋하거나 혓바닥 내밀면서 아기 같은 표정 짓는 거 보면서 ‘다 큰 성인이 저게 뭐람’ 하고 남사스러워 했거든요. 그런데 하도 많이 봐서 이제 세뇌가 좀 됐습니다.
그런데 분노 등의 감정을 학습하는 것에서 의문이 생긴 것은.. 그렇다면 이렇게 아이의 감정 표현 등에 감정 언어로 대응시켜주고 반응하는 부모 등 근처의 어른들의 양육 학습 의도와 연관이 있을 텐데.. 만약 이런 어른들의 보육이나 교육이 부족한 환경의 아이들이라면 어떨까요? (생각만 해도 슬퍼지지만..) 그리고 소피아님의 문화 간 차이에 대해 생각해보다 작년 12월에 출판된 이 논문을 발견했는데요. WEIRD (western, educated, industrialized, rich, democratic) 문화에서는 감정을 정신상태의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이런 문화 밖의 비WEIRD 문화권에서는 일상적인 회화의 단어들이 정신보다 육체와 더 밀접한 현상을 반영한다는 면에서 감정의 granularity 형성에 감정 단어들만이 감정을 구성하는 이론에 반문을 제기하는 논문인데.. 아쉽게도 논문 전체를 볼 수 없어서 구체적 내용은 못 보네요.
이 논문의 abstract를 읽고 나니 그러고보니 우리 말에서 감정상태를 반영하는 말 중 정신을 반영하는 말은 학술적이나 문학적으로 많이 쓰이긴 하는데 실제 일상 회화에서 감정을 나타내는 말에 신체와 관련된 표현이 많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제가 생각한 건 간담이 서늘한, 손에 땀을 쥐는, 다리가 후들거리는, 소름이 돋는, 오금이 저린, 간이 콩알만해지는, 몸 둘 바를 모르는, 맥 빠지는, 속이 끓는, 애간장이 타는, 복장 터지는 등의 관용표현이 있는데요.
우리나라 고유의 개념이라는 '홧병'도 어쩌면 alexithymia처럼 자신의 affect를 제대로 말로 표현 못하고 신체적 증상으로 대신 나타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정말 홧병의 정체를 서양인은 뭐라고 생각할까 진지하게 생각해본적 있어요 ^^
그런데 한때 화병이 한국인 특유의 병인 것처럼 알려지고 영어 사전에도 등재되고, DSM-4에도 언급됐지만, DSM-5에서는 빠진 걸로 압니다. 그냥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정서장애의 일종인 것으로... 자세한 것은 @borumis 님께 여쭤보렵니다. ^^
신병도 화병도 DSM -IV에는 부록처럼 문화와 관련된 증상으로 언급되었지만 DSM-V에선 특별히 올리진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거기서도 말했듯이 여기 안 나온다고 무시할 수는 없고 대신 문화마다 어떤 증상을 질병으로 볼지 아니면 다른 현상으로 볼지 논란이 많아 어떤 것들은 빠졌다고 하네요. 예를 들어 화병은 우울증, 신체화증상, 불안장애 등 여러가지가 섞였다고 볼 수도 있고요. 신병은 어떤 이들은 정신병이 아니고 종교적 의미로 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대인공포증은 한국과 일본 둘다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라네요.
아, 그렇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DSM에 올라 있지 않다고 무시할 수는 없는 거군요. 신병도 DSM-4에 올라 있었다는 것도 지금 알았네요. 가끔 다큐멘터리에서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된 사람들의 사연을 볼 때 저는 극도의 좌절감 때문에 신내림이라는 도피처를 찾은 것 아닌가 혼자 생각하곤 했어요. 샤먼이 있는 다른 문화권에도 신내림이라는 현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러고 보면 구약의 예언자들이 겪는 일들이 좀 신내림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요.
@오구오구 @borumis 오, 우리 통했어요. 여러분에게 데이비드 이글먼의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Livewired)』 후속 독서 책으로 추천하려고 했거든요. 저는 원래 이글먼을 좋아하는데, 이 책을 읽고서 더욱더 팬이 되었어요. @장맥주 작가님께서 작품 작업하시는 데에도 여러 영감을 줄 수 있을 만한 책이니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 - 뇌과학과 신경과학이 밝혀낸 생후배선의 비밀세계적으로 촉망받는 젊은 뇌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데이비드 이글먼의 신작. 원서 제목이자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LIVEWIRED’는 저자가 뇌 가소성Brain Plasticity이 가진 의미에 한계를 느끼고 새롭게 만든 용어다.
네, 읽어보겠습니다. 데이비드 이글먼 내가 좋아하는데... 읽었는데... 문학평론가 아닌가... 하고 찾아보니 제가 읽은 사람은 테리 이글턴이더군요.
리사 배럿이 줄기차게 외치고 있는 “다양성이 표준이다”라는 주장과 맞닿아 있는 개념 중 하나가 “감정 입자도”라고 생각합니다. 흥미롭기도 하고 여러 측면에서 접근해볼 수 있는 개념이기도 한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성별에 따른 감정입자도의 차이, 한 개인의 생애 주기별로 달라지는 감정입자도의 변화, 직업군별로 달라지는 감정입자도, 거주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감정입자도 차이 등등. 요즘 하도 호르몬 이야기들을 많이해서 (도파민, 세로토닌, 코르티솔 등) 과학에서는 감정을 호르몬으로 접근한다는 개인적인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이 다양한 감정입자도의 차이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지 문득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ESM (experience sampling method)를 쓴다는데, 이건 피험자의 self-report 방식인 거 같은데요? 객관성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겠군요. 뇌과학분야는 여전히 실험 방식에 있어서 심리학적 방식을 공유하나보죠? 뇌과학연구는 모두 fMRI같은 걸 찍어대는 건줄 ^^;;
fMRI도 실은 명확한 해부학적 경계가 없는 ventral tegmental area 같은 특정 부위들은 보기 힘들고.. 또 감정이 일시적이고 상호교체적인 양상을 보여서 시간이 필요한 fMRI로 포착하기 힘든 단점도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런지 arousal value 등 일관한 결과를 보이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fMRI 연구들은 대개 측정에 어떤 감정상태에서 neutral emotion state를 빼는 계산을 해야하는데 그 중립상태가 실제로 중립인지 아니면 지루해진 상태거나 다른 모호한 감정상태인지에 따라 측정계산 결과가 일관성 없게 나올 수 있대요. 전 fMRI는 안 찍어봤지만.. 매년 brain CT나 MRI를 찍어야하는 선천적 뇌혈관 기형이 있어서..^^;; 여기저기 검색해보고 지인들을 통해 줏어들은..;;
@borumis 님이 언급하셔서 생각나는 걸 덧붙여 볼게요. fMRI 관련해서 비판적인 연구자들이 제일 많이 지적하는 대목 가운데 하나는 스케일(Scale) 문제도 있어요. 눈에 보이는 뇌의 특정 부분 신호가 뉴런 수준에서 보면 정말 엄청나게 큰 집합이니까요. 예를 들어, fMRI가 주목하는 영역은 직경 0.5밀리미터 정도에서 약 2초 동안 일어나는 활동의 평균인데, 이 정도 영역에는 약 550만 개의 뉴런이 1000분의 1초의 시간 척도로 작동하거든요. 직경 0.5밀리미터는 너무 넓은 범위이고, 2초는 아주 긴 시간이죠. 또 다른 문제는 복잡성입니다. fMRI를 이용한 뇌 과학은 사람이 가지는 경험의 복잡성에 주의를 기울이기 어렵죠. 예를 들어, '원조 식량을 나눠줄 때 공평하게 나눠줄지(평등) 아니면 소수에게 충분한 식량을 나눠줄지(효율) 선택하라!' 과학자는 이렇게 선택지를 주고서 피실험자의 뇌 사진을 fMRI로 찍어서 뇌의 어떤 영역이 관여했는지 살피는 식으로 연구합니다. (이 연구는 <사이언스>에 실리기도 했죠.) 하지만, 복잡한 현실에서 원조 식량을 나눠주는 자원봉사자들이 이런 식의 단순한 양자택일의 상황에 처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죠. 앞으로 fMRI를 이용한 여러 연구 성과가 많이 나오고 또 기사나 책에서 그 결과에 대한 다양한 해석도 많이 나올 텐데. 이런 한계도 함께 고려가 되면 훨씬 더 균형 잡힌 접근이 되리라 생각해요.
이 타래에 댓글 달고 싶었는데 너무 빨리 올라가버렸..;; 두 분 댓글을 읽으니 fMRI도 현 시점에서는 나름의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약간 갸우뚱했던 지점은, 리사 배럿이 심리학에도 비슷한 개념이 있을 거라고 짐작되는 이론을 뇌과학으로 가져와 신조어를 (“감정입자도”)를 만들었으면 당연히 뇌과학스러운(?) 방법으로 실험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었어요. 여전히 심리학과 비슷한 방법으로 실험한다? 에서 어리둥절.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인터넷에서 본 게시물 중에 fMRI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게 있었어요. 아주 구식 게임기를 놓고, 게임을 하면서 회로 기판에서 어느 영역이 활성화되는가를 측정한 거예요. 분명히 다른 종류의 게임을 할 때 서로 다른 영역이 활성화되기는 하지만 그걸로 ‘무슨 게임을 하고 있다’고 추측하기는 참 막막하더라고요. 사람 뇌가 게임기 기판은 아니겠지만 꽤 흥미로웠습니다.
이 책 읽으면서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네 자신이 구성하는 세계) 원효대사가 진정 불세출의 선각자가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요, 원효대사의 해골물 정신이 21세기에도 통하는 개념이라고…아닌가? 내 뇌가 어마무시하게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몸뚱이가 게을러터져서 뇌도 같이 게으른 줄 알았는데.. (니가 고생이 많다.) 내 몸이 쉰다고 뇌도 쉬는 게 아니라니..수십년동안 비슷한 강도로 그렇게 맹렬히 열일하는 게 가능할까, 그러다가 지쳐 파업이라도 하지 않을까 싶어서 갑자기 무서워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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