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보르헤스 읽기] 『알렙』 같이 읽어요

D-29
아무리 길고 복잡한 운명이라고 할지라도, 모든 삶은 실질적으로 ‘단 하나의 순간’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가 누구인지 영원히 알게 되는 순간이다.
알레프 타데오 이시도로 크루스의 전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나는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내가 가졌던 얼굴을 찾고 있다. — 예이츠, 「나선 계단」
알레프 타데오 이시도로 크루스의 전기, 제사,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내 목적은 그의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게 아니다. 그 이야기를 구성하는 수많은 낮과 밤 가운데 나는 단지 하룻밤에만 관심이 있다.
알레프 69,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그는 이미 과거의 삶을 고친 상태였다. 그즈음에 그는 마음 깊은 곳에서는 행복하지 않았지만, 틀림없이 자기 자신을 행복한 사람으로 여겼을 것이었다.
알레프 71,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따데오 이시도르 끄루스(1829-1874)의 전기] 트록툴프트가 자신의 동족을 버리고 라벤나를 수호하기로 마음 먹은 순간은 자기 인생 전체를 걸 정도로 커다란 전환의 순간입니다. 그런 전환의 순간이란, 부분이 전체를 압도하고도 남는 비대칭의 지점이기도 합니다. 보르헤스가 이 소설에서 설득하려는 것도 바로 끄루스가 느낀 전환의 순간이고요. 언젠가 보르헤스는 자신의 책에서 단테의 신곡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쓴 적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인생의 어느 한순간에, 즉 우리가 자기 자신과 영원히 만나는 순간에 규정되고 맙니다." 오래전부터 전통적인 의미의 소설에서 인물들은 변하거나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 변화하거나 변화하지 않는 지점은 한 인물이 "자기 자신과 영원히 만나는 순간"을 보여주는데요, 생각해보면 소설은 그런 순간을 논리가 아닌 문체로 설득하는 장르가 아닌가 합니다. 거의 모든 소설에서는 이런 순간이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든 그렇지 않든 그렇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본문 얘기를 좀 해보면, 따데오 이시도르 끄루스는 젊었을 적에 가우초로 대변되는 야만의 세계에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불가사의한 단절의 시간을 건너, 한 지방 경찰서의 경사로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운명에 순응하면서도 그런 줄 모르고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처럼 "가슴 깊은 곳에서는 그러지 않았지만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은 채로요. 그러다가 끄루스는 우연히 살인자 마르띤 피에로를 맞닥뜨리게 되고, 자기 운명 속에 잠복해 있었던 진짜 얼굴과 진짜 목소리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끄루스는 영원히 자기 자신이 되어버리는데, 여기서 말하는 '이때'란 전체가 부분으로 수렴하는 "단 한순간"입니다. 마지막으로 보르헤스가 그 "단 한순간"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해당 대목이 재밌다고 생각되어서, 네 가지 버전을 모두 살펴보겠습니다. 차례로 황병하 선생님, 송병선 선생님, Andrew Hurley의 영역본, 보르헤스의 원문입니다.
말하는 보르헤스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논픽션 전집. 1994년에 첫 출간된 보르헤스 전집이 픽션 모음집이었다면 이번 전집은 보르헤스가 발표했던 논픽션을 모았다. 픽션과는 다른 매력의, 인간적인 보르헤스를 만날 수 있다.
(미래 속에 감추어진 그 근본적이고 찬란한 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자신의 원래의 얼굴을 보고, 자신의 원래의 목소리를 들었던 그 밤. 이 밤을 잘 이해하는 것으로 그에 관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보다 정확히 말해 이 밤의 한순간, 아니 이 밤에 그가 했던 행동 하나. 왜냐하면 행동들이란 바로 우리 인간들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길고 복잡한 과정을 거쳤건 간에 어떤 운명도 단 한순간의 현실 속에 다 담겨 있는 법이다. 인간이 영원히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 순간.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더는 아킬레스의 전설적인 이야기 속에서 무인으로서의 자신의 미래를 보았다고 전해진다. 스웨덴의 찰스 7세는 역으로 알렉산더에게서 그것을 보았다고 한다.
알렙 79-80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어느 찬란하고 중요한 밤이 미래에서 비밀스럽게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밤에 그는 마침내 자신의 얼굴을 보았고,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들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날 밤, 다시 말하면 그날 밤의 한순간, 혹은 그날 밤의 한 행위는 그의 모든 이야기를 내포한다. 그것은 행위들이 바로 우리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길고 복잡한 운명이라고 할지라도, 모든 삶은 실질적으로 ‘단 하나의 순간’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가 누구인지 영원히 알게 되는 순간이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자기의 냉혹한 미래가 아킬레우스의 멋진 이야기 속에 반영된 것을 보았으며, 스웨덴의 카를 12세는 알렉산더 왕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보았다고 전해진다.
알레프 71-72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In the future, secretly awaiting him, was one lucid, fundamental night­ the night when he was finally to see his own face, the night when he was fi­nally to hear his own true name. Once fully understood, that night encompasses his entire story-or rather, one incident, one action on that night does, for actions are the symbol of our selves.) Any life, however long and complicated it may be, actually consists of a single moment⏤the mo­ment when a man knows forever more who he is. It is said that Alexander of Macedonia saw his iron future reflected in the fabulous story of Achilels; Charles XII of Sweden, in the story of Alexander.
알렙 Andrew Hurley, Collected Fictions, 222p.,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Lo esperaba, secreta en el porvenir, una lúcida noche fundamental: la noche en que por fin vio su propia cara, la noche en que por fin oyó su nombre. Bien entendida, esa noche agota su historia; mejor dicho, un instante de esa noche, un acto de esa noche, porque ios actos son nuestro símbolo). Cualquier destino, por largo y complicado que sea, consta en realidad *de un solo momento',* el momento en que el hombre sabe para siempre quién es. Cuéntase que Alejandro de Macedonia vio reflejado su futuro de hierro en la fabulosa historia de Aquiles; Carlos XII de Suecia, en la de Alejandro.
알렙 Ficciones. El Aleph. El informe de Brodie, 168p.,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각자 원하는 언어로 번역해봐도 재밌을 겁니다. 부끄럽지만 저도 해봤는데요, Claude와 DeepL의 힘을 빌려서 이렇게 한번 해봤습니다. "(그 명료하고 근원적인 밤이 미래에서 은밀히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그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된 밤, 마침내 자신의 진짜 이름을 듣게 된 밤이었다. 밤을 제대로 이해하기만 한다면 그의 역사 전체가 설명된다. 그러니까 그 밤의 한 순간, 그 밤의 한 행위로써 말이다. 왜냐하면 행위들이야말로 우리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길고 복잡한 운명이라 해도 실제로는 단 하나의 순간으로 이루어진다. 바로 한 인간이 영원히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 순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아킬레우스의 전설에 반영된 자신의 철의 미래를 보았다. 스웨덴의 카를 12세 역시 알렉산더 대왕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미래를 보았다."
오 다른 판본으로 보니까 재미있네요. 송병선 선생님 번역으로 읽었을 때 "~ 내포한다" 부분이 잘 이해가 안 되었었는데, 스페인어 동사 agotar, 영어 동사 encompass 로 되어있었군요. 이렇게 다 펼쳐놓고 보니 감이 더 옵니다. :)
아하, 그렇군요! agotar라는 표현이 이 지점에서는 굉장히 시적이어서 한국어로 뭐라고 옮겨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바닥을) 드러내다', '탕진하다', '고갈시키다'라는 의미로 나오는데, 이 맥락에서 굳이 대응되는 표현을 찾자면 "그 밤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의 삶이 모두 고갈된다/낱낱이 드러난다" 정도가 될 것 같네요. 고맙습니당!
화제로 지정된 대화
[엠마 순스~] 내용 자체는 직선적이고 간단한 편에 속합니다만, 현실의 사실과 소설적 진실 사이의 차이점에 대한 보르헤스의 사고관을 엿볼 수 있는 단편입니다. 추측컨대, 주인공 엠마 순스의 아버지인 엠마누엘 순스 씨는 1916년 경에 로웬탈 방직 공장에서 경리 계원으로 일을 하다가 기금 착복을 했다는 억울한 혐의를 받고 해고된 인물 같습니다. 소설은 엠마 순스가 1922년 1월 14일 그녀의 아버지가 베루날 수면제를 먹고 자살했다는 편지를 받으면서 시작됩니다. 엠마 순스는 아버지의 억울한 혐의를 미리 알고 있었고, 이에 따라서 아버지를 대신해서 은밀히 복수를 행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보르헤스가 정통적인 단편 소설을 쓰는 데도 능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아래 소개할 두 문장은 전형적인 추리 소설의 플롯과 서스펜스물의 구성 원리가 잘 집약된 인용구가 아닌가 합니다.
로웬탈은 그녀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엠마 순스는 그 하찮은 사실에서 자기가 유리한 입장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알레프 77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사실 그 이야기는 믿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본질적으로 사실이었기에 모든 사람들을 납득시켰다. 엠마 순스의 말투는 진실이었고, 그녀가 느낀 수치심도 사실이었고, 그녀의 증오도 진실이었다. 또한 그녀가 겪었던 능욕도 사실이었다. 단지 주변 정황과 시간, 그리고 한두 개의 이름들만이 거짓이었다.
알렙 엠마 순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그녀는 얼른 그 날이 지나갔으면 하고 바랐다. 그리고 즉시 그녀는 그런 소망이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의 죽음만이 세상에서 일어난 유일한 사건이었고, 그런 일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종이를 집어 들고는 자기 방으로 갔다. 그러고는 마치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이 어떤 것인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살그머니 그 편지를 서랍 속에 보관했다. 아마도 이미 일어날 사건들을 보기 시작했을 것 이다. 그녀는 자기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 이미 되어 있었다.
알레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엠마 순스] 소설의 세부 사항에도 논할 내용이 많기는 하지만, 여기서는 현실의 사실과 무관하게 소설은 장르로서 소설적 진실을 탐구한다는 점을 중점적으로 말해보고 싶습니다. 소설에서 엠마 순스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서 로웬탈 공작을 죽일 계획을 세우고 실행합니다. 현실로 이러한 사건을 가져온다면 엠마 순스는 사실이 아닌 일을 거짓으로 꾸며서 없는 죄를 뒤집어 씌울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다는 점에서 무고로 처벌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소설은 현실이 아니라는 간단한 사실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엠마 순스의 무고를 운운하지 않고도 그 소설적 기법과 진실성을 논할 수 있습니다. 즉, 현실의 사실과 소설적 진실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현실의 사실과 소설적 진실을 혼동하면서, 거기에 함부로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드라마 속 악역을 연기하는 배우를 찾아가서 뺨을 때리는 행위만큼이나 어리둥절한 상황이 되기 십상입니다. 소설은 얼마든 도덕적으로 논의될 수 있지만, 그러한 논의에 앞서서 소설은 허구의 장르로서 나름의 자유와 도덕적 유예 공간을 확보한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유예공간에서 자유와 부자유, 도덕과 비도덕, 법과 범법의 경계를 사유할 여지가 생기는 것이고요. 그러므로 소설의 사실을 현실과 등치에 놓고 잘잘못을 논하며 소모적인 논의를 하기보다, 애초에 소설이 지향하고자 했던 소설적 진실이 무엇인지 얘기해보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보르헤스가 엠마 순스를 통해서 전달하고자 했던 소설적 진실은 마지막 구절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신영복 선생님의 글 한 대목도 같이 첨부합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믿기 힘든 것이었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진실이었기에 모든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엠마 순스의 그 떨리는 어조는 진실이었고, 그녀의 증오는 진실이었다. 그녀가 겪었던 분노 또한 진실이었다. 단지 주변 정황과 시간, 그리고 한두어 사람의 이름들만이 거짓이었을 뿐이었다.
알렙 92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일흔이 넘은 노인이 있었습니다. 집도 절도 없고, 편지도 접견도 없는 분입니다. 전과는 본인이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많았습니다. 당연히 감방에서 대접도 못 받고 한쪽 구석에서 조그맣게 살고 있는 노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자기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는 때가 있습니다. 신입자가 들어올 때입니다. 신입자가 입소 절차를 마치고 감방에 배치되어 들어오는 시간이 아마 이 시간쯤 됩니다. 대부분의 신입자들은 문지방을 밟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들어와서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화장실 옆 자리에 가서 앉습니다. 대단히 긴장된 이 순간이 노인이 나서는 순간입니다. "어이 젊은이" 하고 부릅니다. 그렇게 다정한 소리는 아니지만 신입자는 그 소리가 매우 반갑습니다. 그러고는 노인다운 몇 가지 질문을 합니다.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형은 몇 년이나 받았고 만기는 언제냐는 등 정말 눈물 나는 얘기입니다. 그러고는 이어서 "일루 와 봐" 하고는 노인 옆으로 불러 앉히고는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내가 말이야"로 시작되는 긴 인생사를 이야기합니다. 신입자가 들어오자마자 시작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삼일 지나서 이 노인이 감방에서 별 끗발이 없다는 걸 알고 나면 일정日政 때부터 시작되는 그 긴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사람이 없습니다. 첫날 저녁에 바로 시작해야 꼼짝없이 끝까지 듣습니다. 그가 빠트린 것이 있으면 우리가 채워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노인의 이야기가 계속 각색된다는 사실입니다. 창피한 내용은 빼고, 무용담이나 미담은 부풀려 넣습니다. 1~2년 사이에 제법 근사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있습니다. 자기도 각색된 이야기에 도취되어 어떤 대목에서는 눈빛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젊은 친구들은 노인네가 '구라푼다'고 핀잔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런 심정을 잘 이해합니다. 과거가 참담한 사람이 자위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늦가을이었습니다. 하염없이 철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 그 노인의 뒷모습을 우연히 목격하게 됩니다. 노인의 야윈 뒷모습이 매우 슬펐습니다. 저분이 늘 얘기하던 자기의 그 일생을 지금 회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만약 저 분이 다시 인생을 시작한다면 최소한 각색해서 들려주던 삶을 살려고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색한 인생사에는 이루지 못한 소망도 담겨 있고, 반성도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노인의 실제 인생사와 각색된 인생사를 각각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전자를 '사실'이라고 하고 후자를 '진실'이라고 한다면 어느 것을 저 노인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소망과 반성이 있는 진실의 주인공으로 그를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가 늘 이야기하던 일정 시대와 해방 전후의 험난한 역사가 그의 진실을 각색한 것이 사실로서의 그의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한 고민이기도 하지만 진실이 사실보다 더 정직한 세계 인식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것은 그때 그곳의 조각에 불과합니다. 시적인 관점이라는 것은 사실성과 사회미에 충실하되 사실 자체에 갇히지 않는 것입니다.
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31-32쪽, 신영복 지음
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강의> 출간 이후 10년 만에 출간되는 선생의 ‘강의록’이다. 이 책은 동양고전 말고도 <나무야 나무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 선생의 다른 책에 실린 글들을 교재 삼아 평소에 이야기하신 존재론에서 관계론으로 나아가는 탈근대 담론과 세계 인식, 인간 성찰을 다루고 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아스테리온의 집~] 먼저 말씀드리면 이 작품은 송병선 선생님 번역으로 읽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양쪽 번역본을 번갈아가면서 보다가 상이한 부분이 꽤 있어서 원문과 영어 번역본을 살펴보니, 황병하 선생님의 번역본에서 오역으로 추정되는 부분이 꽤 많이 보입니다. 특히 각주 5번이 달려 있는 문장, "허망하게도 나의 어머니는 여왕이 아니었다" 부분은 오역으로 추정됩니다. 원문은 "No en vano fue una reina mi madre;"이고, 영역문은 "Not for noth­ing was my mother a queen;"입니다. 영역본의 'Not for nothing' 부분에 대응하는 원문은 'No en vano'으로 추정되는데, 직역하면 '괜히 ~가 (된 것이) 아니다'가 됩니다. 따라서 그 의미는 "허망하게도 나의 어머니는 여왕이 아니었다"가 아니라 '아닌 게 아니라 나의 어머니는 여왕이었다/나의 어머니는 진정 여왕이었다' 이런 의미가 되어야 하지 않나 합니다. 실제로도 송병선 선생님은 이 부분을 "우리 어머니가 왕비였다는 사실은 무의미하지 않았다"라고 옮기셨습니다. 대충 비슷한 의미 같아요. 그 다음에 오는 문장도 황병하 선생님의 번역은 의아한 부분이 꽤 있는데, 이 모임의 목적은 번역이 아니니까 이쯤 하겠습니다. 소설에 대해서 좀 얘기를 해보면, 양쪽 번역의 각주에서 친절하게 스포(?)하고 있듯이 이 작품은 테세우스의 신화 속에서 죽임을 당하는 반인반수의 괴물 미노타우로스의 1인칭 시점에서 쓰여집니다. 송병선 선생님의 각주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아스테리온은 아스테리우스의 대격(accusative case)으로서, ‘별로 장식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1인칭의 '나'가 자신이 사는 '집'은 다름 아닌 괴물을 가두는 미궁이었음이 밝혀지는 구조입니다. 생각해보면 모든 미로는 지면에서 바라보면 가로막힌 벽과 드문드문 이어지는 통로만을 보여주지만 하늘쪽으로는 완벽히 뚫려 있기 때문에 완벽한 하늘과 무수한 별들을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너무너무 아쉬운 점은 한국어 번역본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이 작품을 접했고, 그 때문에 이 작품을 처음 읽는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영역본만 해도 작품 초반부터 각주로 이렇게 스포를 하고 있지는 않거든요. 제 생각에 이 작품의 핵심은, 이 작품이 영웅된 관점에서 3인칭의 '괴물' 미노타우로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게 아니라, 자기가 괴물임을 알지 못하고 다만 자신을 왕의 자손으로만 아는 1인칭의 '왕자' 아스테리온의 입장에서 쓰여졌다는 사실입니다. 추측컨대 보르헤스의 애당초 의도라면(괴물 미노타우로스가 아니라 비운의 왕자 아스테리온을 경험해보라는), 독자들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아스테리온이 신화 속의 미노타우로스였음을 알게 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각자 능동적으로 이 작품의 세부 사항을 다시 뜯어보면서 기존의 독해를 반추해보는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미궁의 중심부에 닿았을 때부터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미궁이 시작되는 것처럼, 그렇게 걸어온 길들을 되짚어나가면서 미궁의 구조를 찬찬히 뜯어보고 경험하는 것처럼요. 개인적으로는 작품보다는 작품을 둘러싼 외적 상황으로서 너무 아쉬운 작품입니다. 양쪽 번역본 모두 그 편집에서 작품의 의도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만일 저라면 처음이 아니라 마지막 결론부에서 미노타우로스의 이름이 등장할 때 아스테리온에 관한 각주를 넣었을 것 같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아래에 인용할 '아스테리온의 놀이'는 의미심장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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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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