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보르헤스 읽기] 『알렙』 같이 읽어요

D-29
『알렙』은 총 17개의 단편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한 권을 두 번의 모임에 걸쳐 읽겠습니다. 이 모임에서는 전반부 8개 단편을 29일 간 읽겠습니다. 물리적인 볼륨은 적지만 생각해볼 거리는 더 많기 때문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대략 3일에 한 편 정도 읽는 일정입니다. 전반부 8편의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죽지 않는 사람들 ⏤죽어 있는 사람 ⏤신학자들 ⏤전사(戰士)와 포로에 관한 이야기 ⏤따데오 이시도르 끄루스(1829-1874)의 전기 ⏤엠사 순스 ⏤아스테리온의 집 ⏤또 다른 죽음 한편, 『알렙』은 민음사 세계전집시리즈로 출간된 송병선 선생님의 번역본으로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제게 Andrew Hurley의 영역본도 있고, 스페인어 원문도 있으니 필요할 때는 적절히 소개하겠습니다. 같이 비교해 보면서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 한 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제 짤막한 감상을 남기겠습니다. 대화하실 때는 단편별로 [이 대화에 답하기] 기능을 활용해서 대화 타래를 엮어가요. ※ 지나간 단편에 대한 언급도 얼마든 가능합니다. 단편별로 나눠놓은 기간에 구애하지 마시고 [게시판] 기능을 활용해서 언제든 대화 타래에 동참해주세요. ※ 제 아이디를 탭 하고 [만든 모임]을 보시면 이전에 열렸던 모임의 성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대략적인 방향성(?)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모임에 대한 의견도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 참여 인원과 관계없이 24/4/1에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호머였던 것이다. 간단히 말해 나는 마치 율리시즈처럼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될 것이다. 간단히 말해 나는 모든 사람이 될 것이다, 즉 나는 죽을 것이다.
알렙 죽지 않는 사람들 p.35-p.36,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이스라엘 사람들과 기독교인들과 이슬람교도들은 불사성을 신앙한다. 그러나 그들이 현세에서 드러나 보인 숭배의 양식은 그들이 단지 그렇게 믿었던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거해 보인다.왜냐하면 그들은 현세 외의 모든 세계를 무한의 숫자 속에 담아 그것들을 현세에 대한 상이나 벌로 운명 지어 놓기 때문이다. 내게 보다 그럴 듯해 보이는 것은 힌두스탄 지역의 어떤 종교에서 말하는 수레바퀴이다. 이 수레바퀴 속에서는 시작이라는 것도 없고 끝이란 것도 있을 수 없다. 현재의 삶은 전생의 결과이며 그리고 그것은 다음 생을 낳는다. 그러나 그 어떤 삶도 전체를 결정짓는 요인이 되지 못한다.
알렙 죽지 않는 사람들 P.26,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오딸롤라는 세월이 그에게 가져다 준 백발과 피로와 쇠약감과 피부의 균열들을 유심히 바라본다. 이 늙어 빠진 영감이 자신들을 통솔했다는 생각이 들자 그에게 울컥 격양감이 솟구친다.
알렙 죽어 있는 사람 p.43,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죽음을 맞이하기 전 오딸롤라는 시초부터 그들이 자신을 배반했고 이미 사형이 언도되어 있었고, 그들은 이미 그에게 죽음의 판결을 내렸고, 그리고 반데이라에게 그는 이미 죽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사람과 지휘권과 승리를 허용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알렙 죽어 있는 사람 p.47,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이 이야기의 끝부분은 단지 은유 아닌 다른 방법으로 기술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천국에서 전개되기 때문이다. 혹 아우렐리아노는 하느님과 얘기를 나누었는데 하느님은 종교적 차이라는 것에 대해 너무 무관심한지라 그를 후한 데 빠노니아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하느님의 신성한 정신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야유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천국에 이르러 아우렐리아노는 도리어 깊이를 알 수 없는 하느님의 속성 안에서는 자신과 빠노니아(정통 교도와 이단자, 증오하는 자와 증오 받는 자, 고발자와 희생자)가 같은 한 인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하는게 더 정확하리라.
알렙 신학자들 p.64-65,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지난번에 <픽션들> 모임 신청했다가 밥벌이 일이 너무 바빠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네요.ㅜ 이번에는 좀 더 성실히 참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네 느긋하게 참여해주세요:) 지나간 단편이라도 언제든 대화 타래에 동참해주세요!
그 여자 포로의 운명과 드록툴프스에 운명 사이에는 1300년의 시간과 바다가 가로 놓여 있다. 이제 그 두 사람은 똑같이 영원히 되돌아올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라베나의 안녕을 선택했던 그 야만인의 모습과 사막을 선호했던 그 유럽 여자의 모습은 서로 상충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어떤 비밀스러운 충격, 이성보다 더 심원한 어떤 충격의 포로가 되었고 스스로조차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을 그 충격에 순종했다. 내가 들려준이 두 가지 이야기들은 똑같은 하나의 이야기일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신에게 있어서 동전의 양면이란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알렙 전사와 포로에 관한 이야기 p.73-74,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그는 한 운명이 다른 운명보다 나을게 없지만 모든 인간은 자신의 가슴 안에 들어있는 운명을 존경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벌써 기마와 제복이 거추장스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우글거리는 개떼들의 운명이 아닌 늑대의 운명이 자신에게 친밀하게 느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지금 자신이 싸우고 있는 그 상대가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알렙 따데오 이시도르 끄루스의 전기 p.82,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또 다른 종류의 우스꽝스러운게 있다면 그것은 나 아스테리온이 수인이라는 사실이다. 잠겨 있는 문이 없다는 것을 되풀이해 말아야 할까? 자물쇠 또한 없다는 것을 덧붙여 말해야 할까?
알렙 아스테리온의 집 p.95,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안녕하세요? 일단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인용문은 해당 단편을 언급할 때마다 따로 [대화에 답변하기] 기능을 활용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나중에 참여하는 사람도 게시판 기능을 활용해서 단편별로 인용문과 대화 타래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혼자 앞서 읽는 것은 얼마든 좋습니다만, 이 모임은 혼자 읽는 모임이 아니라 다같이 템포에 맞춰서 대화 타래를 엮어가는 모임이니 유념해주세요. 공지에도 썼듯이 책에 관한 얘기는 4/1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감사해요♡
예 잘 숙지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일정과 규칙] 『알렙』에 수록된 전반부 8개의 단편을 3일에 한 편씩 읽습니다. 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죽지 않는 사람들 (4/1-4/3) ⏤죽어 있는 사람 (4/4-4/6) ※ 4/7은 쉽니다. ⏤신학자들 (4/8-4/10) ⏤전사(戰士)와 포로에 관한 이야기 (4/11-4/13) ※ 4/14은 쉽니다. ⏤따데오 이시도르 끄루스(1829-1874)의 전기 (4/15-4/17) ⏤엠사 순스 (4/18-4/20) ※ 4/21은 쉽니다. ⏤아스테리온의 집 (4/22-4/24) ⏤또 다른 죽음 (4/25-4/27) 간단히 두 가지 규칙을 공유합니다. 1. 단편의 시작과 끝에 제가 간단히 코멘트를 달고 [화제]를 지정해놓겠습니다. 해당 단편에 관한 대화를 나눌 할 때는 [이 대화에 답하기] 기능을 활용해 주세요. 그래야 나중에 참여하는 사람도 [게시판] 기능을 활용해서 각 단편의 대화 타래를 보고 흐름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2. 인용구를 공유해주실 때는 [책 꽂기]나 [문장 수집] 기능을 활용해주세요. 일반적인 대화와 구분하기 위함입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죽지 않는 사람들~] 첫 번째 단편입니다. 첫 단편부터 꽤 복잡한 구성을 보입니다. 간략히 구조를 살펴보면, 화자가 등장해서 첫 꼭지와 마지막 꼭지(후기)에서 화자의 지인인 뤼생즈 공주가 발견한 한 원고를 얻게 된 경위와 그 후기를 밝히고 있습니다. 문제의 원고는 로마 출신의 군단장인 플라미니오 루포가 쓴 것으로서 '죽지 않는 사람들의 도시'를 찾아 나서게 된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원고는 다시 플라미니오 루포가 쓴 다섯 개의 장(章)과 조셉 카르타필루스가 쓴 하나의 후기로 나뉩니다. 단편을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호메로스의 배경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호메로스는 기원전 750년경에 고대 그리스 이오니아 지방에서 활동하던 유랑시인으로서 그 유명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저자입니다. 하지만 저자의 출신지나 가계 계보에 대해서는 모호한 터였습니다. 그러다가 18세기에 접어들어, 일부 문학학자들이 유일 저자로서 호메로스의 실체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합니다. 호메로스 논쟁으로도 불리우는 이 논쟁은 마치 셰익스피어 논쟁처럼 작가가 한 사람인지 아니면 여러 사람인지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합니다. 양측 모두 논리와 근거가 탄탄했는데, 호메로스가 한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에서 한 사람이 썼다고는 볼 수 없는 텍스트상의 무수한 모순과 불일치를 그 증거로 제시해왔습니다. 논쟁은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어느정도 의견에 일치를 보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번역가 박중서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호메로스의 대표적인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문자로 정착되기 이전의 시대에서 구전되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호메로스는 구전의 시대에서 기술(記述)의 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에 놓여 있던 인물로서, 호메로스가 당시 구전되던 서사시들을 지면 위에서 다만 집대성했을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우리는 흔히 작가라고 하면, 머릿속에서 독창적으로 구상한 얘기를 백지 위에 펼쳐놓는 존재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작가의 역할과 범위를 비교적 넉넉하게 인정합니다. 이전까지 구심점 없이 흩어져 있던 텍스트를 저자라는 필터를 통해 편집하거나 해석하는 행위까지도 저술 행위로 보는 것이죠. 호메로스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양대 서사시를 쓰기 이전의 시대에는 이야기라는 것이 시인과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리며 조금씩 첨삭을 거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집대성해서 지면에 옮기다 보면 자연히 한 사람의 작품이라고 볼 수 없는 불일치가 도드라집니다. 이렇게 보면 호메로스는 양대 서사시를 머릿속에서 구상하고 지면 위에 쓰는 고전적 의미의 작가라기보다, 당시 구전되던 이야기를 자신의 통일된 기준으로 선별하고 첨삭하고 배치한 일종의 기록자이자 편집자로서 작가였던 셈입니다. (보르헤스 작품 전반에서 편집자이자 문헌학자, 필사가이자 사서로서 작가상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이는 플라미니오 루포의 원고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호머는 ⟪오디세이⟫를 지었다. 만일 무한한 정황들과 무한한 변화들을 가진 어떤 무한한 시간을 상정해 본다면 적어도 한번 ⟪오디세이⟫가 씌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도 아닌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단 한 사람의 죽지 않는 인간은 모든 죽지 않는 인간들이다. 마치 꼬르넬리우스 아그리빠처럼, 나는 신이고, 나는 영웅이고, 나는 철학자고, 나는 마귀이고, 나는 세계다. 이것은 바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따분한 방식으로 말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알렙 28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이 인용을 읽고 지난달에 읽은 <칼의 형상>에서 "한 사람이 어떤 일을 한다면, 그건 마치 모든 사람이 그 일을 한 것과 마찬가지요. (...) 나는 다른 사람들이고, 다른 누군가는 모든 사람이며, 셰익스피어도 어떤 관점에서 보면 저 가엾은 존 빈센트 문이라오." 이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틀뢴....>에 저자주로 달렸던 "셰익스피어의 구절 하나를 여러 차례 반복하여 읊는 모든 사람들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이다." 라는 문구도요. 지난번 모임에서 말씀해주셨듯이 셰익스피어도 저자 논쟁이 있는걸 감안하니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를 함께 보게 되네요. :) 호메로스에 대한 이야기 감사드립니다.
맞아요. 모든 사람은 한 명의 사람이고 한 명의 사람은 모든 사람을 대변할 수 있다는 일견 궤변 같아 보이는 주장은 보르헤스 작품 전반에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보르헤스가 자주 성서를 인용하면서, 십자가에 매달려 모든 인간의 죄를 대속한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요.
나는 미로를 지나왔지만, 반짝거리는 ‘죽지 않는 사람들의 도시’는 나를 공포와 혐오로 가득 채웠다. 미로는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지어진 구조물이다. 즉, 과도할 정도로 대칭을 이루는 그 건축물은 그런 목적에 종속되어 있다. 내가 어설프게 살펴보았던 이 궁전의 건축 구조는 아무 목적도 띠고 있지 않았다. 그곳에는 막다른 복도들, 결코 닿을 수 없는 높은 창문들, 독방이나 텅 빈 구멍으로 이끄는 웅장하고 화려한 문들, 층계와 난간이 아래쪽으로 매달려 거꾸로 된 믿을 수 없는 계단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거대한 벽의 한쪽 구석에 가볍게 걸려 있는 또 다른 계단은 두세 번 빙빙 돌다가 원형 지붕의 상단에 드리운 어둠 속에서, 그 어느 곳에도 이르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었다.
알레프 죽지 않는 사람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알레프'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1권. 20세기 현대 문학의 거장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대표하는 열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된 소설집. 중남미 문학의 권위자 송병선 교수가 새롭게 내놓은 이번 번역은 작가 특유의 메마르고 절제된 문체를 생생하게 살리고 의도적으로 사용된 추리, 환상 문학 등의 장르 문법을 존중하여, 현학적이고 고답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한 '21세기의 보르헤스'를 지향하였다.
저는 죽지 않는 사람들의 도시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었어요. 죽지 않는 사람들의 도시를 젖과 꿀이 흐르는 유토피아라기 보다는 황량하고 공포와 혐오를 일으키는 곳으로 묘사한 점이 보르헤스가 '불멸'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있었나 짐작해보게 했습니다. 필연적으로(?!) 에셔의 작품도 떠올랐고, 찾다보니 Miguel Herranz라는 사람이 이 묘사에 영감을 받아 그린 스케치도 있네요. :) https://mherranz.myportfolio.com/the-city-of-the-immortals 제가 상상한 건 Herranz의 스케치보다는 조금 더 클래식한 모습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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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그믐, 지금
딱히 이번이라고 뭔가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희망할 근거는 없었다.셰익스피어 시대에는 어느 여성도 셰익스피어의 비범한 재능을 갖지 못했을 거예요.횡설수설하는 사람들은 그녀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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