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보르헤스 읽기] 『알렙』 같이 읽어요

D-29
빚은 탕감되었고, 판결은 선언되었네. 퓨리스(Furies)는 물러났고, 역병은 잦아들었네. 모든 운명이 정해졌으니; 열쇠를 돌리고 빗장을 걸어라. 이제 죽음만이 달콤하리. 교만한 소망도, 짙은 실망도 죽일듯한 증오도, 들일 수 없네. 이제 모든 게 굳건하고 단단하여; 신들조차 흔들 수 없는 과거; 아다만틴의 문으로 날아가 영원히 빗장이 내리 걸렸네. 아무도 다시 그곳에 다시-들어갈 수 없네. 그토록 교활한 도둑도, 고결한 비책을 지닌 사탄도 창문, 구멍이나 틈새로 숨어들어 묶거나 끄를 수도, 벌충할 수도 없네. 한 장을 삽입할 수도, 위명(僞名)할 수도, 완성된 것을 완성하거나 새로이 할 수도, 영원한 사실을 변경하거나 수정할 수도 없네.
알렙 에머슨, 과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그래서 나는 내가 과연 줄기차게 진실을 기록했는가에 대한 확신이 서질 않는다. 나는 나의 이야기 속에 허위 기억들이 게재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나는 (만일 그가 실제로 존재했다면) 뻬드로 다미안으로 불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든다. 그리고 내가 그 이름으로 그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나중에 가서 삐에르 다미아니의 논거가 그의 얘기를 구상케 해주었다고 믿기 위해서 그러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알렙 112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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