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보르헤스 읽기] 『알렙』 같이 읽어요

D-29
한 번만 읽고 말 책이 아니니까 우선 송병선 역으로 다 읽고 좀 지나서 황병하 역으로 찬찬히 다시 살펴볼까 합니다. ^^
이번 작품은 평소보다 좀더 복잡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반복해서 읽다 보면 반복해서 나오는 메시지가 보이긴 합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평행세계보다는 평행이론 쪽에 더 가깝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플루타르코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폼페이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다고 언급한다. 아우렐리아누스는 요한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지 않았지만, 그는 이미 자기 삶의 일부가 되어 버린 불치의 병에서 치료된 사람이 느낄 법한 감정을 느꼈다.
알레프 58,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어쩌면 천국에서 아우렐리아누스가 자기와 판노니아의 요한(정통 교도와 이단자, 증오하는 자와 증오받은 자, 고발인과 희생자)이 불가해한 신에게는 단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하는 게 옳을 것이다.
알레프 59,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전사(戰士)와 포로에 관한 이야기~] 이 단편은 간단한 듯하지만 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먼저, 원제는 ⟨HISTORIA DEL GUERRERO Y DE LA CAUTIVA⟩입니다. 황병하 선생님께서는 ‘전사와 포로에 관한 이야기’로 옮겼지만, 제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스페인어에서 'LA'는 여성 단수 명사 앞에 오는 정관사이기 때문에 ‘LA CAUTIVA’라고 하면 ‘여자 포로’나 ‘포로여인’로 옮길 수도 있습니다. 송병선 선생님께서는 ‘여자 포로’라고 앞선 맥락을 살펴서 좀더 명료히 풀어서 쓰고 있습니다. 시작하기에 앞서 다른 작품과 구분되는 점이라고 한다면, 보르헤스가 화자로서 중간에 직접 등장해서 마치 에세이처럼 진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인지 이번 작품은 역사에 대한 에세이이자 자신의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후일담처럼 전하는 소설의 형태를 모두 띱니다. 본문 얘기를 해보면, 보르헤스는 역사가 파울루스(Paulus Diaconus)가 자신의 책에서 고대 게르만족의 한 지파인 롬바르드족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드록툴프트(Droctulft)라는 인물을 묘사했던 것을 떠올립니다. 드록툴프트는 롬바르드족이 로마의 도시 라벤나를 침공할 때 자기 부대를 탈영해서 오히려 라벤나를 방어하다가 전사했다고 알려진 역사 속 인물입니다. 전형적인 아르헨티나 평원의 '야만'을 대변하는 자가 로마의 도시인 '문명'의 편에 동조한 것입니다. 보르헤스는 드록툴프트가 "깨우친 자였고, 개종을 한 자"라고 말하면서, 그에게서 "마치 한때는 나의 것이었던 어떤 무엇을 다른 형태로 되찾은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르헤스가 야만에서 문명으로 움직인 드록툴프트에 전적으로 동조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보르헤스는 그 순간 전혀 다른, 사적인 기억을 떠올립니다. 그 기억이란 자신의 영국인 할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보르헤스의 할머니는 당시 경비대장이었던 할아버지가 머무르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후닌 지역에서 살던 도중, 광장에서 한 영국인 포로여인을 만납니다. 그 여인은 영국 요크셔 출신으로, 부모님을 따라 일찍이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왔지만, 평원의 인디오들에게 습격받고 부모를 여읜 채 포로가 되어 인디오 추장의 부인이 되었습니다. 당시 포로여인은 아르헨티나 평원의 야만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었는데, 이따금 지역에 들러서 필요한 생필품을 사던 도중 보르헤스의 할머니의 눈에 띈 것입니다. 보르헤스의 할머니는 같은 영국인으로서 그녀를 측은히 여기며 대평원으로 돌아가지 말 것을 권합니다. 그러나 의외로 포로여인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말하며 자신이 있던 평원을 택합니다. 이 단편에서 유심히 봐야할 점은, 보르헤스가 드록툴프트라는 역사적 기록을 읽으면서 자신의 할머니로부터 들은 개인적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보편적인 사료와 개인적인 기억이 맞닿는 지점에 보르헤스라는 화자가 있는 셈입니다. 분명, 아르헨티나의 평원으로서 '야만'과 도시로서 '문명' 사이에서 두 인물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보르헤스에 이르러서 두 사람은 하나의 이야기로 이해되면서, 야만과 문명이라는 일견 극단적인 대립 사이에서 쌍방향의 화살표를 얻게 됩니다. 드록툴프트와 포로여인의 묘사를 황병하 선생님의 번역으로 비교해보겠습니다.
그는 멧돼지와 들소가 득실거리는 형용할 길 없는 숲에서 왔다. 그는 피부가 하얗고, 활기에 넘쳐 있었고, 잔인했고, 우주가 아닌 자신의 대장과 자신의 종족에 충성적이었다. 전쟁이 그를 라베나로 데려온다. (···) 그는 낮과 삼나무들과 대리석들을 본다. 그는 전혀 무질서하지 않게 한데 모여 전체성을 이루고 있는 어떤 것을 본다. 즉, 그는 석상들, 사원들, 정원들, 방들, 원형경기장들, 꽃병들, 기둥들, 탁 트인 정연한 공간들로 구성된 하나의 조직체, 말하자면 한 도시를 본 것이다.
알렙 68-69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그녀의 이야기 저쪽 너머에는 야만의 삶이 번득이고 있었다. 말 가죽으로 만든 천막, 가축들의 똥으로 지핀 모닥불, 새까맣게 그을린 고기와 생 내장을 포식하는 연회들, 새벽을 틈탄 은밀한 이동. 그리고 목장들의 습격, 고함 소리와 약탈, 전쟁, 웃통을 벗어젖힌 말 탄 전사들이 몰고 가는 수많은 소떼들, 일부다처제, 악취, 그리고 마술. 바로 이 야만 속으로 한 영국 여인이 전락해 들어갔던 것이다. (···) 습지 근처에 있는 한 농장에서 한 남자가 양의 목을 따고 있었다. 말을 탄 인디언 여자 하나가 마치 꿈에서처럼 할머니를 스쳐 지나갔다. 그녀가 말에서 내리더니 양의 뜨거운 피를 마셨다. 나는 그녀가 이미 그러한 삶의 방식에 젖어 있어 그렇게 한 것인지, 아니면 할머니에 대한 도전과 상징적 표식으로서 그렇게 했는지 알지 못한다.
알렙 72-73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그 여자 포로의 운명과 드록툴푸트의 운명 사이에는 천삼백 년이라는 시간과 바다가 가로놓여 있다. 이제 그 두 사람은 똑같이 회복될 수 없는 존재이다. 라베나의 대의명분을 받아들이는 야만인의 모습과 황무지를 택하는 유럽 여자의 모습은 상반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어떤 비밀스러운 충동, 즉 이성보다 더 심오한 어떤 충동에 의해 휩쓸렸으며, 그들조차 설명할 수가 없었을 그 충동을 존중했다. 아마도 내가 들려준 두 이야기들은 단 하나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신에게는 이 동전의 양면이 똑같기 때문이다.
알레프 전사와 여자 포로에 관한 이야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보르헤스의 작품을 따라 읽다보니 작품들 중에서도 제가 더 좋아하는 갈래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번 작품같이 내용과 형식이 아름답게 맞아떨어지는 작품이 참 좋네요. (덜 사변적이라 그런가....) (단순화하자면) 야만에서 문명으로 간 전사와, 문명에서 야만으로 간 여자포로 / 고대의 역사적인 사실과 할머니에게 들은 기억의 역사 / 남성 전사와 여성 포로 / 이러한 대립항이 결국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인식이 짧은 글 안에 아름답게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릴적 한 쪽에 물감을 짜고 겹쳐서 그림을 만들어내던 데칼코마니처럼, 방향은 반대지만 결국은 하나의 그림이 되는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화자가 작가 자신임을 중간에 드러내는 게 재밌군요. 제목보고 살짝 긴장했는데 제목이 내용을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이야기였네요. 글쎄요. 시작은 이것저것 인용하며 거창한데 저자가 난입한 이후 여자 포로의 이야기는 좀 빈약하단 느낌이 없지 않았고요… 드록톨푸트 쪽은 그가 경험한 야만과 문명이 동등하게 서술되어 있는데 영국인 여자 쪽의 서사는 야만 쪽에만 치중되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균형이 맞지 않아서야….) 그래도 왠지 침을 꼴깍 삼키며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까 기대하는 맛은 여전합니다. “신에게는 이 동전의 양면이 똑같기 때문이다.”라는 마지막 문장은 앞서 읽은 <신학자들>과도 맞닿는 지점인데 좀 더 읽다보면 보르헤스의 종교관/신앙관이 더 드러날까 싶어 기대되기도 합니다.
그때 마치 꿈에서처럼 원주민 여자가 말을 타고 지나갔다. 그녀는 말에서 내려 따뜻한 양의 피를 마셨다. 나는 그녀가 이미 다른 방법으로는 행동할 수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도전과 그 제스처로써 그렇게 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 여자 포로의 운명과 드록툴푸트의 운명 사이에는 천삼백 년이라는 시간과 바다가 가로놓여 있다. 이제 그 두 사람은 똑같이 회복될 수 없는 존재이다.
알레프 65-66,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알레프'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1권. 20세기 현대 문학의 거장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대표하는 열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된 소설집. 중남미 문학의 권위자 송병선 교수가 새롭게 내놓은 이번 번역은 작가 특유의 메마르고 절제된 문체를 생생하게 살리고 의도적으로 사용된 추리, 환상 문학 등의 장르 문법을 존중하여, 현학적이고 고답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한 '21세기의 보르헤스'를 지향하였다.
그런 제작품들 중의 그 어느 것도 그에게 아름답다는 인상을 주지 않 는다.(나는 그걸 알고 있다.) 그것들은 그에게 충격을 준다. 그 것은 지금의 우리가 무슨 목적으로 사용되는지는 모르면서도 설계도에서 불멸의 지성을 엿볼 수 있는 복잡한 기계를 볼 때 충격을 받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 그런 계시, 즉 '도시' 때문에 갑자기 눈이 부시지만, 그의 눈은 원상태로 되돌아온다. 그는 그곳에서 자기가 한 마리의 개나 어린애가 될 것이 며, 그곳을 이해하기 시작하지조차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 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곳이 자기가 섬기는 신들과 자기가 맹세한 믿음과 독일의 모든 늪지대들보다 더욱 가치 있다는 사실도 안다.
알레프 62-63,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오. 저도 화자가 드러나는 부분이 재미있었다는 데 공감해요. - 보르헤스는 전사의 이야기에는 역사서의 권위를, 여자의 이야기에는 '우리 할머니한테 들었는데..'의 권위를 부여했네요.... ^^ quentin님 감상을 듣고보니 영국 여자의 문명 이야기도 궁금해집니다. :) 보르헤스 작품 읽다보면 반복되는 모티프가 많던데, 제게 분류벽이 좀 있어서 비슷한 작품별로 레이블링 하고픈 욕구가 들어요;;;;;;
모든 작가가 그런 건 아니지만 보르헤스는 몇 개 안 되는 모티프를 반복적으로 썼다고 합니다. 모든 작가는 한 권의 긴 책을 쓰고 있을 뿐이라고 믿을 정도로요. 근데 반대로 생각하면, 몇 안 되는 모티프로도 이렇게 여러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게 흥미롭지 않나요? 저도 엄밀하게는 아니어도 마음속으로 대강 분류해가면서 읽고 있습니다!
아마 후자 쪽의 서술이 비교적 빈약하게 느껴졌다면, 역사적 부피에 비해서 개인의 기억이 얕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뭐가 됐든 역사는 공통의 지반이자 기억이라 개인의 그것보다는 넓고 깊으리라 예상합니다. 저는 서술의 전체적인 부피가 균등한지 살펴보지는 않아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그보다 저는 다른 부분이 더 눈이 갔습니다. 역사적 맥락에서 개인의 기억으로 기울어가는 지점에서 역사와 개인의 이야기가 얽히고, 보르헤스 자신의 배경이 두 이야기의 접힘선으로 작용하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과도한 의무 부여일 수도 있겠지만, 뭐 소설 읽기란 게 잠정적인 결론을 읽어나가거나 엄밀한 논증 구조를 살피는 게 아니라, 독자가 그때그때 의미를 부여하고 또 때론 창조적인 불균형을 체험하는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본문에서 보르헤스가 드록툴프트의 역사를 읽으면서 그런 것처럼요:)
아. 이게 뭘까 계속 생각하던 참인데 덕분에 눈이 좀 뜨이는 기분입니다. 역사와 개인의 기억.
그 여자 포로의 운명과 드록툴프트의 운명 사이에는 1,300년의 시간과 바다가 가로놓여 있다. 이제 그 두 사람은 똑같이 영원히 되돌아올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라베나의 안녕을 택했던 그 야만인의 모습과 사막을 선호했던 그 유럽 여자의 모습은 서로 상충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어떤 비밀스러운 충격, 이성보다 더 심원한 어떤 충격의 포로가 되었고, 스스로조차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을 그 충격에 순종했다. 내가 들려준 이 두 가지 이야기들은 똑같은 하나의 이야기일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신에게 있어 동전의 양면이란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알렙 73-74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전사(戰士)와 포로에 관한 이야기] 이어서 얘기해보면, 문명과 야만의 대립처럼 오래된 주제도 없을 것 같습니다. 오래전부터 문명이라는 단어는 문명을 벗어나는 것들, 즉 '야만'의 대칭어로서 규정돼 왔습니다. 문명의 정의 자체가 '야만'으로 칭하는 것들에 대한 야만적인 배타성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이는 아르헨티나의 역사에서도 예외는 아닌데요, 19세기 스페인의 식민지에서 독립했을 때부터 아르헨티나는 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식민자와 피식민자, 유럽의 이주민과 라틴아메리카의 토착민, 도시의 문명과 평원의 야만이 대립되고 있음을 소설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독특하게도 아르헨티나는 야만과 문명 중 어느 쪽으로도 함부로 경사되지 않고 엎치락뒤치락 역동성을 발휘해온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례 중 하나가 바로 이 단편이라고도 할 수 있고요. 야만에서 문명으로 갔던 드록툴프트의 역사, 그리고 그 반대로 문명에서 야만으로 갔던 포로여인의 이야기는 문명과 야만, 역사와 서사가 만나는 사이 공간에서 아르헨티나의 모순된 역동성을, 또 보르헤스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보르헤스인가?' 물을 수도 있습니다.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보르헤스라는 인물의 독특한 가계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보르헤스는 19세기 독립 이후 내내 혼란했던 아르헨티나의 역사를 잘 보여주는 가계를 갖고 있습니다. 보르헤스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근교인 팔레르모에서 태어나, 라틴아메리카에 사는 스페인 정복자들의 자손을 뜻하는 크리오요(Criollo)의 전통 속에서 컸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영어로 된 소설을 읽으면서 유럽문화에도 익숙했다고 합니다. 보르헤스의 가계적 배경 때문인데요, 군인이었던 할아버지의 핏줄을 타고난 크리오요로서, 또 영국인 할머니의 보살핌 아래 유럽적인 영향을 듬뿍 받고 자라난 존재로서, 보르헤스는 어린 시절부터 두 대륙의 문화에 모두 익숙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앞서 살펴본 ⟪픽션들⟫에 수록된 ⟨끝⟩과 ⟨남부⟩에서도 이런 영향을 살펴볼 수 있으니, 이번 기회로 다시 한번 살펴봐도 좋을 겁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따데오 이시도르 끄루스(1829-1874)의 전기~] 에고고 조금 늦었습니다. 이번 단편도 약간의 배경을 알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데요, 배경을 모르더라도 큰 상관은 없지만 반만 읽은 찝찝한 기분이 들 수도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이 단편은 아르헨티나의 서사시 ⟪마르띤 피에로⟫에 등장하는 동명의 주인공을 잡으러 왔다가, 되레 같이 도망자 신세가 되는 따데오 이시도르 끄루스라는 인물을 다룹니다. 서사시의 공백에 보르헤스가 나름의 상상력을 가미한, 일종의 프리퀄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합니다. 눈치 챘을 수도 있겠지만, 이번 단편의 주인공인 따데오 이시도르 끄루스는 이전에 다뤘던 ⟨전사와 포로에 관한 이야기⟩에 나오는 드록툴프트의 이야기를 닮았습니다. 추측컨대 보르헤스는 드록툴프트의 역사에서 서사시 마르띤 피에로를, 마르띤 피에로에서 드록툴프트를 읽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드록툴프트가 자신이 속해있던 롬바르드족을 버리고 애당초 침공하려던 라벤나를 수호하다가 전사한 것처럼, 이 작품에 나오는 끄루스 역시 마르띤 피에로를 잡으러 왔다가 심정적인 변화를 느끼고 마르띤 피에로에게 동조합니다. 이 심정적인 변화의 순간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듭니다. 따데오 이시도르 끄루스의 전기를 살펴보기에 앞서, 이전에 언급했던 드록툴프트가 변화하게 된 지점을 다시 한번 살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마 그에게는 로마의 영원한 문자들로 이해할 수 없는 글들이 새겨져 있는 단 하나의 아치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런 느낌을 갖기에 충분하리라. 순식간에 그러한 발견, 즉 도시는 그의 눈을 멀게 했다가 그로 하여금 다시 새롭게 눈을 뜨게 만든다. 그는 자신이 그 도시 속에서 한 마리의 개나 어린애에 불과하고, 그 도시라는 것에 대해 도대체 이해조차 못하리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또한 그는 그 도시가 자신의 신들과 자신이 서약한 신앙과 독일의 모든 늪지대들보다 더 값지다는 것을 느낀다. 드록툴프트는 자신이 속해 있는 군대를 버리고 라베나를 위해 싸운다.
알렙 69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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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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