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내가 아직 내 안에 살아있다면

D-29
싱글챌린지로 왜 이 책을 왜 선택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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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선택한 이유 책을 들어 훑어보다가 옮긴이의 말이 인상 깊어 선택하게 되었다. 옮긴이의 말 첫 문단에서 작가가 ‘더티 리얼리즘’이라고 불리는 20세기 미국의 리얼리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고 했다. ‘불쾌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핍진성’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고 했는데 살아오며 경험한 개같은 사건들을 어떻게든 적어내고 싶은 나에게 힌트가 될 듯 싶고 용기도 얻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 문단에서 다양한 방법과 관점으로 이 책을 읽는게 가능하며 그러한 ‘오독’이 결국 책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즐거운 문학적 경험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해 글을 쓰는 사람의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 바로 이런 것인가 하는 흥미와 두려움이 생겼다. 뭐 구구절절 글을 옮겨가며 썼지만 결국 가슴이 두근거려서 골랐다.
책을 받아든 첫인상은 어땠나요?
처음 보는 작가여서 궁금했다. 내가 좋아하는 크기와 두께의 책이라 부담이 없다고 생각했고 겉표지가 없이 양장본 표지만 있었는데 판화로 찍어낸 듯한 타자기 삽화가 인상적이었다. 타자기 위에 영어로 뭐라뭐라 적혀 있는데 처음엔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만 다 읽고 나니 책의 ‘위기’에서 다뤄지는 소설의 시작 부분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우리 학교는 속물근성에 차 있는 학교가 아니었다. 어쨌든 우리는 그렇다고 믿었다. 그리고 가능한 한 그 믿음을 진실한 것으로 만들려 노력했다. …… 명문가 출신이거나 집안이 부유해 처음부터 유리한 출발선에 서 있는 학생들이 몇 명 있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설령 그들의 특권이 즉시 스들에게 자리를 마련해준다 해도 나머지 학생들은 그건 아주 위험한 자리라고 생각하고 싶어했다. 그런 자리에서는 더이상 나아가는 게 불가능했다. (자랑 혹은 과시하)는 식으로 그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게 전부였다. 달리 탁월한 점이 없다면 그렇게 노력을 하면서도, 오직 스스로 이루어낸 것에만 가치를 두는 명예 체제에 꾸준히 기반을 내줄 수 밖에 없었다. 그건 너무 깊숙이 자리잡고 있어 오히려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는 이념이었다. …… 한편 이 이념은 학생이 자기 손으로 직접 해낸 일이라면 무엇이든, 학교는 그 일을 다른 모든 기준을 넘어 그학생의 가치를 증명해주는 것으로 받아준다는 뜻이었다.
올드 스쿨 P.14, 토바이어스 울프 지음, 강동혁 옮김
우리 모두는 누구에게든 영향을 받았다. 헤밍웨이든, 커밍스든, 케루악이든, 아니면 그 작가들 전부,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작가들로부터. 아무도 인정하려 들지 않았으나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투고된 원고들을 그토록 잔인하게 조롱하면서도 모방 혐의는 한 번도 제기하지 않았으니까. 그건 아무런 이득이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의 영향을 받았다는 의식이 한번 굳어지고 나면 우리가 쓴 작품은 순전히 우리 것이라는, 집단적이고도 필수적인 환상이 깨지고 말 테니까.
올드 스쿨 P.34, 토바이어스 울프 지음, 강동혁 옮김
우리 학교는 성품과 성과에 따른 계급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 체제가 바깥에서 작동하는 체제보다 우월하며, 이 체제를 통해 과도한 자긍심이나 존경심을 보이는 습관으로부터도 멀어질 수 있을거라 믿었다. 괜찮은 꿈이었고 우리는 그 꿈을 실현시키려 노력했다. …… 우리는 배우일 분이며 …… 극장 밖에서는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또 다른 세상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모두 알면서도.
올드 스쿨 p.36, 토바이어스 울프 지음, 강동혁 옮김
나는 나 역시 유대인이라는 변명을 써먹지 않겠다고 간단히 결심해버렸다. 이런 식으로 비밀스럽게 구는 데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 그동안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누가 누구를 괴롭히거나 눈에 띄에 멸시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 그런데도 내가 보기에 유대인 소년들은 인기 있는 아이들이나 운동선수들조차 주변에 미묘하게 충전된 듯한 자장을, 동떨어진 듯한 기류를 달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쩐지 그 기류가 그 소년들 자신과 그들의 자질이나 소망에서가 아니라 학교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느 느낌이 내 안에 자리잡았다.
올드 스쿨 p.51, 토바이어스 울프 지음, 강동혁 옮김
현실세계에서의 계급(가문, 재력, 인종, 민족, 종교, 성별)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묵인된다. 학생들은 제시된 시나리오-학교에서는 성품과 성과에 따라 주어지는 명예를 얻을 수 있다는-에 맞게 연기하는 배우가 된다.
학교가 제시한 평등이라는 환상을 나도 믿고 싶었지만, 감히 그 믿음을 시험대에 올릴 수는 없었다. …… 어쩌면 작가가 되고 싶다는 학생들이 그렇게 많았던 것도 그래서인지 모르겠다. 내가 그랬듯 다른 소년들도 작가가 된다는 건 혈연과 계급의 문제에서 탈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작가들은 일상의 위계 서열 바깥에서 그들만의 사회를 이루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그들은 특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권력을 얻었다. 체제와는 한 발 거리를 둔 채 그 체제에 대한 이미지를 창조해내고, 그럼으로써 체제를 재단할 권력. 작가들이 권력을 가졌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오비디우스를 추방했다. ……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황제의 권력이 아니라 오비디우스에 대한 황제의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황제는 왜 우비디우스를 두려워했을까? 신의 뜻을 받은 자신도, 그 모든 군대도 잘 쓴 시 한 줄의 공격은 결코 막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던 게 아니라면 말이다.
올드 스쿨 p.52, 토바이어스 울프 지음, 강동혁 옮김
말/혀/글/펜 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찾아보니 “펜이 칼보다 강하다.” -에드워드 불워 조지 리튼의 희곡 <리슐리외 또는 모략> 2막 2장의 대사라고 한다. 보통 문학, 언론의 영향력을 표현할 때 인용되는 표현이고 나도 그런 의미로 이 문장을 떠올렸지만 바로 뒤에 이어지는 대사 ‘펜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펜에 깃든 권력이라는 마법, 이것을 빼앗아보아라. 황제들은 얼어붙고 대지는 조용해질 것이다. 권력자들로부터 칼을 뺏어도 나라는 구원받을 수 있다.’를 보면 본래 의미가 특권을 뒤집거나 흔든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원하는 것을 남에게 시켜 얻을 수 있는 문서, 서류의 권력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 이 또한 전체 맥락을 보지 않은 채 인용되어 뜻을 오독하는 사례가 될 수 있겠다.
하나 더. 말은 칼보다 강하다는 표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있다. “붓이 칼보다 강하다고 말하는 문필가는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붓으로 이루어진 범죄가 칼로 이루어진 범죄보다 더 큰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면 억울해합니다. 바르지 못한 일입니다. 붓이 정녕 칼보다 강하다면, 그 책임 또한 더 무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붓에 보내는 칼의 경의로 생각할 것입니다. -이영도의 소설 피를 마시는 새 중, 엘시 에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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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트 램지 선생은 프로스트가 따르는 “특정한 전통적 방식(경직되고 형식적인 언어의 배치)을 통해서도 현대적 의식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느냐”고 물으며 “산업화, 정부 및 광고업자들에 의한 프로파간다의 범람, 두 차례의 세계대전, 강제수용소, 과학으로 인한 신앙의 암전, 핵무기로 인한 인류 절멸의 가능성이라는 지속적 위협—들이 우리의 사유 체계를 바꾸어놓았다”고 말했다. 나는 위의 사건들이 욕망과 그것을 다스리지 못하는 이기심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세대에서는 욕망과 그 부산물들의 종류와 영향을 끼치는 범위가 굉장히 커졌다. 특히 ‘자아’라는 것은 너무나 비대해진 반면 공동체는 궁핍해 졌다. 세상은 개성을 강조하면서도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삶을 혐오하고 멸시하도록 부추기고 사람들은 거짓된 자아를 쫓으며 욕망 그 자체가 되고 파편화된 개인, 통제할 수 없는 대중, 조직되지 않는 시민이 될 뿐이다. 매일 매일 일어나는 충격적인 사건들로 인해 우리의 감정의 역치를 벗어난지 오래다. 감히 감각할 수 없는, 상상할 수 없는 사건들로 일상은 물들어가고 우리는 점점 무감각해진다. 형식 없이 흩어진 단어들이 정말 아무 의미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술은 현실의 모방이다.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세상을 닮은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예술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서로 연결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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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느낀 상실감은 그 소년들의 목숨 때문이 아니었다. 함께 있는 모습이 어찌나 꾸밈없이 다정하고 얼마나 편안해 보이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올드 스쿨 p.58 - 자신은 친구들과 꾸밈없이 지내지 못한다는 상실감, 토바이어스 울프 지음, 강동혁 옮김
나는 그애를 잠깐 곁눈질로 보았을 뿐 곧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 그 소년이 선생들에게 나를 팔아버렸을까 두려웠다. ……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혼자 학교 정문을 나섰다. …… 영영 이곳을 떠나버린 사람처럼 학교를 바라보자 가슴 깊숙한 곳이 아파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숨겨둔 담배와 라이터, 파이프 등 자살용 도구 모음이라 할 만한 것들을 꺼낸 다음, 복도 끝 화장실로 가 전부 쓰레기통에 쑤셔넣었다. 그후로는 단 한 번도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올드 스쿨 P.60, 토바이어스 울프 지음, 강동혁 옮김
……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 소설은 점점 덜 정직한 무언가로 변해갔다. 나는 동료 학생들이 나를 샘으로 생각해주기를, 시애틀에서의 내 인생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기를 원했다.
올드 스쿨 P.62, 토바이어스 울프 지음, 강동혁 옮김
나는 글쓰기란 마땅히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통은 그랬다. 하지만 이 시를 쓰는 건 즐겁지 않았다. 거의 한이 맺혀서 써낸 시였다. …… 이 시는 우리집과 지나치게 비슷했다. 이 자체가 우리집이었다. …… 내게는 그 아파트의 모든 것이 보이고 들렸다. 나 자신이 거기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보고 싶지 않았다. 더 나아가 누구도 그 모습을 보지 못했으면 했다. 결국 나는 엘크 사냥꾼이 나오는 시를 제출했다.
올드 스쿨 P.69, 토바이어스 울프 지음, 강동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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